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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362)화 (362/504)

362화. 간곡한 말

어느덧 이들은 영국공부에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들이 비교적 일찍 온 편인 듯, 마차들이 많이 도착해 있지는 않았다.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남자 손님과 여자 손님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문으로 들어가자, 문밖에서 손님을 맞는 영 낭중 영승언(寧承言)이 보였다.

“신지!”

영승언은 아주 기쁜 얼굴을 드러내며 공수를 하고 인사했다.

“먼 걸음 하느라 수고했네. 안쪽으로 드시게, 어서 안쪽으로. 밖에 바람이 크게 부니 어서 따뜻한 안쪽으로 자리하시게나.”

말을 마친 그는 시선을 고청운의 옆에 있는 소년에게로 향했다. 

고청운도 답례하며 말했다.

“승언 형님, 경하드립니다. 하하, 저희는 마차를 타고 와서 춥지 않습니다. 오늘은 국공부 큰나리의 생신이신데, 이런 날 초대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이 도련님이 량가아지? 고향에 시험을 보러 갔다고 들었는데, 정말 잘했더군. 범 밑에 견자가 나지 않는다고 하더니, 제 아버지를 똑 닮아 이리 잘났구려. 부자가 둘 다 해원이라니.”

영승언은 고영량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음기가 더 짙어졌다. 

고영량 역시 절을 올린 후 빙긋이 웃으며 몇 마디 겸손하게 말했다.

이어 고영진도 다가와 함께 인사를 올렸다. 

이들은 따라 들어오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 문 앞에서 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후, 고청운은 뒤에서 다른 손님이 들어오자 급히 말했다.

“승언 형님, 저쪽에서 손님께서 부르시니 저는 먼저 들어가 있겠습니다.”

모두들 함께 축국 경기를 하는 사이라 일찌감치 친해져서, 너무 심하게 예의를 차리진 않았다.

영승언은 고청운의 말에 아쉬운 듯 고영량을 놓아주었고, 고청운은 이 혼사에 의외의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됐다!’ 하고 생각했다.

* * *

과연 밤늦게 집으로 귀가한 간미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군, 이 일이 잘 풀릴 것 같습니다. 그쪽 집에서도 우리 소석이가 마음에 들었던 듯해요.”

이어 그녀는 잠시 환한 미소를 짓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 소석이도 그 집 처자를 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연회 때에는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지만, 영국공의 자손들이 석상에서 계속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비교적 많았기 때문에, 두 젊은이는 서로를 살필 수가 있었다. 비록 두 사람은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이 둘에게 줄곧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간미의 눈에는 그들이 서로에게 만족하는 모습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았던가. 아들이 이렇게나 빼어난데, 어느 처자가 이를 싫어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마음에 든다니 잘되었구려. 그럼 미룰 것 없이 시간 날 때 바로 혼담을 넣으러 갑시다.”

고청운은 소문보다 더 심해 보였던 영국공의 건강 상태에, 계획을 앞당기기로 하였다.

* * *

영씨 집안의 처자가 16살, 고영량은 18살이니, 둘 다 나이가 적은 편도 아니라 양가의 가장들은 모두 조급해하고 있었는데, 기왕 쌍방이 모두 같은 의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자, 영씨 집안 역시 우물쭈물 하지 않고 바로 정식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납채(*纳 : 중국 정통 혼례 방식인 육례(六礼)의 첫 번째로 중매인을 통해서 신랑의 사주단자를 신부 측에 전달하는 것), 문명(*问名: 신부 외가 쪽의 가계나 전통을 알기 위해 신부 어머님의 출생년월일을 물어봄), 납길(*纳吉: 문명 후 혼인의 길흉을 점쳐서 길조를 얻으면 신부 측에 알림)의 절차를 마치고, 고씨 집안에서 사주를 봐주는 주역선생을 모셔서, 고영량과 영씨 집안의 처자 두 사람간의 궁합을 근거로 점을 쳐본 결과, 천생연분이라는 매우 길한 점괘를 얻게 되었다. 

그러자 모두들 기뻐하여 회시를 치르기 전에 혼인 날짜를 정하고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기로 하였다. 이 정도 수순까지 밟은 이상, 혼사가 틀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이 모든 절차는 고영량 없이 가족들이 진행했는데, 지금 고영량은 시험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 * *

3월 9일, 회시가 시작되는 날, 고청운은 찬바람이 휙휙 불며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는 것을 느꼈고, 마치 그가 예전에 회시 시험 볼 때처럼 기후가 일변하여 갑자기 추워지자 남몰래 욕을 해댔다.

‘우울하구나. 매번 정당한 일을 행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딱히 우리의 편의를 봐주지 않으시는군.’

“몸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

고택의 대문 앞에 등롱이 밝게 길을 비추고 있는 가운데, 고청운은 고영량의 안색을 자세히 살피면서 손으로 아이가 걸친 가죽옷을 매만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사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너의 몸이 건강하여 평안하게 사는 것이다. 시험이야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또 보면 되는 것이지, 이후에 다시 참가해도 되는 것이니 너는 너무 중압감을 느끼지 말거라.”

그의 곁에서 방인소가 그를 노려보았다. 

“아이가 시험에 응시한다고 했을 때 다들 아이가 급제하기를 바랐는데, 네가 그런 불길한 말을 하다니. 진두의 앞에 서 있는 자가 외려 자기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격이로구나. 관례에 따라 너부터 참수를 해야겠다.”

고청운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일부러 입을 벌리고 웃으며 말했다.

“스승님, 제가 말한 것은 정말 제 속마음입니다. 아무튼 저와 미아의 심중에는 아이의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고영량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중압감을 더 해 주지 않는다는 것에 매우 감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소 불복하는 감정도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나에 대한 확신이 없으신가? 앞서 3년 더 공부하고 나서 시험에 응시하라고도 권하셨지 않은가.’

고청운은 3년 후에 시험을 응시해도 늦지 않다고 했지만, 고영량은 이번에는 스스로 시험을 치르고 싶어졌다. 

고영량의 얼굴을 본 고청운은 그의 생각을 읽고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며, 이후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고 그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래, 더 말하지 않으마. 얘야, 시험 잘 보고 오너라. 우리 모두 집에서 너를 기다리마.”

고영량은 머리를 끄덕였다. 이번 시험을 보러 나섰을 때 식구들이 모두 한밤중에 일어나 자신을 배웅해 주었는데, 만약 그가 강력히 반대만 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자신을 시험장 바로 앞까지 배웅하려고 했을 것이었다. 일전에 수재 시험을 치러 갔을 때도 아버지는 자신을 직접 배웅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고 했으니 말이다. 

주고받을 말들이 많아지자 시간은 더 이상 이르지 않게 되었다. 고청운은 아이에게 몇 마디 더 당부하고 얼른 마차에 오르라고 하였다.

그때 찬바람이 휙 불어왔고, 마차 옆에 서 있던 고청운은 갑자기 불어온 찬바람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에취!” 

마차 안에서 고영량의 기침 소리도 들렸기에, 춥고 검은 하늘을 바라보는 고청운의 걱정은 더욱 깊어만 갔다.

* * *

마차가 떠나가자, 고청운은 방인소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해 집으로 돌아가며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아이는 찬 기운이 잘 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어릴 적부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오늘 이리 날씨가 급변하여 추워지니 무슨 의외의 상황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고청운은 걱정이 되어 말했다.

“예전에 아이가 처남과 산림에서 길을 잃었을 때 일찍이 추위에 시달렸으나, 다행히 젊어서 상황을 잘 견디어 냈죠. 그 사건 후로는 바로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을 재촉하여 제일 추운 날씨는 피해서 돌아왔는데, 아이는 집에 도착한 후에도 몸을 쉬게 하지 않고 동창들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반년 동안 만나지 못했으니 모임을 가지고 연락도 잘 챙겨야 했겠지만, 그러고 나서도 요 몇 개월간 아이는 공부까지 열심히 한다며 여행에서 돌아와 한 번도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시험장으로 갔군요. 

하아, 전 그 아이가 젊음을 믿고 몸의 이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가 시험장에서 쓰러질까 봐 정말 두렵습니다. 시험장의 규칙을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너무 인정 없지 않습니까.” 

고청운의 입에서 연거푸 말이 흘러 나왔다.

정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더 있었는지, 고영량은 공부에 더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더니, 아침마다 하는 운동을 제외하고는 먹고 자는 것을 모두 잊고 공부에만 매달렸다.

다른 부모들은 아들이 그렇게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면 좋아했겠지만, 고청운의 눈에는 아들이 욕심이 앞서 벼락치기라도 해서 시험을 보려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이것이 바로 그가 고영량에게 3년 후에 다시 시험을 볼 것을 거듭 권했던 이유였다. 고청운은 아들이 닦은 기초만 해도 아직 젊으니 충분히 시험 시기를 늦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학식이야 계속해서 쌓을 수 있으니 말이다. 월성에서의 해원 합격은 경쟁률이 많이 높지 않은 지역에서 시험을 치른 것이라 가능했지만, 회시의 시험 문제 출제 범위는 광범위했기에 그 누구도 그의 합격을 장담할 수 없었다.

18살의 진사라는 것은 참 듣기도 좋고 큰 영광일 수는 있겠으나, 만약 동진사로 합격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이지 너무나도 충격적이라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너무나 아쉬운 결과가 될 것이었다!

고청운은 춘절 전야에 고영량이 집에 돌아왔을 때 보여 준 여위었던 모습을 떠올리니, 아들에게 강력하게 다음 시험을 보게 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들의 갈망하는 눈빛을 못 이겨 이번 회시를 보지 말라고 하지 못했다.

방인소는 그의 팔을 토닥이며 느리게 말했다.

“아이는 그간 해오던 일이 다 순조로웠다. 유난히 일이 잘 풀렸던 네 녀석보다도 말이다. 아이가 아무리 자기 스스로에게 ‘오만하지 말자’며 경계를 다잡는다고 해도, 사람 심리라는 것이 다 같지 않은 법이지 않으냐. 요 몇 달 간 주위 사람들의 극찬을 들으며 지내 온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야. 

이번 시험에서 최악의 결과는 동진사 합격이 되겠으나 그러면 또 어떻더냐. 최소한 진사가 아니더냐. 이번 좌절을 통해 앞으로 아이가 자기 갈 길을 더 잘 갈 수 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고청운은 암암리에 생각에 잠겨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체념해라, 소석이는 이미 뭇 사람들보다 뛰어나니 더 이상 너무 강요할 건 없단다. 옛날에 이 노부와 네 아버님도 너한테 강요하지 않았지 않으냐.”

방인소의 이 간곡한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고청운은 이 말을 듣고는 정신이 돌아와 어처구니가 없어 되물었다.

“스승님, 저는 제 아들을 마음에 들어 하고 있습니다만, 스승님께서는 성에 차지 않으셨던 것이로군요? 방금 문 앞에서도 제게 뭐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방인소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가 곧바로 약간은 거북해하며 눈을 부라리더니, 고청운의 손을 밀어낸 후 뒷짐을 지고 가슴을 펴며 급히 말했다. 

“노부는 집으로 돌아갈 테니 데려다 줄 필요 없다. 내가 무슨 칠팔십이 된 노인네도 아니고, 노부는 아직 건강하니 부축하지 말거라.”

고청운은 갑자기 텅 빈 자신의 손을 보며 어쩔 줄 몰랐다. 

말이 나온 김에, 스승님은 관직에서 물러나고 나서 성질이 매우 변덕스러워졌는데, 성질이 꼭 아이들 어렸을 때와 똑같아서, 조심하지 않으면 쉽게 그를 자극할 수 있었다. 또 요즘에 이르러서는 감정 표현이 매우 직설적이어서 예전 같은 침착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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