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화. 분석 (2)
오후 나들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청운은 말에 올라 마차 옆을 따라 갔고, 간미 등의 여성들이 타고 있는 마차 곁을 지나쳐 앞쪽으로 갈 때 옆의 마차 안에서 고영량 형제의 웃음소리가 들리자 빙긋 웃음이 났다.
“아버지, 방금 진외당숙을 뵈었어요.”
고영진이 갑자기 차발을 열며 큰소리로 말했다.
고청운이 “그래.” 하고 화답했다. 오늘 진교는 다른 거인들과 함께 나들이 약속을 해서 고청운 일가와 함께 나들이에 나서지는 않았다.
고영진은 고청운이 아랑곳하지 않자 대뜸 다시 말을 걸었다.
“아버지, 저도 마차 말고 말을 타고 싶어요.”
“안 돼.”
안에 있던 고영량이 그를 안으로 끌고 들어가며 말했다.
“형도 아직 탈 수 없는데, 너는 당연히 안 되지. 나랑 함께 있자.”
“내가 무슨 풍한에 걸린 것도 아니고.”
고영진이 중얼거리다 말고 고영량에게 기대어 물었다.
“형아, 나 내년이면 황립 서원 갑원(甲院)반으로 올라가는데, 아버지께서 고향에 내려가 수재 시험을 보게 해 주실까, 내년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는 며칠째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고영량은 마차 옆쪽에 설치된 작은 서랍에서 녹두떡 한 접시를 꺼내 먹으며 대답했다.
“내년이면 되겠지. 내년 2월에 현시가 시작되고, 그 다음에 부시, 원시가 시작되니 말이야. 이 시험들을 다 통과하게 되면 넌 수재가 되는 거야.
그러고 나면 금방 9월일 텐데, 아버지께서는 네가 집에서 1년 동안 더 머물면서 향시를 치르기를 바라실 거야. 시험 준비를 한 번에 끝내서 네가 다시는 같은 시험 준비를 하지 않도록 말이야. 한 번 고향에 다녀오는 여정이 좀 번거롭니? 게다가 그렇게 준비를 하게 되면 2년 동안 고향에 머무를 수 있게 되니,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정말 기뻐하시겠다.”
고영량은 동생이 귀담아 듣고 있는 모습을 보고 덧붙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올해 81세, 증조할머니는 80세가 되셨어. 그리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벌써 60살을 넘기셨지. 아버지께서는 따로 경성에 나와 지내고 계시니 평소 걱정이 많으실 텐데, 네가 고향에 돌아가 머물러 있는 동안은 마음이 많이 놓이실 거야.”
그러자 고영진은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고향 집과 자주 서신을 통해 왕래하고 있었기에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다.
“그렇게 말을 해 주니 잘 알겠어. 아직 1년 남았네.”
그는 이제부터 잘 준비해 볼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1년도 안 남았지. 8~9월이면 출발해야 하는데, 올해는 고향에서 춘절을 쇠게 되겠구나. 연말은 너무 추워서 먼 여정을 떠나기 좋지 않으니 말이야.”
고영량은 다 식은 떡이 맛없고 달기만 해서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고는 고정되어 설치된 화로에서 주전자를 들어 뜨거운 물을 한잔을 따라 입을 헹구었다.
그러다 고영량은 고개를 돌려 고영진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발견하곤 물었다.
“정말 그리도 시험을 보러 가고 싶은 거니?”
“형도 아버지도 다 시험을 쳤으니, 나도 치고 싶어.”
고영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그는 자신이 이전에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성적이 형만큼 우수하지 못한 게 원망스러웠는데, 다행히도 얼마 전에 아버지가 시험을 쳐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고향에 가면 가는 길에 소보 형도 만나볼 수 있을까?”
고영진은 문득 이 생각이 떠올랐다.
그들 형제는 육훤과 줄곧 친분이 두터웠는데, 어쨌든 모두 황실 서원의 학생으로 육훤이 늘 서원 내에서 여러 방면으로 잘 돌보아 주었고, 자주 만나왔기에 사이가 아주 친숙했던 것이다.
그 말에 고영량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내려가는 길은 해로를 통하지만, 소보 형이 수사(*水师: 수군)로 있는 회성(徽省) 소호(巢湖)를 지나가지는 않아.”
“그럼 운하를 통해서라도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나도 가는 길에 주변 풍경을 구경하고 싶거든. 매번 해선을 타고 이동하면 너무 지루하잖아.”
고영진은 또다시 차발을 걷어 올리고 고청운을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 고향에 가는 김에 소보 형을 만나 봐도 될까요?”
마차 밖의 고청운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귀가하는 길에 사람이 많은데다가 마차 바퀴 소리들이 더해져 그는 방금 마차 안에서 두 형제의 대화를 듣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갑자기 이 문제를 듣게 되자 좀 뜬금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육훤의 이야기가 나오자, 고청운은 그가 1년 동안 효를 다하고 육택으로부터 소호 지역으로 보내져 훈련받고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곳은 수군 발전의 요람이었는데, 육훤이 옮겨 간 지는 이미 1년, 아니 이미 2년 가까이 되었다. 그가 되돌아오지 않고 있는 정황으로 보아, 정말 해군 쪽으로 나갈 생각인 것 같았다.
아니, 고청운은 말을 잘못했는데, 지금은 해군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수사(水师)’라고 칭하고 있었다.
비록 그가 육훤에게 과거에 수사 방면으로의 발전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단지 자신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런데 육택이 이쪽 방면으로의 발전을 도모했다는 것은, 틀림없이 다양한 방면의 요소를 고려하고 정한 일일 것이었다.
그는 육택이 결국 육훤에게 육군이 아닌 수사를 선택하게 한 정확한 이유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이것이 육훤이 바란 것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황립 서원에서 수사와 관련된 과정을 공부한 육훤은 지금 원하던 대로 수사로 발령이 나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걸 매우 기뻐했던 것이었다. 다만 지금 그의 품계가 7품이라 할지라도 훈련은 고되다고 하였다.
고청운은 귀향길에 육훤을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를 들은 고영진은 기분이 나쁜 듯 입을 오므렸다. 그러다 자신이 찾아 가더라도 소보 형이 바빠서 자신을 상대할 틈도 없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결국 만나러 가는 걸 그만두기로 하였다.
* * *
집에 돌아온 후, 고청운은 고영진이 과거 시험을 치르고 싶다고 한 것에 대해 간미와 상의했는데, 당연히 간미는 아들이 과거 시험 보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후에 그는 방인소와 연 씨에게도 물었는데, 두 노인은 비록 고영진이 경성을 떠나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될 시간에 아쉬워하면서도, 이 문제가 아이의 앞날이 달린 큰일임을 생각해 아이의 과거 시험 응시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모두가 동의한 후에야 고청운은 그제야 고영진과 다시 이 문제를 상의했는데, 이 꼬맹이가 가지 않겠다고 할 리 없었다.
“아버지, 안심하세요. 제가 고향에 가면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께 잘해 드릴 거예요.”
고영진이 웃으며 가슴을 두드렸다.
“아버지, 저는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라고요. 혼자 고향에 내려가도 두렵지 않아요.”
“어릴 때는 고향에 갈 때마다 강가에 가서 물놀이 한다고 매번 까맣게 그을려 돌아오지 않았느냐. 이번에는 조심하거라.”
고청운이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수려한 용모와 행동은 남들이 보기에도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문인들과의 교류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는데, 풍채가 있는 사람은 항상 사람들이 다르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갑자기 피부가 까무잡잡한 소년이 백면서생들에게 들이댈 것을 생각하니 정말 화풍이 돌변하겠구나 싶었다.
고청운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언급하자, 고영진은 민망함을 참지 못하고 머리를 긁적이며 헤헤 웃었다.
이 일을 다 논의하고 나자, 식구들은 고영진이 2년 동안 경성을 떠나 지낼 예정이어서 그런지 그를 평소보다 더 총애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방인소와 연 씨가 고영진을 너무 귀여워해 고청운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회시의 시험 결과가 나왔고, 진교는 아쉽게 낙방을 하였다. 그는 허탈해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겨우 추슬렀다.
“내 걱정은 하지 마시게. 난 원시나 향시에서도 몇 번 떨어지고 나서 다시 합격하지 않았는가.”
고청운의 얼굴을 보고 친밀감을 드러낸 진교가 자조했다.
“관례대로라면 우리 같은 문인들은 낙방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이라고 봐야지.”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했다.
“이렇게 부지런히 노력하시니 다음에는 꼭 합격할 수 있을 겁니다.”
진교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자신 있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낙방을 하니 3년 후의 자신의 상황이 어떠할지, 자신이 다시 경성에 올 수는 있을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고청운은 낙방 소식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그가 신경 쓰여, 그에게 청했다.
“저희 첫째 아이가 올해 8월이나 9월에 성혼식을 하는데, 경성에 잠시 더 남아서 축하주라도 한 잔 마시고 내려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의외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바로 고씨 집안과 영씨 집안이 정한 혼인일인 이때, 성혼식이 거행될 것이었다. 이때면 영씨 집안의 아가씨도 만 16살일 테고, 자기 집 큰아들은 18살일 테니 너무 이른 편도 너무 늦은 편도 아닌 결혼 적령기였다.
고영진은 형의 혼례식에 참석한 뒤 고향으로 내려가면 시간을 딱 맞출 수 있었다.
올해 초 영씨 집안과의 혼례일이 정해지자, 고청운은 곧바로 고향으로 서신을 보내 부모님에게 상경해서 큰손주의 혼례식에 오라고 초대했다. 예상대로 두 노인은 상경을 거절했는데, 오가는 여정이 너무 힘에 부친다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서신에는 손주의 혼례에 대한 기쁨이 가득했고, 약혼자 인선에 대해서도 전혀 이견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니,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의 상경은 더욱 불가능했다.
멍해져 있던 진교는 바로 정신을 차리고 축하의 말을 연발했다.
“잘되었네. 소석이의 큰 경사인데, 내가 반드시 경성에 더 남아 있다가 혼례식에 참석하겠네. 사촌 동생을 축하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겠어.”
이는 사촌 동생 집안의 크나큰 경사였는데, 그가 미리 고향에 내려갔다가는 혼례식 참석만으로 상경하기는 어려울 테니 그때까지 더 머물러 있는 것은 실례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 말을 듣자마자 자랑스러운 웃음을 참지 못했다. 큰아들이 성혼을 치르고 나면 진짜 어른인 셈이었던 것이다.
‘처음 그가 막 태어났을 때 안아 들었던 그 작은 몸은 내 양손만으로도 다 감쌀 수 있을 정도였는데, 어느새 결혼할 나이가 되다니. 정말이지 아이 키우기가 쉽지 않았어.’
“그럼 잘되었습니다. 아이의 혼례가 끝나고 나면 그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니, 돌아가는 여정에서 서로 의지가 될 겁니다.”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이번에 그가 세운 계획으로, 고영진만 고향에 내려간다면야 걱정이었지만 고영량 부부에 진교까지 동행한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무엇보다 이번 귀향은 고영량이 며느리를 데려가 노인들에게 얼굴을 알리러 가는 것뿐만 아니라, 새아가의 이름을 족보에 올리기 위함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