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40)화 (340/504)

340화. 가규(家規) (1)

“어쨌건 형은 정말 대단해. 생원이라니, 매달 은자를 받을 수 있잖아.”

고영진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놔주지 않더니, 눈을 애교스럽게 깜빡이며 목소리마저 배로 달콤해져서 말했다.

“형, 형아, 나에게 은자 좀 나눠 줘. 내가 국화꽃을 망쳐버린 탓에 며칠 전 국화를 또다시 사들여야 해서 받은 용돈을 다 써버렸어.”

“네 장부를 가져와서 좀 보여줘 봐.”

고영량은 그의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는데, 꼬마 구두쇠인 동생이 돈을 다 써버리는 걸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일단 돈이 다 떨어질 것 같으면 외증조할머니에게 가서 어리광을 부리고는 했던지라, 그의 금고는 항상 넘쳐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아버지에게 들키게 되면, 분명 그는 엉덩이에 매를 맞게 될 것이었다. 

다행히 고영량은 수재에 합격한 후 고향 어른들이 주는 선물과 집에서 받은 축하 선물 중 일부를 따로 받아 두었기에, 지금은 일약 ‘부자의 위세’를 부려볼 수 있었다. 게다가 동생이 안쓰러운 모습을 보이자, 한 번쯤은 돈을 내주어도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았다.

귀가 밝은 고경은 한쪽에서 간미를 따라 축하 선물을 분별하고 있다가 그 소리를 듣더니 급히 우당탕 뛰어와 말했다.

“큰오라버니, 큰오라버니! 소아도 용돈이 필요해. 둘째 오라버니도 받는데, 소아도.”

그녀는 두꺼운 토끼털로 만든 윗옷을 입고 있었는데, 치켜든 작은 얼굴이 희고 보드라워 보였다. 고영량은 그 까맣고 또렷또렷한 큰 눈이 자신을 집중해서 바라보고 있자, 마음이 누그러져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고영진이 여동생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나가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돈을 달래서 어디에 쓰려고?”

“나도 줘.”

고경은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영량의 반대편 팔을 껴안고 힘껏 흔들어댔다. 

고청운은 옆의 방택에서 돌아오면서 이 광경을 보고 있다가 간미에게 시선을 돌렸고, 아직도 회계 장부를 보고 있는 그녀를 보고는 아이들을 향해 손을 내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옆에 앉았다.

“외할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셔요?”

간미가 고개를 약간 돌려 작은 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스승님과 상의해 봤는데, 소석이는 이제 겨우 13살이니, 16살은 되고 나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시험을 봐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오. 우선은 아이에게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고 몇 년 더 공부를 가르쳐야 하는데, 국자감에 입학시키는 게 어떨까 싶소.”

고청운이 손을 화로 옆에 놓고 잠시 불을 쬐었는데, 오늘 날씨는 정말이지 꽤 추워진데다 바람까지 불기 시작한 것이 아마 눈도 곧 내리기 시작할 것 같았다.

본 왕조에서는 아직 과거 시험에 있어서 연중삼원(*连中三元: 3번의 큰 시험인 향시(해원), 회시(회원), 전시(장원)에서 모두 1등 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을 기록하는 기재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는데, 고청운은 여기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이 이 성과를 이루기를 바랐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는데, 결국 애당초 본인 역시 과거에 응시할 때 석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고영량이 너무 고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앞으로 봐야 할 향시는 9일이라는 시간 동안 시험장에서 계속해서 버텨내야 했던 것이었다. 정신도, 몸도 너무나도 상하기 쉬운 환경에 처하게 될 텐데, 고영량의 나이가 아직 어렸기에 몇 살 더 먹은 후에 시험장으로 보내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국자감은 오늘날, 대대적인 정비를 거쳐 변모해 있었다. 입학 조건을 바꾸고 학문을 갖춘 사람들을 많이 초빙하여, 근래 몇 년 동안 본 왕조의 유명 서원 중 하나로서 그 위세를 떨치게 되면서 꽤 많은 거인들을 배출해 냈다. 

지금의 국자감과 황립 서원은 문과 쪽으로 학업적 성취를 이루고, 무과 쪽으로도 대성을 할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서 발돋움해 있었다. 거의 모든 권력가, 관가의 자제들이 하나같이 모여들어 그중에서도 자질이 우수한 사람들만 다닐 수 있는 수준이 되었기에, 일반적인 사람들은 보통 지방의 관학이나 사설 서원에 입학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황립 서원의 무장 교습은 이 한 곳에서만 이뤄지고, 다른 분점을 두지는 않았다.

어느 날 육훤이 그에게 이야기해 준 것에 따르면, 그가 황립 서원에 있었을 때 육택 역시 무장 교습반에 들러 수업을 해 준 적이 있었다고 했는데, 부자가 한 반에 있어서 꽤 즐거웠다고 하였다. 

“소석이가 갖춘 조건이 국자감 입학 조건에 부합하니, 내일 바로 가서 신청하겠소.”

고청운이 이어서 말했다. 고영량은 관리의 아들이자 수재이기도 해서 조건이 꼭 들어맞았다.

고청운은 매번 이런 조건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이 일찍 진사에 합격해 후세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교육 여건을 제공할 수 있었다는 일에 자긍심이 솟아올랐다.

간미와 이야기를 마친 후, 고청운은 자녀들이 친밀하고 다정하게 붓 세척 도구들을 든 채 대화를 나누며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면서 간미와 함께 마주 보고 웃었다.

통상적으로 그들 부부는 아이들의 갈등에 좀처럼 개입하지 않았다. 다툼의 형국이 통제되지 않을 때만 조금 나서서 말 정도만 거들 뿐이었는데,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그들 스스로가 알아서 해결했다. 

다행히 고영량이 맏이로서, 남동생과 여동생을 우애로 대하고 일 처리를 공정하게 해서 거의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다. 설령 싸운다고 해도 빨리 화해했기에, 감정이 쌓이지 않았다.

* * *

이미 날씨가 추워졌다. 아들이 긴 여정에서 막 돌아온 것을 고려하여, 고청운은 한 달 동안 독학을 시킨 뒤 춘절이 지나서 국자감에 입학 신청을 하기로 결정했다. 

연말이 되어, 고청운은 운남의 지역관리들과 함께 장부를 결산하면서 통계수치를 맞추어 보았는데, 과연 운남의 세수(*稅收: 국민에게서 조세를 징수하여 얻는 정부의 수입) 관련 정황이 크게 호전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수 순위가 뒤에서 1, 2등 하던 것에서 3단계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었다. 

비록 작은 발전일지라도 이는 운남사의 사람들을 크게 기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운남사 사람들이 일에 임하는 정신 상태 역시 단번에 달라지게 만들었는데, 예전처럼 모두 주저하며 나서기 두려워 그냥 지나치기만 했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모두들 내년이야말로 세수 사정이 올해보다 폭발적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에 고청운과 관련하여 그를 아는 두 명의 상관들이 그의 관직을 올려 주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았다. 고청운이 새로운 대안을 제안하고 나서기 전에는 운남사가 꼴찌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할머니는 외손자보다 친손자를 더 귀여워하고 숙부는 조카보다 자신의 아들을 더 사랑한다고, 보통은 관계가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 법이었으나, 지금 고청운 덕분에 운남사의 사정이 나아져 기를 펴고 다닐 수가 있게 되었으니 그의 품계를 올려주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고청운은 운남사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지금은 연말에 일이 바빠져 연장 근무를 해야 하는 보름 동안을 제외하고, 다른 나날 동안은 자신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앞당겨 완수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남는 시간에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차를 우려내고 서성거리며 책을 읽으며 보냈는데, 최근에는 예년의 세수 통계 자료를 정리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호부의 공문서들을 모두 모아 놓고 다른 지역을 관할하는 사(司)들의 사정도 살펴볼 수 있게 되자, 그는 의도적으로 세수 수입과 경제의 관계를 살펴보았고 본 왕조의 최근 몇 년 동안의 세수 변화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보아하니, 상업용 세수는 요즘 들어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보였다. 

‘만일 내가 앞으로 통계학이나 계획학에 관련된 저서 한 권을 써 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고청운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는 이런 통계학적 수치를 이해하여 사실에 근거해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집무실에서 고청운은 매우 신중한 편이었는데, 한가한 시간이 생겼다고 이 시간을 활용해 화본을 집필하거나 어학 공부를 하지 않았다. 필경 그의 동료인 학 주사가 문도 두드리지 않고 그의 앞까지 돌진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만약 그 광경을 보았다면 한바탕 난리가 났을 것이었다.

지난번에 고청운이 학 주사를 거절하고 나서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계속해서 그에게 거절을 표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 뒤, 상대는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더 이상 고청운을 자신의 아랫사람으로 삼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예전과 변함없이 웃고 있는 모습으로 대할 때면, 고청운은 은근히 경계심을 더 끌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 * *

춘절이 지난 뒤 꽃피는 봄이 되자, 고청운의 가족은 다시 한번 봄나들이를 떠났다.

겨우내 고청운 일가는 방인소가 한겨울에 밖으로 놀러 나가지 못하도록 제지하고 있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자 그는 지체 없이 낚싯대, 바늘 등을 챙기더니 옛 친구와 만남을 가지겠다며 밖으로 놀러 나갔다. 

방인소가 자신은 화가 나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말을 들은 고청운과 간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 씨는 나이가 많아져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가기 싫다며 굳이 집에 남아 있겠다고 고집하기에, 결국 이번 봄나들이는 고청운 일가 다섯 식구만 나서게 되었다. 

봄나들이가 겹치는 휴일에 그들 호부는 여전히 예부와의 축국 시합을 할 예정이었다. 첫 축국 대회 이후 워낙 반응이 좋아서 매년 1번씩은 두 부서가 경기를 갖게 되었던 것이었다. 

“신지, 자네 체력은 여전하구만.”

왕 주사가 고청운을 바라보는 눈빛에 부러움이 담겨 있었다. 그는 자신의 뱃살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나는 올해 안 되겠네. 더는 못 뛰겠어.”

고청운은 상대의 우람한 모습을 바라봤는데, 음, 작년보다 살이 좀 찌기는 한 듯 했지만 큰 변화는 없어 보였다. 

“몇 번 정도 운동을 좀 더 하시면 바로 돌아오실 겁니다.”

고청운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복근을 문질렀고, 하, 역시나 자신의 배가 그대로였기에 매우 의기양양했다. 

‘내가 올해로 서른넷이 되었지 아마? 역시 신경 써야 할 것은 신경을 잘 써야 해.’ 

그는 자신이 나중에라도 올챙이처럼 배가 불룩하게 나온 중년이 된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다.

왕 주사는 고개를 가로젓다가 고청운에게 물을 가져다주던 고영량을 힐끗 쳐다보고는 갑자기 그의 목을 껴안으며 나지막이 물었다.

“신지, 자네 집 맏이의 성혼 상대는 찾아보고 있는가?” 

깜짝 놀란 고청운은 무의식적으로 그를 밀어내며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온몸에서 땀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이리 가까이 붙으시다니요.”

머리를 재빨리 굴려보던 고청운은 왕 주사 집에 성혼 적령기의 딸이 아직 시집을 가지 않고 있었기에 솔직히 말했다.

“아직 안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올해 겨우 14살이니, 너무 어려서 성혼문제는 급하지 않습니다.”

고청운은 확실히 급하지 않았다. 아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적어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여인을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청운은 물론 아들이 너무 일찍 한눈을 파는 것도 원치 않았기에, 적어도 아이가 시험에 합격한 후에 다시 성혼 문제를 생각하고자 하였다.

그는 고영량이 수재에 합격한 뒤, 심지어 연중소삼원(*连中小三元: 향시 시험 전 3번의 시험에서 모두 안수를 차지한 사람을 이르는 말)을 하고 나자, 다른 집에서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더 좋아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집안 규율에 ‘마흔이 넘어도 아들이 없는 경우에만 첩을 얻을 수 있다’라는 조항이 있어서 더 그랬다는 것은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간미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사교계에서 다른 귀부인들에게 자신의 집안이 인기가 매우 많다고 하였다. 고청운은 물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한때는 여인으로 살았었기에 여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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