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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339)화 (339/504)

339화. 모두의 공로

이튿날, 고청운은 이 비보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호부로 출근했다. 부모님 상을 당했을 경우에는 27개월의 복상 휴가가 주어졌지만, 고백산 같은 친족 관계로는 복상 휴가를 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의 고향집이 경성 근처라면 몰라도 월성같이 거리가 먼 곳은 휴가를 받아 조문하는 것이 불가능했는데, 왕복에만 두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상관이 복상 휴가를 비준해 줄 순 없었다. 

그에게 유일하게 다행이었던 일은 고영량이 고향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대신해 그가 고백산의 묘소에 절을 올리기라도 할 수 있었기에, 고청운은 그 점 하나가 참 위로가 되었다. 

휴가를 못 받았으니 고청운은 계속해서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속에는 상복을 입고 겉에는 관복을 입은 뒤, 신발은 간미에게 부탁해 흰색의 상복용으로 쓰이는 삼베를 둘러 상중임을 알렸다. 이러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모임에 초대하거나 집을 방문하는 일을 피할 수 있어, 번거로운 일들을 덜 수 있었다.

고청운이 큰할아버지의 비보를 알리는 서신을 받은 것은 이미 고백산이 세상을 떠난 지 1개월 남짓 되었을 무렵이었다. 원래 일반 가정에서는 복상 기간을 한 달 정도만 지냈으나, 결국 그는 3개월을 모두 채워서 복상하기로 하였다. 

복상을 지내는 동안에는 매우 조용한 나날들이 이어졌다. 사교적으로 접대에 응할 필요가 없었으니, 매일 호부와 집만을 오가는 생활이 이어졌다. 

복상하는 동안 고청운은 채식만 고수해도 상관없었지만, 고경은 아직 나이가 어렸기에 앞서 7일 동안 육식을 금한 것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고기를 금하는 것까지는 강요치 않고 요리에 기름을 좀 넣고 계란 정도는 먹여 가며 일반 가정에서 지키는 만큼만 규율을 지키도록 하였다. 

사실 고청운은 아예 육식을 철저하게 금해 버린다면, 육식을 즐기는 일반 가정집에서는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고청운 스스로는 엄격하게 규율을 지켰는데, 이런 행동이 오히려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그는 마침내 천천히 고백산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집에 있을 때 할 일이 없어 아예 하던 일을 계속했다. 

언급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것은,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는 시간 동안 화본을 써 내려가니 더욱 영감이 빛을 발했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 역시 더 평온한 마음가짐 속에서 진행하자 더욱 성과가 컸다는 사실이었다. 

* * *

3개월의 복상 기간이 끝나자, 고청운과 간미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버지, 형은 언제 돌아오나요?”

이날 서원의 휴일을 맞아 집에 돌아온 고영진이 고청운에게 물었다.

“분명 조만간일 게다. 네가 작성해 온 수업 내용을 아버지에게 보여 주려무나. 특히 네가 쓴 서예 솜씨를 좀 봐야겠다. 그간 성취가 있었는지 한 번 보자꾸나.”

고청운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꼬맹이는 성격이 밝고 쾌활했다. 장수원의 아들 장연해가 서원 내에서 그를 돌봐주었는데, 심지어 육훤도 아직 황립 서원을 졸업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고영진은 황립 서원에서 아주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사실 따로 떨어져 있던 고영량의 행적에 대해서는, 고청운도 속으로 기약이 없었다. 일반적으로라면 과거 시험의 합격자 발표가 난 후 고백산의 상(喪)을 치르고 나면, 방인소와 고영량이 날이 더 추워져 오는 여정에서 불필요한 고생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바로 경성으로 돌아왔어야 함이 옳았다. 

하지만 그들은 줄곧 석 달째 서신 한 통 보내오지 않았고, 고청운은 정말 이들에게 무슨 일이라고 생긴 것일까 봐 걱정이 되었다. 

‘혹시 스승님께서 귀경하기 싫으셨던 걸까? 아니면 도중에 무슨 일이라도?’

이런 생각이 들자 고청운은 좌불안석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매일 방충을 시켜 사람을 성문 앞으로 보내 그들을 기다리게 하였다. 도중에 무슨 사고라도 났다면 소문이라도 들려올 거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지금은 바닷길과 물길 모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남북을 오가는 상인들 덕에 소식이 더없이 잘 전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 * *

기약 없이 반복되는 기다림 속에서 마침내 방인소 일행이 돌아왔는데, 이때는 이미 11월 말이 된 시점이었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날씨가 추워져서 더 늦으셨다면 내년에나 겨우 고향에서 출발하셔야 할 뻔했어요.”

온 가족끼리 만나게 되자 원망스런 말을 하기도 했지만, 반가움이 더 컸다. 

간미의 불평에 연 씨가 답했다.

“집안에 일이 많아 예정했던 기한보다 많이 늦어져 너희들에게 걱정을 끼쳐버렸구나.”

“스승님,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이리 오세요. 바로 집으로 돌아가시지요.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방인소의 안색을 살피던 고청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그를 부축하며 길을 재촉했다.

고청운은 방인소와 연 씨를 마차에 태우고 나서 고영량을 보았는데, 고영량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 아이가 자꾸 이쪽을 쳐다보는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고청운이 아이를 한쪽으로 끌어당기며 물었다.

“네 외증조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게냐?”

고영량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맹렬히 흔들며 연신 부인했다. 

“아니에요, 그런 것은 아니고요…….”

아이가 고청운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해서 말했다.

“……외증조할아버지와 관계가 좀 있기는 해요. 저희는 본래 9월 중순이면 돌아오려고 했었는데, 증조할아버지께서 갑자기 몸이 좀 안 좋아지셨어요.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계속 출발을 미루다 보니, 귀경 일정이 이렇게 늦어지게 된 거예요. 다행히 지금은 괜찮아지셨어요.”

그 말에 고청운은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는 처음 고백산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할아버지와 큰할아버지가 형제의 정이 워낙 돈독해 한평생 큰 갈등 없이 잘 지내온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남겨진 한 분이 영향을 받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었다.

“그럼 큰증조할머니 건강은 어떠시냐?”

고청운이 급히 물었다.

“저희가 출발할 때는 괜찮으셨어요. 당숙과 사촌 형들이 함께 돌봐드리고 계세요.”

고영량은 아버지의 안색이 다시 좋아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고청운과 고영량은 그간의 소식을 한 차례 교류했다. 뒤이어 고청운은 잠시 집안에 대한 걱정은 뒤로하고 다시 고영량에게로 시선을 돌려 큰아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는 1년 동안 키가 훌쩍 자라 있었다. 막 경성을 떠날 때 아직 아이의 모습이었다면, 지금 보이는 모습은 소년이라고 불러도 됨직했다. 

“그래, 잘했구나. 연달아 세 번씩이나 1등으로 급제를 하다니, 애당초 난 너만큼 대단하지 않았단다.”

고영량의 성적이 비할 바 없이 만족스러웠던 고청운이 칭찬하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바짝 긴장해 있던 얼굴의 고영량이 그 말을 듣더니, 마음속으로 매우 기쁜 듯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다 아버지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고청운이 아이의 머리를 두드렸다.

“아버지가 아니라 너의 외증조할아버지겠지.”

고영량이 헤헤 웃었다.

“이 모든 것은 모두의 공로인 거죠.”

“부자가 언제까지 대화만 나눌 예정이십니까? 빨리 안 타실 건가요?”

저쪽에서 간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니다, 가요.” 

고영량이 잽싸게 대답했다.

고청운은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는데, 방금 전까지 아이가 다 컸다고 생각했거늘 결국에 아직은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 * *

고영량이 경성으로 돌아온 다음 날, 사장정과 하겸죽, 장수원은 아이의 도착 소식을 듣고 수재 합격을 축하하는 축하 선물을 보내왔다.

고택의 안채에는 토항(*炕床: 침상 아래 화로를 넣어 따뜻하게 만든 중국식 난방 장치)이 하나가 있었는데, 위쪽은 몇 명이나 앉을 수 있는 크기였다. 침상에서는 온기가 넘쳐났고, 그 옆의 숯 화로에서도 열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이때 간미는 마침 모두가 보내온 예물 목록을 작성해서 장부에 기록을 마치고 고영량에게 말했다. 

“얘야, 여기서 네 맘에 드는 것이 있거든 뭐든 가져다 쓰렴. 모두 사촌형제들이 네게 보내준 것들이란다.”

고영량은 수줍게 웃으며 간미에게 목록을 넘겨받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고영진도 고개를 내밀고 소리쳤다.

“우와. 형, 나는 완성(*皖省: 현성(宣城)에서 나는 서화용의 고급 종이)이 가지고 싶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화선지는 희디희고 섬세한 광택이 나며 가격도 매우 높아 그간 문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고청운조차도 이 화선지는 아주 아껴 썼고, 고영량 자신도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넌 아직 이렇게까지 좋은 종이를 쓸 필요 없잖아.”

고영량이 그의 목을 껴안았다.

“다른 것을 다시 한번 봐. 내가 보기에는 이 황옥으로 만든 이무기 장식이 달린 문진이 좋아 보이는데. 내 기억으로는 네 책상 위의 문진이 네가 주워온 돌이었지 아마? 그거 아직까지도 쓰고 있니?”

고영진이 고영량의 어깨에 머리를 비벼대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거 필요 없어. 너무 귀한 물건이라, 서원에 뒀다가 누가 망가뜨릴까 봐 걱정되는 걸.”

“누가 널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

고영량은 깜짝 놀라 고개를 숙여 그를 보았다.

“있을 리가, 내가 우리 서원의 녀석들처럼 소심한 약골도 아니고. 걔들은 늘 울기만 해, 툭하면 눈물을 흘려대는데 무슨 여자애들 같아. 게다가 선생님한테 가서 일러바치기는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린 다 그런 애들 싫어해. 흥, 성격이 고운 곳이 없으니 남들이 더 업신여기지.”

고영진은 입을 실쭉거리다 말고, 작은 가슴을 펴고 힘껏 두드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축국도 잘하고 활도 잘 쏘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 친구도 몇 명 사귀어 놔서, 다른 동기들은 나를 건드리지도 못 해.”

고영량은 그런 그를 계속 보고 있다가 중얼거렸다. 

“다만 모두 덜렁대는 친구들이라 물건을 쉽게 망가뜨린다는 거구나.”

결국 고영량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말을 믿기로 하였다. 

“형, 이번에 시험에 합격해 수재가 되다니. 내 동기들이 모두 다 형한테 감탄하고 있다고.”

고영진이 형을 우러러보는 눈에 빛이 났다. 

“형이랑 아버지 모두 수재에 합격했으니 나도 나중에 시험을 치러 갈 거야.”

고영량은 동생이 보내는 눈빛을 보고 순간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밖에서야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겸손하게 있었으나, 자기 가족인 남동생 앞에서는 진실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었기에, 고영량은 턱을 살짝 치켜들더니 여전히 겸손한 말투로 말했다. 

“분명 잘 할 수 있을 거야. 소주나 장수성 일대에 비하면, 우리 임산현은 과거를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거든. 그쪽 지역은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하더라고.”

그는 일찍이 황립 서원에서 6살 때부터 12살까지 지내면서, 서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두 무리로 갈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무리는 문관, 또 한 무리는 무관으로 갈라졌는데, 그 경계가 매우 뚜렷했다. 동생의 친구들은 틀림없이 대부분 문관 집안의 아이들이라 미래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를 준비를 하게 될 테니, 당연히 과거 시험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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