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45)화 (345/504)

345화. 추측 (1)

고청운은 온 정신을 집중해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대단히 노력하려 애썼는데도 불구하고 안절부절못했고, 또 황제가 무슨 내용을 하문하는 것인지 잘 이해도 가지 않았다. 

이때가 마치 시험을 보던 그때와 같았던 것이, 자신의 답안지가 완벽하느냐 아니냐에 대한 문제처럼 상주서 또한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그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황제가 자신이 올린 상주서를 그저 대충 뒤적거리기만 했던 것이었다. 황제는 향시의 부시험관으로 다녀온 그에게 향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도 묻지 않고, 오히려 부임지를 오가던 길에 거친 지방의 특색과 풍습에 관한 질문만 하였다. 

또 한 가지 그를 매우 놀라게 만들었던 것은, 황제가 자신의 고향이 어딘지 기억하고, 3년 전 상성에 가서 향시를 주관하고 가족 방문 휴가를 내고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접한 풍토와 물가, 백성들의 생활상까지 꼼꼼히 물어 보았다는 것이었다. 

고청운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소상히 알고 있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쉽게 말할 수 있었다. 다만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분 앞이라 말을 함에 있어 더 신중하게 머리로 한 번씩 더 생각해 가며 말을 사려서 대답했다. 

이번 담화는 고청운이 느끼기에 꽤 오랜 시간동안 이어진 것 같았으나, 궁정에서 물러난 뒤 물시계를 들여다보니 그들이 대화를 나눈 시간은 고작 채 반 시진도 되지 않았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 알현을 마친 그는 전신이 극도로 긴장되어 있었고, 황제의 일거수일투족에 매우 주의하느라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해져 있었는데, 등은 땀으로 약간 젖어 있기까지 하였다.

그가 이전에 읽은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농부든 평범한 농가의 여인이건, 일반 농가의 자제들이건 황제를 대함에 있어서도 비굴하거나 도도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표현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는 하였는데, 그는 ‘어찌 그럴 수 있었을까.’란 생각에 탄복해 마지않았다.

비록 그들은 가상의 인물이라고는 하나, 그 사람들의 심리적 자질은 실로 너무 강인한 것이 아닌가! 자신은 아무리 황제를 오랫동안 알현하지 못했었다고는 하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전전긍긍하기 바빠 남들 보기에도 체면을 많이 구겼을 것이었다. 

결국 자신은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나쁜 사내라든가 하는 기세는 갖추지 못했다. 고청운은 그저 그런 것으로 자신의 위안을 삼기로 하였다. 

그 후로도 그는 황제를 배알했을 때의 상황을 다시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았지만, 결례를 범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최소한 그는 황제의 얼굴이 화기애애했음은 알 수 있었다.

* * *

이때, 사장정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저 껄껄 웃기만 하였다. 고청운이 이 대목에서 이상하게 느꼈던 것은, 그가 황제에 대한 것은 더 묻지 않고 ‘그럼 내년엔 자네 직급에 변동이 좀 있을 수 있겠군?’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는 것이었다.

고청운이 그를 노려봤다.

“그런 것을 내 어찌 알겠는가?” 

승진이야 누가 하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운남사에서 늘 담담히 자리를 지키던 완 낭중과 첨 원외랑이 요즘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방해 공작을 빈번하게 펴는 것이 그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자네도 이제 한 직급 위로 올라갈 때가 되었지.”

사장정은 나른한 말투로 말했는데, 고청운이 눈을 흘기며 천천히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더 잇지 않았다. 

“알겠네, 그럼 관청에 대한 얘기는 더 하지 말자고. 어차피 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얘기라네.”

“아버지, 달콤한 간식 먹을래요.”

이때 사장정의 품에 있던 천보가 부드럽게 말을 끼어들었다. 그 아이는 상 위에 놓인 간식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 간식들은 고청운이 옆에 위치한 오래된 과자점에서 사온 것들로, 그들이 이번에 새로 내놓은 신상품이었다. 간식의 모양이 매우 참신한 것이 마치 꽃 같은 모습으로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먼저 고기죽부터 다 먹고 얘기하자꾸나.” 

사장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얼굴을 굳혔다. 

“안 먹을래요. 다른 거, 간식이 먹고 싶어요.”

천보는 사장정의 얼굴빛을 보고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심지어 조금 전까지 나른하게 말하던 목소리를 한껏 키우고, 다리로 힘껏 걷어찰 정도였다. 

“나 간식 먹을래요! 먹을 거야!”

아이는 작은 손을 내밀어 사장정의 옷자락을 꼭 잡고 있었는데, 힘이 또래들 사이에서 비교적 센 편인지 고청운은 사장정의 옷깃이 졸려 있는 것을 보였다.

“너 말 잘 듣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집에서 소어 남매들과 어울려 놀지 못할 줄 알아. 집에서 누이들이랑만 있어야 해.”

사장정은 아이에게 부드럽게 이치를 따지려 했지만, 이마에 불뚝 솟아오른 핏줄이 그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부자의 맞은편에 앉은 고청운은 아연실색했다. 이 무슨 기이한 변화인가. 얌전한 줄 알았던 아이가 어찌 이리 갑자기 변하여 부드러운 모습에서 난폭한 모습으로 변모한단 말인가. 아이는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더 빨리 얼굴을 바꾸었다.

한바탕 흥정을 벌인 후, 마침내 천보는 평정을 되찾았다. 아이가 고기죽을 다 먹고 나자, 사장정은 아이의 작은 손에 간식 한 조각을 쥐여 주었고, 서둘러 하인을 보내어 아이를 안고 옆집에 가서 놀게 하였다.

“휴, 나쁜 녀석, 드디어 잠잠해졌네.”

사장정은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손수건을 꺼내 있지도 않은 땀을 닦고 나니, 개운해진 모양이었다. 

“물건이 없으면 귀해진다고, 집에서 제 어머니와 누이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다보니 못쓰게 되었네. 성질이 포악해졌어. 놀다 피곤하거나 배가 고파졌을 때만 잠깐씩 말을 들어 줄 뿐이라네.”

“어린애가 다 그렇지, 장정이, 천보가 아주 똑똑하던 걸. 3살도 안 되었는데 자네 말을 다 이해하고 거기에 흥정까지 할 줄 알다니 말이야.”

고청운은 천보를 단지 몇 번 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만월(滿月), 백일, 돌(歲)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인데, 그간 아이가 너무 어려 사장정이 밖으로 데리고 나온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정말 눈이 삐었지 아이가 그저 말랑말랑한 귀염둥이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두 얼굴을 가진 응석받이였다. 아이의 얼굴이 급변하는 속도 또한 비할 바 없이 빨랐다. 

“하하, 자네도 알아챘군!”

사장정은 이를 듣자마자 이내 희고 고운 얼굴에 자랑스러운 웃음을 띠며 말했다.

“똑똑한 게 사실이지. 누이들이 시를 가르치면 금세 외우더라고.”

이야기가 시작되고 나니, 그의 입에서 천보의 ‘역사’적인 일들이 끊임없이 줄줄 흘러나왔다. 

고청운도 아이의 아버지인지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들었고, 사장정의 딸들은 듬직하면서도 차분하고 발랄한 성격으로 가족애가 좋다는 사실도 함께 들어 알게 되었다.

이와 함께 고청운은 공주부에서 사장정의 위치가 먹이사슬의 밑바닥이라는 사실 역시 확인했는데, 이는 슬프고 절망적인 일이었지만 사실이었다. 

두 사람은 사장정이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치자 화제를 돌렸다.

“최근 새로 나온 화본이 잘 팔리더군, 이번에도 개중에는 자네가 쓴 화본이 아닌가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네. 티는 내지 않고 있지만 말이야. 그것도 오랜 시일이 지나면 다들 잊어버리게 되겠지. 참, 자네가 화본에 수록한 기름 솥 이야기는 진짜인가?”

사장정이 흥미진진하게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알려주기 전에는 나도 진짜로 그 진실을 모르고 있었단 말이지. 예전에 기름 솥에 손을 뻗어 그 안에서 끓고 있는 구리 동전을 되찾아 올 수 있다는 말이 분명 속임수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떤 원리로 속임수를 만들어 낸 것인지는 몰랐는데, 자네의 화본 속에서 그 원리를 알게 될 줄이야. 

나와 딸들이 직접 실험을 해 보았네. 식초에다가 기름을 붓고, 식초 기름이 좀 데워지기 시작했을 때 붕사를 넣었더니, 역시 끓는 물을 방불케 하더군. 진짜로 식초가 따로 끓기 시작했다네. 하하, 내가 손을 넣어 보니 조금도 뜨겁지 않았지. 신지, 자네는 정말이지 똑똑해!”

고청운은 사장정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고 코를 만지작거렸다. 

이러한 지식은 현대였다면, 화학 수업을 이수한 중학생 정도면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고대에서는 많이 달라서, 문맹이거나 미신을 더 믿는 우매한 사람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기름 솥에 손을 넣는 이러한 속임수를 섞은 묘기가 누누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이 시대였더라도 많이 배운 자들이라면 또 달랐다. 고청운은 본 왕조의 많은 문인들이 사석에서 이쪽 방면으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실험을 진행해 보거나 해서 진즉에 이 속임수를 파훼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저 알리기 귀찮아해서 이 원리가 사람들에게 퍼져나가지 않은 것뿐이었다. 

그랬다, 이쪽으로 흥미를 느끼며 실험까지 하는 사내들이라면 거의 다 집돌이 같은 성향의 사내들이 대부분일 것이었다. 도를 닦는데 관심이 있거나 실제로 영생을 한다는 단약을 만들어 자신이 직접 먹어 보기도 하는 사람들이니, 자연히 이런 작은 일을 귀찮아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게 당연했다. 

“이건 내가 알아낸 것이 아니라 다른 책 속에 이미 기록되어 있던 사실인데, 내가 이를 인용해 좀 더 알기 쉬운 말로 썼을 뿐이라네. 내 생각에는 모두들 이 속임수의 원리를 알았으니, 일명 ‘강호술사’라 불리는 자들은 더 이상 믿지 못 하겠군 그래.”

고청운은 황급히 둘러댔다.

그의 말을 들은 사장정은 흥이 나서 다급히 고청운에게 무슨 책에 그런 내용이 쓰여 있었는지 서적의 이름을 물었다.

그가 책 이름을 적은 후, 이어서 두 사람은 또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들이 이번에 밖에 나와 만남을 가진 것은 그저 우애를 돈독히 함이었지, 딱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만난 것은 아니었다. 

사장정과의 대화는 확실히 매우 유쾌했다. 사장정은 관료가 아닌 사람이라, 그와 대화를 할 때 고청운은 긴장을 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은 그저 평범한 잡담을 나누면서 요즘 경성내의 가장 뜨거운 소문이라든가 어떤 관리가 횡령으로 붙잡혔는지, 혹은 어디가 경관이 아리따운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와의 대화는 확실히 재미도 있고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오후가 되어 천보가 놀다가 피곤해져서 잠을 자고 싶어 할 때가 되자, 두 사람은 비로소 헤어졌다.

헤어질 때 고청운은 사장정의 큰딸 혜명군주(慧明郡主)와 둘째 딸 문안군주(文安郡主)를 만나게 되었는데, 두 군주(郡主)는 연회에 참석차 나왔다가 가는 김에 천보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올해 9살, 7살로 비록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행동에 있어서는 나무랄 데 없는 귀한 집안의 여식으로서의 면모가 여지없이 드러나 있었다. 

유전의 힘은 정말 막강했다. 고청운은 흡사 안락공주를 보는 듯했고, 더 나아가 그들의 등 뒤에 있는 황제를 마주하는 듯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 귀녀들은 피부가 희고 얼굴 윤곽이 부드러웠으며, 미간 부근에 사장정의 느낌이 남아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외모가 되었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들 자매가 안락공주를 따라 궁궐에 자주 입궁해 황제의 환심을 사게 되면서 군주라는 작위에 봉해졌다고 들었다. 이는 아주 어릴 때 일어난 일들이었다. 다만 사장정의 셋째 딸은 아직 작위에 봉해지지 않아, 고청운은 이 일에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으나 딱히 캐묻지는 않았다. 

한자리에 모인 이들은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고, ‘고청운 어르신’과 그들은 곧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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