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기다림
8월 9일 새벽,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따라 시험장에 들어가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싸움에 임하기 시작했다.
고영량이 시험장에서 분투하고 있을 때, 경성에 있던 가족들도 묵묵히 시험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아직도 안 자고 있소?”
고청운은 간미가 뒤척이는 것을 보고는 한마디 물었는데, 그의 목소리가 고즈넉한 밤에 울려 퍼졌다.
“잠이 안 오네요. 부군, 지금쯤이면 소석이가 줄 서서 시험장에서 들어가고 있을까요? 소만이랑 방행이 잘 돌봐 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반드시 미리 의원을 불러 둬야 하는데, 9일 씩이나 가둬두고 시험을 치게 하다니 정말 사람 애간장을 태우네요.”
간미는 매우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들을 따라 고향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큼 아들을 잘 보살펴 주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안 좋았다.
“안심하시오. 소만이가 우리 집에 오래 지냈으니,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 부모님께서도 사람을 많이 보내어 돌봐 주실 거요. 또 소석이가 처남과 동동이랑 같이 시험을 치러 가지 않았소? 친구가 곁에 함께 있으니 무섭지 않을 것이오. 만약 큰 사촌 형과 둘째 사촌 동생이 함께 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서 좀 더 나았을 모르겠지만.”
고청운은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지만, 사실은 그도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매우 드문 일로, 그는 수면의 질이 줄곧 매우 좋은 편이라, 베개를 베면 바로 자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전에 고영량이 다른 시험을 쳤을 때는 이렇게까지 마음에 부담이 없었는데, 걱정에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마도 큰아들에게는 수재가 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는 난이도였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간 마음이 편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향시는 그간의 시험들과는 달랐다. 시험장에 9일간 갇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주 큰 시련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고청운은 고영량이 그간 공부해 온 학식에 대한 것보다는 시험을 보는 와중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 더 걱정이 되었다.
‘만일 소석이가 이전의 나와 같은 불운을 만나면 안 되는데.’
자신은 농촌의 농가 출신이었지만, 고영량의 성장 환경은 이전의 자신보다 훨씬 좋았으니, 아이가 만약 불운한 호실을 배정받는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고영량은 분명히 그런 상황에서 괜찮을 리가 없었다. 고영량이 아무리 혼자 집에서 훈련을 거쳤다고는 하지만, 본격적인 향시 시험 현장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이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좀 안심이 되네요.”
간미는 손을 더듬어 고청운의 손을 찾아 부드럽게 쥐더니, 문득 다른 사람 이야기를 꺼냈다.
“남동생이 이번에 시험에 합격했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때 그렇게 장난이 심하더니, 작년에 수재 시험에 합격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어머니께서 서신으로 소식을 알려주셨을 때, 바로 믿기지가 않더라고요.”
요 몇 년 그들 모녀가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그녀도 자연히 자신의 친동생의 발자취를 적지 않게 알게 되었는데, 지금의 그는 벌써 20살이 되어서도 아직 장가도 가지 않고 있어 걱정이 된 어머니가 흰머리가 다 났다고 하였다. 어머니뿐 아니라 외할머니도 사심이 깊어져서 직접 나서서 며느리를 찾아주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20살이라는 나이는 더 이상 어린 편이 아니었지만, 동생은 한사코 혼인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물어도 대답을 해 주지 않으니, 어찌 어머니가 조급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인어른의 가르침이 있으니 처남이 어디 못 내놓게 모자란 점도 없소. 그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오?”
고청운이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 솔직히 간유의 지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남들이 보기에 좀 껄렁껄렁해 보일 뿐이지, 공부도 아주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한 개인이 공부에 대해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 지만 보아도, 그 사람의 사람됨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고청운은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늘 처가를 찾았는데, 비록 간유가 어린 나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처남이었기에 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장모님은 그가 간유를 더 엄하게 대해줄수록 간유가 더 잘하게 된다고 하는 주의였고, 간지원 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간미의 이복동생인 간경은 요 몇 년 동안 오직 수재에만 머물러 있었는데, 사람이 갈수록 뒤떨어지고 거인이 되지 못하고 있었기에 간지원의 마음은 자연히 간유에게 더 쏠리게 되었다.
고청운은 속으로 가늠해 보다가 때로는 사람이 아무리 근면하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세상에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 고씨 집안에서는 자신을 제외하고서라도 전체 문중에 이미 4명의 수재가 생겼는데, 이정도면 합격률이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거기에 더해 간미의 집안과 방씨 집안, 하씨 집안까지 더하면 마치 수재가 쉽게 되는 것 같이 보였다. 시도 때도 없이 누구누구가 수재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거인의 단계까지 이르는 인재들은 아직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사실 밖에서 보면 수재가 되는 것도 쉽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수재는 제일 기본적인 공명에 주어지는 신분이라 여전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신분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고청운의 세 누이의 집안 모두가 형편이 나쁘지 않아 아이가 나이가 들면 바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 그녀들은 아이들이 공명을 얻고 금의환향하여 돌아와 조상을 빛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청운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마다 누이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경성으로 데려가 가르쳐 달라고 했었다. 아이들의 자질 역시 모두 중등 정도가 되었고 나쁘지 않은 편이라 열심히 공부하면 그래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그는 고씨 집안에서만 수재 합격자가 있다는 소식을 받았을 뿐 조카들이 합격했다는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몇 명의 조카 중에서 큰누이의 큰아들 하단삼(何丹参)만 시험에 합격해 동생의 신분이 되었을 뿐, 원시 시험은 어떻게 해도 합격이 안 된다며 큰누이 내외는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큰누이에게는 아들이 셋이나 있었는데, 다른 두 명은 여러 번 시험을 치르다 독서가 싫어져 과거 시험을 포기한 뒤, 하나는 약초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고 하고, 다른 하나는 의원이 되겠다며 의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둘째 누이네는 오직 한 명의 귀염둥이 아들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엄하게 단속하고 키워 두 번이나 시험을 보게 하였지만, 현시만 통과했을 뿐, 부시부터는 합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아직 열심히 하고 있었고, 다행히 나이도 많지 않았다.
여동생 고용의 아이는 아직 나이가 어리고, 시험도 본 적이 없지만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 번 계산해 보면, 그들 고씨 집안에는 요 몇 년간 몇 명씩이나 수재를 배출해 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아주 큰 성과였다.
고청운은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조바심이 풀렸고, 간미를 마저 안심시키기 위해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안심하시오, 아이의 실력을 믿는 것이오. 만약 정말 낙방하더라도 아직 젊으니 해 볼 기회가 더 있지 않겠소.”
“포부가 크세요.”
간미는 그의 손을 토닥였고, 그의 손이 따끈따끈한 것을 보고 바삐 물었다.
“너무 더우신가요? 벌써 가을이 다 되었는데, 경성은 왜 아직도 이렇게 더울까요? 사람을 시켜 얼음을 가져오라 하겠습니다.”
“경성이 원래 그렇지요. 중양절(*重阳节: 음력 9월 9일, 건강과 장수를 상징한다고 여겨 어르신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날)이 지나면 시원해질 것이오.”
고청운은 그녀의 손을 잡아 그녀의 움직임을 저지하며 말했다.
“얼음은 필요 없소, 마음이 차분해졌으니. 이제 조급한 마음이 사라져 조금 있으면 잘 수 있을 것 같소.”
간미는 그의 말을 듣고 사람을 부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또 몇 마디 서로를 위로하는 말을 주고받다가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잠에 들었다.
* * *
아이들의 시험 결과만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9월 말이 되었는데, 시간을 계산해 보니 늦어도 9월 초에는 합격자 명단이 나왔을 것이었다. 성적이 나오자마자 서신을 부쳤다면, 지금쯤 연락을 받았어야 했다.
고청운은 다시 생각해보니 월성으로 향시를 주관하러 갔던 주임 시험관도 아직 경성으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저 묵묵히 참고 더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 *
고청운은 주임 시험관의 귀경 여부를 알아보러 갔다 온 지 이틀도 안 되어서 고향으로부터 도착한 서신을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서신을 받아든 그는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많이 했다고는 하나 봉투조차 제대로 잘 뜯지 못할 정도로 기대와 불안감이 교차했다.
고영진은 외려 생각이 많지 않았기에 그저 아버지에게 외쳐대기만 하였다.
“아버지, 어서 뜯어보세요. 형이 합격했는지 아닌지 봐야죠.”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영진은 아버지 손에서 서신을 뺏어 직접 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청운은 아들을 한 번 노려보고는 정신을 가다듬고, 서신을 재빨리 펼쳐 보았다.
‘해원(*解元: 향시의 수석 합격자)’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또 한 차례 큰 경사였다!
“아버지, 형아는 합격인거죠?”
고영진은 고청운의 얼굴에 웃음이 절로 번지는 것을 보고 얼른 물었는데, 말투는 의문문이었으나 사실상 결과는 이미 확정적이었다.
한쪽에 같이 있던 간미와 고경 역시 기대에 차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청운은 망설임 없이 시원시원하게 시인했다.
“그래, 너희 형이 거인에 합격했구나. 해원으로 합격을 했어.”
“예? 잘됐다, 정말 잘됐어요!”
고영진은 펄쩍 뛰며 큰 소리로 말했다.
“형아는 진짜 대단해요! 엄청나요! 해원이라니, 해원으로 합격을 하다니!”
아이는 엉덩이를 흔들어 대며 말하고 있었는데, 품속에 줄곧 끌어안고 있던 축국공을 내던지더니 양다리를 위아래로 움직여가며 축국공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고경의 희고 보드라운 얼굴에도 찬란한 미소가 드러났다.
“아버지, 제가 외증조할아버지랑 할머니께 가서 알릴게요. 소식을 들으시면 분명 기뻐하실 거예요.”
“같이 가자꾸나.”
고청운의 입꼬리가 걷잡을 수 없이 치켜올라갔다. 그는 온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간미와 마주 보고 미소를 짓더니, 이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바로 알려드리러 갑시다.”
“저도 갈래요!”
고영진은 아버지의 말을 듣자마자 재빨리 축국공을 다시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러고 나서 아이는 고청운에게 바짝 붙어 서서 외쳤다.
“아버지, 저도 현에 가서 시험을 볼래요. 저도 벌써 13살이니, 어리지 않잖아요.”
“황립 서원의 갑원(甲院)반으로 올라가고 난 후, 서원에서 무사히 수업을 수료하고 나면 시험을 보러 갈 수 있게 해 주마.”
고청운은 손을 뻗어 아이의 머리를 힘주어 문질렀는데, 손이 약간 축축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녀석의 온 머리가 다 땀투성이였다. 누구와 놀다 왔는지 몰라도 축국을 한탕 뛰고 온 듯했다. 아까는 온 신경이 서신 내용에 쏠려 있던 탓에 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