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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353)화 (353/504)

353화. 준비 (2)

고영량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듯 상 위에 늘어진 다 먹은 간식과 다구들을 보고는 자신의 책과 공부 자료를 꼼꼼히 챙겨 잘 정리해서 한쪽에 두었다. 그러고는 또 방금 모두가 토론한 화제에 대해서도 몇 획 적어 두었는데, 일부는 그가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로, 적어 두면 쉽게 잊지 않을 것이었다. 

“큰 형님의 말씀이 옳아요. 방금 왕 형네 사람들은 수재들 중에서도 그나마 학식이 가장 좋은 편이라, 모두가 함께 교류하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될 겁니다.”

고영량은 자신의 작은 외숙부가 분개한 모습을 보고 웃음을 금치 못했다.

어린 시절 그와 외숙부가 함께 외가에서 놀 때, 외숙부는 늘 그의 앞에서 어른 행세하기를 좋아했는데, 두 사람이 잘못을 해서 어른들에게 꾸중을 들을 때도 그는 언제나 떳떳하게 나서서 가슴을 치며 자신이 다 화를 감당했다. 또한 그는 매우 솔직했는데, 지금 나이를 먹어 다시 보아도 외숙부는 여전했다. 무엇인가 눈에 거슬리면 입 밖에 내야 했는데, 그것을 잘 참지 못했다. 

“흥, 소석이, 너 도대체 누구를 도와주는 거야? 너는 도대체 누구 편인 것이야?” 

간유는 불만스러운 듯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그들의 의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믿지 못하겠다. 그들이 누구를 노리고 왔는지 정녕 모르는 거야?”

“제가 지금 누구를 도와줄 수 있겠어요?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왕 형 말고 다른 사람들은 정상적이었잖아요. 그들과 소통하는 것은 확실히 유용한 구석이 있었어요.”

고영량은 글씨를 말리고 나서 자신이 쓴 글씨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흥겹게 말했다. 

“그리고 시험까지는 아직 며칠 남았는데, 군성 선착장 근처에는 흔치 않은 물건이 많다고 들었어요. 어떤 것들은 경성에서도 구경 못하는 것들이 있다니, 구경하러 가고 싶은데 같이 가실래요?”

이번에 군성에 와서 시험에 응시하는 것에 대해서, 원래는 할아버지인 고대하도 함께 오고 싶어 했었다. 고대하는 고청운이 예전에 시험 보았던 상황에 대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려주었는데, 다시 강조하지만 만약 자신이 없었더라면 고청운은 시험에 통과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운이 좋았다고 말하곤 하였다.

그때 고영량은 할아버지의 의견을 듣고는 동행하는 것에 대해 재빨리 거절했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연세가 얼마나 많은데, 어르신에게 자신을 데리고 시험 보러 가 달라고 부탁드렸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자신에게 젖도 떼지 않은 어린애냐며 비웃지 않겠는가?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어쨌든 결국 거절을 했고, 이 때문에 할아버지는 잠시 서운해하며 할머니와 또 한바탕 말다툼을 하였다.

고영량은 이 생각을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고향에 갈 때마다 모든 어른들의 마음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면서 또 무섭기도 했던 것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함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틀림없이 그는 자신을 위해 대부분의 주의력을 분담해 주었을 것이었다. 

“난 안 가!” 

간유는 고영량의 제안을 듣자마자 두 손으로 가슴을 껴안고 머리를 한쪽으로 돌렸고, 그들 두 사람이 자신의 말에 개의치 않는 것을 보고는 더 화가 난 듯했다.

고영동은 책을 읽다 말고 고영량을 보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뒤에 며칠간은 외출하지 않을 테니 지금 구경이라도 나가 보자.”

여기 세 사람 중에서는 그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는 올해 22살이었고, 간유는 20살, 고영량이 17살이었다. 그는 이 기회에 함께 지내면서 간유가 오히려 어린애 같은 성질에 그 깊이 역시 고영량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끼리 가. 나는 안 갈 테야.”

간유는 계속 고영량을 노려보았다.

고영량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세요, 외숙부. 누가 좋고 누가 나쁠지 다 계산하고 있었어요. 내일이면 제가 문 앞에 '문을 폐하고 독서에 전념합니다.’ 하고 쓴 간판을 달게 하고 다시는 다른 사람을 접대할 일을 만들지 않을게요. 남은 며칠 동안은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게 할 거예요. 그러면 될까요?”

그는 평소에 미리 열심히 하자는 주의였다. 그래서 시험 전부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두었다. 이번에 몇몇 수재들과 교류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온고지신의 과정으로, 막상 시험 준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는데, 지금 외숙부를 보니 그가 이렇게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외숙부를 배려하지 못했던 것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찾아와서 물어보는 문제들이란 대개 산술 쪽이었던 것을 생각하니, 고영량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산술에 대해선 그는 이제껏 다른 사람이 묻는 것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

간유는 가까스로 한마디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인색한 게 아니라 네가 손해 볼까 봐 그랬지. 사람을 알고 얼굴도 알지만 그 마음은 모른다고,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야.”

고영량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외숙부의 이런 성향 때문에 지금까지 혼처를 찾지 못한 거구나.’ 

그들은 젊은 청춘들이었으므로, 밖에 나가 유람할 것을 생각하니 금세 방금까지의 논쟁을 잊고 각자 분분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나갈 준비를 꾸렸다. 

곧 세 사람이 옷을 갈아입고 나왔는데, 머리에는 푸른 두건을 두르고, 청색이나 월백색의 피풍의를 걸친 채 손에는 쥘부채를 들고 있는 것이, 셋 다 거의 똑같이 차려입은 모습에 서로를 쳐다보다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셋은 모두 혈연적으로 가까운 사이인데, 이 우연의 일치는 분명 집안의 여자 어른들이 함께 있을 때 그들을 위해 준비해 놓은 것으로 보였다. 

* * *

고영량과 고영동, 간유, 세 사람은 해가 아직 지지 않은 틈을 타 마차 한 대를 불러 부두 부근의 진품(珍品)거리로 달려갔다. 이곳의 상가 문 앞에는 모두 등불로 장식된 장막들이 쳐져 있었는데, 이곳은 야간 통행금지가 없고, 등불이 많았기에 야밤에도 낮처럼 밝았다.

“일단 저녁 먹고 갈까?”

고영동은 인파가 많지 않은 거리를 보고 그들을 생각해 식사를 먼저 제의했다. 세 사람은 오후 내내 차만 잔뜩 마시다 왔기에, 근처 몇몇 가게에서 나는 음식 냄새를 맡으니 배가 정말 고팠다.

고영량과 간유 모두 한창 몸이 자라고 있을 때라 그 말을 듣고 바로 동의했다.

세 사람이 밥을 먹고 가게를 나섰을 때는 이미 거리에 어둠이 깔려 있었는데, 거리의 인파가 방금 전보다도 더 많아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까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거리는 인파로 넘쳐 다들 어깨가 부딪칠 정도였는데, 이곳은 부두에 인접하여 공기 중에 각양각색의 냄새가 풍기고 있어서 꽤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아졌지?”

간유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포졸들이 순찰을 돌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안전이 보장된다는 사실에 마음의 긴장이 일순 풀어졌다.

“이게 정상이지요, 이 거리에는 야간 통금이 없으니 당연히 사람이 많을 수밖에요.”

고영량은 일찍이 이곳에 대한 상황에 대해 물어 알고 있었기에, 지금 상황이 놀랍지는 않았다. 

고영동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이곳은 배가 도착하는 곳이라 사람들이 각자 다양한 물건을 손에 들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해외에서 가져온 물건도 있었다. 

일찍이 한 사람이 진품거리에서 아주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샀는데, 나중에 이 물건을 매우 높은 가격에 되팔았다고 했다.

이렇게 한몫 벌었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게 만들었는데, 그와 동시에 이곳에서 보물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이게 되었다. 

세 사람이 길을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주제가 쉽게 이번 향시로 넘어가 버렸다.

“하 형님이 이번에 시험 보러 오지 않으셨는데, 만약 오셨더라면 우리 임산현에서 향시를 보러 오는 수재가 한 명이라도 더 많았을 거예요. 다 같이 모일 수 있었는데…….”

고영량이 아쉬워했다. 

이번에 귀향할 때 아버지는 자신에게 원래 다른 동향 지인들을 만나고 오라고 하였다. 그때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하씨 집안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허연이 몸이 불편하여 하겸죽의 허락을 얻지 못해 밖에서 모일 수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간유가 중얼거렸다.

“합격자 정원은 적고, 경쟁하는 수재들은 이리도 많으니, 굳이 밖으로 나와 집안싸움 할 것이 있을까.”

하허연과 그는 당연히 서로 아는 사이였는데, 두 사람은 같은 현성에서 자랐고, 양쪽 아버지 두 분 다 현학에서 공부했던 사이였다. 그는 자신보다 2살 위였기에, 살아가면서 부딪치지 않으려야 안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준비를 충분히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하씨 집안에서도 드디어 하겸죽이라는 진사 합격자가 나와 경성의 관리로 재직하고 있었다. 

간유는 자신의 친부가 하씨 집안을 매우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초에 하씨 집안에서 진사 합격자가 나왔을 때, 그 소식이 임산현으로 전해져 왔는데, 그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다시 상경하여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까지 생각했지만 그 후로는 다른 연유가 있었는지 말만 했을 뿐 딱히 다른 동정은 보이지는 않았다. 

고영동은 말문이 막혀 또 한 번 간유를 쳐다보았는데, 상대방의 말에도 매우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영량은 미소를 지을 뿐 다른 말을 더 하지 않았다. 많든 적든, 자신의 실력만 있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한들 그는 두렵지 않았다. 시험에 진짜 못 붙게 된다면, 자기 실력의 문제지 남 탓을 할 수는 없었다.

간유는 다른 두 사람이 자신을 반박하지 못하자 즐거워진 듯 웃으며 말했다.

“내 경우가 그랬어. 몇 년 전에 너희들이랑 함께 원시에 응시했을 때, 너희는 시험에 통과했는데 나는 떨어졌었지. 하지만 작년에 너희들이 없으니 내가 단번에 합격할 수 있지 않았겠니. 내 말이 맞지?”

고영동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간유에게 미소를 지었다. 

간유는 고영량이 별 반응이 없자 작은 소리로 물었다.

“소석아, 외숙부 말이 맞지?”

고영량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형님, 외숙부, 이 가게가 인기가 참 많네요. 저희도 한번 들어가 봐요.”

이어 이들 세 사람은 진품거리의 여러 가게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고영량은 경성에는 없던 신기한 물건들을 보고, 또 신기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특히 해외에서 막 도착한 선원들이 찻집에서 자신들이 해외에서 보고 들은 견문을 자랑할 때는 그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쩐지 옛사람들이 본 것이 많으면 식견도 넓어진다고 하더라니, 가 본 곳이 많아지니 식견이 자연히 높아지게 되는구나.”

고영량은 중얼거리며 사방으로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하는 아저씨들을 보고 속으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곳저곳을 다녀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국자감에서 알게 된 동창들을 떠올렸다. 어떤 이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유학을 가서 견문을 넓혔는데, 아버지도 여유가 있을 때 밖에 많이 나가 보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아무 경험 없이 쓴 책론은 말만 그럴듯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했던 것이었다.

그 당시 말을 듣기만 했던 그는, 지금은 매우 강렬한 욕망이 생겨서 당장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이 아직 관청에서 근무를 시작하지 않은 틈을 타서, 더 많이 나가서 배워야 하였다. 부모님이 동의해 줄지는 알 수 없었는데, 이번만 해도 그가 혼자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모두 걱정이 태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당연하지, 네 할아버지만 해도, 내가 어렸을 적에 얼마나 내가 숭배했었는지. 부성과 군성, 마을사람들이 다 할아버지께서는 세상을 경험해 보신 어른이라며 존경했어. 할아버지께서 바깥 얘기를 해 주실 때면 애들이 모두 할아버지를 둘러싸고 있었지.”

귀가 밝았던 고영동이 고영량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그의 할아버지 고대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고영량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흥미가 생겨 자세한 사정을 바삐 캐물었다.

간유는 그들 두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들이고 있었는데, 벌써 두 손에 물건을 가득 들고 있었다.

이날 밤 세 사람은 마음껏 돌아다니며 많든 적든 물건들을 사들였다가 하늘을 살펴보니 이미 시간이 늦어 더 지체했다가는 내일의 휴식에 지장을 줄 것 같았다. 거기다 세 사람의 서동이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리기까지 하자, 그제야 아쉬운 마음으로 집으로 가기로 하였다. 

고영량은 그 다음 날부터 내뱉은 말을 지키지 위해 문을 걸어 닫았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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