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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347)화 (347/504)

347화. 행복 (1)

아이들의 장난을 지켜보던 고청운은 간미와 눈을 마주치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쪽으로 가다 보니 마침 석류꽃이 피어 있던데, 내가 꽃을 꽂아 주겠소.”

고청운은 간미의 손을 잡고 복도에서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가 한창 피어나는 석류나무를 찾아 가장 아리땁게 피어나는 꽃을 찾기 시작했다.

흥미가 생겨 다가온 간미가 웃으며 말했다.

“매번 전시가 끝나도 신진 진사들의 거리 유세를 할 때마다 온 경성에 머리에 꽃을 꽂는 유행이 부네요. 저희도 함께 이 떠들썩함을 즐겨볼까요?”

“맞소. 내가 보기엔 꽃을 꽂아서 제일 보기 좋았던 사람은 사장정이었지요. 그는 젊었을 때는 정말이지 여인인지 사내인지 도통 구분이 가지 않았소. 윤곽이 부드러운 것이 꼭 여인처럼 생겼었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면서 얼굴선이 굵어졌더군요. 며칠 전에 그와 송죽서재에서 만났을 때 살펴보니 그렇더군. 지금은 이젠 잘생긴 미남이 된 셈이지요.”

고청운은 말을 하다 보니 말투에 좀 실망스러움이 묻어났다. 

말이 나온 김에, 그는 예전에 사장정과 거리를 돌아다니면 지나가던 사내들이 사장정을 보았을 때 보이던 그 경악한 표정들이 떠올랐다. 남들이 사장정이 사내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실망한 눈빛들이 어찌나 억울해 보이던지. 

고청운은 오늘날의 외모를 갖춘 사장정이 거리를 걸어 다니면 이제는 남들이 그를 여자로 오인하지 않고, 오히려 사내들이 그를 향해 부러움과 질투의 눈빛을 던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은 35살, 사장정은 33살이 되었는데, 그들은 이미 각자 몇 명의 아이까지 보고 있었다. 

고청운은 한 번 꾸미고 그래, 오늘 구경을 나가보자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거리에 나간 고청운은 징과 북소리는 하늘을 울리고, 평소와는 완연히 다른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새로 부임한 진사들의 의기양양한 모습들을 보자, 그가 12년 전 자신이 진사에 합격했던 심정을 절로 떠올리게 만들었다.

“부군도 잘 어울리세요.”

간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의 생각을 붙잡았다. 그녀도 옛날이 생각나는 듯 그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시 부군께서 무척 기뻐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참 침착하게 유지하고 계셨었지요. 하지만 영광스러운 폐하의 은총을 받고 긴장해 있던 것을 저와 외할머니는 다 알아차리고 있었어요.”

고청운은 하하 웃으며 춘분이 쟁반에 들고 온 가위를 받아들고는 자신이 보고 있던 석류화 두 개를 잘라낸 후, 간미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예전만큼이나 곱고 아리땁구려.” 

고청운이 나직이 말했다. 

간미는 머리를 약간 기울여 꽃을 어루만지며 달콤하게 웃었다. 오늘은 해가 강렬했는데, 간미의 화장이 짙지 않아 그녀가 웃으면 눈가의 옅은 잔주름이 드러났다. 그녀는 뾰로통하게 말했다.

“부군의 사탕발림은 여전하십니다. 항상 아첨을 하시지요. 예전이랑 달라지지 않으셨어요. 방금 그 말을 들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저더러 늙은 요괴라고 했을 겁니다. 저흰 벌써 며느리를 봐야할 나이가 되었는데, 정말.”

그러자 고청운이 진지하게 말했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간에 내 마음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요.”

간미는 다시 웃으며 또 다른 석류화 한 송이를 들고 고청운의 머리에 꽂아주고는 한 번 훑어보고 말했다.

“부군이야말로 이전과 변함없이 젊어 보이세요. 정말 큰 변화가 없어요.”

고청운은 그녀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이 다 나 때문에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고생해서 그렇소. 미아, 아이들도 다 컸겠다, 올해 8월이면 우리 소아도 황립 여자 서원에 입학하지 않소. 내 생각으로는 딸아이의 입학시험은 문제가 없을 것 같고, 그렇게만 된다면 낮 시간에 아이들은 다 밖으로 나가고 집에는 우리 둘 밖에 없을 것이오. 우리한테 시간이 많이 생길 것인데, 우리 이렇게 합시다. 매일 아침, 저녁 나와 함께 몸을 단련하여, 건강을 지켜서 우리 함께 오래오래 살아요. 백년해로 합시다.”

그의 말은 틀린 곳이 없었다. 고영진의 기숙은 기정사실이었고, 고영량은 국자감에 거처가 있을 것이지만 자신과 방인소에게 가르침을 청해야 해서 자주 돌아올 예정이기에, 점심때까지만 국자감에서 머물 것이었다. 

고경은 입학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여자 서원에서 기숙은 하지 않고 집에서 통학을 할 터였다. 여자아이들이니 많은 학부모들은 불상사를 우려하여 외박을 선호하지 않았다.

운동에 관해서라면, 고청운은 늘 간미가 운동을 하기를 희망해 왔었다. 어찌된 일인지 간미는 운동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나면 정자에 향을 피워 놓고 칠현금을 연주하거나 혹은 긴 의자에 반쯤 누워서 책을 들고 천천히 훑어보는 것을 좋아할 뿐, 고청운이 재촉하지 않으면 당최 몸을 잘 움직이지 않았다.

고청운은 자신의 나이를 고대의 기준으로 평가해 보았을 때, 이미 중년에 접어든 셈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여전히 정력이 왕성한 것이 줄곧 몸 관리를 잘해 온 덕이지, 타고난 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줄곧 운동을 계속 해 왔고, 밤에는 거의 밤을 새는 일이 없었다. 또한, 식사 법칙, 생활 휴식 등을 모두 정해진 규율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큰 이변이 없는 한, 자기 관리에 소홀한 다른 사람들보다는 틀림없이 젊은 상태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오래도록 무병장수를 기원한 그가 각별히 신경을 써온 장기간의 결과물이 벌써 그 징조를 나타나고 있으니, 운동에 대한 고청운의 신념을 말리기는 어려웠다. 

“내가 말하는 것은 진심이오. 우리가 운동을 많이 할수록 젊음을 유지하기가 더 쉬워진다는 말이오.”

고청운이 재차 권했다.

“좋아요.” 

간미는 부군에게 어울리지 못할까 봐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은 작심삼일의 마음으로 운동을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럼 약조한 것이오.”

고청운이 그녀의 손가락을 꼬았고, 두 사람은 함께 웃었다.

이들의 머릿속에서 잠시 잊힌 고영량 세 남매가 슬그머니 침범하여 기둥 뒤에 숨어 있었는데, 세 개의 머리가 키 순서대로 나란히 서서 고청운과 간미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입만 벌릴 뿐 소리까지 내서 웃지는 못했다.

“나도 꽃을 꽂고 싶어. 우리 외증조할아버지한테 가는 거 어때? 그쪽에 꽃이 더 잘 폈을 테니, 어서 가자.”

고영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영량과 고경은 궁리 끝에 동의했다.

세 사람은 손을 잡고 고양이 걸음으로 도둑질하듯 고청운과 간미를 넘어 작은 문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은 작은 문을 지나갈 때 부모님을 돌아보았지만, 부모님이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몰래 웃었다.

저녁 식사를 할 때가 되어 고청운은 꽃 비녀를 싫어하던 아이들이 머리에 꽃을 한 송이씩 꽂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고영진은 두 송이씩이나 달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어린애들이란, 나날이 생각이 바뀌는 법이지.’

그는 그저 아이들이 마음을 바꾼 줄만 알았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 * *

이 일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청운에게 부임 임명장이 내려왔다. 그는 직급이 종5품 호부 원외랑으로 승진되었는데, 소속사는 여전히 운남사였다. 원래 있던 첨 대인 역시 순조롭게 정5품 호부낭중(户部郎中)으로 승진했기 때문에, 고청운은 여전히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번 변화는 필경 운남사의 일이 손에 익었던 그로서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부처에서 익숙한 상관을 모시고 업무를 처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원래의 호부낭중 완 대인은 품계가 2직급이나 상승했는데, 경성을 나서서 다른 지방의 정4품 지주로 발령을 가게 되어 떠나기 전 매우 기뻐했다. 그는 본디 승진 쪽으로 큰 뜻을 품고 있지 않았었는데, 그렇지 않으면 매년 꼴찌를 담당하는 운남사의 호부랑중으로 9년 동안이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번에 그는 공을 세운 김에 더 위로 타점을 쌓기 위해 지방관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젊었을 때의 완 대인은 경성에 남아 생활을 영위하고 싶어 했고, 막 정5품 낭중이 되었을 때만 해도 투지가 충만했었다. 그때의 그는 이미 쉰의 나이에 가까웠는데, 자신이 한창 장년이라 더 오를 수 있는 벼슬길이 있다고 여겼으나 어느덧 몇 년이 지나 60세가 될 때까지 같은 자리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다고 퇴직까지는 아직 예닐곱 해가 남아 있었기에 이제 남의 도움을 얻어 더 위로 오를 수는 없었고, 지방관으로라도 가서 품계를 올리는 게 나았다. 한 지방의 제후가 되면 그의 머리 위에는 더 이상의 상관이 없으니 지금보다 관직 생활에 있어서도 더 자유로울 것이었다.

고청운은 송별회 때 완 대인에게 술을 권하다가 잡혀서 그와 미주알고주알 수다를 떨게 되었다.

완 대인은 집안에 기름진 논밭을 무려 1,000묘나 보유하고 있는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자신과 같은 한미한 집안의 출신이었다. 이런 사람은 퇴직이 가까워지기 전에 보통은 그냥 그렇게 벼슬 생활을 마감하던지 아니면 어떻게든 지방에 부임하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지부(知府)라는 지방직은 해당 부의 제일 큰 수장이 되는 것으로 권세가 아주 막강했다. 

이것은 고청운이 그의 말을 듣고 유추해낸 것으로, 지금 그는 완 대인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그의 결정이 퇴직 이후의 삶을 고려한 처사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아들에 손주들까지 문중의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 있을 테니, 그들의 미래까지 생각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 지부라는 직책에서는 경성에서의 봉급은 감히 비교가 안 될 만큼의 훨씬 많은 부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아무래도 경성에는 관원이 많고, 또 황제와 감사원, 통정사까지 하루 종일 관료들의 동정을 주시하고 있어 함부로 어디에 손을 내밀지도 못하는데,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면 그곳이 어디든 더 편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너무 심하게 받지 않는 한, 조정에서도 별다른 조사를 진행하지 않을 것이었다. 지금은 하 왕조의 상업이 번성해 있었고 대외무역도 크게 발달해 있었다. 고청운이 방자명의 말을 들어보니, 지방관들의 착취 대상이 농가에서 상가로 바뀐 지 오래인 모양이었다. 

모 관원의 은밀한 말에 의하면, 촌사람들을 긁어 봤자 큰 부를 축적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위험은 커서 걸핏하면 민심을 들끓게 만들어 조정에서 주목하게 만들어 쇠고랑을 찰 위험이 있었는데, 하긴 그들이 어찌 기름진 장사꾼들처럼 긁는다고 그리 쉽게 재물이 긁히겠는가 말이다. 

이런 말을 듣고 고청운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 말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것이 방자명을 보면 알겠지만, 최근 2년 동안 보내온 명절 선물이 지방 특산품이라고는 해도 그 가치가 매우 높았던 것이었다.

어쨌든 고청운은 완 대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이런 자리로 승진할 수 있었던 것도 완 대인이 자신이 구축한 인맥에만 화답하지 않고 자신을 밀어줘서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윗사람과의 인맥도 만들어 두지 못했고,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물론 자신이 승진을 하게 된 데에는 또 다른 이유들도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측은 되지만, 어쨌든 고청운은 이 자리를 얻게 돼 무척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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