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추측 (2)
집에 돌아온 후, 고삼원은 흥분한 표정으로 은표를 꺼내들었는데, 만면에 희색을 띠고 있었다.
“숙부, 이번 화본으로만 얻어진 돈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신간을 발표하시고 나서 드디어 사례를 받으셨는데, 모두 은자 550냥에 달합니다.”
오늘 고청운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는 사 사장과 장부를 맞추러 다녀왔었다.
이번 <해외건성기>의 초기 반응은 일반적이었으나, 발표되는 원고량이 늘어갈수록 천천히 반응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해외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형국과 맞물려 지금은 이 화본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그동안 고청운은 급하게 돈 쓸 일이 없었고, 또 초반에는 수익이 얼마 나지 않았기에 결산을 하러 가지 않았던 터라 이 화본의 수익금과 관련하여 오늘이 첫 결산일이었다. 고청운은 쌓여 있던 은자가 많자 아주 기뻤다.
하지만 인기 서적에는 불법 해적판 문제가 여전히 있었다. 사장정은 돈을 써서 사람을 청해 이런 일을 방지해야 했는데, 이런 일에 돈을 들여도 약간의 효과밖에 보지 못하고, 또 돈을 너무 많이 들이면 수지가 맞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사장정이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어 불법 복제의 현상이 끊이지 않아 그들의 수익에 영향을 끼치고는 있었으나, 다행히 고청운은 지금 가세가 어렵지 않았고 돈 쓰는 데에 곤궁함이 없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을 쓰지 않는 주원인은 바로 환경 탓이 컸다. 그는 이러한 환경들 때문에 손을 쓸 방도가 없었던 것인데, 예를 들면, 경성에 많은 소보들만 봐도, 기사 한 편이 인기를 얻게 되면 다른 소보들 역시 바로 뒤따라 그 문장을 싣는데, 토시 하나 고치지 않고 감히 그 기사를 가져다 인쇄를 맡겼을 정도였다.
“숙모님께 갖다 드리거라.”
고청운은 한마디 분부를 마치고는 고삼원의 아들 고전양(顾传阳)의 공부 현황에 대해 물었다. 그의 큰아들은 고영진보다 나이가 3살 남짓 어린 나이로, 옛날에는 고영진의 서동으로 함께 공부를 하러 다녔는데, 이후 고영진이 황립 서원에 가게 되어 같이 공부하지 못했었다. 고청운은 보기에 고전양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공부에 임하고 있었기에, 그 아이를 고영진이 예전에 다니던 서당으로 보내어 계속해서 공부를 하게 하였다.
고영량의 서동은 혜향(慧香)과 방충(方忠)의 큰아들 방행(方行)으로 두 아이는 나이가 비슷해 함께 자랐다. 예전에는 고영량이 황립 서원에서 공부할 때는 서동을 데리고 다닐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으나, 지금의 국자감에서는 그런 규정이 없어 고영량의 서동으로 함께 국자감에 보내 따라다니며 돌봐 줄 수 있게 되어서 가족들은 안심할 수 있었다.
자질구레한 일들 몇 개를 처리하고 난 뒤, 고청운은 후원으로 발걸음을 해 간미와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장정이가 자꾸 우리 식구들과의 성혼에 대한 의향을 내비치고 있다는 생각이 드오.”
고청운은 턱을 매만지며 읊조렸다.
“내 착각일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장정이가 작위는 없다고 하나, 우리 집안과는 신분 차이가 커서 난감하군.”
오늘 사장정이 화제를 아이들 이야기로 돌리지만 않았어도, 고청운은 이쪽으로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간미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흥미가 동해 물었다.
“군주 두 분을 다 만나 봤는데 안 좋은 점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다만…….”
두 집안의 격차를 생각한 그녀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석이는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급할 것 없지요. 소석이가 거인으로 과거에 급제하면 그때 다시 말씀하시지요. 부군께서 잘못 보신 걸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실 그녀가 더욱 바라는 성혼 상대는 문인 가문의 집안 여식이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이 어처구니없는 일이기는 하여, 그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 * *
이번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고청운은 집안 어르신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곧장 서신을 보냈는데, 곧 춘절이기도 하여 부피가 그리 크지 않은 명절 선물을 함께 동봉했다.
그간 해운 방면에서 전면적인 변화가 시작되어 항선의 운항 속도가 크게 개선되었기에, 고청운은 이제 경성에서 월성까지 겨우 25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전보다 무려 8일이나 단축된 것이었다.
게다가 해운과 수운 계통의 전반적인 발달로 월성에서부터 경성으로 넘어와 장사를 하는 상인들도 많이 늘어났는데, 이들은 경성과 월성을 이어 물건을 전해 주는 등의 사업을 차리기도 하였다.
그들의 하물전달 공정은 조정의 역참 구조보다 속도가 빨랐다.
역참은 서신 밖에는 받아 주지 않았기에, 고청운은 고향 친구들에게 선물을 보내기 위해서 이번에는 역참이 아닌 외부의 업체를 이용해야 하였다.
서신을 부친 후, 춘절이 되어서야 회신을 받을 수 있었다.
고청운이 잽싸게 서신을 살펴보니, 고청운의 사촌 형 고청명이 1년이라는 기간을 채워 복상을 치르기 위해 올해 향시 시험을 치르러 가지 않았다고 하였다. 반면, 그의 둘째 사촌 동생은 여전히 낙방 소식을 전해 다들 아쉬워했다.
시험에 대한 좋은 소식은 오히려 외사촌 형 진교의 서신으로, 이미 10월 중순쯤 향시의 보결 합격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는데, 그 자격 덕분에 경성의 국자감에 가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며 서신으로 자신의 의견을 물어왔다.
그는 아직 망설이고 있는 듯 보였다.
‘기왕 기회가 찾아왔으니 당연히 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영량도 아직 국자감에 있으니 서로가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고, 무엇보다 국자감의 교수진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니, 이런 것이야말로 정말로 얻기 힘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 고청운의 의견이었다.
고청운은 진교 본인도 같은 의견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진즉에 입학 자격을 팔아 버리고 끝냈지, 이렇게 서신까지 써서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춘절이 지나 봄이 되면 아마 경성에 도착할 것 같으니, 집에서 맞이할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았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회시 시험이 시작하기 전에 진교는 시험을 보러 온 다른 거인들을 대동하고 경성에 함께 도착했는데, 그렇게 고생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진교를 잘 맞이한 후, 고청운은 계속해서 모든 정신을 자신의 업무에 쏟아 부었다. 그는 이번에는 왠지 회시가 끝나면 자신의 품계가 하나 더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 * *
4월 중순, 신진 진사들의 가두 행진을 구경하고 온 고씨 삼남매는 집에 돌아와 여전히 흥겹게 토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번 진사 합격자들 중에서 탐화가 참 젊더라.”
고영량이 주먹을 쥐고 말했다.
“경화소보에 의하면 올해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로 합격했다던데?”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진사에 합격했을 때는 과연 몇 살일지, 단지 그 시기가 좀 빨랐으면 하고 바랐다.
‘난 벌써 15살이야. 내후년에 향시가 예정되어 있으나, 아버지께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시험을 보라고 허락을 하실 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
그는 이미 좀 지체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서 합격을 하든, 낙방을 하든 상관없으니 우선 참가해서 현재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라도 알아보고 싶었다.
“생긴 건 아버지만큼 잘생기지 않았어.”
고경의 작은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미 8살이 된 그녀는 분홍색 옷을 입고 있어 보기에는 매우 귀여워 보였으나, 그녀의 표정과 자태는 유달리 매우 차분한 편이었다. 보통의 어린 여자아이들이 대개 활발함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고경은 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먹어갈수록 더욱 차분한 분위기를 발했다.
“하하, 당연히 아버지만큼 잘생겼을 리 없지. 그리고 난 그런 아버지와 닮으니, 나중에 내가 진사에 합격해서 말을 타고 거리 유세를 하게 될 차례가 오면, 우리 여동생이 반드시 옆에서 나를 봐 줘야 해.”
고영진은 매우 기뻐하며 웃다 말고, 탄식을 내뱉으며 한마디 더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내가 몇 년 늦게 태어나는 바람에 우리 아버지의 거리 유세를 구경하지 못했네. 그 자태를 보지 못해서 정말 아쉬워! 형, 아버지께서 말을 타고 경성 거리를 유세하실 때 모습,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고영량이 그들 중간에 서자, 옆에 있던 고경도 기대하듯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기억 안 나는데.”
고영량은 고뇌하는 모습으로 턱을 괴고 말했다.
“그때 나는 겨우 3살이었는걸, 뭔가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그래서 그때 기억은 별로 없어. 나는 4살 정도 때의 기억도 겨우 하는 걸. 아버지께서 유세를 하시던 날 귀밑머리에 꽂은 꽃이 내가 선물한 것이라고 어머니께서 말씀해 주신 건 기억나.”
그는 자신이 집에 와서 펑펑 울었던 일들을 동생들에게까지 들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고영량은 여기까지밖에 생각이 안 나는 게 매우 아쉬웠다.
‘아버지께서 말을 타고 거리를 활보하실 때, 내가 ‘20년 뒤 저도 여기서 똑같이 유세를 할 거예요.’, 혹은 ‘지금은 다들 아빠 보고 있지만, 나중에는 저를 보고 있겠죠.’ 같은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정말로 조금이라도 더 일찍 내가 진사에 합격할 수 있다면, 부자가 모두 진사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거야.’
이러한 일은 그에게 용기를 북돋우는 염원이 실린 상상이었다. 애석하게도 그는 유세 말미에 다다라 울부짖으며 집으로 가버렸으니,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어, 어떻게 내가 갑자기 이 장면을 기억해 낼 수 있었을까?’
고영량은 아버지가 쓴 화본을 몰래 다 보고 난 이후부터, 머릿속의 생각들이 유달리 잘 자리를 잡고 예전보다 더 쉽게 생각이 정리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흠…….”
고영진은 아쉬운 듯 긴 한숨을 내쉬며 턱을 긁적였다.
고경도 더 이상 그녀의 큰오라버니를 보고 있지 않고,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고 있었다.
“이야, 소아야, 나는 그 손수건이 맘에 드는데, 네가 그런 손수건 한 장 수놓아 주지 않을래?”
눈치가 빠른 고영진이 고영량의 오른쪽에 있다가 말고 고경이 있는 곳으로 뛰어와 고경에게 애원했다.
“안 돼. 사내아이는 분홍색 손수건을 쓰면 안 돼.”
고경이 정색했다.
“손수건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그녀가 자수를 배운 후 그녀가 직접 수를 놓은 완성품이었다. 이 손수건은 그녀가 수놓은 두 번째 작품이었고, 한 그루의 난화를 수놓은 도안이었다. 첫 작품은 일찌감치 아버지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 색상을 달라고 한 건 아니고, 그냥 이 손수건에 수놓인 도안이 갖고 싶은걸.”
고영진이 허리를 굽혀서 고경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흔들었다.
“소아야, 동생아, 제발 이 오라버니 한 번 불쌍히 여겨주련. 내가 너를 제일 좋아하는 거 알지?”
“알았어.”
고경은 생글생글 웃었다.
“둘째 오라버니는 매번 그러지.”
그들 앞에 있던 고영량은 그 모습을 차마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소어는 왜 늘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을까? 쟤는 벌써 11살씩이나 되었는데도 여동생에게 애교만 부리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