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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369)화 (369/504)

369화. 영씨 가문 (1)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고경은 똑똑한 아이여서 어린 나이에 글자를 깨우치더니 책을 들고 다니며 즐겨 읽었다. 그녀는 이제 겨우 11살로, 집에 있는 책은 이미 거의 다 한 번씩 읽었고, 사서오경도 놓치지 않았다. 

작년에 고청운이 딸아이를 데리고 성당을 방문했을 때, 아마도 고경은 자신과 외국인이 라틴어를 사용해 대화하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둘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고 큰 흥미를 갖게 되었는지, 아이는 외국어를 가르쳐 달라며 졸랐는데, 당시 그는 고경이 더 많이 배우는 것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기에 아이에게 라틴어를 조금 가르쳐줬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딸이 이렇게 총명하고 공부에 관심이 많으니, 아이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보통 여인들처럼 시집가서 아들을 낳고 평생 후원 안채에만 틀어박혀 살기에는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상을 단독으로 배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아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었지만, 딸아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고청운은 자신이 딸을 잘못 가르칠까 봐 걱정되었는데, 고경이 집안과 바깥세상의 서로 다른 환경과 이념으로 불편해하며 시대상과 맞지 않는 삶을 사는 걸 괴로워할 때면, 그때서야 후회해도 소용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다, 앞으로는 딸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게 하자. 순리에 맡겨 키우고 나중에 아이를 위해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을 선택해 시집가게 하면, 아이는 좀 더 즐겁게 살 수 있을 거야.’

한편 고청운이 딸의 출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국공부의 영씨 가문 둘째집 역시 자기 딸의 혼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 *

“아언(*阿言: 영승언), 요아(*瑶儿: 영승언 딸의 아명)의 혼수는 1,000냥 밖에 지출하지 않았습니다. 침상이나 궤짝 같은 가구는 우리가 이미 고씨 가문에 가서 치수를 재기 시작했는데, 다른 혼수는 얼마나 챙겨주어야 할까요?”

영씨 가문의 둘째집 부인 오(吴) 씨는 장부를 펴고 궁리하고 있었는데, 영승언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계집종에게 빙락(*冰酪: 중국 당나라에서 보급된 초석이라는 물질을 사용해 여름에도 얼음을 얼리는 기술로 만들어진 음에 과일이나 과즙을 곁들여 먹는 음식 / 송나라 때에는 우유나 과일잼을 곁들여 먹는 유지방을 이용한 차가운 디저트를 만들게 됨) 한 그릇을 건네게 한 후 입을 열었다.

그녀는 지금 40여 세가 되었지만 건강관리를 잘 하여, 아직까지도 그녀의 젊었을 적 미모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옷깃을 잡아당기고 땀을 닦은 후 계집종에게 부채질을 시키고, 빙락 한 그릇을 단숨에 마시며 말했다.

“너무 안 단 것 아니오.”

오 씨는 슬그머니 눈을 뒤집으며 ‘탁’ 소리가 나게 장부를 탁자 위로 던진 후, 여전히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설탕은 공짜가 아니에요.”

그러고는 다시 사람을 시켜 살짝 얼린 과일을 내오게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알면서……. 좋소, 우리 이런 얘기는 그만하고, 손등이나 손바닥이나 다 같은 손인데 너무 줄이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요아가 시집갈 때는 주아(珠儿)가 시집갈 때의 혼수보다 2할만 줄였다오.”

적장녀와 적장자에게 늘 예우가 다르기 마련이었는데, 영요(*寧瑶: 고영량의 예비신부)는 집안의 셋째로, 밑에 남동생이 하나 더 있었다.

“형님이 공정하게 1,000냥을 지출하셨다네요.” 

오 씨는 원망스러운 듯이 한마디 했다. 

“좋은 물건들은 다 큰집에서 긁어가더니, 큰집 형님도 생계가 어려워졌다며 지출이 너무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혼례에 대한 규정은 정해져 있는 것이라 더 내주기 곤란하다고 하셨습니다. 큰집의 큰딸이 시집갈 때는 주변 10리를 다 치장하고 꾸며서 성대하게 시집보내놓으시고는……. 전 형님이 우리 성혼식에 1,000냥밖에 못 주겠다니, 그 사실을 믿지 못할 지경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영승언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형수님 집사는 그래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니, 당신은 이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소문이 퍼지면 좋지 않소.”

오 씨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제가 그런 얼토당토않은 짓을 벌이겠습니까? 이후 큰집이 이 국공부의 주인집이 되면, 우리는 분가를 해야겠지요. 우리가 분가해서 나가게 되면 이제 우리 집은 국공부가 아닌 5품 관리가 거주하는 관사가 될 겁니다.”

이런 말을 하는 그녀의 말투에서는 섭섭함이 느껴졌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직접 살림을 주관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좋아졌다.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 남의 집에서 얹혀사는 형국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시아버님께서 서자(庶子)인 막내를 유독 아끼셨다죠? 그렇게 따지면 당신은 적자 중에서는 막내인데, 왜 한 푼도 이득을 보지 못하고 있을까요?”

오 씨가 다시 물었다.

그는 잠자코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에 비해 그는 나름 형편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부모님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역시 큰형님이었다. 물론 자신에 대한 대우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현재 자신이 호부에서 지내고 있는 정5품 낭중이라는 직위도 아직 교체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가 큰 힘을 써 준 덕택일 것이었다. 

“우리는 더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소. 우리와 달리 아버지께 너무 총애를 받던 막내는 형제들의 공분을 샀으니 말이오.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 맏형한테 작위가 승계되고 나면 결국 분가해야 할 텐데, 그러면 그 아이도 나날이 살기 힘들어질 것이오.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지. 적어도 큰형님은 내게 잘해 주시니 말이오.”

그는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오 씨는 건성건성 고개를 끄덕이며 또 장부를 들고 계산해 보더니 말했다.

“우리 집에는 아직 혼처가 정해지지 않은 넷째가 있는데, 계산해 보니 남은 돈이 얼마 없어요. 당신도 앞으로 밖에 나가서 함부로 돈을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보아하니 딸의 혼수품에서 한 부분은 더 채워줘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고자 하니 또 자신의 부군이 못마땅해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잘 관리된 섬섬옥수를 내밀어 부군의 이마를 짚었다. 

“남들은 벼슬자리에 나가면 집에 돈을 마구 끌어다 모을 수 있다는데, 부군은 왜 맨날 돈만 쓰시고 집에는 은자를 끌어오지 않으십니까?”

이 말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있던 영승언을 자극했다.

“누가 우리 아버지께서 내가 우리 집을 건사하지 못할 만큼 돈을 적게 주셨다고 하였소? 그리고 도대체 누가 관식 생활의 편익을 취해 집으로 은자를 끌어간다는 말이오? 내가 고소해 버릴 테니 말해 보시오.”

오 씨는 목이 메었다.

영승언은 득의만면하게 웃고는 다시 정색하고 말했다.

“호부에 돈이 많이 돈다지만 그건 내 것이 아니오. 나는 호부에서 오히려 전전긍긍하게 지내고 있소. 자칫 한 발짝이라도 잘못 내디뎠다가는 당신과 우리 모친 두 분이 연루되어 화를 입을 수도 있는데, 몸을 사려야지. 만약 당신이 은자를 원한다면 내가 바로 한 무더기를 가지고 오리다. 다만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소.”

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모습을 보고 오 씨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저 불평 한 번 해 본 겁니다. 당신이 집안에 들여오지 말았어야 할 것을 가져오신다면 조심하세요, 제가 당신을 어떻게 할지도 모르니까요.”

이 말을 들은 영승언은 순간 진땀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오 씨는 무관 집안의 여식이라 장인어른 밑에서 무술을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그는 비록 몸이 약했지만 그렇다고 어디 가서 맞은 적도 없었는데, 성혼 후 부부싸움으로 난동을 부렸을 때 자신의 무력이 그녀에게 감히 견줄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힘은 늘 그녀에 비해 열세였다.

“허허, 안심하시오. 나는 해서는 안 될 일을 절대 하지 않소. 겨우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더 조심해야지.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기는 힘들 것 같아 아쉬움이 남소.”

영승언은 또 한숨을 쉬었다. 그는 어렸을 때 몸이 좋지 않아서 무예를 배울 수 없었는데, 그렇다고 독서에 밝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 산술 쪽에 재능이 좀 있어서 그의 아버지가 사람을 구해 그에게 더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나중에 은음제도 덕분에 벼슬에 올라 순리대로 호부에 들어갈 수는 있었으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그와 달리 그의 형은 군에서 잘나가고 있었다. 

문벌 쪽으로는 어떻게 해도 진입장벽을 뚫기가 어려웠던 그는 ‘차라리 지방관을 맡아 경성 밖으로 나가야 하나?’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근이 안 될 것 같았다. 

만약 가더라도 직위를 그대로 가져가서는 아니 되었기에, 그는 암암리에 궁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우리 집안은 그래도 문관들과 인맥이 좋으니까요. 이건 당신의 잘못이 아닌걸요.”

오 씨는 주판을 놓은 채 그를 위로하고 말을 돌렸다. 

“아언, 이번에 우리 요아가 고씨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이 옳다고 보십니까? 그들 집에서 보낸 혼수를 계산해 봤는데, 1,000냥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요아에게는 많은 사촌 누이들, 동생들이 있는데, 적녀들 중에서도 혼수가 적은 편이에요.”

“아니, 당신들은 원래 일침황량의 화본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소. 제일 처음 신지와 축국 경기를 하게 되었을 때, 당신들이 그를 얼마나 응원해댔는지 내가 모를 줄 아시오? 흥, 내가 그와 한 조였기에 망정이지. 

그리고 정혼이 이루어지기 전에 그들이 승낙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더니, 정혼이 이뤄지고 나니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게요? 왜요, 정혼 상대로 그쪽 집안을 선택한 것이 후회되시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말씀하시구려, 기껏해야 혼사를 물리고 나서 죄를 지었다고 사죄하면 그만이니.”

그는 무표정하게 비아냥거리면서도 그녀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 주었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그냥 말도 한 번 못 해 봅니까?”

오 씨가 눈을 부릅뜨고 마저 말했다.

“전 정혼 전에 면밀하게 수소문해 보았기에, 한미한 집안인 고씨 집안에서 1,000냥씩이나 되는 예물을 내주어서 매우 기쁘기도 했어요. 만약 그들이 이보다 더 많이 내놓았다면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을 거예요. 하지만 사돈되실 분의 성격을 보니, 횡령과 수뢰를 하셔서 이 예물들을 마련하시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 씨는 부군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급히 말했다.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이더라고요. 모두들 법을 준수하시고 올바르게 사는 좋은 분들이죠.”

이 말은 동서지간에 나누었던 몇 마디 말이 은연중에 영향을 받았던 탓으로, 그녀는 이 말을 입 밖에 내자마자 바로 후회를 하였다. 

필경 그들은 고씨 집안과 사돈을 맺으려 했을 때, 고씨 집안의 자산에 연연하지 않았었는데, 그만 오 씨가 셋째 동서의 이간질에 넘어가 버린 것이었다.

영승언은 뒤따르는 말을 듣고 나서야 얼굴빛이 좋아졌다. 그는 찻잔을 들고 찻잔의 뚜껑으로 찻물을 한 차례씩 흩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고신지는 그 이름대로 조심스럽고 신중하기 그지없다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 집과 사돈을 맺지 않았겠지요. 물론 그의 큰아들의 전도유망한 능력이 제일 영향이 크기는 했지만 말이오.”

귀족 집안의 자제였던 영승언은 비록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즐겼지만, 집에서는 엄격한 단속과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기에, 나이가 든 지금은 정말 들볶이거나 번거로운 일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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