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61)화 (361/504)

361화. 연회

고청운은 헛기침을 하고 간미를 바라보았다.

“그럼 우리가 하가(何家)의 교교(*巧巧: 하겸죽의 딸)에게 혼담을 넣어보는 건 어떠니?”

간미는 아이의 기색을 살피기 위해 시선을 떼지 않고, 눈으로 고영량의 얼굴을 주시한 채 조용히 물었다. 

고영량은 고개를 들어 고청운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어머니, 교교는 그저 여동생 같아요. 어릴 적 임산현에서 놀다가 제가 펑펑 울린 기억도 나요. 저한테 그 아이는 그저 여동생으로밖에 안 느껴집니다.”

그는 마지막 구절을 강조했다.

당시에 그는 그녀를 눈물, 콧물을 함께 흘리며 울부짖게 만들었었다. 그 모습을 떠올린 고영량은 그랬던 그녀가 자신의 아내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간미는 슬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청운을 힐끗 돌아보고는 계속 이어서 물었다.

“그럼 하가(夏家)의 큰 아가씨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고영량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제게는 아무런 인상도 남지 않았어요.”

그는 하씨 집안에 어른들을 따라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안식구들을 만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그쪽 사람들이 그를 만나고 싶어 안방으로 불려 들어갔을 때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는 젊은 처자가 몇 없었고, 할머니와 부인들만 그를 한 번씩 훑어봤을 뿐이었다.  

“영씨 집안의 둘째 아가씨는?”

간미가 또다시 물었다.

머릿속에 문득 얼굴 하나가 떠오른 고영량은 잠시 멈칫했다가 속삭이듯 말했다.

“부모님께서 알아서 하세요.”

간미는 한참 동안 아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알겠다. 춘절이 되면 우리가 중매쟁이를 불러 혼담을 넣어보마.”

물론 춘절 연휴에 중매인을 불러다 영씨 집안에 의중을 파악해 보고 나서, 상대방도 혼담을 원하는 것이 확인되면 정식으로 부탁하면 될 것이었다. 

고영량은 그 말을 듣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으나 결국 말을 거두었다.

“자, 네 뜻은 알겠다. 너는 이제 시험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어서 방으로 돌아가 책을 읽도록 하여라.”

고청운은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들을 가차 없이 내보낸 뒤, 고청운은 책을 덮고 웃으며 말했다.

“소석이도 역시 영씨 집안의 처녀가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같소.”

간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점찍었던 처자를 아들도 마음에 들어 하는 건 당연히 가장 좋은 일이었다. 

“저희, 어느 처자에게 혼담을 넣었는지 바로 말해 주지 말고 소석이를 좀 초조하게 만들어요.”

간미는 고영량을 골리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원망이 아직 풀리지 않고 있어 그런 것인지 고청운에게 제안했다.

그녀의 장난스런 눈빛을 본 고청운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고청운과 간미는 한동안 귀와 볼을 긁어대며 안절부절못하는 고영량의 모습을 보며 슬며시 웃었고, 아들이 주위에서 아무리 어슬렁거리며 궁금해 해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고영량은 1월 17일 국공부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해야 했을 때, 어머니가 내어준 새 옷과 장신구들을 보고 나서 마음속으로 그 답을 얻게 되었다. 

* * *

고청운은 몸에 외투를 걸치고 유난히 더 청아하고 수려하게 꾸민 고영량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듯 턱을 쓰다듬었다. 아이의 자태에서 충분한 영양 발달과 양호한 교육이 이루어진 것이 대번에 눈에 보였는데, 그 준수한 외모와 늠름한 풍채가 멋진 소년의 모습을 완성하고 있었다.

‘우리 집 아들이 다 컸구나!’ 

고청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다시 옆자리에 있는 고영진과 고경에게로 눈을 돌려보니, 동생들은 아직 솜옷을 입고 다소 동글동글해 보이는 몸매를 하고 있었다. 

이를 본 고청운의 얼굴엔 절로 웃음이 번져 나왔다.

“마차에 오르자꾸나. 이번에 국공부에 가려면 규율을 잘 지켜야 한다. 사고를 저질러서는 안 돼. 똑똑하게 굴어야 한다.”

그때 간미가 그의 뒤에서 걸어오더니, 고영진과 고경을 보고는 매우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안심하세요. 저랑 소아가 이런 연회에 처음 가는 것도 아니고요.”

고영진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치고 나서 다시 고개를 들어 형의 외투를 쳐다보며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형, 그렇게 입으면 춥지 않아?”

보온을 위해서 어머니는 평소 늘 그에게 솜옷을 준비해 주었는데, 그 솜옷을 입으면 뚱뚱해 보였다.

고영진은 형의 긴 다리를 다시 한번 보고, 또 고개를 숙여 자신을 바라보았다. 

‘아니, 겨우 4살 차이인데, 어떻게 키가 이렇게 많이 차이가 나 버렸지? 앞으로 나도 형만큼 클 수 있을까?’

고영량은 외투의 앞자락을 꽉 여미고 그를 시큰둥하게 힐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춥지 않아.”

고영진은 눈꺼풀을 내리깔고 자못 걱정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전에 아버지는 자신이 뚱뚱해서 늘 염려했었다. 지금은 가까스로 그 염려스럽던 살을 뺐는데도 자신이 좀 작다고 느껴지자, 그는 늘 완벽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한편 간미가 계속해서 말했다. 

“어미가 다시 한번 당부하마. 오늘은 영국공의 칠순 잔치이니, 오는 사람이 많을 게다. 소아는 함부로 내 곁을 떠나지 말고, 또 소어는 어디를 가더라도 네 아버지께 알려야 한다.”

칠순 잔치는 정수(正壽)의 나이(*10단위로 떨어지는 나이를 말하며, 중국은 이를 더욱 특별한 날로 여김)를 기리는 특별한 날이었다. 그녀는 영국공의 몸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들어 알고 있었는데, 영국공부의 효성스런 아들들과 어진 손자들이 이번 생일잔치를 좀 성대하게 치러서 영국공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준비했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이런 대형 연회에서는 늘 크고 작은 문제 상황들이 출현하기 쉬운 법인데, 어떤 때는 추문이 생기기도 하고, 사람이 많으니 떠드는 사람도 일도 많아서 나쁜 마음을 먹은 사람이 있다면 수작질을 벌이기에도 제일 적합한 날이기도 하였다. 

간미는 이 몇 년 동안 사람 많은 수도에서 지내오며 정말 여러 번 이런 상황을 마주해 보았기 때문에, 경계심을 갖게 되었다.

“알겠어요.” 

고영량 삼남매가 입을 모아 대답했다.

간미가 말을 마치기를 기다려, 그녀를 먼저 고경과 함께 마차에 태운 고청운은 두 아들과 다른 마차에 올라탔다. 1월의 날씨는 여전히 매우 추웠는데, 오늘은 모처럼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날씨에 바람을 맞으며 말을 타는 건 좋지 않았다. 

* * *

영국공부를 향해 달리던 마차는 가는 길에 공통의 목적지를 향하고 있던 다른 집들과 잇따라 마주쳤는데, 각 집의 마차에는 표식이 달려 있어 지위의 높낮이와 관직의 크기에 따라 서로 길을 비켜가기 때문에 길이 막히는 일은 드물었다.

밖에서 찬바람에 떨고 있는 느릅나무에는 관심이 없었던 고청운은 옆에 앉아 있는 고영량을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많이 긴장되지는 않고?”

고청운은 미소를 머금고, 고영량의 앉아 있는 자태를 보았다. 

‘이리 단정하게 앉아서 가다니.’ 

마차 안에는 그들 부자 셋만 있었는데, 고청운은 큰아들이 이렇게 얌전하게 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긴장하지 않았어요.”

고청운의 말을 부인한 고영량은 재빨리 고청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조금 추울 뿐이에요.”

고청운은 허허 웃으며 차마 다시 놀리지는 못하고, 이번 여행했을 때의 일에 대해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화제가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로 돌려지자, 고영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아들의 여행기를 한 번 들어보았던 고청운은 이번에 다시 들어도 여전히 흥미가 넘쳤다. 물길로 나선 이들은 자신이 처음 상경했을 때의 경로와 거의 겹치게 다녔는데, 경항 대운하를 통과했다고 하였다. 

“아버지, <여행기>에 기록하신 가게들 중 일부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일부는 그때보다 장사가 더 잘되는 등 10여 년 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어요.”

고영량은 이 이야기가 나오자 상당히 흥분했는데, 아버지가 이전에 쓴 여행기를 보고 진작부터 여행에 대한 동경심을 품어 왔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는 이번에 기회가 되니 당연히 여행기에 쓰인 이곳저곳을 다 가 보았다. 

고청운도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흥이 나, 두 사람은 이내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아들이 방자명에게도 들렀다는 사실을 알고 물었다.

“네 외재종조 가족들은 잘 지내고 계시더냐?”

“잘 지내고 계셨어요. 다만 자명 외재종조부께서는 지주셔서 연말이 다가오면 발 한 발짝도 떼지 못할 정도로 바쁘셨기에, 서가아(*瑞哥儿: 방서(方瑞)로 방자명의 아들)가 외숙부와 저를 데리고 놀아주었죠. 외재종조모님도 어찌나 잘해 주시는지, 헤어질 때는 은자까지 주시려 하셨는데 저랑 외숙부가 받지 않았어요.”

고영량은 얼굴에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런데 서가아가 장난이 너무 심해서 외재종조부께 혼이 많이 나던데, 내년 봄에 되면 경성으로 올려 보내 공부를 시키시려는 것 같았어요.”

“서가아라니? 외재종숙부라고 해야지.”

고청운은 호칭을 바로잡아 주었다. 방자명이 방서(方瑞)를 경성으로 올려 보내 공부시키려는 것에 대해서는 그도 찬성하는 바였다.

고영량과 고영진은 서로 마주 보며 말없이 웃었다.

고청운은 그저 이야기가 나온 김에 촌수에 맞는 호칭으로 정정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들이 따로 ‘방서’를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촌수를 따질 것도 없었지만, 정식 석상이나 외부에서는 틀리지 않게 호칭을 불러야 했던 것이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는데, 방서의 나이를 보면 고경의 나이가 조금 더 많았다. 

“돈을 받지 않았다면, 너희들이 여행에서 사용한 노잣돈은 어디서 난 것이냐?”

고청운은 뒤늦게 살짝 놀라 물었다.

간미가 고영량에게 여비로 얼마를 주었을지 고청운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는데, 분명 그 둘이 여행을 하기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비였을 것이다. 간유의 경우에는 수중에 돈이 있으면 나쁜 곳에 가서 함부로 쓰기에, 이런 상황을 사전에 방비하기 위해서라도 장인, 장모님은 그에게 주는 용돈을 다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집을 나서 시험을 보러 갔다고는 해도 여비를 얼마 받지 못했을 것이었다. 

‘설마 고향의 부모님께서 주셨단 말인가?’ 

고청운은 고영량이 거인에 합격하고 나서 고향에서 잔치를 베풀어 축하한 일을 알고 있었다. 고청운이 합격했을 때처럼 문중에 밭과 저택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만, 받은 선물만은 두둑했을 것이니, 그들이 쓸 돈이 있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버지, 저랑 외숙부는 여비의 일부분은 직접 벌어서 충당했습니다. 하하, 저희는 며칠간 현지에 머물기도 했는데, 거인임을 증명해 주는 공문서를 지니고 있던 덕에 현지 문회에 참가하기도 했지요. 다른 문인들과 교류도 하면서 많은 이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일부 지방은 문풍이 좋지 않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명확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한 번은 부잣집 한 곳에 가서 대필을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원래 저희는 사례를 원하고 했던 일이 아니었는데, 사례를 얼마나 후하게 하시던지. 

물론 이런 행동을 하는 건 옳지 않았지만, 당시에 저희의 경비가 너무 부족했어요. 외재종조부님께 당도하기 전이라서……. 이것저것 생각해 보다가 결국 저희는…….”

고영량은 말을 이어가면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아 말을 멈추려다가, 아버지가 말을 경청하고 계신 모습을 보게 되었고, 화를 내시는 기색이 없자 천천히 마음을 놓았다. 필경 그와 아버지 사이에 말 못할 일이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이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럼 너희는 글을 팔아서 경비를 충당했다는 게냐?”

고청운은 화가 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이들이 돈이 없으니 이런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도 괜찮다고 여겼는데, 더구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하니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네, 저희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그렇게 했어요.”

고영량이 강조했다.

“그런 일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하지 않는 게 좋기는 하단다.”

비록 신경이 쓰이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청운은 아이를 보며 한번 훈계했다.

고영량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썹을 치켜올리고 자못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버지, 잘 알고 있어요. 그 후로는 그런 일을 거의 하지 않고, 현지 서점에 가서 며칠 동안 책을 베껴서 몇 백문씩 벌며 다녔는걸요.”

고청운은 고개를 약간 끄덕여 보였다. 지금 아이들의 능력으로는 큰돈을 벌기 쉽지 않았으나, 작은 돈을 벌기는 그래도 괜찮은 정도였던 것이다. 

그들이 막 돌아왔을 때, 고청운은 그간 몇 개월 동안의 여행 과정을 어렴풋이나마 들어 보고는 얼마나 감개무량 했던지. 요 몇 달 동안 두 사람은 꽤나 고생한 셈인데, 특히 산속 깊은 마을을 얼씬대며 은둔 현자를 찾으러 다니는 대목의 이야기는 정말 아찔했다. 어쩐지 간유가 돌아와서 성격이 좀 달라졌는데, 예전 같지 않게 그럭저럭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고영량은 경성을 떠나기 전보다 조금 성숙해졌는데, 일전보다 여윈 것만 빼면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번 여정이 그에게는 너무 힘든 과정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대견했다. 

두 사람은 천천히 말을 주고받았다. 고영진도 가끔 중간에 말참견을 하기도 했는데, 이야기를 들으며 때로는 생각에 잠긴 듯 눈동자만 반짝일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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