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축하 (1)
고영량의 균형적인 발전 양상에 비해, 고영진은 경의 방면의 공부가 부족했다. 고청운은 매달 5, 10일 서원의 휴일마다 직접 서원을 방문하여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서원의 스승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서원을 방문한 김에 선생님들과 교류를 하면서 아이의 학습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고청운이 보기에 고영진은 아직 서원에서 계속 학습을 더 해나가야 했다. 지금처럼 아직 어렸을 때 기초를 잘 다질수록 앞으로의 학업의 발전에 더욱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괜히 조급하게 과거 시험을 치르러 갈 필요는 없었다.
고영진은 형인 고영량과 성격이 달랐기에, 고청운은 같은 방법으로 아이를 교육하고 시험 준비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럼 기다려 보세요, 조만간 해내고 말테니까요.”
고영진은 가슴을 두드리며 각오를 다졌다.
고청운은 무슨 말을 하려던 참에, 그보다 먼저 간미가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다 멈추는 것을 보았다.
“부군, 제 남동생은 합격을 했답니까?”
간미는 고청운이 자신을 바라보자, 잠시 생각해 보고 결국 먼저 질문했다.
고청운은 멈칫했다가 이내 머리를 저으며 미소를 띠고 말했다.
“내가 서신의 서두 두 줄만 읽고, 다른 내용은 더 읽어보지 못했구려.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자세히 더 읽어 보리다.”
너무 흥분한 탓에 경황이 없어 전례 없이 처음으로 서신을 끝까지 다 읽어 보지 않았던 고청운은, 정신이 없다고 다른 아이들의 소식을 망각했다는 사실에 조금 머쓱해졌다.
곧이어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자색 등나무 꽃들 옆에서 다시 서신을 고쳐 들고 끝까지 다시 읽어 내려갔는데, 앞서 들떴던 마음이 이내 가라앉았다.
간미는 그런 고청운을 보았음에도 재차 물었다.
“그 아이가 또 낙방을 한 것이로군요?”
일전에 간유는 고영량과 함께 현시, 부시, 원시에 모두 응시했었지만, 결국 지금은 그 마지막 관문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작년에야 수재에 합격했으니, 낙방은 거의 예상했던 바였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뭔가 말을 하려다 멈추었다.
“작은 외숙부는 다음 시험에서 꼭 붙을 거예요.”
고영진이 간미를 위로했다.
“작은 외숙부는 저처럼 똑똑하잖아요, 3년 후면 합격할지도 몰라요. 어머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모두들 두 지역에 나뉘어 떨어져 살고 있었기에, 이치대로라면 고영진과 간유의 감정은 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경성 쪽과 간미의 본가와 서신을 통한 왕래가 잦아지면서, 그 횟수가 임계촌 고청운 본가와의 서신 교류 횟수와 거의 비슷해졌는데, 이에 더해 고영진이 고향에 돌아갔을 때 간유와 기질이 잘 맞아 의기투합했던 적이 있어서 이 둘은 나이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교감이 잘 되었다.
고경은 고개를 들어 고영진을 바라보았다.
“둘째 오라버니가 자화자찬을 하네요. 어머니, 아버지께서도 처음 향시 시험에 응시하셨다가 낙방했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외숙부의 낙방은 정상이에요.”
고청운은 가슴께에 묵직한 한 방을 맞은 것만 같아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딸의 여린 얼굴과 순진무구해 보이는 눈빛을 보면서 묵묵히 참아냈고, 별로 개의치 않는 척 하며 말했다.
“확실히 시험에서 한두 번 낙방하는 것쯤이야 아주 정상적인 일이오. 이번에 함께 한 4명 중에 소석이를 빼면 다들 낙방하지 않았소? 그들은 아직 젊다오.”
고청운은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을 때, 큰아들이 당면했을 고민스러운 상황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자신의 합격에 대한 기쁨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고영량은 같은 시험에 함께 응시했던 주변 지인들의 낙방에 머리를 싸매고 위로를 해야 했을 것이다. 이는 자칫 잘못하면 ‘자랑’으로 비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모두 한 집안 식구들이라 그렇게까지 오해를 살 만한 상황은 없을 거라는 점이었다.
간미는 세 사람 모두 자신을 애써 위로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실망감을 뒤로하고, 아들이 해원으로 합격한 것에 대한 일을 다시 상기했다. 이는 정말이지 그녀에게는 큰 기쁨이었기에, 이제 더 이상 그녀의 동생에 대한 걱정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 * *
이들은 발걸음을 재촉해 이웃한 방택으로 넘어갔는데, 마침 밖에서 낚시를 하고 돌아오던 방인소와 연 씨를 마주쳤다.
“외증조할아버지, 외증조할머니, 오라버니가 보내온 서신을 받았어요!”
고경이 그들을 보자 서둘러 말했다.
“서신이 도착한 것이냐?”
연 씨가 일순 기뻐하며 급히 물었다.
“네 오라버니의 시험은 어찌 되었다고 하더냐?”
사실 그녀는 이들 몇 사람의 표정만 봐도 그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기쁨에 젖어 있는 하인들을 보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작은 외숙부는 시험에서 낙방하셨다고 해요. 3년을 다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은 방인소와 연 씨는 방금까지만 해도 매우 들떠 있다가 기분이 가라앉았다.
“노부가 딸아이한테 아들을 경성으로 보내 공부를 시키라고 일찍이 일렀건만. 마침 노부가 퇴직하여 공부를 더 잘 봐 줄 수 있었는데 말이오. 그 애는 아이만 따로 올려 보내 고생시킬 것이 아무래도 걱정되었나 보오.”
방인소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간유가 비록 낙방할지도 모른다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으나, 정말 간유가 낙방했다는 소식에 다시금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힘을 들이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일은 없는 법. 우리 소석이도 이를 위해 참고 감내하는데, 왜 그 아이는 같은 고생을 감내하지 못하는 것일꼬. 그 아이가 심지어 나이가 더 많은데도 말이오.”
“아이고, 우리 딸아이는 제 아들 간유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으로 여기고 키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 아이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아들의 건강이지요. 전 외손자가 공부를 하다가 몸이라도 상할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딸아이가 외손자를 잘 관리해서 수재 시험까지는 보게 했네요.”
연 씨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이만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면, 뭘 하든 알아서 하게 두세요.”
필경 간유는 딸아이가 몇 년을 빌어서 얻은 귀한 아들이었기에, 그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으로 키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고청운과 간미는 서로 말없이 한 번 쳐다보았다.
그들은 이전에 고영량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지난번에 고향으로 내려가 수재 시험을 준비했을 때 방인소와 연 씨가 바짝 붙어 거의 1년이란 시간을 들여서 간유를 가르쳤다고 하였다. 그 정성 어린 가르침이 없었다면, 간유는 아직도 수재 시험에서마저 낙방을 거듭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또 방인소는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서, 꽤 엄격하게 아이를 대했는데, 연 씨는 아무리 간유를 위함이라고는 하나 그게 또 마음이 좀 아파서 은연중에 그 불만이 말투에 배어 나와 방인소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고는 했다고 하였다.
더 들은 바에 의하면, 방인소는 연 씨가 아이를 너무 귀여워하여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며 한바탕 꾸짖었다고 하였다.
“두 분 다 걱정하지 마세요. 처남은 조만간 만나보실 수 있을 겁니다. 소석이랑 함께 떠날 채비를 마쳐서 이미 함께 경성으로 올라오는 길이라고 하네요.”
드디어 말을 꺼낸 고청운이 그들이 미처 반가운 기색을 비치기도 전에 마저 말을 이었다.
“다만 이번 여정은 바닷길을 통해 오는 게 아니고 호수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어서, 중간중간 유람을 하며 올 예정이라 아마 경성에 도착하려면 꽤 시일이 걸릴 겁니다.”
물론 얼마나 ‘꽤’ 걸릴지는 아무도 모르는 문제였다. 만약 고영량이 내년 3월에 경성에서 열리는 회시에 참가한다면 몰라도, 참가하지 않을 예정이라면 그들이 얼마나 걸려 경성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정말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전에 고청운이 말했듯이, 이제 큰아들 고영량은 향시에 급제하여 거인의 신분이 되었고, 또 이미 성인이니 자신과 관계된 일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저 무슨 결정을 내리기 전에 부모에게만 알리면 되었다. 다만 고청운이 예상치 못했던 것은 큰아들이 정말로 이 말을 받아들여 사후 보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큰아들이 윌성에서부터 유람을 하면서 경성으로 돌아가겠다고 이미 유람길에 올라놓고 나중에 통보할 줄은 몰랐다.
이미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는 11월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에, 고청운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반대를 할 수도 없었다.
“괘념치 않는다, 그건 괜찮아. 어떻게 해도 경성에 올 수만 있으면 되었다.”
방인소는 마음을 가다듬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다가, 이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보이는 고영진에게 물었다.
“혹시 네 형이 해원으로 합격한 게냐?”
“어? 외증조할아버지, 어떻게 맞추셨어요?”
고영진과 고경이 깜짝 놀라 그를 쳐다봤다.
방인소는 이전의 평정을 되찾으며 그저 웃기만 할 뿐 별말은 하지 않았다.
그 심오하고 고아한 모습에 매료된 고영진과 고경이 갑자기 애교를 부리며 좌우로 방인소의 팔을 껴안고 끊임없이 추궁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연 씨는 아이들에게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자 시샘이 났다.
“하하, 노부는 진작부터 우리 소석이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 오늘 밤에 우리끼리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자꾸나. 부인, 오늘 밤에 축하주 한잔 어떠시오?”
사람들이 응접실에 모두 자리를 잡고 앉자, 방인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작년에 빚어둔 국화주를 이제 개봉해 볼 수 있겠구나. 이 노부가 직접 담근 술이란다.”
“안 됩니다!”
고청운 외 여럿이 이구동성으로 반대의 소리를 냈다.
고청운은 방인소가 벼슬길에서 내려온 후부터 반년에 한 번씩 잘 알고 지내는 의원을 집으로 모셔 방인소의 맥을 짚어달라고 청했다. 방인소에게 무슨 큰 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집에 재산이 부족하지 않으니 당연히 건강 관리에도 미리 신경을 쓰고자 함이었다.
현대에선 병원에 한 번 행차해 건강검진을 받고 돌아오는 것이 여간 번잡한 것이 아니었는데, 고대에서는 의원을 직접 집까지 모실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간편한 일인가. 그리하여 반년에 한 번 의원을 모셔 병이 있으면 치료하고, 병이 없으면 예방하자는 규칙을 정한 것이었다.
고향 임계촌의 어른들에게도 같은 대우를 해 드리고자, 고청운은 여러 번 신신당부했지만, 그가 집에 없어서인지 어른들은 그의 말을 잘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도 큰누이 댁에 의원인 하상춘이 있으니 마음이 좀 놓일 뿐이었다.
이러한 규칙은 그래도 꽤 유용했던 것이, 최소한 방인소가 의원에게 ‘양강(阳亢)’ 진단을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었다. 양강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으니, 평소 감정이 격해지면 안 되며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 진단을 들은 고청운은 의학책을 뒤져 이 병증이 대략 현대의 고혈압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방인소가 이전에 교류와 접대 등으로 인해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생긴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었고, 거기에 더해 일전에 몇 번 병치레를 겪으면서 건강 상태가 예전만 하지 못하게 된 것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가족들은 방인소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당부하고 있었다.
지금 가족들이 이렇게 단호하게 반대하는 모습을 보고, 방인소는 몸이 많이 좋아졌다면서 흥정 끝에 작은 술잔으로 딱 한잔만 마셔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냈는데, 그뿐임에도 마음이 아주 상쾌했다.
아이고, 그는 오히려 젊었을 적에는 술 마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다 늙어서 이렇게 술이 좋아질 줄은 몰랐다. 심지어 마시지 못하게 할수록 더 마시고 싶어지기까지 하였다.
방인소는 잠시 시간을 들여 자신의 결점에 대해 새겨보고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은 집에 경사가 있어 하인들에게도 상을 내렸는데, 고청운 일가는 하인들에게 소식을 밖으로 퍼트리지 말라고 잘 당부하면서 가족들끼리만 축하 자리를 만들어 몸을 낮췄다.
그들이 아직 이 희소식을 밖으로 전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관가를 통한 정식적인 연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