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철벽
장수원은 고청운의 모습을 보더니, 어깨를 들먹이며 쥘부채로 코와 입을 가린 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신지, 이렇게 여러 해를 보내는 동안 자네는 여전히 철석같이 굳센 사내의 마음을 지키고 있군 그래. 이 어리석은 형님은 자네에게 오체투지를 하고 싶을 만큼 탄복했네.”
고청운의 어깨를 감싸 안은 장수원은 입꼬리를 치켜들고 아직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과연 그 부인들 사이에서 자네의 명성이 제일 좋았던 이유가 단지 화본 때문만은 아니었어, 자네가 이렇게 옥처럼 순결하게 지조를 지키고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자네는 너무 긴장해 있네. 어떤 여인들은 그저 자네에게 뭐든 빌미를 삼아 그저 말이나 걸어볼 요령이지, 다른 일을 벌이려던 것은 아닌 경우도 있을 테니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말게나.”
장수원이 또다시 그를 놀렸다.
“누가 자네가 이렇게까지 남녀 관계에 철벽같을 줄 생각이나 해 봤겠는가?”
고청운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오십보백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장 형이 저보다 더 인기가 많지 않습니까. 그리고 본론을 말하지 않을 생각이시라면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내가 지금 배가 얼마나 고픈데, 오늘 오전에 축국 경기 뛴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나 있는 걸까?’
“알겠네, 알겠어. 내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자네가 이번 시차(*试差: 조정에서 파견하는 향시의 시험관)로 갈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려 했다네.”
고청운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장수원이 더 이상 그를 놀리지 못하고 황급히 이 이야기를 꺼냈다.
“가고 싶습니다.”
고청운은 일찍이 이 문제를 고려했었다. 그는 올해 8월에 열리는 향시에서 다시 한번 부시험관 직무를 맡고 싶었는데, 그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데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부시험관으로 선발만 된다면, 산술 문항은 당연히 그가 출제하게 될 것이었다.
현재 민간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를 쓰기 시작했지만, 아직 관가 쪽에서 큰 움직임이 없자 고청운은 마음이 좀 급해졌다. 그 연유는 결국 역시 그의 영향력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귀결되었는데, 이 좋은 방법을 보급시키기에는 확실히 아직 그의 역량이 부족했다.
“그럼 장 형은요? 정말 지방 학정(学政)으로 가실 생각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고청운이 그에게 물었다. 3년 전 장수원은 시차 직무를 완수한 후에 지방으로 내려가 학정으로 부임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결국 그와 관련한 동정이 들려오지 않자, 고청운은 그가 생각을 바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이 경우와는 다르게 왕 주사는 경성 밖 지방으로 나가고 싶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에서 밀렸는데, 방금 축국 경기 때 올해도 시차 직무를 맡고 싶다고 한 걸 보면 아직 목적을 바꾸지 않은 듯했다.
고청운의 예상대로, 장수원은 이번에는 최선을 다하겠다며 얼굴에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고청운은 그제야 저번에는 그가 억지로 결심을 한 것이고, 이번이야말로 그가 스스로 결심을 굳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이 막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을 때, 바로 몇 명의 지인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는데, 바로 육택과 육훤 부자로, 두 사람의 뒤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더 뒤따르고 있었다.
“스승님, 장 대인, 안녕하십니까.”
육훤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후작 나리, 세자.”
장수원은 흠칫 놀라며 급히 예를 표했다.
쌍방은 일일이 예를 갖추고 답례를 나눈 후, 의례적인 인사말을 몇 마디 더 나누었다. 이윽고 아직 처리할 일이 있었던 육택은 떠나기 전에 한 번 고청운을 쳐다보고는 얼굴에 얕은 웃음기를 띄웠는데, 험상궂어 보이지 않았다.
고청운은 일순 헉 하고 놀랐다.
육훤은 뒤로 와서는 고청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스승님, 아까 아버지와 함께 모든 장면들을 다 보았습니다. 하하, 스승님께서 이런 나이에도 그런 대접을 받으시다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저희 아버지와는 다르신데요? 저희 아버지께는 단 한 사람도 손수건 같은 걸 던져주지 않으시던데 말이에요, 하하.”
말을 하면서도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
“누가 이렇게 스승님의 외관을 젊게 만들어 주는 걸까요? 보기에는 아직 서른도 채 안 되어 보이십니다. 스승님, 이런 것들이 정 번거로우시다면 수염을 좀 길러보심이 어떠신지요, 그러면 더 나아지실 겁니다.”
고청운은 정색을 하고 육훤의 머리를 한 대 치려했지만, 그보다 키가 좀 더 컸던 육훤은 그의 행동을 보고 허리를 굽혀 피했다.
고청운은 어쩌지도 못하게 되자, 급히 말을 이었다.
“이제 곧 아버지가 될 녀석이 아직도 이리 착실하지 못해서야. 녀석아, 내 얘기까지 할 것 없이 네 스스로도 조심해야 한다. 그 무슨 얼토당토 않는 풍류에 휩쓸리지 말고! 네 처가 회임 중이지 않으냐. 이럴 때 여인들의 마음이 더 약해지니 틈만 나면 더 자주 곁에서 도와줘야 한다. 회임이라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이야.”
그랬다, 육훤은 성혼한 지 2년 만에, 즉 그가 19살 되는 해에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이제 회임한 지 갓 석 달이 되어 대외적으로 발표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올해 9월 정도가 되면 그는 아버지가 될 것이었다.
“스승님, 안심하세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매일 황립 서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 보셨지요? 아 참, 아버지께서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고 나면, 조금 자라기를 기다렸다가 해안 어느 쪽으로 저를 파견 보내 근무하게 하신다고 하셨어요.”
뒤에 나온 이 말을 할 때 육훤의 목소리는 낮아졌지만, 얼굴에는 희색이 돌았다.
고청운은 지금 육훤이 육택의 시위로 그를 따라다니며 일을 배우고 그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곧 20살이 되면 황립 서원을 졸업할 테니, 아마 그때 아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육택의 지위로는 좋은 자리를 안배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에, 반드시 잘될 것이었다.
“그럼 네가 잘해야겠구나.”
그를 격려한 고청운은 그가 더 할 말이 있어 보이자, 그를 재촉하며 말했다.
“무슨 일인데 말을 못하고 있는 게야?”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기는 합니다.”
육훤의 표정이 일순 미묘했다.
“제 처가 소석이와 소어가 어릴 적 쓰던 기저귀를 부탁한다고 하지 뭡니까. 이상한 것이 저희 집에도 천은 차고 넘치는데, 어디 가져다 쓰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말하기로는 무슨 태어날 아이가 건강하고 똑똑하길 원해서라고 하는데, 그 아이들을 겨우 몇 번 본 것뿐인데도 알건 다 알게 된 모양입니다.”
고영량과 고영진은 후부에 놀러가 본 적이 있었지만, 그 횟수는 적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왜 자기 아이의 기저귀를 원하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녀도 친척들이 많이 있으니 주변에 사내아이의 기저귀가 널리고 널려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기로 하였다.
“이런 것은 그저 세시풍속 같은 것일 뿐이니, 나중에 미아에게 전하여 보내 주마.”
얼마 전에 막 회임 축하 선물을 보내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잘되었습니다. 그럼 스승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볼일이 끝나자, 육훤은 급히 작별을 고하고, 오문 등을 데리고 육택이 사라진 방향으로 쫓아갔다.
장수원은 한참 동안 옆에 서 있다가 고청운과 육훤 사이가 친밀한 것을 보고 매우 부러운 듯 말했다.
“자네들이 이렇게 지내는 것을 보면 나는 정말 부럽네. 제자 몇 명을 받아 가르치고 싶어지니 말일세.”
장수원은 예전에 왕씨 집안의 왕가준을 만나보기도 했었는데, 그때 그도 고청운을 깍듯이 대했었다.
“장 형한테 제자로 선택된 학생도 정말 기뻐할 겁니다.”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는 속으로 ‘그 멀리 장원루까지 가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그가, 왜 제자 몇 명을 받아서 가르치지 않고 있는 걸까?’ 하고 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 잘 맞는 제자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 더구나 난 우리 집 아이의 일만으로도 바쁘다네.”
장수원은 자기 집의 아들을 떠올렸다. 그의 큰아들은 고영진보다 한 살 위였지만, 두 사람의 학업 진도는 똑같아서 황립 서원에서 같은 병원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고영진이 자기 아들보다 조금 더 공부를 잘 했다.
예전에 과거 시험 볼 때 자신이 줄곧 고청운보다 앞섰던 것을 생각하던 그는 더욱 마음을 모질게 먹고 자기 아들에게 학업적인 임무를 좀 더 부여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 * *
이날 밤 잠자기 전, 간미를 본 고청운은 기분이 매우 좋아져서, 낮에 갑자기 떠올랐던 생각을 다시금 떠올리며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미아, 내가 당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는데, 화내지 마시오.”
“말씀해 보세요.”
간미는 화장대 앞에서 긴 머리를 아무렇게나 빗고 있다가, 거울을 통해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고청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내지 않을게요.”
고청운은 헛기침을 하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도 한번 생각해보시오. 소석이가 벌써 14살이나 되었으니, 이미 다 자란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소. 나는 소석이가 ‘그쪽’ 방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걱정이 되어, 관련 교육에 대해 좀 말해 보고자 하오. 만일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좋지 않은 곳에 가기라도 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속아 넘어가 일을 치르게 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오.
그래서 내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음, 선수를 치는 자가 유리하다고 하지 않소. 내가 그 아이를 데리고 그런 곳으로 한 번 견학을 가면 어떨까 싶소. 말을 하자면, 결국 그런 일들에 대해 소석이가 이해를 하게 되면 더 이상 신비롭지 않게 느낄 것 같다오.”
그랬다, 그가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얼마 전에 고영량이 그에게 속옷을 갈아입어야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이제 큰아들이 다 컸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고, 이런 성적 교육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미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머리를 빗던 동작을 바로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부군, 지금 어디를 가서 견문을 얻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녀가 지금 고청운을 다시금 자세히 살펴보니, 그는 흰색의 내의만 걸치고 있었는데도 그 헐렁한 옷이 그의 다부진 어깨와 얇은 허리와 긴 다리를 가진 뛰어난 몸매를 가려주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부군의 얼굴은 참 어려 보였고, 피부도 하얬으며, 눈은 빛나고 총기가 서려 있었기에, 밖에 나가면 14살짜리 아들을 둔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어디도 가지 않겠소.”
그는 그녀의 생각을 알아채고는 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소.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졌다가는 소석이의 평판에 금이 갈 테니 말이오. 그래서야 앞으로 어떻게 좋은 며느리를 찾겠소? 하하, 내가 방금 농담을 한 것이오, 그래, 농담이오.”
콜록, 그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간미의 기세가 갑자기 강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의 부드러움 없이, 얼굴에만 평소 같은 웃음이 서려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그의 기세가 단번에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