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60)화 (360/504)

360화. 혼삿말 (2)

서원에서 배워야 하는 내용은 너무나도 많았기에, 고경은 문화적인 수업 뿐 아니라 귀한 집 아씨들이 익혀야 할 기예도 배워야 했다. 그 종류로는 여홍(*女红: 여자들의 일을 뜻함(바느질, 자수 같은 일)), 금기서화(*琴棋书画: 칠현금을 타고 바둑을 두며, 글씨를 쓰며, 그림을 그리는 따위의 문인의 고상한 도락(道樂)), 집안 관리, 사교 예절 등이 있었는데, 이 중에서 한두 가지를 골라서 익히면 되었다. 

고청운은 고경한테 수업 내용을 자세히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익히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그들 집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식솔이 비교적 적고 가산도 많은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밭이나 농장 등과 관련된 수입이나 세금 문제는 계산하기 쉬웠고, 보유하고 있는 상가는 전부 다 세를 놓았으니 임대료만 계산하면 되었기에 매우 간단했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많은 집의 여식들은 장부를 잘 들여다볼 줄 알아야, 아랫사람에게 속지 않기에 아주 열심히 이 분야의 일을 배워야 하였다.

이 뛰어난 여인들은 현대에서 살았더라면 일급 인재가 되는 셈이었는데, 지난 생애의 그보다 더 뛰어났을 것이었다. 

2년 동안 서원에서 공부한 고경의 행동과 말투만 보아도 예전보다 훨씬 더 발전이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황립 여자 서원 같은 좋은 교육 환경에서 교육을 받은 자녀들이야 어느 정도 서로 비슷한 면모를 보이고는 하였는데, 고청운은 여성들이 톡톡 튀는 성격에 발랄해야만 눈이 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자신의 딸처럼 차분하면서 대범한 기질이 있는 것도 사랑스럽다고 여겼다.

“좋아요.” 

맑고 아리따운 고경의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있던 고청운을 현실로 돌아오게 하였다.

“이번에 외사촌 형이 과거에 급제한다면, 그야말로 고진감래인 셈이오. 소원성취를 하는 것이지.”

고청운은 자신의 친척이 출세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상부상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이 출세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줄어드는 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저 자신의 모든 가족이 하나같이 용처럼 출세하지 못하는 것이 개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의 기쁨을 이해할 수 있었던 간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들이 막 진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교롭게도 진교가 막 경성에 도착했다.

그는 침울해 보였던 이전 만남에서의 면모는 벗어 던지고, 당당하고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성공이라는 건 과연 한 사내를 새롭게 빛나 보이게 하는 법이지!’ 

고청운은 그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그냥 저희 집에 머무르세요. 저희가 서로 남도 아닌데, 지내면서 무슨 문제가 있으면 저희한테 알리시거나 방업(方业)한테 말씀해 주세요.” 

고청운이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방업은 방충과 혜향의 둘째 아들로, 방행의 동생인데 올해로 벌써 14살이었다. 지난번 진교가 상경했을 때 방업이 그의 심부름꾼으로 지냈기에, 서로 이미 친숙했다.

진교가 말했다. 

“너에게 신경을 쓰이게 했구나. 네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니, 괜한 소리는 더 늘어놓지 않겠네. 이번에 상경할 때 부모님과 할아버지 내외께서 고향 특산물을 보내주셨으니, 꼭 받아 주시게. 이것들은 그다지 귀한 물건들이 아니니 안심하고 받아도 돼. 그저 우리 집에서 보이는 작은 성의 표현일 뿐일세.”

방금 이 발언은 그의 속마음을 내비친 것으로, 그는 고청운을 만난 후부터 자신의 운이 부쩍 트였다고 느꼈다. 앞서 자신이 2년 여간 경성에 머무는 동안, 큰 도움을 받았다는 점과 고청운의 절친한 친구인 공 대인이 국자감에서 자신을 잘 챙겨주는 점 등 이 모든 게 다 사촌 동생인 고청운 덕이었다. 

현재 그가 지금까지 시험에서 급제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고청운이 자신에게 가르침을 전수해 준 덕이 관여 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더 말하지 않고 단지 고청운이 가르쳐 준 산술만 보더라도, 진교는 학문적으로 매우 큰 발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번 향시의 모든 산술 문항을 그가 모두 맞힌 것은 앞서 몇 번의 시험에서는 그가 겪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은, 고청운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결코 고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청운은 자신이 굽신거리게 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관계를 부각시키거나 자신의 집안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고청운은 모든 일에 적절히 행동했고, 자신을 세심하게 배려해 주었다. 

지난 3월 자신이 경성을 떠날 때, 고청운이 자신에게 쥐어준 은자 100냥짜리 은표를 생각하면, 진교의 마음은 더욱 훈훈해졌다.

이 세상에 빚을 져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친척이라고 꼭 도와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삶의 고단함을 맛보았던 그는 남들이 이렇게 자신을 도와준다는 것이 정말 큰 정을 베풀어 주는 것임을 잘 알았기에, 이를 반드시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두 가족의 차이가 너무 나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가 고민일 뿐이었다.

고청운과 간미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네, 그럼 사양치 않겠습니다. 외할아버지랑 외숙부들께서 마음 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진교는 그 모습을 보고 슬그머니 한숨을 돌렸다.

이어서 모두들 향시, 그리고 그간 각자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영량이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진교는 놀라움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아인 정말 대단하구만, 그 젊은 나이에 해원이라니! 범 밑에 견자(*豚犬: 돼지와 개, 즉 어리석은 자식을 뜻함)가 나지 않는다더니, 사촌 동생이 이리 뛰어나니 아이도 틀림없이 출세할 걸세. 참, 량가아가 내년 시험에 응시할 예정이라던가?”

고청운은 허허 웃으며 속으로 흐뭇해했다.

“자기가 어떻게 할지 정하겠지요. 녀석은 이미 다 컸으니 자기 생각이 확고할 겁니다. 그러니 제가 그 아이에게 어찌 하라고 할 수는 없지요.”

고청운은 올해 내내 경성과 상성 사이를 오간 진교가 피곤한 기색이 보이자 더 이상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고, 먼저 그에게 방으로 돌아가 쉬도록 하였다.

* * *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춘절에 가까워져 관아에서 종무식(*終務式: 관공서나 회사 따위에서 연말에 근무를 끝낼 때에 행하는 의식)을 선언했음에도, 고영량과 간유가 코빼기도 비추지 않자, 가족들의 걱정이 더해졌다. 

‘그들이 아무리 노는데 빠져 있더라도, 춘절엔 경성으로 돌아와서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내겠지?’ 

가족들이 조마조마하게 날을 세던 와중, 다행히 춘절의 전야가 되어서야 그들은 경성의 집에 도착했다.

살이 많이 빠진 채, 입술에 보랏빛이 돌며 턱에는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는 고영량과 그와 비슷한 모습의 간유를 보자, 가족들은 마음이 아파져서 화를 낼 틈도 없이 그들을 목욕부터 시키고 탕약을 먹게 했다.

고청운은 특히 이 둘이 어느 산촌에 대현자가 은둔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그를 찾아 나섰다가 산림에서 길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놀라고 말았다. 이 시대의 한랭한 기후와 산림의 상태를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방인소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었고, 고청운 역시 방인소 다음으로 이들에게 거침없이 꾸중을 퍼부었다.

고영량은 길을 안내해주던 이가 돌아가자고 할 때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직접 그 현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움직인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산골 주민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난 어떻게 됐을까?’

고영량이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자, 고청운의 노여움은 조금 누그러들었다. 이에 비해 간유의 태도는 종잡을 수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무표정한 얼굴에 흐트러진 눈빛을 하고 있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간미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청운은 두말할 것 없었는데, 결국 그는 자신의 처남이지, 자신의 아들이 아니었기에 마음대로 훈계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 옆집에는 방인소가 있지 않은가. 간유를 옆집으로 건너가 살게 하면 문제는 없었다. 

과연 방인소의 손으로 넘어간 간유는 매일 도탄에 빠져 살게 되었다. 

며칠 뒤, 고청운은 방인소의 기력이 전보다 좋아진 것을 발견하고는 남몰래 한 가지 추측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연 씨가 몰래 그에게 말했다.

“네 스승님이 요즘 할 일이 없다고 꽤 무료해 하셨는데,  마침 유가아(*瑜哥儿: 간유)가 이리 오지 않았느냐. 그 아이는 너희 집 아이들처럼 말을 잘 듣지 않고, 오히려 자잘한 결점이 많이 있더구나. 그래서 그이는 너희 집 아이들과 고군분투했던 경험을 되살려 요즘 유가아의 정신 교육에 돌입하셨는데, 아주 잘하고 계신단다. 그러니 네가 그들을 신경 쓸 것 없다.”

‘아이들이 너무 얌전한 것도 잘못인가?’

고청운은 말문이 막혔지만, 지금의 방인소의 상태를 보니 간유가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 *

고영량이 돌아온 이상, 고청운과 간미는 신속하게 혼사 계획에 착수했다. 

“너는 어느 집안의 처녀가 맘에 드니?”

간미는 아이에게 아가씨들의 집안 사정을 알려준 후에 인내심을 가지고 물었다.

고청운은 곁에서 자신이 집필한 <회계 강좌>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이 저서는 그가 2년 전부터 계획했던 것으로, 이 책을 준비하는 일만 아니었더라면 그의 화본 작품은 지금처럼 질질 끌지 않고 진즉에 더 빠른 완결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그가 들고 있는 이 책은 직접 손으로 써서 제본한 것이었는데, 고청운은 인쇄 공방에 가져가 정식 출간을 하게 되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출판할 예정이 없어서, 당분간 손으로 직접 더 써서 적당한 기회가 되면 고향으로 내려 보내기로 하였다.

음, 어쨌든 그가 쓴 글씨체는 보기 좋았다. 비록 요 몇 년 동안은 그간 서예 실력에서 그다지 발전한 것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가 어쩔 수 없었던 것은 자신에게 서예 쪽으로 천부적인 재능이 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겐 서예만 연습할 수 있는 성실함도 부족했던지라 지금같이 이 정도의 수준만 유지할 수 있다고 해도, 유명한 서예가까지는 될 수 없었지만 그저 어디 가서도 그런대로 괜찮다고 해 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몇 달 동안 놀러 다닌 고영량의 체형은 살이 좀 많이 빠져 있어 이마뼈가 튀어나와 보일 지경이었지만, 정신적인 면모는 일전에 비해 많이 성숙해져 있어 여행을 하는 몇 개월간 얻은 것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 저는 별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세 아가씨를 재빨리 떠올리던 고영량이 잠시 멈추었다가 답했다. 남녀가 이제 성인이 되어서 성혼을 하는 것일 뿐, 그는 자신의 외숙 같은 경우도 아니었으니 이제 시기에 맞춰 성혼을 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었다.

먼저 가정을 꾸리고 나서 일을 건사하면 되었다. 

고청운은 책을 넘기며 아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쯧쯧, 이 녀석 정말 많이 성장했나 보구나. 이전에 이런 주제의 이야기가 나왔다면 수줍은 기색이 역력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안색도 바꾸지 않고 대답을 하네.’ 

“어떻게 네 의견이 없을 수가 있느냐?”

고청운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가 장가를 가는 것이지, 나와 네 어머니가 장가가는 것이 아닌 것을. 만일 우리가 너한테 장가보낸 며느리를 네가 싫어하여 잘 대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다른 집 귀한 아가씨에게 죄를 짓는 게 아니겠느냐. 남들이 애지중지 키운 귀한 집 처자를 우리 집에 오게 해서 힘들게 할 수는 없지.”

“아버지!” 

고영량이 소리쳤다. 이때 그에게선 문득 어렸을 때 고청운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어리광을 부리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차피 다른 집 처자들이라 저는 그저 몇 번 본 적만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 좋은지 아닌지를 어찌 알겠어요. 전 부모님의 안목을 믿습니다. 장가가서는 부인 될 사람한테 잘해 줄 거예요.”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자, 아이의 잘생긴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서로 잘 지내는 것을 보면서 장래의 아내와 자신이 어떻게 지낼지 상상해 본 적이 있었던 고영량은 상대방이 자신이 정한 선을 넘지 않는 한 잘 대해줄 거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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