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44)화 (344/504)

344화. 실망

세월이 흘러 4월 달이 되자, 고청운은 다시 시차(试差)에 지원했고, 뜻밖에 향시 부시험관의 직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아쉬웠던 것은 부시험관으로 선발이 된 것을 알고 막 완 낭중을 찾아 친지방문 휴가를 내려 했는데, 시도도 해 보지 못하고 먼저 거절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신지, 본관이 합리적인 사람이 못되어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 운남사가 지금 사람은 적고 일은 너무 많아서, 자네가 없으면 일이 너무 많이 쌓일 테니 어쩔 수가 없다네. 특히 연말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맡은 바 임무를 잘 완수해 내야 하는 시점을 앞두고 있으니 한 치의 실수도 해서는 안 될 것이네.”

완 낭중은 그의 비대한 몸을 이끌고 의자에서 나와 편안한 자리를 찾아 옮겨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학 주사가 우리 운남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일은 아직 잘 수습을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네는 우리 업무를 아주 속속들이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자네가 그리 오래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우리 사에는 분명 금방 혼란이 야기될 걸세.”

“대인, 과찬이십니다.”

고청운은 완 낭중이 이렇게까지 오글거리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휴가 신청이 되돌릴 여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달갑지 않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딱히 그런 심정을 표출할 수 없어, 그는 그저 그 말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하관은 삼가 분부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래, 잘 좀 해 주시게. 정 안되면 자네 부모님께 경성에 한 번 올라오시라고 청해 보는 것은 어떠한가?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은 자네가 아니고, 손주들이지 않은가?”

완 낭중은 고청운의 표정이 담담해지자 농담을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아까의 말은 완 낭중의 속내를 담은 말들이었다. 요즘 사내의 구체적인 업무는 대부분 고청운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는 고청운이라는 부하 관료가 있어 짐을 한결 덜어낸 셈이었다. 그가 가장 만족하는 것은 고청운의 일 처리 능력만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총명하고 능력 있는 부하를 그간 많이 보아왔었고, 이전의 매 주사도 그랬었다. 

고청운의 가장 큰 장점은, 그에게는 원칙이 있지만 그렇다고 모래 한 점 용납하지 못할 정도로 고상한 성질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그는 아주 큰 문제만 아니라면, 여태까지 가타부타 싫은 말을 붙인 적이 없었다. 

고청운은 자신과 첨 대인이 분부해 맡긴 임무에 대해 의견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당장 의견을 제시했는데, 자신들이 고청운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버티면 그는 더 이상 삐걱거리지 않고 한 치의 틀림없이 일을 완수해 주었기 때문에 매우 신경을 덜 쓸 수가 있었다.

고청운은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난 데다 괴롭다거나 힘들다는 소리를 내지도 않았으며, 파벌을 형성하지 않았고 편협한 일을 하지 않았다. 단지 그 개인의 성향이 조금 답답한 편이었는데, 그래도 사람됨은 성실했다. 

5년이라는 시간은, 함께 지내오면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데 충분한 시간들이었다. 지금 관가에는 이렇게 성실한 사람이 몇 없으니, 고청운은 매우 쓰임이 많은 인재였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만 보더라도 이런 수치가 집계된 인과 관계가 매우 명확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는데, 그 상세한 수치와 통계 덕분에 자신이 우시랑 대인에게 업무 보고를 올릴 때마다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그가 보기에는 고청운의 신경이 산술 분야에도 일부 분산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그는 수년간 고청운이 책을 내거나 무슨 책을 직접 번역해 오는 것을 보면서 고청운 같은 사람이야말로 뒤에서 단 한 번도 남을 찌르지 않는,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생각까지 들자, 완 낭중은 문득 깊은 생각에 잠겼고, 만일 자신의 소망을 이루고자 한다면 이 고청운이라는 인재를 어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인사를 고하고 자리를 떠난 고청운은 완 낭중의 의중을 알 수 없기에 그저 씁쓸해할 뿐이었다.

그는 어느 성의 시험 감독관으로 갈 지는 알 수 없었지만, 3년 가까이 고향집에 가지 않았기에 지난번처럼 집에 들려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큰할아버지의 묘소에도 찾아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매 주사가 곁에 없었다. 대신 자리한 학 주사는 업무가 아직 그리 익숙한 편이 아니라 완 낭중이 자신에게 휴가를 승인해 주려 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정말이지 실망스러웠다.

완 낭중의 제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지만, 부모님은 그 요청에 따라 경성으로 오지 않을 테니,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휴가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년까지 고영량이 고향집에 머물러 있다가 귀경해서 집안의 어른들이 너무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었다. 

* * *

7월 중순, 겨우 사흘 전이 되어서야 마침내 고청운은 자신이 시험 감독으로 가게 될 곳이 산동성(山东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정도로 지역 임명 발표가 늦어지게 된다면, 임하게 될 지역이 경성과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번 향시 주임 시험관은 예부의 정5품 낭중 한 명이 맡게 되었는데, 그도 습관이 몸에 베여 사는 사람으로, 향시를 주관할 때 역시 강직하고 일처리가 빈틈이 없었으며, 책임감 있는 성향의 사람이라 지난번 진 학사와 비슷하여 고청운은 은연중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면 다 된 것이었다. 이런 사람과 함께라면 부정의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비록 향시 부시험관이 되는 것은 경력과 명망을 쌓을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였지만 상대적으로 위험부담도 존재하는 일이라 쉽게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부시험관직을 한 번 경험한 적 있던 덕에 고청운은 이번에도 잘 해냈다. 게다가 이번 주임 시험관은 큰 방향만 책임지고 시시콜콜한 일은 그에게 시켰던 덕에, 이번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고청운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번 회차의 향시 합격자 발표가 끝나고, 온 김에 산동 지역을 한번 유람하면서 또 다른 풍경을 체험해 볼 수 있었기에, 고청운은 유람 일정까지 다 마친 후 9월 10일이 되어서야 귀경했다. 

그는 이제 황제가 자신을 주임 시험관으로 발령을 보내더라도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더 이상 시험관의 업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향시를 주관할 수 있는 시험관의 임무는 앞으로 그의 차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조정에는 한 사람이 3번 연속 시험관을 맡지 않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기에 최소 몇 년 간격을 둬야 재발탁될 수 있었다. 

* * *

9월 20일, 송죽서재 2층.

“요즘은 자네와 약속을 잡아 이렇게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군. 휴일이 아니면 만남을 청하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 원. 호부가 그렇게나 바쁜 곳이던가? 지금이 무슨 연말도 아니고 말일세.” 

사장정은 아들을 안고 작은 숟가락으로 묽은 죽을 떠먹이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고청운을 조롱했다.

“자네, 또다시 이리 힘들게 걸음을 한다면 자네 원고료는 내가 먹어버릴 걸세. 이번엔 화본이 매우 잘 팔리고 있으니, 고료를 받지 못하게 되면 마음 꽤나 아플 것이야.”

“일이 진짜 바쁘긴 하네만.”

고청운은 눈썹을 주물렀다. 그간 힘이 넘치던 모습의 그에게서 피로함이 비쳤다. 

“내가 시험관으로 나가 있던 두 달 동안, 운남사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쌓여 버렸다네.”

그는 지난번 시차 때를 떠올렸다. 매 주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으면 자신이 반년 동안 그냥 사라져 버렸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었다. 

사장정은 약간 그를 동정하면서도, 언급할 고마운 일이 있어 말을 꺼냈다. 

“지난번에 희곡에 관한 책을 엮어보라고 권유해 주지 않았는가? 내 너무 심심하던 차에 나를 도와줄 사람을 몇 명 찾아냈다네. 내가 봤을 땐 막상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어 보였는데, 책 한 권을 엮는다는 게 정말 바쁘게 일을 벌여야 하기는 하더군.”

“정말 시도해 보았군 그래?”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안락공주의 위상을 생각하면 그가 정보를 수집하고, 이런 일을 하는 데 큰 지원을 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남은 것은 사장정이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에 따라 달렸다. 

“그럼, 물론이지! 내가 누군지 모르는가? 이깟 작은 일이 뭐가 어렵다고? 신지, 잘 지켜보시게, 내 머지않아 반드시 책을 하나 내놓을 걸세. 하하, 나도 책을 펴낸 사람이 되는 것이지! 외숙부께서 크게 놀라실 것이야.”

사장정이 싱글벙글 웃으며 동작이 좀 커지자, 그 집 아들이 ‘끙끙’소리를 내며 항의했다.

천보를 계속 관찰하던 고청운은 아이의 이목구비가 매우 정교하며 뽀얗고 보드라워 보이는 모습이 정말이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사장정과 판박이였는데, 만약 입고 있는 옷만 아니었다면 어떻게 보아도 여자아이로 보였을 것이었다. 

아가는 지금 음식에 열중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배고파 보이는 것이 사장정이 도대체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다녀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꼬맹이의 외모와 방자명네 두 딸의 외모는 서로 막상막하이면서 또 각자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는데, 천보의 성별을 생각하니 그는 더 이상 생각을 이어나가지 않기로 하였다.

“신지, 듣자 하니 이번에 귀경하여 폐하를 알현했다면서?”

고청운이 막 무슨 말을 하려하는데, 사장정이 돌연 입을 열었다.

고청운은 잠시 멍했다가 비로소 대답했다.

“그렇다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정식 발령 났던 부시험관들이 다 폐하를 알현하고 왔지.”

* * *

9월 10일, 고청운은 산동에서 급히 돌아오자마자 황제가 부시험관들을 불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그는 집에 틀어박혀 감히 외출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다른 사람과 연락도 하지 않고, 자신이 작성 중이던 총결산 보고서를 고치고 또 고쳤는데, 거의 모든 글자 사용에 있어 하나하나 심사숙고하며 내심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냈다. 

나흘 동안 줄곧 기다리니, 마침내 고청운이 황제를 알현할 차례가 되었다. 

예를 갖추어 배알한 뒤, 고청운은 황제를 몰래 훑어보았다. 황제는 올해 쉰일곱이 되었지만, 정신 상태가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고 체격도 뚱뚱하지도, 마르지도 않은 것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게 딱 적당해 보였다. 네모진 얼굴은 매우 너그러워 보였고, 안색도 극히 좋아 보였는데, 그가 처음 전시 때 보았던 모습과 비교해 보아도 매우 좋았다. 

지금의 황제는 그때와는 달리 짧은 검은색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만약 그의 온몸의 기세가 사람을 겁먹게 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겉보기에는 평범한 노인처럼 보였을 것 같았다.

이런 황제의 모습을 보고 고청운은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다. 이는 황제의 용체가 매우 건강하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건강하니, 조정에서 큰 난리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필경 황제는 신망도 매우 높았다. 지금의 태자는 겨우 17세였는데, 황제가 몇 년을 더 버티면 그간 태자도 어느 정도 더 성숙해 질 것이니, 이런 점은 확실히 그의 향후 차기 집권에 있어서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었다.

그런 일을 배제 하고서라도 고청운의 생각에는 지금의 황제가 매우 좋은 편이었다.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지 않았으며, 관원들을 너그럽게 대했기에, 그 밑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따랐던 것이었다. 만약 차기 황제가 너무 어리면, 아무래도 불안한 요소가 많았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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