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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365)화 (365/504)

365화. 분석 (1)

고영량의 방에서 나온 후, 고청운은 얼른 후원의 침실로 넘어가 옷을 갈아입고, 간미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넨 뒤 옆집의 방인소를 찾아갔다. 

그가 말을 다 전하자, 고청운의 예상과 같이 방인소는 일찍이 이 일에 대해 알고 있었던 눈치였다. 

“이 일은 누군가 노부에게 알려준 것인데, 아직 확실치 않아 네게 알리지 못했구나. 지금 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네가 예상한 맥락과 맞아떨어지는 듯한데, 공부(工部) 에 가게 되면 네 직위는…….”

방인소는 잠시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보가 너무 없어서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승진이 아닌 단순한 부서이동만 될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겁낼 거 없다.”

고청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운남사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이제 호부의 일도 손에 잡혀 가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새로운 직무에 다시 적응해야겠군요.”

공부는 비록 요 몇 년 동안 변화가 많은 부서라 예전보다야 인기가 좀 올랐다지만, 여전히 낙후된 부서로, 새로운 선박이 연구되어 나온 후 겨우 다시 이전의 위상을 회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공부라는 곳은 원래 6부 중에 최하위의 위상을 가진 관아였기에 호부와 견줄 수 없었다. 

고청운의 마음은 정말 답답해졌는데, 그는 호부의 상하, 업무 모두 잘 알고 관아 일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의 상관인 첨 낭중은 대권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인물로, 자신만 보면 등을 두들겨주며 잘 대해 주었다. 

고청운은 운남사의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업무 배치와 검사 업무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들과의 대외 연락도 맡고 있었던 실정이었다. 이런 업무 배치는 구색을 잘 맞추어서 정교하게 진행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의 화본 작업이 작년 말이 되었어도 완결을 맺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는 호부의 과업을 잘 진행하면서도 자신이 집필할 책을 다 잘 쓰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 호부의 일에 매우 큰 힘과 정신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일정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그의 취향에 부합했던 것도 있었다. 

‘그간의 생활이 너무나 만족스러웠는데 지금 와서 이렇게 되어버리다니……. 이런! 하상 대인은 내년에 벼슬자리에서 퇴직하셔서 더 이상 이부 우시랑직을 수임하지 못하지 않은가. 사람이 떠나면 차도 식는다고, 당연히 상관이 떠나면 인정 역시 사라지는 법인데…….’ 

물론 고청운은 이런 갑작스런 승진과 직급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자신에게 닥친 것도 의외의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방인소가 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위로했다. 

“이런 일은 늘 벌어지는 일이지 않으냐, 항상 호부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없지.”

인기 없는 부서면 몰라도, 호부 같은 인기 많은 관아에서는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지 않으면 무능하다고 바로 전출되었고, 뒷배가 강해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 어려웠다.

고청운이 자세히 생각해 보니, 설령 그가 호부에서 한 단계 더 승진하여 정5품 호부낭중직으로 승진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단계에서 계속 더 위로 올라가고자 한다면 어차피 호부에서 나가야 했을 것이었다. 

결국 호부낭중의 바로 위의 직급은 정3품의 좌, 우시랑 직이었는데, 중간에 몇 개의 품계를 건너뛰어야 다다를 수 있는 직급이었다. 

‘아니다, 이제는 그저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자.’

결심을 굳힌 고청운은 오히려 더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어느 부서로 가든지 상관없었던 것이었다. 처음부터 제대로 최선을 다한다면 어느 부서로 가든 결국 해낼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그는 평소대로 자신이 맡은 업무를 처리해 나갔는데, 오히려 그의 상관인 첨 낭중이 이따금 이상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기도 하였다.

고청운이 상황을 물어보려 했었지만,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귀찮아 입 닫고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될 일은 어련히 알아서 알게 되겠지.’ 

그는 사서 고생하지 않기로 했다. 

* * *

며칠 지나지 않아 고영량의 몸 상태는 크게 호전되었다. 또 밖의 날이 쨍쨍해져서 햇살이 몸을 비춰 몸이 금세 따뜻해지자, 교외의 맑은 시냇물, 연둣빛 푸른 풀, 알록달록한 들꽃, 그리고 눈 편한 둔덕들이 떠올랐다.

교외에서 만끽하는 하늘거리는 버들가지, 스치는 봄바람……. 

이들 가족은 더 이상 집에만 머무를 수는 없어 그간 해 오던 대로 봄나들이에 나섰다.

* * *

“몇 년만 지나면 우리는 더 이상 경기를 뛸 수 없을 걸세,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내줘야지.”

성혼식이 임박한 터라, 고청운과 영승언이 축국 경기 이후 함께 서 있는 모습은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는 고청운은 옷이 땀에 젖을 지경이었는데, 등으로 봄바람이 살랑살랑 스치니 오히려 시원하고 상쾌해졌다. 

그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감회가 들었고 마음속으로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싶었다. 

“그동안 호부에 들어온 젊은이가 꽤 되는 것은 사실이지요.”

고영량만 봐도, 지금 자신들의 아이들은 이미 모두 시집, 장가를 들어 아이를 낳을 나이였다. 그러니 고청운도 이제 곧 정말 할아버지가 될 터였다.

‘남의 눈에 벌써 내 나이가 늙어 보일 때가 된 걸까?’ 

이런 생각이 들자, 고청운은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여러 해가 흘러가 버리다니. 할아버지가 된다라…….’

고계산의 모습을 떠올린 고청운은 아직도 슬퍼서 온몸이 떨려왔다. 

시간이 이렇게 지나도 아픈 마음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고청운이 시선을 돌려 뒤를 돌아보다가 고영량이 영씨 집안의 처녀와 강가를 산책하며 한담을 나누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곳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기에, 계집종과 서동이 따라다니는 조건으로 겨우 어른의 허락을 맡은 자리였다. 

그들은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 보였다. 고청운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얼굴 표정까지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아들의 꼿꼿한 모습을 보니 아이의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는 건 알 수 있었다. 

고청운은 더 이상 그들을 지켜보지 않고, 다시 고영진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아이는 동창들과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축국을 하고 있었는데, 키가 한 뼘 더 커져서인지 이제 훤칠해 보이는 어린 소년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아이가 활짝 웃는 얼굴에 하얀 치아를 드러낸 채 축국을 하는 모습은 젊음이 물씬 풍기는 활기찬 모습이라, 고청운은 아이를 휘감고 있는 젊음의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소어도 장가를 보내야겠구나.’ 

영승언이 그의 눈빛을 따라가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애들을 이제 다 키웠군.”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두 사람은 두 집 아이들이 혼례를 치르는 날에 대한 일을 의논했다. 모두 이 일을 매우 중요시 하고 있었기에, 대략적인 날짜만 정해지면 중매쟁이를 불러와 나머지 절차를 밟기만 하면 되었다. 

상대방에게서 은근히 조급함이 전해져 왔는데, 고청운도 원하는 바였다. 

보아하니 영국공의 몸이 정말 좋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들 두 집 모두 이렇게까지 급하게 성혼을 서두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때를 잘못 맞추었다가는 영승언이 3년간 효상을 치러야 했고, 손자들 역시 1년간은 효를 지켜야 할 것이었다. 어느 부모가 효를 다하는 기간에 딸을 시집보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기간에 성혼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렇게 혼사가 미뤄지게 되면, 3년 후 손자를 볼 시기가 되어서야 겨우 자식을 시집, 장가보낼 수 있을 터였다.

고청운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상황에 맞추어 행동하고 있었던 것인데, 어차피 고씨 집안은 준비를 다 갖추고 있었으니 걱정할 일도 없었다. 

이 일을 다 논의한 후에 두 사람은 또다시 회시에 대한 주제로 옮겨갔다. 이번에 고영량은 중간에 병이 나서 마지막 장의 시험을 놓쳤지만, 영승언의 큰아들은 시험을 끝까지 치르고 나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승언은 이번이 그가 처음으로 회시에 참가한 것이라 아직 결과가 발표되지 않은 시점에서 조마조마하게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나중에 우리 집 대랑(*大郎: 맏아들)을 자네에게 보내어 가르침을 청하고자 하네. 나는 산술만 해도 단지 계산만 할 줄 알아서, 과거 쪽으로는 정통하지 못하거든. 그 아이가 도대체 이번 시험에서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답안을 보아도 알아봐 줄 수가 없으니, 자네 집에 보내 한번 도움을 청해도 되겠는가? 결과 좀 한번 가늠해 주면 좋을 것 같네.”

그는 고청운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간절하게 말했다.

고청운이 그런 그를 보고는 멍해졌다가 이내 대답했다.

“좋습니다. 언제든지 찾아오도록 하세요. 다만 먼저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제 판단과 회시 주임 시험관의 판단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 의견은 그저 참고로만 보세요.”

회시라……. 품계로만 말하자면, 그의 현재 신분으로는 시험관이 될 수 없었다. 회시란 정말이지 너무나도 중요한 과거 시험이었기에 회시의 주임 시험관으로 발탁되고자 한다면 1품 혹은 2품 고관직에 있어야 하였고, 부시험관만 해도 3, 4품 이상의 관원이여야만 그 자격이 부여될 수 있도록 관행과 법규가 잘 짜여 있었다. 

고청운은 시험관으로 당장 일을 해 볼 순 없었다. 하지만, 시험 기출 문제만 담당하는 시험문제관이라는 직위도 있어, 향시 주임 시험관으로 일했으면 나중에 기출 문제를 내는 시험문제관으로도 일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네, 그저 틈 날 때 아들의 학습을 조금만 지적해 주면 고맙겠네.”

그가 활짝 웃었다.

고청운이 호기심에 물었다. 

“다른 진사 한 분을 모셔놓고 가르침을 청해도 되시는데, 저를 찾으시는 연유라도 있습니까?”

이미 퇴직한 진사 한 사람을 스승으로 모시는 것쯤은 어려울 게 없었다. 

스승님도 아직까지 가끔 제자로 받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있었는데, 다만 그가 더는 그들을 받아주지 않을 뿐이었다.

이 말을 꺼내자 그는 안색이 굳어지더니, 수건으로 얼굴을 매섭게 닦으며 소리를 낮추었다. 

“한 마디로 설명을 할 길이 없네. 이야기가 길어.”

고청운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갈 법도 하였다. 영국공부 집안은 전 왕조에서는 병사에 불과했는데, 영국공의 천부적인 재능 덕분에 개국 공신이 되어 지금과 같은 지위를 누리며 지금의 폐하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관료들의 눈에는 그가 그저 그런 벼락 출세자 정도로만 보였을 것이었다.

영승언이 아무리 귀한 적자 혈통의 막내아들이라 할지언정, 아이를 과거에 급제시켜 벼슬에 오르게 하고 싶어도, 그의 후손들까지 학문에 종사하게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많이 따랐다. 문관 집단이 대놓고 그들을 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공부를 시키려는 아이를 황자의 곁으로 가게 해서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니고서야 좋은 선생님 한 분 모시기도 어려웠기에 그저 운에만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학식이 있는 사람은 고아한 척 그런 사람의 스승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고, 가려고 해도 벼슬이 너무 차이가 나 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학식이 없는 이들을 스승으로 초빙할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청운은 스스로의 힘으로 직접 거인 시험까지 합격한 영승언이 아주 큰 노력을 들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고청운은 사정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또 다른 연유가 있었음을 짐작 해 볼 수 있었는데, 오늘날 무장의 지위가 높은 것은 황제가 이들을 매우 중요시했기 때문으로, 문관으로서는 이런 무관들을 배척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사지 멀쩡한 귀족 자제가 와서 그들의 밥그릇을 뺏는다고 여겼을 테니, 그들에게 여간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듯 위풍당당한 국공부에서조차 좋은 선생님 하나 모시기 어려울 정도로 척을 지고 있었다니, 고청운은 좀 어이가 없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저 고청운의 추측일 뿐, 그는 그간 이쪽 방면으로 많은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기에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었다. 일전에 육훤을 가르친 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선생님으로 모셔가려 했으나, 고청운이 계속해서 시험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다 완곡히 거절을 했으니 말이다.

고청운은 땀을 뻘뻘 흘렸으니 감기에 걸릴까 봐 그만 영승언과 헤어져 혼자 나와 옷을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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