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선택 (2)
“세 번째 집은 하(何)씨 가문입니다. 하씨 집안과 우리는 서로의 내막을 잘 알고 있고, 마침 성정도 잘 맞지요. 그쪽 딸아이가 소석이보다 한 살이 더 어리지만, 워낙 어렸을 때부터 함께 아이들이 놀기도 하였지 않습니까. 마침 그 집안에서도 혼사를 논하고 있더군요.”
내심 간미는 하씨 가문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하겸죽의 관직이 아직 종7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맏며느리 집안의 품계 때문에 앞으로 얻게 될 고영진의 며느리도 더 낮은 품계의 집안 여인으로 찾아야 할 테니, 그 점은 좋지 않았다.
온 세상의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간미는 자신의 아들이 면면히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고, 신선의 딸을 며느리로 삼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정도였다. 그녀는 그제야 비로소 과거 자신의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어머니가 왜 자꾸 예비 신랑의 이게 나쁘게 보이고 저것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집안보다 좋은 집안으로 딸을 시집보내고, 며느리는 자기 집안보다 더 낮은 집안의 여식을 얻는다.’ 라는 관념에서 접근해 보면 좋은 선택이기는 하였다.
“좋소. 성사되게 된다면 나중에 며느리가 친정에 갈 때 편하겠구려, 하하.”
고청운은 운동량이 충분해지자 바닥에서 일어서서 천천히 몸을 풀고 있다가 간미의 말을 듣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하겸죽은 그의 친우로 두 집은 정말이지 서로의 내막을 잘 알고 지냈다. 그 집은 식구들도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았고, 자식으로는 1남 1녀를 두고 있었다. 아들인 하허연은 이미 수재의 신분으로 일찍이 고향에서 장가를 들었는데, 성혼 상대는 부성(府城)의 한 거인의 딸로 그녀는 지금 회임 중이었다. 하겸죽의 딸은 그도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간미의 말대로 좋은 아가씨였다.
“우리 집안과 하씨 집안은 원래도 사이가 좋았는데, 굳이 혼인으로 묶일 필요는 없지요.”
간미가 부드럽게 말했다.
“부군, 오늘 밤은 운동량이 유독 많으신 듯 하네요. 보세요, 땀을 이렇게 많이 흘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녀는 말을 마치고 나서 들고 있던 나무빗을 내려놓고는, 그에게 수건을 가져다 준 다음, 종에 매달린 줄을 당겨 계집종을 불러다 미지근한 물 한 대야를 가져오게 하여 그가 세수할 수 있게 준비를 하였다.
고청운은 낮게 웃으면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오늘 저녁때 사장정과 주루에서 식사를 했는데, 주루에서 나온 감자 양고기찜이 부드럽고 맛이 매우 뛰어나 아주 일품이라, 그만 평소보다 고기를 몇 점이나 더 많이 먹어버리지 않았겠소? 이게 다 사장정 때문이라오. 집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했는데도, 하필이면 요릿집으로 초대하여 요리를 먹이다니 말이오. 먹는 내내 대화를 나누느라 오늘은 그만 실수로 평소보다 많이 먹고 왔소.”
그는 건강관리를 위해 늘 굳건히 저녁 식사량을 일반 식사의 5~6할만 먹는 방법을 고수해 오고 있었는데, 특히 고기를 매우 적게 먹었다.
이를 들은 간미는 피식 웃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녀는 가끔 자신의 부군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항상 좋은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있었고, 가끔은 또 이렇게 유치한 말도 내뱉고는 하였던 것이었다.
“다음엔 내가 당신을 데리고 가서 요리를 먹여야겠소. 날씨가 추워지고 있으니 양고기 먹기에 제격이라오.”
고청운은 수건을 받아 들고 땀을 닦았다.
“좋아요,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어지네요. 아이들도 분명 좋아할 것 같아요.”
계집종을 물리고 나서, 두 사람은 또다시 다른 몇 집의 여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나누기 시작했다. 공봉명과 첨 낭중 집안의 여식들도 여기에 잠시 포함되었으나, 간미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해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두었다.
“앞서 거론했던 세 집이 모두 다 좋으니, 소석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아이에게 혹여 무슨 의견이 있는지 한 번 봅시다. 이건 그 애가 장가를 가는 것이지, 우리가 장가를 가는 것이 아니지 않소. 성혼해서 살아야 할 것은 결국 소석이니 말이오.”
고청운은 머리가 아플 정도로 생각했으니, 차라리 아들이 돌아오면 그때 가서 다시 말하는 것이 나을 성 싶었다.
“좋습니다, 그리 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네요.”
간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오히려 다른 연회에 더 가 봐야 할지, 다른 집안에 더 좋은 처녀는 없는지 궁리하고 있었다.
* * *
이날 저녁, 고청운과 간미가 아들의 성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 공주부에서도 똑같이 고영량의 혼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안락공주는 사장정이 고씨 집인과 사돈을 맺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예상과 달리 바로 거절을 표했다.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부인은 신지를 아주 좋게 보고 있지 않았습니까? 고씨 집안에 무슨 나쁜 점이 있나요? 저는 그 아이를 아주 어렸을 적부터 보아왔는데, 아주 잘 자란 아이입니다. 분명히 우리 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사장정이 놀라워했다.
“당신은 문벌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만약 공주가 문벌을 중시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당초 작위가 없는 그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평소 그가 고청운과 교제해 오는 걸 공주 역시 격려하는 태도를 취해 왔기에, 그간 어떤 말도 한 적이 없었다.
“고씨 집안에 무슨 나쁜 점이 있겠습니까. 고신지는 문인들 사이에서 명망이 자자하고 관아 내에서도 명성이 있는 좋은 군자입니다. 앞으로 큰 이변이 없다면, 그는 수학계에서 더 대성할 거예요. 그 집의 가풍 역시 매우 올바르지 않습니까.”
안락공주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좋은 말을 한가득 늘어놓은 뒤, 사장정이 진정되어 보이자 자기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사장정을 이끌고 꽃밭으로 가서, 푸른 대나무로 엮은 긴 의자에 그를 앉게 하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부마, 고씨 집안의 장남은 확실히 좋은 아이입니다. 우리도 그 아이가 어렸을 적부터 봐 오지 않았습니까, 그 아이는 인품과 학식이 모두 매우 훌륭하지요. 다만 사돈을 맺는 문제는 이런 것만을 따질 순 없어요. 다른 것은 말할 것 없이 가장 현실적인 문제만 논해 보자면, 고씨 집안의 형편이 우리보다 부유하지 못하다는 건 당신도 확실히 인정하지 않습니까?
우리 딸이 평소에 즐겨먹는 제비죽으로만 예를 들어 봐도 차이가 많이 나지요. 게다가 녀석의 장식품들은 또 어떻고요. 아이의 방을 보셔서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렇게나 멋대로 진열해 둔 것이라고 해도 보통 가정의 몇 년 치 수입에 필적할 비용입니다. 부마, 생활 습관이 다른 사람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것은 분명 적응이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사장정은 멍해져서 정원사가 정성들여 가꾸어 놓은 꽃밭을 바라보았다. 코끝에 은은한 꽃향기가 스며들자, 마음이 좀 가라앉은 그는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무성한 국화꽃들만 해도 보통 비싼 것들이 아니었다. 고씨 집안의 가산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었던 사장정은, 비록 딸아이가 시집을 간다고 하면 혼수야 어마어마하게 챙겨 보내어 딸아이의 앞으로의 생활이 억울하지 않게 해 줄 수는 있다 쳐도, 과연 고씨 집안에서 이런 행태를 어찌 생각할지 걱정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우리 집 큰딸 혜명(慧明)이보다 5살이나 많으니, 나이 차도 좀 나는 편입니다. 지금 아이를 시집보낼 순 없지 않습니까.”
사장정은 새로운 화제를 듣자, 아까 고민했던 문제에 주의를 더 기울일 여력도 없이 바로 반박했다.
“그 정도 나이 차는 큰 편도 아니지요. 게다가 이제 시험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량가아(*良哥儿: 고영량)는 내년 회시에서 시험에 붙지 못한다고 하면 3년 후에 다시 시험을 치르게 될 것인데, 그때면 21살이니 딱 적당한 나이지 않습니까.”
자기 자신도 그 나이에 장가를 갔으니 말이다.
안락공주는 나지막한 기침을 하며 그를 다독이듯 말했다.
“맞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은 편은 아니지요. 하지만 부마, 고신지가 일찍이 아이들끼리 혼인을 맺어 주자고 부마께 의견을 밝힌 적이 있습니까?”
사장정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몇 번이고 곰곰이 되짚어 본 후 말했다.
“아니, 신지는 이런 종류의 이야기 자체를 꺼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고 쳐도 그저 아들에게 문인 집안의 여식을 배필로 찾아주고 싶다는 이야기뿐, 그 외에 공감대를 형성하여 나누었던 이야기는 없다고 봐야 했다.
사장정도 자신의 딸이 그간 집안에서 받은 교육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집안이 서로 맞아야 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고씨 집안이 빼어난 집안이라고는 하나 공주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딸아이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딸에게 더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거절하지 않을 것이었다.
안락공주는 그 답을 듣고 나자 마음이 홀가분해졌는데, 고씨 집안은 처음부터 그녀가 생각하던 혼처의 선택 범위에 들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중립을 지키는 사내로, 황자들에 대해서도 교제를 하려고 들거나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맺는 것이 아닌,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부황이 그에 대해 기억하기를, 그는 사람 자체가 처신이 바르고 약점 잡을 것이 없는데다 세속에 대한 욕망이 없어 의연해 보이는 경지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혼자 세상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라 남들이 그에게 잘 손대지 않는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자신의 딸의 장래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워 둔 것이 있었던 그녀는 고씨 집안에서도 역시 자신의 집안과 혼사를 진행해보려는 의향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나자, 고씨 집안을 다시 한번 높이 올려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야 맞습니다! 사돈과 친구 관계는 엄연히 다른 법. 부마 또한 앞으로 고신지와의 우정에 금이 가거나 변화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시지 않습니까?”
사장정은 이 말을 듣고 바삐 고개를 끄덕이며 거듭 생각했다. 그는 공주와 신지 양측 모두 혼사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자기 혼자 들떠서 덥석 일을 치르는 건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습을 본 안락공주는 사장정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뽀뽀를 해 주며, 그를 위로하고자 말했다.
“앞으로 우리 딸은 더 좋은 남편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얼굴을 붉히며 주변을 살핀 사장정은 화원 안에는 진작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을 확인하고, 주객을 전도해 안락공주를 긴 의자 위로 함께 끌어다 앉히고는 그녀의 볼에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어? 지분(*脂粉: 연지와 백분) 냄새를 맡은 그가 이번에는 지분향이 풍기는 그녀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댔다.
“공주 전하, 이번에 새로 들인 입술연지가 맛이 정말 괜찮습니다.”
사장정은 안락공주의 검푸른 머리칼을 매만지며 그녀의 귓가에 가까이 대고 낮게 말했다. 그들의 거리는 서로의 숨이 닿을 정도로 매우 가까웠다.
멀리서부터 걸어오던 유모가 부마와 공주가 다정히 붙어 귀엣말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 얼굴에 저절로 웃음을 띠웠다.
공주와 부마는 여전히 변함없이 사이가 좋았다. 성혼 후 십수 년이 지나도록 마치 아직도 신혼인 양 굴었으니, 당초 공주가 황제와 황후를 필사적으로 설득해 부마와 성혼을 한 건 옳은 선택이었던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