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후대를 위해
그가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고 손을 씻고 나오니, 간미는 고경에게 글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고청운은 열심히 공부하는 꼬마의 모습에 방에 들어서려던 것도 잊고, 마냥 빙그레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딸은 올해 5살이 되었다. 이전에 그와 간미는 늘 딸아이가 아직 어리고 집안의 막내라고만 느꼈기에 아이에 대한 공부도 비교적 느슨하게 접근하여, 보통은 아이에게 시를 외우는 것 정도만 가르치고 공부에 대한 압박은 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올해 한 연회에 아이를 데리고 나간 후, 꼬맹이가 자진해서 공부를 하겠다고 할 줄이야. 둘은 이것에 대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딸이 기왕 발전을 원했으니 고청운과 간미는 당연히 기뻐하며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는데, 아이의 나이로는 아직 밖에 나가 공부할 곳을 찾을 수 없었기에 우선은 먼저 간미가 직접 집에서 글공부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역시나 고청운이 일전에 예상했던 것이 맞았다. 공부에 있어, 고경은 오라버니들보다 더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실로 드러났던 것이었다. 딸아이는 한 번 기억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좀처럼 잊어버리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였다.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사람도 모두 한마음 한뜻이라, 그들 부부는 매우 기뻐했는데, 가르치는 사람 입장에서도 매우 성취감이 있었다!
고청운은 이 추세대로 계속 공부해 나가기만 한다면, 꼬맹이가 8살이 되면 반드시 황립 여자 서원에 입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경의 공부가 일단락되자, 간미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고청운과 이야기할 여유가 생겨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부군, 오늘 저녁 식사로는 무엇을 드시고 싶으신지요? 부엌에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평소와 같아도 되오.”
고청운은 다가가서 고경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고 허리를 숙여 물었다.
“소아야, 오늘은 무슨 내용을 공부했니?”
고경은 희고 보드라운 얼굴에 갑자기 기쁜 웃음을 띠더니, 작은 손가락으로 책상 위의 책을 가리키며 앙증맞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머니께서 제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어요. 아버지, 이제 읽을 줄 알아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나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럼 한번 외워보겠니? 아버지가 잘 들어보마.”
“좋아요.”
고경은 눈이 휘어질 정도로 웃더니 곧이어 한 글자, 한 글자 외워 나가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계속 생각해 보니, 딸은 마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시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왈엄여경, 효당갈력, 충칙진명, 임신리박(*曰严与敬, 孝当竭力, 忠则尽命, 临深履薄: 임금을 대하는 데는 엄숙함과 공경함이 있어야 한다. 부모를 섬길 때에는 마땅히 힘을 다하여야 한다. 충성함에는 곧 목숨을 다하니 임금을 섬기는 데 몸을 사양해서는 안된다. 깊은 못에 이르는 것 같고 엷은 얼음장을 디디는 것 같다,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다.)이라 하였다. 아버지, 다 외웠습니다.”
고경이 새까만 큰 눈을 깜박거리며 고청운을 쳐다보았다. 딸아이의 치켜든 속눈썹은 매우 날렵하고도 풍성하여 아이의 눈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고경은 커갈수록 눈썹이 짙어져 갔는데, 이것은 고청운과 닮아서였다. 이목구비는 간미의 장점을 물려받아서, 전체적으로 보면 귀엽고 부드러운 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고청운은 마음속으로 자신의 딸이 매우 어여쁘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고청운은 얼마 전에 사장정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장정은 하나뿐인 아들이 자랄수록 어여쁘다고 하였는데, 그 아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여자아이처럼 생겼다며 어찌 그의 세 딸은 그렇게도 안락공주만을 닮았을까 궁금해한다고 하였다. 심지어 사장정은 딸들과 아들의 용모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었다.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고청운은 마음속으로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사장정이 하고자 했던 말은 바로 자신의 아들이 그의 미모를 물려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을 그렇게 함축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고청운은 의문이 들었다.
딸 바보인 고청운은 자신의 딸이 정말 외모를 잘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면서, 한참 웃다가 결국 아이를 끌어안고 진한 뽀뽀를 해 주며 칭찬했다.
“소아야, 정말 잘 외웠구나!”
그는 간미와 상의해 본 결과 <여계(*女诫: 여성 교양에 관한 책)>라는 책을 고경의 첫 글공부 책으로 삼지 않기로 하고, <삼자경>과 <천자문> 그리고 일반 시집 등으로 글공부를 시작하기로 하였다. 이 밖에도 고경은 여홍(*女红: 여자들의 일을 뜻함(바느질, 자수 같은 일))도 배워야 했는데, 아직 손이 작아 본격적으로 바늘을 들지는 않았지만 옷감, 색감을 구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딸의 교육에 대해 고청운은 일반적으로 모두 간미의 말을 따랐고, 자신은 좀처럼 관여하지 않았다.
* * *
저녁 식사 후, 세 사람은 마당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부군, 새로 출간한 화본은 잘 팔리고 있나요?”
고경이 걸음을 멈춘 것을 보고 함께 쭈그리고 앉아 만개한 국화와 월계화를 살펴보고 있던 간미가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괜찮은 편이오. 이제 막 3권이 나왔는데, 적어도 1~2년은 더 연재할 책이고, 만약 내가 더 바빠지면 완결이 더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소. 반응이 어떤 지는 아직 확실치 않소.”
돌아보니, 그가 이렇게 많은 책을 써오면서 그가 가장 신경 썼던 책은 바로 <매화 반지>였다. 고청운은 지금 쓴 이 책 역시 마음을 많이 쓰면서 써 내려가고 있었는데, 그때보다 지금 자신의 필력이 더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한 단락에 글로 꾸려나갈 정도는 되었으니 말이다.
그는 이번 화본에 도시 계획의 중요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었다. 그리고 식민지 개발의 이점과 개발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이 외에도 소소한 지식들을 수록했는데, 예를 들면 입으로 불을 어떻게 삼키는 묘기가 가능했는지에 대한 소소한 상식을 곁들여, 사람들에게 상식을 전달하고 새로운 지식을 쉽게 보급하고자 하였다.
간미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고경이 꽃을 따려는 것을 보고 급히 소리쳤다.
“소아야, 꽃을 꺾어서는 안 돼.”
이어서 또 한바탕 잔소리가 이어졌다.
고경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돌아서서 꽃잎만 만지작거리며 이따금 ‘꺄르륵’ 하고 웃었다.
“소아가 사내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간미는 고경의 머리에 두 가닥으로 묶어 올린 올림머리를 보며 감탄하며 말했다.
“아이가 이리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내아이였다면 장원이라도 거머쥐었을 거예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이들의 첫 글공부는 모두 그녀를 통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세 아이들 간 자질 차이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었다.
천부적인 면을 따지면, 세 아이 모두 가지고 태어난 것은 비슷했다. 고영량이 오히려 고영진이나 고경보다 더 나을 수 있지만,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지금의 고영량은 스스로 깨칠 수 있는 정도의 경지로 좋은 학습 습관을 기른 반면, 고영진은 성격이 아직 털털하니 어른들이 더 잘 가르치고 예의주시해야 했고, 고경은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성격이 침착하여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공부를 낙으로 여길 줄을 알았다.
“쉿…….”
고청운이 급히 검지를 세우고 그녀의 말을 멈추게 했는데, 발밑의 고경을 바라보니 아직 아이는 간미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그는 얼른 간미를 한쪽으로 끌어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말은 소아 앞에서 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간미는 약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그를 보고 있었다.
“소아가 비록 아직은 어리지만, 가끔은 우리가 말하는 걸 이해하고 있는 듯하오. 당신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알면 나중에 아이가 너무 속상해하지 않겠소?”
고청운은 간미가 지금 어떤 감회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는데, 자신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고경이 만약 현대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었다.
간미는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이 지나서야 운을 뗐다.
“네, 앞으로 이런 말을 할 땐 주의해야겠군요.”
“미아, 정말 현명하오.”
고청운이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
“지금 작은 화단에 꽃이 이렇게 많이 피어있는데, 하나를 골라 꺾어 보는 건 어떻소? 스승님의 그 옥게빙판은 어떠하오? 스승님은 어차피 내년에나 돌아오실 텐데.”
방인소의 그 국화는 몇 년 동안 잘 번져서 지금은 이미 작은 무리를 이룰 정도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도 감히 이런 마음을 먹진 못했을 것이었다.
간미는 피식 웃더니 그의 코를 콕 찍으며 말했다.
“당신도 참, 외할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벌로 또 책을 외우셔야 할 텐데도요?”
고청운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런 것은 들키고서 다시 이야기해도 되잖소.”
방인소 얘기가 나오자, 고청운과 간미는 지금 그들이 고향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내년에는 소석이, 사촌 형의 아들인 동동이, 그리고 유가아(*瑜哥儿: 간유로, 간미의 남동생)가 같이 현시를 봐야 하고, 셋째 사촌 동생도 원시 시험을 봐야겠군요. 집안에 수재(秀才)가 몇 명 더 나왔으면 좋겠소.”
고청운이 탄식했다. 그러다 그는 문득 하겸죽이 생각났는데, 몇 년 동안 그의 집에서는 두 아이가 요절하고, 결국에는 지금 1남 1녀만이 남게 되어 매우 귀하게 자라고 있었다. 올해 그의 집 큰아들은 17살이 되었는데, 지금 이미 수재의 신분이었다. 막내딸은 고영량보다 한 살 아래인 11살로, 얼마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얌전하고도 대범한 기질의 아이였다.
간유의 경우, 올해 15살로 작년에 귀향했을 때 간지원이 올해 과거 시험을 치를 준비를 시키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작은 도화진에는 고씨 가문과 하씨 가문이 있었는데, 하씨 가문은 대대로 문인을 배출해 내고 있었고 공명이 제일 적어봤자 수재였다. 그의 집안의 저력이 고씨 가문보다 더 깊다는 것을 생각하니, 고청운은 후대를 위해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고씨 가문이 선비 가문으로 거듭나게 된다면, 아무렇게나 높은 사람에게 줄을 서지 않고 분수만 잘 지켜도 오래도록 집안을 잘 건사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만약 정말 시험에서 잘 풀리지 않아 공명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아이들에게 전문적으로 회계를 보게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그는 지금 호부에서 일하고 있고, 산술에 대한 연구도 하고 있으니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더욱 적합했다.
상황을 보아하니, 고청운은 시간을 따로 들여서 장부를 제작하고 관리하는 교재를 집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교재에 따라 학급을 구성하고, 이론과 실습을 결합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전문 회계를 보는 인재를 양성해 낼 수 있을 것이었다. 이는 최소한 고씨 가문에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고, 이런 것이 바로 고씨 집안의 가전 학문의 연원이 되어 줄 것이었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고청운은 간미에게 자신의 생각에 대해 말했다.
간미는 잠시 중얼거리다가 말했다.
“부군, 좋은 생각이에요. 설령 우리 집 아이들이라고 한들, 앞으로 모든 아이들이 다 독서에 대한 자질이 있거나 시험에 대한 운이 있지는 않을 진데, 회계 수업을 진행하여 전문적으로 회계를 보게 하는 것은 생활에 있어서 좋은 활로가 될 테니 전혀 창피해하실 것 없어요.”
“그렇소, 아버지께서 나를 처음 공부시키러 보내셨을 때 내게 가장 기대했던 것은 내가 수재에 합격할 정도로만 공부하여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것이었소. 그때도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내가 전문 회계인이 되는 것이었소.”
고청운은 이 말을 꺼내며 옛일이 생각나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원래 목표도 수재에 합격하는 것까지였는데, 12살에 첫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방인소라는 스승님이 있었기에, 그는 야망이 점차 커져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간미는 아주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고청운이 이미 식사를 마친 지 30분 정도 된 것을 알아차리고 체력 단련을 하러 갈 때까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