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합격
점심 식사를 기다리다가 고청운이 고삼원을 보고 급히 물었다.
“소아는 시험을 다 봤더냐?”
“제가 집을 나왔을 때 숙모께서 아직 귀가하지 않으신 것으로 보아, 아직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유난히 지원자가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고삼원은 계시목(*鸡翅木: 고급 가구에 쓰이던 목재)으로 만든 3단 찬합을 탁자 위에 놓고, 음식을 하나만 꺼내 놓으며 재촉했다.
“숙부, 소아가 그렇게 똑똑한데, 시험 걱정은 마시고 음식이 식기 전에 먼저 드세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여전히 걱정이 좀 있었다. 이번이 소아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보는 시험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형제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시험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딸아이는 고영량이나 고영진과는 달랐다.
사내아이들이 다니는 곳에 비해 황립 여자 서원은 집안 배경을 중시해, 능력만으로는 입학 여부가 어떻게 될지 잘 몰랐다. 고청운은 시험 내용에 속하는 예절, 식자(*識字: 글이나 글자에 대한 지식), 특기, 말투 등의 과목을 생각해 보며, 기준이 너무 유연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아, 어쩐지 옛날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것은 쉬우나, 키우는 것은 어렵다며 늘 걱정하더라니.’
고청운은 다시 한번 자신의 직위가 아직 부족하며 낮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상사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은 또 그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그는 아직 보좌역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벌어지는 신경전만으로도 지긋지긋했던 것이었다.
고청운은 저녁에 집에 돌아와 흥미진진하게 시험 당시의 상황을 전하는 고경의 설명을 들으며, 꼬맹이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간미도 합격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고경의 기분을 해치지 않기 위해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결국 시험 결과가 나오면 그때 다시 얘기하기로 하였다.
그나저나 말이 나온 김에, 고청운은 자신의 딸이 시험장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아이는 시험 전에 대기할 때는 긴장했으나 오히려 입장 후에는 긴장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시험에 특화된 실전파 선수들이 있다는데, 그게 내 딸이었다니…….’
고청운은 말이 없었다.
* * *
며칠을 초조하게 기다린 끝에 고택에 드디어 고경의 시험 결과가 도착했는데, 고경이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온 가족이 크게 기뻐하며, 저녁 식사를 성대하게 차려 크게 축하했다.
이후 고경이 본격적으로 등교하기 시작하면서 방인소와 연 씨는 새로운 재미를 찾게 되었는데, 틈날 때마다 아이와 동행해 서원까지 함께 다녀오는 것이었다.
지금 그들에게는 무료한 시간이 너무 많았다…….
* * *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고청운은 남은 시간을 이용해 서둘러 고영량을 훈련시켰다. 집에서 아이에게 별도의 시험 실전반 수업을 하듯 과외를 시키는 셈이었다. 그와 방인소는 함께 문제를 출제했는데, 끊임없이 문제를 내 아이에게 풀게 하였고, 문제 유형도 여러 방면으로 출제해 주어서 아이가 매일 매일을 충실히 보낼 수 있도록 하였다.
간미와 연 씨는 고영량이 고된 학업으로 살이 빠진 것을 보고 몹시 마음 아파하며 매일같이 보양식을 끓여 주었는데, 보양식을 좋아하는 고영량이 너무 많이 먹어 코피가 다 날 뻔한 상황이 되자, 방인소가 한바탕 꾸지람하여 비로소 보양식 열전은 사그라들었다.
이 밖에도 고청운은 두 달마다 고영량에게 국자감에서 휴가를 받아오게 하며, 모의 시험장의 환경을 갖추어 호실 같은 곳을 마련해 9일간 혼자 머물며 문제를 풀고 스스로 음식을 끓여 먹을 수 있는 훈련을 도왔다.
사장정이 한 번은 고청운을 찾아왔다가 이 광경을 목도하고는 깜짝 놀라 “자네, 친아버지가 맞는가?” 하며 독하다고 외쳤었다. 고청운은 한창 훈련에 집중하고 있는 큰아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슬그머니 눈을 뒤집고, 얼른 그를 구석으로 끌고 가서는 화가 나서 말했다.
“친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내가 저기에 뱀 몇 마리, 바퀴벌레 몇 마리, 쥐 몇 마리까지 다 넣고 완전히 실제 상황을 갖추어 잠자리에 들게 했을 것이네!”
“자네들이 시험을 치고 온 환경이 그렇게나 끔찍했다니!”
사장정은 과거 시험이 힘들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 길을 직접 가 본 적이 없었고 주변에 있는 지인이나 친지들도 역시 그런 부분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과거 시험이 그렇게 혹독한 환경에서 치러지는지 오늘에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어쩐지 너희들 문관들이 이렇게 다루기 힘들고, 심술궂다 했네. 특히 그 어사들 말일세, 걸핏하면 우리를 찾아와 칼을 들이대는 바람에 고생한 적이 있었지. 업적을 위해 어찌나 별짓을 다 하던지.”
사장정은 마치 깨달음을 얻은 모습이었다.
“과거 시험을 치르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는데, 그걸 우리에게 풀었던 것이로군.”
고청운은 그의 막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요즘 그의 친한 벗이 담자례에게 걸려 지금 그의 온 가족이 매우 골머리를 썩을 정도로 바쁘다고 하던데.’
“그런 말을 감히 입에 올린 것이 알려지면, 자넨?”
고청운이 그를 흘겨보았다.
사장정은 잠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문인의 필력이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그는 이미 겪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이런 나날이 계속되어 3년 후 봄까지 이어졌고, 또다시 향시 시험이 치러지는 해가 다가왔다. 3월 봄이 되어 따스해져 꽃이 필 무렵, 고영량은 경성을 떠나 귀향하여 시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일한 희소식은 이번 귀향길에 진교가 함께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고영량과 함께 일 년 남짓의 특별 훈련을 받아본 후, 학문적 소양이 크게 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약간 흔들려 결국 고영량과 이번 시험을 함께 하기로 결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과거를 보기로 하였다.
이에 고청운은 당연히 매우 반겼는데, 그가 고향으로 내려가는 여정의 일부만 함께 해 주어도 그만큼 아들을 돌봐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영량이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먼 곳으로 나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청운은 그간 다양한 기회가 올 때마다 그 상황에 맞게 아이들을 단련시키자고 주장해 왔으나, 이렇게 막상 먼 길을 가게 되니 정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고대의 교통과 통신 방식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 *
이날은 고청운의 휴무일이었다. 고청운은 집에서 오전 내내 간미를 향해 너스레를 덜었다.
“지금 어디쯤 갔을까 궁금하군. 밥은 잘 먹고 있으려나 모르겠소.”
그러고는 그녀에게 부처님께 향을 올리고 오자고 청했다.
그러나 간미는 고청운의 제안을 거절하고, 매우 답답해하며 말했다.
“외할머니 때문에 이번 달에 벌써 몇 번이나 다녀온 줄 아십니까? 저도 매번 따라가기 힘듭니다.”
고청운은 잠시 웃고 싶었으나, 그 자신도 근심이 있기는 하여 결국 고삼원을 데리고 예배당으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 * *
다시 한번 톰 신부에게 질문을 하고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한 뒤,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라틴어도 이제 공부한 지 몇 년이 되었는데, 지금의 제 라틴어 수준은 어떻습니까?”
“훌륭합니다.”
그의 칭찬을 들은 고청운은 또 물었다.
“그럼 제가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고청운은 매우 기뻤다. 전생에서 그는 미처 자신이 언어 공부에 대해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었는데, 고대에서 자신의 그런 능력을 발견할 줄은 몰랐다. 그는 언어를 배우면 배울수록 더 배우고 싶어졌다.
그리하여 결국 그는 <측량학> 번역 준비에 착수했고, 연재 중이던 화본은 곧 완결을 앞두고 있었다.
“물론 가능합니다. 미스터 고(顾), 당신의 끈기와 학습 능력은 정말 놀라워요. 나와 내 친구들도 모두 당신을 좋아합니다. 다만, 우리가 하 왕조에 와서 이렇게 오래 지냈는데 성당에 발전이 없으니……. 미스터 고, 우리에게 해 줄 만한 좋은 조언이 없습니까?”
톰 신부는 매우 기대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고청운은 일순 헉 했다.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를 본토에 선교하려 한다라, 그들의 교리만 가지고는 본토인의 사상과 맞지가 않았다.
‘이걸 그에게 뭐라고 설명해 주어야 좋을까?’
그는 이런 문제에 대해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치려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본토 사람들이 가장 믿는 것은 역시 자신의 조상신이었다. 신불(*神佛: 신령과 부처)은 숭배를 할 필요가 없는 대상이었고, 조상신에게는 제사를 반드시 올려야 하였다.
그는 실제적인 문제를 다 말해 준 후, 톰 신부의 낙담한 표정을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평행 시공 너머의 세상을 떠올렸다.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 때, 그 시공간의 외래 종교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이쪽보다는 상황이 더 나았다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에 떠올랐다.
사실 신부님들은 상류층을 통해 위쪽으로부터 자신들의 종교를 밀고 나가려고 하는 듯했지만, 그들의 산술, 천문, 수리 쪽 학문이 하 왕조보다 더 앞서 있지 않은 이상, 고청운은 하 왕조의 명사들 중에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고청운이 성당을 떠나고 나서, 한 무리의 기질이 뛰어나 보이는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그중 한 명이 고청운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신부님, 저분은 누구요? 자주 오는 사람이오?”
톰 신부는 이 청년이 매우 낯설어 자신도 모르게 어리둥절했지만, 곧 그들 무리 속에 자신이 잘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대답했다.
“그는 미스터 고이고, 우리의 친구라 항상 여기에 옵니다.”
이 사람들 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은 이제 막 약관(*20세)을 지난 청년으로, 피부가 희고 용모가 준수한 것은 아니지만 기백이 아주 빼어나게 느껴졌는데, 특히 여러 사람으로 빼곡히 둘러싸인 가운데서도 그의 기질이 탁월해 보였다. 이때 그는 표정이 일변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의 곁에 있던 수행원을 한 번 쳐다보았다.
“공자, 그는 고청운, 자(字)는 신지라 불리는 자입니다. 소인의 진사 동기로 해당 연도 진사 시험에서 제가 방안을 석권하고 그는 전려를 석권했지요. 지금 신지는 호부 운남사에서 원외랑직을 맡고 있습니다.”
수행원들이 서로를 쳐다보기만 하자, 잠시 후 한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서 입을 열었다. 말하는 사람은 훤칠한 키에 훤칠한 용모를 가지고 있었고, 성숙하고 차분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지만, 이제 갓 약관이 지난 청년의 앞에서는 오히려 그의 표정이 공손해 보였다.
이 사람은 바로 첨사부(*詹事府: 황자가 거주하는 동궁의 살림 및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의 정5품 대학사 초유였다. 만약 고청운도 자리에 있었다면 청년에게 똑같이 공경하는 모습을 보였을 테니, 이 약관의 청년의 신분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초유의 대답을 듣고, 태자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다가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어쩐지 혼자다 했다. 내가 좀 낯이 익은 것 같다 생각했는데, 전에 궁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그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로구나.”
고청운은 한림원에서 나온 후 궁중 출입이 뜸해져 자연히 태자와의 접촉 역시 뜸해졌다.
늘 태자의 곁을 따라다니던 초유는 자연히 이 사실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