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 짐작
승진과 관련하여 아직 ‘느낌’이라고 말했던 이유는, 그의 개인적인 느낌일 뿐 아직 상부로부터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승진이 아닌 전근일 가능성이 있기도 했다.
매년 회시가 종료된 후, 관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심사가 이루어졌다. 이 작업이 끝나고 4, 5월이 되면 조정에서 관원들의 직무 심사 결과에 따라 직위를 이동시켜 주었는데, 이맘때가 되면 경성의 특색 있는 선물을 파는 가게들이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
고청운이 자신의 업무상의 변동이 있을 것임을 직감한 것은, 심사 기간 동안 이부의 좌시랑이 자신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었다. 좌시랑은 자신에게 갑자기 농경지 수리에 관한 문제를 물어보는 것도 모자라, 또 자신이 일전에 풀었던 회시 답안지를 찾아봤다고 말했었다. 그러면서 ‘내가 보건대, 자네는 농경지 수리 방면에 일가견이 있더군.’ 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마지막에 그는 뜻밖에도 방인소를 언급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방인소의 옛 제자였다.
고청운은 어리둥절했다.
‘설마, 예전에 공부의 관리로 근무하신 스승님의 제자이니, 나도 필시 이쪽 방면으로 관련 지식을 갖췄다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이전에는 매번 심사 때 그간 내가 제출한 보고서를 봤을 뿐, 지금처럼 날 찾아와 몇 가지 질문을 하는 경우는 없었는데. 도감원(*都察院: 행정 기관을 감찰하는 관청)에서 주는 감사 자료도 있지 않은가? 지금 갑자기 나를 찾아와 굳이 몇 마디를 더 하고 가시다니, 심지어 호부와 관련된 주제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상황이 이러하니 고청운은 별 생각을 다 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고청운은 즉시 요 근래 호부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생각을 정리해 보았는데, 확실히 이상이 감지되기는 하였다.
호부는 조정의 돈주머니 같은 역할을 하여 매우 권세가 대단한 관아였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가 나기만을 주시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셈이었는데, 고청운도 이런 사정에 대해 호부에 몸을 담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실 그가 한림원에서 나왔을 때, 호부에 배치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호부에서 오래 직무를 수행해 왔고, 무사히 종5품 호부 원외랑직까지 오를 수 있었으니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지금 벌어진 상황을 살펴보면, 고청운은 아마도 호부에 계속 있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 *
이부 관원에게 넌지시 언약을 전해 받은 고청운은 그날 퇴근 후 집으로 바로 귀가하여, 내원에 위치한 서재에 들어가 고삼원에게 이 몇 달 동안 발행된 관보를 넘겨달라고 하였다.
“숙부, 뭘 찾으세요? 제가 찾아드릴게요.”
고청운이 무언가를 찾는 듯 빠른 속도로 이를 뒤적이자, 고삼원이 입을 열었다.
“아니다, 내가 직접 찾아보마.”
고청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계속해서 뒤졌고,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원하는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답답하군, 애매한 두꺼비가 돌에 맞았구나.”
고청운은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지금 황제의 나이가 거의 예순에 가까웠지만 그 뒤의 상황은 여전히 좋을 것만 같았는데, 왠지 모르게 이 1년 새에 황제가 태자를 훈계하는 일이 부쩍 는 게 아닌가.
얼마 전, 늘 조그만 실수를 저지르던 태자의 측근 인물이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그 액수가 엄청났다. 그 금액에는 강둑을 수리하는데 쓰일 예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전에 황제는 줄곧 태자를 두둔해 왔건만, 이번에는 어찌 된 일인지 조정 의회에서 노발대발하며 태자를 꾸중해 조정에 있던 여야 대신들을 모두 놀라게 하였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고청운은 그저 이런 일들은 자신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이며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들이라고 여겨 가볍게 지나쳤었는데, 지금 와서 그때 던져진 돌에 뺨을 맞은 격이 되었다.
지금의 황제는 옛날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태자만 비호해 주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황제는 그간 다른 황자 몇 명을 합친 것보다 대황자 하나를 더 중히 여겼었기에, 모두들 황태자의 위상이 매우 안정적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황자들도 덩달아 성장함에 따라 태자의 후보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고, 끼가 넘치는 다른 황자들은 겉으로는 조용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벌써 물밑에서 한창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무리 잘 쌓은 담벼락이라도 하루 만에 무너질 수 있는 법이었다!
고청운은 한탄했다. 호부에서 대황자의 포섭을 거부한 후, 줄곧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줄 알고 안심하고 있었던 그는 이후 무사히 원외랑으로까지 승진했는데, 이렇게 호부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고청운은 상황을 돌아보며 기분이 좀 언짢아졌다. 그는 잠시 생각을 해 보다가 아무래도 옆집에 가서 방인소를 찾아 의논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 * *
이웃의 방택으로 넘어가기 전에 고청운은 꽃밭을 가로질러 가며 먼저 고영량의 침실에 들러 상태를 확인해 보려 하였다.
고청운이 살짝 살펴보니, 고영량은 왼쪽 곁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병이 아직 다 낫지 않았으니 책에 너무 몰두하지는 말거라. 피로해지면 안 된다.”
고청운은 아이가 넋을 잃고 책에 빠져 있는 것을 본 뒤, 일부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버지!”
고영량이 그를 한 번 외쳐 부르더니, 곧바로 책을 내려놓고는 일어나 걸어오며 말했다.
“침상 위에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었어요. 어머니께서는 아무것도 못하게 하셔서 심심합니다.”
그는 특히 시험이 끝나 남들은 자신들의 성적만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심정이 더더욱 답답했다.
그는 이번에 풍한, 즉 감기에 걸린 것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자기 방 안에만 머물러 있는 수밖에 없었기에, 고청운과 간미를 제외하면 다들 창밖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특히 방인소와 연 씨는 이미 연로하고 면역력이 약해, 고청운은 고영량이 풍한 확진 판정을 받자 아이의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였다.
게다가 고영진은 황실 서원에서 기숙하고 있었고, 고경은 매일 밖으로 나가 등하교를 하고 있었기에, 고영량 혼자 더 지루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럼 빨리 몸조리를 잘 하면 되지 않느냐.”
고청운이 아이에게 다가가 이마를 만져 보았고, 열이 가라앉은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 고영량이 병치레를 하면서 도중에 여러 번 열이 올라 그를 괴롭혔기에 매번 긴장감이 감돌았다.
“거의 다 나아가고 있구나.”
고영량은 고청운이 관복 차림을 한 채 손바닥으로 자신의 이마를 매만지는 걸 보고 물었다.
“아버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고청운은 잠시 생각해 보고는 아직 일이 확정 난 것이 아니기에 말을 아꼈다.
“아직 옷 갈아입는 것을 잊고 있었지. 조금 있다가 방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을 게다.”
고영량은 “네.” 하고 대답한 후, 아직 창백한 얼굴에 웃음을 띠며 다시 물었다.
“올해도 운하 변으로 나들이를 가나요?”
“날씨가 따뜻해지고 너도 다 회복하고 나면, 웬만해서는 갈 예정이란다.”
고청운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영가(寧家)의 아가씨를 만나러 가고 싶은 게로구나.”
고영량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약간 굳어져서는 눈을 부릅뜨고 고청운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설마 그럴 리가요.”
말을 마친 고영량은 창가로 가서 창밖의 작은 연못만 바라보았다.
아이의 어리숙한 모습을 본 고청운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아이를 따라가 그와 함께 연못에서 한창 헤엄치고 있는 금붕어를 보면서 다시 웃으며 말했다.
“사내와 여인이 장성해서 성혼을 하고 새 가족을 꾸리는 건 당연한 일이거늘, 이미 정혼을 한 사이인데 가서 만나 보는 것이 무슨 창피한 일이더냐? 사내인 네가 부끄러워만 한다면, 영가의 여식은 집에 숨어서 밖에 나갈 엄두도 못 내고 있을 게다.”
두 사람의 혼사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혼인식 날짜에 대한 상의는 아직 다 마치지 못했다.
아, 이 금붕어들로 말할 것 같으면, 그의 집에는 모든 가족들의 개인 서재 밖에 조그마한 연못들을 파 두었는데 그 안에서 키우고 있는 것들이었다. 녹색 수초도 몇 그루 심어 두었는데, 그들이 잠시 공부를 쉬는 시간 동안 금붕어가 노니는 모습을 보면서 눈을 좀 쉴 수 있도록 연못을 꾸며 두었다.
예전에야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공부하는 것을 감독하기 위해 그들은 모두 고청운과 같은 서재에서 함께 공부했는데, 몇 년 전에 고영량 형제가 앞마당으로 이사한 후에는 책을 빌리는 것이 아니면 고청운의 서재에 들리는 일은 아주 적었다.
“아버지! 그런 게 아니에요…….”
정색을 하고 물고기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고영량은 귀밑이 빨개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고청운은 다시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이번 시험은 중도에 포기하여 많이 아쉽겠지만, 전후사정을 다 알고 있으니 우리가 더 부연 설명할 필요 없이 네 스스로만 생각을 넓게 가지면 될 게다.”
고청운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열었다.
“아버지, 잘 알고 있습니다.”
고영량이 몸을 돌려 고청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3년 뒤엔 꼭 이번 시험보다 잘 볼 거예요.”
그의 표정이 결연했다. 그는 이제 다시는 자신을 과신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젊다고 방심하여 건강관리를 소홀히 했어.’
그는 3년 후의 자신의 모습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알았다니 되었다. 네 두 친한 벗들도 이번 회시에 참가하지 않았잖느냐? 실수로 동진사로 합격하게 된다면 앞으로 출세가 어려우니, 차라리 그 시간 동안 실력을 더 쌓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낫겠구나.”
고청운이 아이를 위로하여 한마디 덧붙였다.
고영량에게는 한 무리의 지인들이 있었지만, 좋은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4명뿐이었다. 그중 두 젊은이는 그와 함께 자라며 황립 서원에서 함께 공부했고, 과거 성적도 우수했다.
“네.”
고영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늘씬한 손가락을 뻗어 창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가 그들보다 한 발 빠를 줄 알았어요.”
두 사람은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 3년간은 국자감에서 공부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 3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보자꾸나. 유학을 떠날지, 다른 일을 할 건지 잘 생각해 보아라. 이 아버지는 실은 네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 틈틈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논밭을 둘러보고, 네 어머니의 장부 관리 일을 거들어주는 건 어떠하냐? 너도 우리 집 살림살이를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사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논밭은 많은 편은 아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추가 매입하고는 있지만 120묘의 면적 중 한 곳의 규모는 50묘, 또 다른 한 곳의 규모는 70묘였다. 얼마 전에 200묘 규모의 장원을 사들인 것과 더불어 4개의 점포를 더 가지고 있었으며 세를 주고 있는 저택도 두 채가 더 있었다.
점포와 저택이야 모두 세를 내주고 있어서 고삼원이 관리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토지가 위치한 지역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서 현지 마을 사람들이 경작을 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들 집에서는 항상 사람을 보내어 감시를 하게 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관리를 해야만 했다.
고청운은 집안의 가산 정황에 대해 아이들도 알고 관리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경이 지금 간미를 도와 장부를 관리하고 있는 것처럼 아들 또한 잘 배워둬서 자기 집안의 사정을 잘 알 수 있어야 할 것이었다.
“좋아요.”
고영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에게 예전에 배운 적이 있었기에, 그에게 농경은 생소한 곳이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 3년 동안 공부하는 것 말고도 어떻게 잘 지내야 할지 잘 생각해 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