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혼삿말 (1)
고청운은 혼사를 논할만한 범위를 정한 뒤, 방인소와 연 씨의 의견을 물었다.
“좋구나, 이 세 집안 다 좋은 것 같다. 우리 소석이와 잘 어울릴 듯하구나.”
연 씨가 제일 먼저 동의했다.
“나도 이 집 처녀들을 본 적이 있는데 모두 괜찮은 아가씨들이었지.”
“영씨 집안의 처녀가 신분이 좀 많이 높은 건 아닐까요?”
간미는 연 씨가 찬성하는 모습에 매우 기뻤으나, 곧바로 자신이 우려하던 부분도 함께 꺼내 놓았다.
솔직히 이 몇 집안의 처녀들 중 그녀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 신붓감은 바로 이 영씨 집안의 여식이었다.
그렇게 묻고 간미는 부군을 잽싸게 힐끗 쳐다보았는데, 그가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너무 높은 편은 아니지, 괜찮다.”
연 씨는 간미의 손등을 토닥이면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국공부의 처녀라지만, 적녀 중에서는 막내가 아니더냐. 장녀가 아니지. 그 아이의 언니는 후부로 시집갔지만, 후부 둘째 아들의 적자에게 시집을 가지 않았더냐.
다른 조건들도 좀 보자면, 영국공부에는 4남 4녀가 있는데 그 아이의 다른 언니들은 벌써 출가했고, 적자가 셋, 서자가 하나인 남자 형제들이 낳은 아이들은 벌써 한 무리를 이루고 있지.
세상에는 무엇이든 그 수가 많아지면 귀하지 않게 되는 법이란다. 세자의 딸만 적녀와 서녀를 합쳐 대여섯이나 되는데, 다른 형제의 아이는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느냐. 이에 국공부에서는 딸이 귀하다고 할 수 없지. 영씨 집안 형제들이 나중에 분명 재산을 받아 세간을 나누어 살아야 할 테니, 모두들 영세자와 관련된 자식들과 사돈을 맺고 싶어 하는 게 아니더냐.”
여기까지 이야기한 연 씨는 도자기 잔을 들고 뜨거운 물을 한 모금 들이켰고, 그 모습을 본 고청운은 하인을 시키지 않고 직접 연 씨의 잔에 차를 더 따라 드렸다.
연 씨는 그에게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너희들은 그 집안이 어떤지만 살펴볼 것이 아니라, 그 집안 처녀가 사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면 형제자매와 사이가 어떤지, 하인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지……. 이것들은 둘째 쳐도 반드시 확인할 것은 바로 성정이다. 절대로 속 좁고 자신이 총명한 줄 알고 착각하며, 귀가 얇은 아이를 데려와서는 아니 되지. 남 앞에서도 꺼내 보일 수 있을 만한 여인은 되어야 해.”
생각해 둔 바가 있었던 간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외할머니, 제가 숱한 연회에 참석하면서 몇 년간 봐온 바가 있는데, 이 아가씨들은 확실히 그쪽 방면으로는 괜찮은 것 같았어요. 하지만, 비록 제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다고 자신해도, 외할머니 말씀을 들어보니 그도 옳다고 생각되네요. 그러니 다시 한번 개인적으로 알아봐야겠어요.”
“그래야지, 맏며느리를 얻는 일은 매우 중한 일이다. 앞으로 너와 함께 다닐 일도 많을 것이고, 나중에 이 집안도 건사하고 챙겨야 하니 말이다.”
연 씨가 다시 그녀의 손등을 도닥였다. 외손녀의 표정을 보고 연 씨는 그녀가 누구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보아하니, 지금으로써는 영씨 집안의 처자가 가진 조건이 가장 적합한 듯했다.
방인소가 찻잔을 들어 후후 불며 느릿느릿 말했다.
“영국공은 총명한 사람이다. 그 아들도 미련하지 않아 나쁘지 않지. 두 하가(夏家/何家)는 말할 것도 없겠구나.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다들 잘 알고 있지 않으냐.”
고청운과 간미는 방인소까지 그들의 의견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고 결심을 굳혔다.
“그럼 이제 소석이가 돌아오길 기다려야겠군요.”
고청운이 있지도 않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이들이 크니 혼처를 상의해야 하는데, 이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필경 아이들의 인생에 있어 아주 중대한 일이라, 부모가 되어 상대를 제대로 잘 찾아주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고청운이 이 말을 꺼내자 간미도 동의했다.
요즘은 거의 이혼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럴 일이 생기면 대개 휴처(休妻)라고 하여 아내를 내쫒는 방식을 사용했다. 다만 일단 이 휴처지간이 되면 사돈과는 거의 원수가 되는 셈이었다.
다행히 그들 집에는 아이가 셋 밖에 없었는데, 만약 몇 명 더 있었다가는 고청운은 어디를 가던 간에 젊은 사람들만 눈여겨보며 다녔어야 했을 것이었다. 게다가 만약 딸을 더 많이 두었었다가는 아마도 제자를 거둬야 했을지도 몰랐다.
고청운은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에게 딸을 시집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는데, 최소한 오랫동안 함께 지내다 보면, 제자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 수 있고 잘못 볼 기회도 적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사람을 잘못 보았더라도 사제 관계가 한층 더 무르익는다면, 딸의 혼인 후의 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었다.
‘만일 나중에 정말 배은망덕한 자를 사위로 잘못 들였다가는, 난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딸을 눈썰미 없이 잘못된 상대에게 보낸 죄로, 내 딸이 미련하게 사는 꼴을 봐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이런 생각까지 들은 고청운은 방인소에게 시선을 던지며 은근히 웃었다. 자신이 가장 좋은 예가 아닌가. 물론 이는 단적인 예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 * *
기왕에 정혼 대상자가 결정되었겠다, 고청운과 간미는 큰아들의 귀환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데, 12월 중순까지 그의 그림자조차 보지 못한 채 중간중간 보내오는 무사히 잘 지낸다는 서신만 겨우 받아 볼 수 있었다.
“이 자식이! 진즉에 놀 만큼 놀았을 텐데, 벌써 석 달째 집에 돌아오지 않아? 그나마 가끔 서신으로 소식은 전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고청운은 입으로는 아들을 욕하면서, 속으로는 두 젊은이가 밖에서 무슨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곳도 아니고, 낯설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서 아들이 도움을 청할 수나 있을까? 그리고 이 녀석들은 도대체 귀경해서 춘절을 쇠려는 건지, 아닌지. 날도 이렇게나 추워지는데 여비는 넉넉하게 가지고 있으려나?’
고청운은 그들이 간미네 고향 집에서 보내온 서신을 떠올리자 머리가 아파왔는데, 사돈댁에서도 간유가 길을 출발하고 나서야 서신으로 자신의 상경 계획을 알렸다고 하였다.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던 간미도 의자에 앉아 주먹으로 귀밑머리 쪽을 비스듬히 받친 채 힘없이 말했다.
“어쩐지 어머니께서 서신을 연달아 두 통씩이나 보내시더라니. 남동생을 잘 부탁한다고 하시는데, 지금 그 아이의 그림자조차 안 보이는데 어떻게 돌보라는 걸까요?”
남동생은 그녀 어머니의 생명과도 같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으로 아들을 대했기에, 간미가 동생에게 잘 대해주길 바랐다. 더욱이 그녀가 시집을 멀리 경성으로 건너가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어머니는 동생한테 더욱 총애를 쏟게 되었다.
간미는 동생이 서신을 남겨두고 떠나버린 것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동생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한 번 말을 잘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20살씩이나 되었는데도 일을 이렇게 어설프게 처리하다니.’
이어 고청운과 간미는 눈을 마주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 옆에서 고경은 서예를 연습하다가 그들의 말을 듣고는 고개조차 들지 않고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그럼 큰오라버니가 춘절에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미래의 새언니가 다른 사람과 정혼하게 되는 건 아닌가요?”
“그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지.”
간미가 깜짝 놀라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네 오라버니는 아직 정혼을 한 상태도 아니니, 괜히 다른 사람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있는 말은 뱉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집에서 서로 간에 상의하던 혼인과 관계된 일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이루어진 것들인데, 이 꼬맹이가 어디에서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경이 뽀얀 얼굴에 웃음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영씨 집안의 언니를 제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게나 많은 언니들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언니 역시 영 언니랑 하(何) 언니예요.”
간미가 고청운을 쳐다보았다.
“저는 딸아이 앞에서 혼담에 대해 전혀 말을 꺼낸 적이 없어요.”
그녀는 말을 마친 뒤, 고경한테 바깥에 나가선 이와 같은 말을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며 모른 척해야 한다고 알려 주었다.
고청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집안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고영량의 성혼 문제였으니 가끔 한두 마디가 흘러나갔을 것이고, 딸은 이를 유추해서 상황을 알아차렸을 터였다.
하지만 고경의 방금 발언은 정말 간미의 우려를 자아냈다. 그들이 눈여겨보고 있는 여인은 14세에서 16세 사이의 나이였는데, 그 나이대는 정혼 상대를 구하기 한창 좋은 시기였다. 그들이 좋다고 여기면, 분명 다른 집안사람들도 그녀들을 틀림없이 괜찮다고 느낄 수 있었다.
딸을 하나만 두어도 온갖 집에서 구혼을 해댈 텐데, 그들이 혼담을 넣는 시기를 더 이상 늦추었다가는 아마 다른 집과 약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되었다가는 처음부터 다시 상대를 물색해야 될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간미는 마음이 더 급해졌다.
다행히 남자의 경우 출세만 한다면 나이가 더 들어도 상관없었는데, 자신이 어떤 성적을 내서 전도를 유망하게 밝히느냐가 관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청운은 현재 상황으로 보면 큰아들의 미래가 나쁠 것 같지 않으니, 좋은 며느리를 찾지 못할까 봐 걱정하지는 않기로 하였다.
다만 큰아들이 내년 3월 회시에 참가할지 아직 서신에서 밝히지 않은 것이 걱정되기는 했는데, 만약 정말 참가할 생각이 있었다면, 좀 더 일찍이 돌아와 준비를 시작해야 했던 것이었다.
‘아이고, 아들이 다 컸으니 예전처럼 내가 하라는 대로 따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런 생각이 들자 고청운은 서운했다.
고청운은 앞서 상성에 있는 외사촌 형 진교가 올해 향시에서 중간 석차로 무사히 합격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합격한 이후를 생각해 보았을 때, 진씨 가문의 경제 사정 역시 나아질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진교 명의로 된 200묘의 논밭에 대한 면세 액수만 치더라도, 그들의 집은 이전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었다.
“이번에 외사촌 형이 상경해서 시험을 본다 하였으니, 며칠 내로 도착할 것이오. 그러니 부인, 준비를 좀 부탁하겠소.”
고청운이 말했다.
“아직도 제가 하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가 봐요?”
간미는 애교스럽게 그를 한 번 노려보고는 고경을 바라보았다.
“소아야, 이번에 네 외종숙부께서 우리 집에 와서 묵으실 테니, 네가 방을 꾸미고 가구를 배치하는 것을 도와주겠니? 지난번 묵으신 객실에서 지내시게 할 거란다.”
오전에 황립 여자 서원에 갔다가 오후에 귀가하는 고경은 고영진보다 엄격하게 관리를 받고 있어, 그 아이 스스로도 긴장을 풀 곳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