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근황
고청운은 담자례가 도감원에 갔다는 소식에 밤에 잠들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보았는데, 자신의 수중의 자산을 한번 다시 점검해 보고, 혹여 하인들 중에서 누가 자신의 이름을 대고 밖에서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기로 하였다.
고청운은 담자례가 골칫거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지인들에게도 손을 쓸 수 있는 ‘강직함’이 있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요 몇 년 동안 담자례는 여러 일을 벌이고 다녔었다. 그는 경화소보에서 자주 보이는 그의 또 다른 필명 뒤에 숨어 사회의 불공평함과 어둠을 고발하기도 하며, 누군가는 일을 잘못한다고 비꼬고, 가정이 문란하다고 풍자도 했던 것이었다. 그가 한 것이 틀린 행동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는 그의 숨겨진 신분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었다.
소주의 담씨 가문과 후부의 비호가 아니었더라면, 담자례는 벌써 마대자루에 몇 번은 실려 흠씬 두들겨 맞았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하겸죽은 여전히 대리사에 둥지를 틀고 이동하지 않았는데, 매일같이 일이 바빠서 만나기만 하면 고청운에게 괴로움을 토로해댈 정도였다. 그는 체중이 다 빠져 젊었을 때의 몸매를 회복했는데, 이는 화를 복으로 받은 셈일지도 몰랐다.
고청운은 그런 상황을 보고 자신이 아는 모든 언어를 동원하여 그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대리사의 사건은 매우 많았고 그중에는 복잡한 사건들도 있었는데, 주로 경성의 권력자와 관원과 관련된 사건이 너무나 많았다. 머리털 한 오라기를 당기면 온몸이 움직이는 법. 사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에 영향을 끼칠만한 사건들이 많아 자신도 모르게 뒤에 붙은 많은 사람들이 연루될 수가 있었기에,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매우 약삭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하였다.
하겸죽이 지금 그 안에서 자리를 잡은 것에 대해 고청운은 그가 이미 매우 대단하다고 느꼈다.
장수원과 왕 주사는 이번에 드디어 소원을 이루어 지방에 가서 학정을 하게 되었는데, 북쪽과 남쪽으로 한 명씩 배치되었다.
그런데 장수원이 발령을 나가면서 첩만 데리고 나가고, 본처와 아이들을 모두 경성에 남겨둔 것이 아닌가. 그는 그의 집안을 위해, 또 큰아들 장해연을 황립 서원에 남겨 공부를 시키기 위함이라며 고청운의 집으로 찾아와 그들을 좀 잘 돌봐달라고 부탁하고 떠났다.
고청운은 승진한 후, 업무 외에 계속해서 외국어와 화본을 집필하는 것 외에도 자신의 산술적 경지와 기하학 수준에 어느 정도 발전이 있었음을 자각하고, <기하상해(几何详解)>를 쓰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톰 신부와 함께 번역한 <기하학>이란 저서가 이미 있었지만, 그 책의 완성본을 보고 나서 기존 책에도 덧붙일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생각이나 해법을 엮어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해에 따라 한 권의 후속작을 더 써볼 생각이었다.
고청운은 이 책을 다 쓰고 나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느꼈다. 예를 들면 서양의 측량학, 경제학, 수리, 천문 번역 등의 내용도 더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것들은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들이라 당분간은 시작하기 힘들지도 몰랐다.
한편, 그가 조정의 대대적인 보급 없이 단독으로 보급을 제창한 아라비아 숫자는 사용자가 많지 않아 푸대접을 받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상인들은 아주 빈번하게 사용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었고, 호부 내에서 혹은 사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사람도 있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고청운은 마음을 다잡고 조급해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는 이미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했으니, 일의 발전은 상황의 변화에 달려 있는 것이지, 자신이 다급해져서는 아니 될 것이었다.
* * *
이날 오후, 퇴근을 한 고청운이 호부를 빠져나오자, 고영량과 고삼원이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얘야, 웬일이냐?”
고청운은 키가 커져 마치 푸른 소나무 같은 큰아들의 준수한 얼굴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니, 자부심이 솟구쳤고 얼굴에 웃음이 절로 번졌다.
고청운은 문득 서원 하교 시간에 맞추어 그를 마중 나가던 기억이 묘하게 떠올랐다.
“오늘 국자감 선생님께서 일이 있어서 조금 일찍 마쳤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버지를 마중 나가 집에 함께 돌아가려고 들렀어요.”
고영량은 빙긋 웃으며 고삼원에 고삐를 넘기고, 고청운과 함께 걸었다.
“그럼 네 진외당숙은?”
“진외당숙님은 아직 국자감에 계신데, 이번에는 집에 안 들리신대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계세요.”
고영량의 얼굴에 탄복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진외당숙인 진교가 이렇게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그는 비로소 약간의 감동을 받아 막 수재에 합격했을 때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들떠 있던 마음과 교만도 가라앉았다.
“갑자기 아버지에게 잘해주는 것을 보니, 어디 돈 쓸 곳이라도 생긴 게야? 아니면 어느 집 처녀가 갑자기 마음에 들었느냐?”
이 말을 다시 생각하니 어처구니없었는데, 아이의 일정은 고청운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심지어 서동인 방행과 늘 동행하고 있지 않은가. 분명 시간이 없으니 다른 집 여식과 교제를 할 시간 따위는 없을 터였다. 만약 정말 마음에 드는 여식이 나타났다고 하면 자신이 한 대 때려줘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렇게 남의 집 여식과 사적으로 만남을 통하는 일은 정말 격려해 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도 그렇게만 상상만 했을 뿐, 자신이 가르쳐 온 아이이기에 믿고 있었다.
“아버지!”
고영량은 언짢은 듯이 입을 오므리고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런 일 없습니다! 저를 너무 과소평가 하시는 것 아닙니까? 돈이 부족하면 저는 책을 베껴 팔아서라도 몇백 문씩 받을 수 있다고요. 제 서예 실력은 지금 꽤 수준이 괜찮거든요.”
고청운은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 말하려다가 다른 동료가 나오는 것을 보고, 그들과 연신 인사를 나누었다.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고영량을 쳐다보며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에게 칭찬일색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영 낭중이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고청운은 상황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하려던 말을 잠시 누그러뜨리고 대화를 일단락한 후, 고영량과 각자 뒤로 물러나 큰길로 나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하였다.
* * *
더 큰길에 이르러 인파가 몰리자, 그들은 말에서 내려 고삐를 끌고 걸어갔다.
거리 양쪽에 가득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을 보던 고영량이 곡예 공연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아버지, 황량일몽의 책이 사람들에게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나서는, 큰길에서 사람들이 무슨 불이나 기름 솥에 손을 넣어 엽전을 찾는 수작으로 묘기를 부리던 일이 지금은 오히려 허튼 수작이 되어 버렸어요. 우리 국자감에서도 실험한 적이 있지만, 아직 그 원리는 알아내지 못했어요.”
그는 황량일몽의 정체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단지 지금은 아버지가 원치 않으니 공개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여러 소보들이 또다시 황량일몽이 누구인지 추측을 해대고 있었는데, 매우 무료한 내용들로, 매일 같이 근거 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한가득이었다.
고청운은 묵묵히 말이 없었다.
‘기름과 식초의 끓는점이 달라서였나? 아니면 다른 연유였던가?’
그도 이제는 대략적인 것만 기억날 뿐이었다.
“그럼 이제 말해 보거라, 도대체 무슨 일로 이 아비를 찾아왔지?”
고청운은 고영량이 이러쿵저러쿵 잡담이나 하면서 본론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버지, 사실대로 말씀드릴게요.”
고영량은 고청운보다 머리 반만큼이 작아 머리를 들어 그를 우러러보고는 말했다.
“아버지, 2년 후 향시에 참가하고 싶은데, 동의해 주시겠어요?”
고청운은 듣자마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얘야, 이렇게 오랫동안 밑밥만 깔았던 것이 고작 이런 문제를 묻기 위해서였느냐. 앞으로는 소통하는 법을 더 잘 가르쳐 소통 능력을 강화시켜줘야겠구나.’
고청운은 고영량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웃으며 물었다.
“시험을 치르고 싶으냐?”
“네, 결과가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시도라도 해보고 싶어요.”
고영량의 대답엔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 아이는 몸을 돌려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주고 계속해서 말했다.
“아버지, 저는 2년 후면 17살이니, 혼자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고청운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도 고영량을 혼자 고향으로 보내 향시에 응시하는 것을 고려해 본 적이 있었다. 17살이면 확실히 이미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라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성혼을 좀 일찍 했더라면 지금은 이미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있을 수 있는 나이였다.
다만 내년에 큰아들이 귀향할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고청운은 방인소와 연 씨가 따라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들은 이미 60살이 넘은 노인의 몸이었기에 아이들 문제로 다시 이리저리 긴 여정길을 동행하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고영량은 지금까지 혼자서 이렇게 먼 길을 떠나 본 적이 없었기에, 비록 하인이 함께 있다고 해도 고청운은 여전히 마음이 좀 놓이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제일 좋은 방안은 고향 사람을 찾아 함께 다녀오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겸죽 집안의 하허연(*何虚年: 하겸죽의 아들)이 내년에 과거 시험을 보러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었던가?’
고청운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지만, 아들에게 아직 말을 건네지 못했을 뿐이었다.
“진외당숙께 여쭤보셨어요? 2년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시험 보신다고 하시던가요?”
고청운은 고개를 약간 숙여 아이를 보고 있다 말고, 갑자기 코끝이 오싹해지는 매혹적인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자주 사 먹던 구운 닭의 냄새였다.
“말을 해 보기는 했으나 아직 여전히 망설이고 있으신 것 같더구나. 공부할 수 있는 기회 역시 자주 오는 것이 아니니, 여기서 몇 년 더 공부를 하고 싶을 수도 있고 또 고향에 돌아가 보고 싶을 수도 있지.”
“아버지, 제가 보기에 진외당숙께서는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서 고향집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고영량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방행을 시켜 구운 닭을 사오게 하고 나서야 아들에게 대답해 주었다.
“네 진외당숙은 자존심이 세서 우리 집에서 너무 많은 도움을 주면 받아들이기 싫어한단다. 그냥 네가 평소에 많이 도와주렴. 그렇게 잘 지내면 돼.”
그나저나 진교는 상경한 후 먼저 사전에 말을 맞추어 그들 집을 방문하여 머문 것 말고, 절대적으로 국자감에만 머물렀다. 그는 명절 때만 고택을 찾아왔는데, 그나마도 올 때마다 작은 선물을 사서 고영진이나 고경에게 주었었다. 고청운이 몇 번이나 말리고 나서야 더 이상 선물을 사 오지 않았지만, 다소 어색한 태도를 보였었다.
사실 고청운은 진교가 무슨 생각에 그리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지난번에 진씨 집안을 방문했을 때, 외숙부 댁이 그리 부유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린 고청운은 진교가 상성(湘省)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도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이고, 자신이 생활비를 많이 쓰는 것에 대해 집에 미안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청운이 도와주려도 해도 그는 한사코 도움을 거절했다.
결국 할 수 없이 고청운은 국자감에서 수업 외 여가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는 것에 착안하여 진교에게 돈을 좀 많이 주겠다는 개인 교사 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이 일은 결국 그의 자활(*自活: 자기 힘으로 살아감)을 돕는 셈이었다.
“아버지, 제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고영량이 눈을 찡긋하며 애교 섞인 말투로 물었다.
“아버지, 동의하시는지 아닌지 아직 대답 안 해주셨는데요? 저 귀향해도 되나요?”
“상황을 좀 보자꾸나. 네가 1년 안에 내가 내는 시험을 통과한다면 외증조할아버지를 설득해서 너를 고향에 보내 주마.”
고청운은 애교에 꿈쩍도 하지 않고 한 가지 요구를 하였다.
“좋아요, 저는 분명히 시험에 통과할 수 있을 거예요.”
아이는 허리를 더 꼿꼿하게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고청운은 그 모습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빙긋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