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화. 휴일
다음 날부터 고청운은 고영량의 학습에 있어 취약한 점을 겨냥해 훈련을 시작했다. 산학, 잡문, 율법, 경의 등 방면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이런 것들은 아직 국자감에서 더 배울 수 있는 내용들도 많았다. 다만, 책론 문항을 더 잘 풀어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훈련과 더 넓은 지식을 갖추어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를 키워내는 방법이 필요했다.
고청운은 10일마다 한 번씩 휴일이 있었는데, 매번 휴일마다 책론 두 문제를 아이에게 냈다. 평소 생각을 해 두었다가 무작위로 문제를 출제했고, 제한된 시간 내에 답안을 제출하게 했으며, 아이와 함께 다시 채점하고 문제 답안을 고치는 과정을 거쳤다.
8월 20일, 이날도 역시 고청운의 휴일이었다. 고청운은 일찍 일어나 간미와 함께 방인소와 연 씨에게 문안을 드린 후 그 옆에 함께 앉아, 아이들이 와서 인사하는 것을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고경은 오늘도 이변 없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 지금 딸아이는 혼자 오른쪽 사랑방을 사용하고 있었고, 고영량 형제는 일찍부터 각자가 앞마당에 있는 별실에서 지내고 있었다.
“소아야, 아침 식사는 했느냐?”
고청운이 고경에게 물었다. 일반적으로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 일어났기에 아침식사를 더 이르게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어떤 날은 가족들이 각자 다 따로 아침 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방인소와 연 씨의 경우, 와서 같이 먹고 싶으면 미리 말을 전하고 건너왔는데, 그런 날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면 되었다.
고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색을 붉히고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먹고 왔어요. 좁쌀죽을 두 그릇이나 먹었어요.”
간미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경을 품에 안고 한참을 비벼댔다. 곧이어 두 사람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라버니들은?”
간미가 아이에게 물었다.
“큰오라버니는 아직도 자고 있고, 둘째 오라버니는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고 들었어요.”
고경은 풍성한 속눈썹을 한 번 깜빡였는데, 그녀의 눈에서는 교활함이 번득였다.
“내 진즉에 소석이에게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고 일렀거늘, 시간이 다 돼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니 어젯밤에 술을 마신 게로구나. 외할아버지께서 아시게 되면, 또 당신이 그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 해서 이렇게 됐다고 하실 겁니다.”
간미는 그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리고 화살을 고청운에게 겨누었다.
그녀는 줄곧 아들이 이렇게 어린 나이에 술을 마시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었다.
‘내가 아이를 총애하여 망치다니? 천지와 양심을 걸고 맹세하건데, 그간 나 말고 그 아이를 무분별하게 총애해 온 게 누구더라? 언제나 누명을 내 머리 위에 덮어씌우는데, 그냥 내가 참아야지. 스승님은 내 웃어른이시니 그가 말한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구나.’
고청운은 속으로 내뱉으면서도 손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번충이 새로 낸 서적을 넘기며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소석이는 10살짜리도 아니고 벌써 15살인데 옛 황립 서원 동기들과 나가 노는 것이 뭐가 그리 심각하다는 말이오? 막느니 흐르게 하는 것이 나은 법. 삼원이와 방행이 곁에서 따라다니는데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소? 더군다나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소. 이번은 이리 되었으니, 다음에 마시지 말라고 하면 그만이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주의를 해야지, 우리가 아이의 뒤를 평생 지켜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오.”
어제저녁, 고영량의 친한 친구가 고향으로 가는 송별회 자리를 가졌는데, 고청운은 이런 자리에서는 어른들의 구속이 없었을 테니 틀림없이 술을 마실 것이라 예견했음에도 아이의 외출에 동의해 준 것이었다.
사람이 풍류하지 않으면 소년에 그치는 것이고, 젊어서는 경망스러운 법이니, 술을 한 잔 몰래 마시는 것까지는 용서할 수 있었다. 단지 자주 마시지 않으면 되었다.
아이에게 사교장소도 못 나가게 하고, 술도 못 마시게 하면 나중에 아이가 벼슬자리에 올랐을 때, 어떻게 갑자기 경험도 없이 단번에 다른 동료와 상관이 될 사람들과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할 수 있고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평소에 단련하지 않고 어떻게 중요한 때에 마치 준비해 놓은 것처럼 갑자기 잘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됐습니다. 제가 어찌 부군을 당해낼 수 있겠어요.”
간미는 좀 곤혹스러웠다. 왜 부군이 요즘 들어 고영량에 대한 관리를 느슨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청운은 그런 간미의 당혹감을 아는 듯 눈짓을 하며 웃음을 띤 채 말을 이었다.
“저녁에 다시 자세한 얘기를 해주겠소.”
간미는 그의 동작을 보고, 무슨 까닭인지 갑자기 어젯밤의 일이 떠올라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녀는 노부부가 다 된 마당에 어째 이렇게 갓 성혼을 한 사람처럼 지내는지 자조했다. 이런 모습을 딸에게 보이는 건 좋지 않았다.
“자, 소아야, 아버지를 도와 먹을 갈아 주겠니? 아버지가 뭘 좀 쓰고 싶어 졌단다.”
고청운은 갑자기 든 생각이 있어서, 고경을 돌아보며 귀띔했다.
고경은 듣자마자 자못 흥분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고청운이 책 몇 장을 다 본 후,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고경은 이미 먹을 다 갈아 놓았다.
고청운은 붓을 들어 백지 위에 100자 가량의 책론 문제를 적고는 웃으며 말했다.
“네 큰오라버니한테 오늘 저녁 식사 전까지 답을 가져오라고 하렴.”
그는 지금 두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었는데, 고영량에게 냈던 문제를 매번 진교에게도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고는 고영량에게 진교의 답안까지 함께 가져오게 하여 채점해 주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진교가 그의 사촌 형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사촌 동생의 위치였다면, 고청운은 직접 앞으로 데리고 와서 문제에 대한 평가를 해 주거나 너무 답을 못한다고 직접적으로 혼을 내거나 벌을 줄 수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이 둘이 사촌 형제 관계인만큼 고청운은 이런 간접적인 형식을 취해 그를 지도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가끔 고청운은 자신이 장손이고 제일 높은 항렬의 사촌 형이었다면, 아니면 어릴 때부터 같이 자라 더 가깝고 익숙한 사이만 되었더라도, 진교가 그들 앞에서 더욱 자유롭게 지내며 지금처럼 행동에 구애받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알겠어요.”
고경은 정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좀 따지는 사람이 곁에 있었더라면, 8살짜리 고경을 15살짜리 오라버니와 이렇게 친밀하게 어울리지 못하게 했었을 텐지만, 그들 고씨 집안에서는 이런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집사는 매우 엄격했기 때문에, 전해서는 안 될 집안 소식이 밖으로까지 퍼져나가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민풍이 개방돼 친남매 사이를 예전처럼 엄격하게 보지 않았다. 좀 열려 있는 가장들은 모두 자신의 아이들이 더 친밀한 관계로 자라나길 바랐는데, 특히 집안의 딸과 아들 사이를 더 그렇게 보았다. 나중에 딸이 자라서 시집을 가게 되었을 때, 형제와의 관계가 돈독하다면 그녀들에게 더 큰 저력이 되어 줄 것이라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때, 고영진이 입구에서부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 아이는 귀밑머리가 아직 약간 젖어 있었고,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는 것이, 막 운동을 마치고 목욕을 하고 온 티가 났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아직 아침을 안 먹었는데, 찐 만두가 먹고 싶어요. 세 판 정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은 죽 먹기 싫어요.”
막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 아이는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린 후, 바로 요구사항을 말했는데, 목청이 크고 기력이 넘쳤다.
그 말을 들은 간미가 웃으며 말했다.
“안심하렴, 어미가 벌써 부엌에 준비시켜 두었다.”
이어서 그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의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해 다정하게 물었다. 간미는 늘 보던 고영량과 고경보다는, 지금 황립 서원에서 기숙하고 있는 고영진에게 분명 더 관심을 주고 싶었다.
‘세 판?’
옆에 있던 고청운이 까탈스럽게 아이의 몸매를 한 번 훑어보았다. 그는 고영진의 몸매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꼭 알맞아 보이는 것이 일반 사람들 정도의 수준으로는 돌아온 것 같기에 더 뭐라 말하지 않기로 하였다.
“이게 뭐지?”
고영진은 고경이 종이를 말리고 있던 것을 눈여겨보고 얼른 다가와 들여다보더니, 눈을 번쩍 빛내며 고청운에게 소리쳤다.
“아버지, 이건 책론 문제 아닌가요? 저도 풀고 싶어요!”
고청운은 고영진이 아직 이쪽 내용을 배우지 못해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고청운은 아이에게 한번 해 보라고 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소아야, 네가 아버지를 도와 네 둘째 오라버니에게도 같은 문제를 한 장 베껴 써 주겠느냐?”
고경은 고개를 끄덕이고 소매를 걷어 올리더니, 작은 붓을 꺼내 들고 문제를 베끼기 시작했다.
세 아이의 서예 및 글쓰기에 있어 고청운은 엄격하게 대하는 편이었다. 그는 아이들이 4살 때부터 붉은 글씨 위에 글을 따라 쓰는 연습을 시작하도록 하였다. 거기서 손뼈가 조금 더 크게 자랐을 때, 고청운은 본격적으로 아이들에게 글씨 쓰는 연습을 시켰다.
이젠 세 사람 중 가장 어린 고경조차도 글씨를 잘 쓰게 되었는데, 특히 그 아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습에 집중할 수 있었기에 웬만한 또래보다 실력이 훨씬 더 나았다. 고영진은 고경이 뒤쫓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털털한 성격이 드러난 그 실력 그대로 지내고 있었을 것이었다.
“네 형은 일어났더냐?”
고청운이 물었다.
고영진은 입에 있던 만두를 삼키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은 어제저녁에 너무 피곤해하더니 아침에 일어나질 못했어요. 아버지, 형이 어디 아픈 건 아니겠죠? 다음 달에 제 동기 생일잔치가 열리는데, 그날 저도 조금 늦게 들어와도 괜찮을까요?”
“너는 안 된다. 일찍 돌아오너라.”
고청운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허락하지 않았다.
고영진이 식사를 마치고 아침 일정이 일단락되자, 고청운과 간미는 각자 알아서 자기 일을 하러 갔다.
* * *
8월 25일은 고영진과 마찬가지로 고경도 황립 여자 서원에 시험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 간미와 방인소 부부는 일어났지만, 고경을 좀 더 자게 하기 위해서 아이를 깨우지 않고 굳이 안방에 앉아서 아이를 기다렸다.
고청운은 휴가를 신청하기가 어려워 여전히 평소대로 호부로 출근했다.
그날, 고청운은 새로 온 여 주사에게 보고에 쓰이는 장표(*帳票: 장부와 전표, 즉 사무용 서류) 같은 일은 어떻게 작성하고 처리하는지 등의 업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여 주사는 고청운의 행동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대인, 무슨 일 있으신지요? 일이 있으시면 가서 일을 보셔도 됩니다. 하관이 알아서 천천히 해 보겠습니다.”
고청운은 고개를 숙여 그를 보았고, 그가 자신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무슨 일 없네, 계속 알려 주도록 하지.”
고청운은 마음속 걱정을 얼른 추스른 뒤 고경의 시험 걱정은 더 하지 않기로 하고, 온 집중력을 다시 이쪽으로 돌렸다.
이후 운남사에서는 학 주사가 열심히 자신의 업무에 임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관가의 능구렁이 같은 존재로, 오직 연줄을 잡아 목표한 승진을 달성하는 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할 뿐, 자신의 본업은 대충했다.
다행히 그들에게로 여 주사가 새로 왔는데, 그는 처음 부임했을 때의 고청운과 마찬가지로 신입으로서 매우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고청운 역시 끈기 있게 그에게 일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결국 자신의 일이 더 쉬워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