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67)화 (367/504)

367화. 인사이동

일이 결정된 이상 일련의 혼례 절차는 시작되었고, 이제 고씨 집안에서도 빨리 혼례 준비를 마쳐야 했다. 다른 것은 괜찮지만, 집은 한 번 개축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저택 두 채를 더 보유하고 있었지만, 세를 놓아둔 데다 고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또한, 그들은 아직 분가(分家)도 할 때가 아니었다. 

고택은 2중 정원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집이라 앞뜰 쪽은 고칠 필요가 없고, 후원의 좌우 사랑채 쪽만 다시 두 개의 작은 정원으로 공간을 나누어 개축하면 되었다. 원래 있던 정원 공간을 조금 줄이는 걸로 구성했는데, 그나마 정원이 넓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집이 너무 작은 것 같소, 예전에는 너무 크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오.”

집을 한 바퀴 돌아보던 고청운은 간미와 함께 감개무량해했다. 그들 집 한쪽에는 방택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두 집을 통행하는 길을 넓히고 싶어도 방도가 없었다. 

“부군, 개축은 이미 잘되었습니다.”

간미가 웃어 보였다.

“부군께서 직접 일구신 가업인데, 나중에 아이들이 좁은 게 싫다고 하면 자기들끼리 돈을 벌어서 큰 집을 사오라고 하면 될 거예요.”

“좋은 생각이구려.”

뜻밖에도 고청운은 이 말을 듣고 기쁨을 참지 못했다. 그는 마음에 안 들면 능력을 키워 자기가 돈을 벌어서 나가면 된다는 사상이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3일 후에 혼수를 보내야 하는데, 무엇을 더 들여야 할까요?”

간미는 말하면서 혼수 명단을 고청운에게 건네주었다.

고청운이 명단을 받아서 한 번 훑어보고는 한눈에 혼수품에 들인 은자 비용을 계산해 냈는데, 합해서 약 1,000냥 정도를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들 집안에서는 이미 대규모로 혼수품을 마련한 상태로, 다른 사람들이 혼례를 할 때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자신들은 중간 수준 정도로만 준비했다.

혼수라는 것을 잘못 준비하면, 어사로부터 자기 배만 불리는 뇌물수수에 가깝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적게 주면 더 나쁜 상황이 도래했는데, 영씨 집안에서 자신들의 혼례 준비가 무성의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수준은 딱 적당하게 어디 빠지지는 않아 보였다. 

본래 그의 집에서는 800냥 정도만 내어줄 생각이었으나, 여기에 더해진 200냥은 방인소가 억지로 더해 준 것으로, 고청운과 간미는 잠시 고민했지만 감사히 받아 혼수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과연 방인소와 연 씨는 이를 더욱 반겼다. 

“잔치에 쓰일 여비는 넉넉하오?”

고청운은 혼례식 준비에 대해 별 의견이 없었으나, 일단 물어나 보았다.

“충분합니다.” 

간미는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장부를 건넸다.

고청운이 장부를 다 훑은 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400냥 정도 되는 은자가 남아 있었는데, 이는 잔치를 한 번 벌이는데 사용하기에는 넉넉한 비용이었다.

그는 현재 종5품이 되어 매년 녹봉은 은자 90냥을 받고 있었고, 식비나 초 등에 들어가는 생활 유지비 명목으로 12냥, 업무 지원 명목으로 12냥을 더 추가로 지원받고 있었다. 연말에 지급되는 가봉 200냥을 더하면 그가 정6품 주사직으로 있을 때 받던 180냥보다는 많이 늘어난 편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부가 수입이 크게 늘었는데, 특히 현재 운남 지방에서 수입원이 많이 생겨서 관례로 그에게 감사비 명목으로 매년 2~300냥에 달하는 은자를 보내왔던 것이었다. 이것은 관청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 모두가 이 일로 인해 마음을 달리하거나 추궁한 적은 없었다.

또한 그가 이 돈을 받는다고 해서 나중에 무슨 나쁜 일을 돕거나 눈감아줘야 하는 일도 없었다.

고청운이 얼마나 은자를 더 챙겨 받을 수 있을지는 상관인 첨 낭중의 결정에 따라 달라졌는데, 고청운은 이에 대해 관심도 두지 않았다. 고청운은 자기 부서 장부에 손을 대려 하지만 않으면, 그에게 절대 반대하는 일은 없었다. 

고영량에게 혼례일을 정해 준 후 즉시 의욕적으로 집을 개축하기 시작했기에, 고청운 가족이 잠시 옆집으로 거처를 옮겨가 있게 되자 방인소와 연 씨는 매우 기뻐했다. 

그 기간 동안은 모두가 매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전에 떨어져 살 때 두 노인들은 두 집을 오가는 것을 귀찮아해서 각자 따로 식사를 하고는 했었다. 두 노인의 식단이 고청운 일가와 다른 것도 한몫했는데, 그들은 나이가 들면서 좀 더 흐물흐물하고 짠맛이 강한 음식을 즐겨 먹게 되었던 것이다.

* * *

3년에 한 번 있는 회시가 끝났으니, 또다시 한 무리의 신인 진사들이 경성으로 대거 올라왔다. 보아하니 이제는 신진 진사가 경성에 머무르는 것이 예전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특히나 인기 있는 관아들은 더욱 그러했다. 특별히 우수한 것이 아니면 연줄에 의지해야만 겨우 경성에 있는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지방에 가면 덜 번거롭기는 했으나 좋은 자리를 찾기가 어려워, 지방직 공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경성에 남아 또 다른 공석을 기다리는 진사도 더러 생겨났다. 

이를 보고 고청운은 자신이 일찍 시험을 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그가 진사 시험을 봤을 때는 공석이 자연히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곧 새로운 진사들의 계층 고착화에 대해 생각할 마음이 없어졌다. 그 역시 근무처를 옮기라는 성지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직급에는 변동이 없었지만, 직무 부서에는 변동이 있었다. 호부에서 공부로 옮겨가게 된 것이었는데, 품계는 종5품의 원외랑 그대로였다.

공부는 건설, 병참(*兵站: 군사 작전에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관리, 보급, 지원하는 일), 수리(水利), 제조 등을 관장하는 부서였다. 그중에서 기계 제조, 군대의 무기, 그리고 선박 제조 등이 공부의 주관 사업이었는데, 국가의 장인들도 공부의 소관으로, 이 땅의 가장 뛰어난 장인은 거의 다 보유하고 있었다. 

전 왕조와는 달리 하 왕조의 공부에는 그 명의로 벌이는 사업 중 채광 및 야금(*冶金: 광석에서 금속을 골라내는 일이나 골라낸 금속을 정제 및 처리하여 여러 가지 목적에 맞는 금속 재료를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방직 방면의 관청에서 운영하는 공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들 공방의 수입 대부분은 호부를 통해 국고에 귀속되었고, 공부는 장인들을 인솔하고 관리하며 기술 혁신을 담당하고 있었다.

공부는 호부와 비슷하게 4개의 사를 두었는데, 영선청리사(營淸理司), 우형청리사(憂形淸理司), 도수청리사(都水淸理司), 둔전청리사(敦田淸理司)로 전국을 관리하고 있었다. 공부의 내부에는 필묵비, 차사비 등 공부의 4개 관사의 운영비 관리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무청도 있었다.

각 사에는 정5품이 있는 낭중을 1명씩 배치하고 종5품인 원외랑은 상황을 봐가며 1~3명을 두었다. 주사의 경우 2~5명이 배치되었는데, 부서의 업무가 얼마나 바쁜지에 따라 각자 다르게 배치했다. 

더욱이 무슨 직염소(*织染所: 방직물의 염색 제조 및 관리 등을 맡아보는 관아), 시탄사(*柴炭司: 목탄 등의 제작 및 관리를 맡는 관아), 영선소(*营缮所: 건축물 영선을 맡아보는 관아) 같은 것들도 전부 공부 소속으로, 이러한 소속 기구들을 모두 포함해서 공부 소속의 관원은 약 200여 명이나 되었고, 그중 대부분이 9품 관리들이었다.

고청운이 발령 간 부서는 도수청리사(都水清吏司)였는데, 천하의 각종 수리 공사를 주관하는 부서로, 이전의 횡령 사건으로 원래 있던 일부 공부 관리들이 조금씩 더 위로 전진 배치되었다. 도수청리사도 그러했는데, 특히 기존 전임자 중 한 명은 유배되고 한 명은 참수되어, 낭중 한 자리와 원외랑 한 자리가 공석이었다.

고청운은 배치될 부서를 알고 난 뒤, 말문이 막혔다. 

‘취임 후가 이렇게 처참하다니 참으로 불길하구나.’ 

지금의 도수청리사에는 조(赵)씨 성을 가진 원외랑 한 명만이 남아 있었는데, 아니지, 그는 부정부패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 운 좋게도 사건에 연루되지 않았고, 화(禍)를 복으로 받아 5품 낭중 직위에 오를 수 있었다. 

고청운은 이곳의 유일한 원외랑직을 맡고 있었다. 그 뒤로 다른 부서에서부터 옮겨온 신입인 2명의 주사가 있었다. 

새 부서의 이런 모습을 본 고청운은 자신이 한동안 매우 바빠질 수밖에 없겠다고 느꼈다.

방인소도 이 상황을 전해 듣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더니 말했다. 

“이것은 네게 주어진 기회다. 조 낭중(赵郎中) 이 사람은 노부도 잘 알고 있는데, 뼈가 빠지게 일하는 부류의 사람이더구나. 다만 성미가 곧고 성질이 급하며 말을 잘하지 못해서 남의 미움을 사기 쉬운 자였다. 이 노부는 그가 종5품에나 겨우 머무를 줄 알았는데, 이번엔 거저 승진을 했구나.”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성미가 급하다니? 오늘 새 부서로 짐을 옮기고 있다가 마주친 조 낭중은 매우 엄숙해 보였지만, 말을 건네 보니 그런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만약 노부가 잘못 기억한 것이 아니라면, 그는 내년 하반기에 퇴직할 나이일 거다. 지금 네가 속한 부서에서는 원외랑이 너 한 사람 밖에 없지 않느냐? 조 낭중이 벼슬자리에서 내려가고 나면…….”

방인소는 말을 아꼈다.

사실 고청운도 생각한 바가 있어 그의 잘려나간 말뜻을 알 수 있었다. 

* * *

고청운은 원래 잠 낭중과 헤어져 아쉬웠지만, 그의 새로운 상관인 조 낭중을 보자 태도가 한결 좋아졌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서둘러 업무를 익혀야겠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가 친지방문 휴가를 이미 사용한 적이 있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직무 이동이 확정되고 나자, 고청운은 그제야 다른 사람들의 변동에도 신경을 돌릴 수 있었다.

우선 그가 가장 주목하는 사람은 방자명이었다.

내년에 벼슬에서 내려오는 하상 대인은 벼슬자리에서 내려오기 전에 자손들에게 앞길을 마련해 주고자 하였다. 그중에서도 아들과 사위인 방자명의 미래가 가장 유망했다. 

방자명은 지주로 재임 중 몇 년 동안 수리 공사를 진행했고, 뽕나무 재배도 권했는데, 관세 인하와 상업을 한 덕에 관할지 경제 발전이 양호하게 발전해 도시가 활력이 넘치게 변모했다. 이는 자연히 거둬들이는 세금이 증가한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한 차례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지금은 남경부(南京府)의 동지(同知)직을 수임하게 되며 정5품으로 승격되었다.

남경부는 본 왕조의 직속 관할 구역으로, 현대의 직할시(*중국의 중앙정부가 직접 관할하는 도시를 말함)에 해당하므로, 이곳에서 동지직을 수임한다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점도 많았고, 앞날도 밝았다.

고청운은 방자명이 이렇게 계속 발전을 거듭하는 소식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 나중에 그가 경성으로 전근을 오게 되면 틀림없이 아주 중요한 직책에 중용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암묵적 약속은 알게 모르게 꽤 견고했는데, 지금 한 사람은 지방에서, 또 한 사람이 경성에 있으면서 서로 호응하여 그들 자신들에게 모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다음으로 고청운이 신경 쓴 것은 바로 그의 진사 동기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직무변동 없이 그대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승진을 하기도 하였다. 

고청운은 이맘때가 되면 전도가 유망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집안에 배경이 있거나, 혹은 상관의 허벅지를 껴안아서라도 승진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 진사 동기들 중에는 줄곧 6~7품 품계에서 배회하거나 지방에서만 배회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부는 종4품에 올라 본격적인 고위 관료 반열에 오르기도 하였던 것이었다. 

고청운은 앞으로 10년만 더 지나면 서로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는 이 부분에 대한 갈망이 그리 강하지 않아 마음을 편안하게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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