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41)화 (341/504)

341화. 가규(家規) (2)

지금 고영량의 앞날은 꽤 좋게 예견되어 있는 편이었다. 아직 진사가 될 수 있을지는 감히 속단할 수 없으나, 거인 정도는 확실히 가능한 선상에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그가 진사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고씨 가문의 힘을 빌려, 비는 관직 자리를 찾아 관료로 만들어 줄 수 있을 터였다.

고영량의 언행이나 품행 역시 아주 바른 것이, 세상 물정 모르고 호강만 하며 자란 귀족 자제 같은 경향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용모 또한 말할 것도 없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아주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고청운은 큰아들이 최소한 자신보다는 더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고청운은 아들들에게 첩을 들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런 규율을 정한 것도 있었지만, 평소에도 집에 여인이 많으면 가정을 어지럽히게 되는 화근을 만드는 꼴이 된다고 생각해 왔었다. 처첩이 화합하는 것은 사내들만의 꿈이고 허상이지, 여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었다.

사실 이미 다수의 황제의 인척 및 측근의 집안에는 이러한 집안의 규율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들 고씨 집안만 예외적으로 이런 가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청운이 살펴보니 어떤 집안에는 첩을 겸하는 하녀조차 두지 않은 집안도 있었는데, 물론 어떤 집에는 첩은 없으나 정을 통하는 하녀가 수두룩한 집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집안에 여인이 적으면 가정을 화목하게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업무에 쓸 수 있는 시간과 정력이 많아져 업무에 있어서도 주의력이 올라가 더 좋은 성적을 내기에 용이했다. 이는 그가 직접 체득한 사실로, 그간 여러 해를 지내오며 그와 학문적 수준이 비슷하고 가문도 그보다 좋았던 그의 진사 동기들 중 몇몇은 집안의 풍파에 휩싸여 있었다. 

집안의 적자면 적자인대로, 서자면 서자인대로 아이들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는데, 그 예를 들자면 공봉명이 그러했다. 장수원, 담자례 역시 같은 경우였으나, 그들은 단 한 번도 고청운에게 이 문제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오늘 나들이로 외출을 하게 되어 고영량이 나들이 중에 우연히 여자아이들을 마주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고청운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은연중에 이 문제를 깊게 생각해 보았다. 

‘기회를 보아 내가 아들에게 직접 생리학적인 수업이라도 해 주어야 하나?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불꽃놀이 같은 장소에 끌려가거나 혹은 부적절한 여인에게 반하는 일은 피해야 하는데 말이야.’ 

이런 생각이 든 고청운은 다른 부인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간미를 의식적으로 힐끗 쳐다보았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가 만약 큰아들의 이쪽 견문을 넓혀주겠다고 간미에게 이야기를 한다면, 아무리 함부로 막 나가지 않겠다고 약조를 하더라도 호되게 혼이 날 것이었다.

“급하지 않다니? 지금 정혼을 해 두지 않으면, 좋은 집안의 여식들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가버릴 텐데!”

다급해진 왕 주사는 목소리가 좀 커졌는데,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에 이쪽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는 얼른 목소리를 낮추어 그를 다시 설득했다.

“내 생각에는 이쯤 정혼을 하는 것이 딱 좋은 것 같네. 그래야만 젊은 부부가 성혼을 하기 전에 몇 번이라도 더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그렇게 해야 나중에 지내기 더 좋을 것이네. 내 아들 역시 그리 할 걸세.”

고청운은 지금 막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다 말고, 그가 하는 말을 듣고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모르는 사람들이 봤으면, 우리가 시장에서 물건이라도 흥정하고 있는 줄 알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시대에서는 집안 아이들의 혼사 문제를 대부분 집안의 가장이 결정했는데, 고청운도 이러한 관습을 따르되, 대략적인 범위만 그가 고르고 구체적인 인선은 간미가 보고 결정하는 식으로 하기로 하였다. 

앞으로 대부분의 시간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있게 될 것이라, 아무래도 며느리 될 사람이 간미의 마음에 들어야지, 그렇지 않다가 고부갈등이라도 크게 생기면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영 대인께서 우리를 부르신답니다.”

왕 주사가 또다시 말을 이어가려는 조짐이 보이자, 고청운은 황급히 그가 말을 시작하기 전에 그의 말을 끊고, 물 마실 겨를도 없이 목에 매고 있던 수건을 고영량에게 던져주고는 관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다시 축국장으로 입장했다. 

사실 그의 말을 끊고 경기장으로 간 것은 확실히 고청운이 의도한 것이었는데, 왕씨 가문의 집안 형편은 매우 좋은 편이고 왕 주사 역시 남에게 호탕하고 친구로 지내기에는 괜찮았지만, 집안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조잡했던 것이었다. 그의 집안의 처첩이 다투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고청운과 간미 모두 들어온 바가 있었다. 

고청운은 이런 가풍을 지닌 집안과는 사돈이 되고 싶지 않았다.

고청운도 고영량이 어디서 며느릿감을 데리고 올 수 있을 것이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왕이면 성혼 상대가 될 집안도 자신의 집안처럼, 관계가 간단하고 큰 걱정거리가 없는 집안이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요구사항이었다. 

만약 관계가 복잡하다 한들 가장(家長)의 머릿속만 어리벙벙하지 않으면 큰 상관이 없었다. 육씨 집안이 그러한 경우였다. 아무래도 육훤과의 관계가 있다 보니 고청운은 암암리에 여러 해 동안 후부의 상황을 관찰해 오고 있었는데, 가장인 육택은 처사가 단호하고 현명하여 아무리 어지럽게 뒤섞인 복잡한 문제라도 명쾌하게 처리하는데 도가 튼 인물이라, 일렬의 내막도 모르면서 구경이나 하고들 앉아 있는 관중들의 못난 허상들이 허사가 되게 일을 마무리하고는 하였다.

이런 생각이 들자, 고청운은 자조를 금치 못했다. 

‘사실 나도 그 못난 관중들 중 한 사람이었던 걸까?’

* * *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축국 경기가 끝난 후 휘장 안으로 들어가 보송보송한 옷으로 갈아입은 고청운은 아직도 해가 저물기까지 시간이 이른 것을 보고, 간미와 고영진, 고경을 데리고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고영량은 일찌감치 친구들과 따로 구경하러 나가버렸는데, 벗들과 함께 무슨 유상곡수(*曲水流觞: 굽이치는 곡수에 둘러앉아 술잔을 띄워 놓고, 술잔이 흐르다 멈추면 그 앞에 앉은 사람이 술을 마시는 놀이)를 즐기며 문회를 갖는다고 하였다.

“아버지 불공평해요. 왜 형은 친구랑 놀러 가도 되는데, 저는 갈 수 없다고 하세요?”

고영진은 방금 아버지가 동료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티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가족들끼리만 남게 되자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입을 비죽거렸다.

“너는 몇 살이고, 또 네 형은 지금 몇 살이 되었느냐? 다른 건 몰라도 만약 유괴범이 너를 잡으러 온다면 너는 뛰어 도망칠 수 있느냐?”

고청운이 아이를 무심히 주시하며 반문했다. 

고영진은 얼굴이 빨개진 채 얼른 자신의 몸매를 들여다보며 투덜댔다.

“아버지께서 늘 뚱뚱한 제 모습을 싫어한다는 건 알지만, 저도 분명히 살을 많이 뺐거든요.”

옆에 있던 간미와 고경이 일순 입을 가린 채 가볍게 웃기 시작했다.

“오라버니는 뚱뚱하지 않아, 안 뚱뚱해.”

고경은 정색을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청운도 웃고 싶어졌다. 사실 그 말은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었는데, 9살 고영진은 온몸에 살집이 있어 그의 형만큼 호리호리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많이 뚱뚱하지도 않았다. 특히 어릴 적과 비교하면 더 그랬다.

고청운은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키가 자라면서 자연히 살이 빠지기 시작할 거라 믿었다. 아이의 운동량은 충분했고, 또 계속 황립 서원에서 기숙을 하면서 공부하느라 힘이 많이 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먹는 것 또한 집에서만큼 잘 제공되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이 없었다. 

들꽃이 여기저기 분분히 피어난 운하 변을 거닐다 보니, 물이 졸졸 흐르는 와중에 운하의 바닥이 훤히 보이는 구간이 있었다. 

물 밑의 자갈들과 물풀들이 한눈에 들어왔고, 강변에 심어진 큰 나무의 나뭇잎들도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고청운은 머리 위로 비추는 따스한 햇살과 훈훈하게 살랑이며 불어오는 봄바람의 부드러움을 만끽하니 매우 즐거워졌다. 

이때, 간미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비탈 쪽으로 점심밥을 지으러 갔고, 고청운은 장수원과 함께 강변을 마저 거닐었다. 

“신지, 자네 좀 보시게. 또 다른 향낭이 떨어져 있지 않은가. 이것을 주워 갈 텐가?”

장수원이 팔꿈치로 그의 허리부근을 한 번 쿡 치면서 물었는데, 말투가 애매모호했다.

“이게 몇 번째인가? 자네가 이리 매년 나비와 벌을 끌어들이듯 매력적이니, 내가 자네랑 같이 있으면 손해가 막심하네. 자네가 늘 더 인기가 많으니 말이야.”

“시시한 소리를 다 하십니다.” 

고청운은 그를 노려보고 향낭을 본체만체하며 그 위를 건너 지나가면서 또 말했다.

“이것은 장 형한테 준 것일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흥,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나는 자네랑은 달리, 여색을 가까이 하지도 않고, 여심도 잘 모른다네. 다만 내게 몰래몰래 보내오는 추파 정도는 나도 받을 수 있지.”

옅은 색의 비단 피풍의를 걸친 장수원은 맑고 깨끗해 보이는 손에 쥘부채를 쥐고 있어 보기에도 풍채가 늠름해 보였는데,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 젊은 시절에 비해 눈가에 주름이 몇 가닥 잡혀 있었지만, 그것이 외려 성숙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어 여전히 인기가 많았다.

고청운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는데, 마침 바로 앞에 화려하게 치장을 한 채 시시덕거리던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이 향기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오다가, 그중 미색의 그림자 하나가 누군가에게 떠밀려 세차게 자신에게로 넘어지고 있었다.

장수원은 얼른 피하면서 눈을 크게 뜨고 이 모든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청운은 발걸음을 더 재촉해 오른쪽으로 몇 걸음 옮기고 나서, 그들을 외면한 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아야!” 

그 여인은 땅 위로 넘어진 채, 아파서 소리를 지르며 고청운 쪽을 탐탁지 않게 쳐다보았다.

“깔깔깔, 정말이지 남녀의 정이라고는 모르는 나무토막 같으니. 얼마나 많은 우리 자매들이 그 사람의 몸 위로 곤두박질쳐 봤는지, 너는 말해도 믿지 못할 걸? 이 앙큼한!”

어떤 여인이 비웃으며 말했다.

“저 사내는 우리 가게에 몇 번 오신 적이 있는데, 늘 단정하시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잇속을 채우시는 모습을 뵌 적이 없어. 처와 자식이 있는 게 아니었으면, 혹시 무슨 속사정이라도 있어서 우리를 멀리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야. 고 부인께선 정말 운도 좋으시지.”

이 말들을 들은 고청운은 발걸음을 더욱 빨리했고, 곧 뒤에서 나던 인기척들도 시끄러운 인파의 소리에 묻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청운은 가끔씩 이런 상황에 부딪치곤 해서, 진즉에 대응 방법 하나를 갖춰두고 있었다. 

원래 봄나들이라는 것이 젊은 남녀들의 공개 맞선 같은 방법으로도 쓰이고 있었기에, 사실 아까 길에서 향낭과 손수건을 흘린 여인들 중에서는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소녀들도 있었다.

자신에게 그런 행동을 취한 소녀들 중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모르고 그런 행동을 한 여성들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평민 여성들은 남편감을 하나 건져보자는 뜻으로 그물을 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었다. 

물론 손수건이 진짜로 바람에 날아가 버린 경우도 있을 수 있었고,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수도 있었다.

고청운은 조금 전 길에서 마주친 젊은 여인들에게는 이 봄나들이라는 것이 특별한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몇 여인들은 낯이 익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아무리 민간의 풍토가 어느 정도 개방되어 있다고 한들 그 여인들이 이렇게까지 대담하게 굴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어떤 경우든 고청운은 미처 피하지 못할까 봐 그들을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수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이런 수법들에 단 한 번도 걸려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한편, 그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첨 원외랑의 봄나들이와 관련된 한 차례 추문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바가 있었다. 

그는 일전에 봄나들이를 나갔다가 한 과부에게 마음이 동해 집으로 데려온 일이 있었는데, 2년도 안 돼 아들을 보게 되었다. 그 아이의 나이는 고영진과 또래로, 가장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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