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35)화 (335/504)

335화. 두 아이

“아니요, 연기는 하지 않습니다.”

사장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색을 했다.

안락공주는 잠시 넋을 놓고 있다가 문득 질문을 했다.

“부마, 방금 한 말은 당신의 속마음이 담긴 말인가요? 아님 정말로 천보를 시샘해서 한 말인가요?”

그러자 사장정이 펄쩍 뛰며 말했다.

“설마 그럴 리가 있습니까? 하하, 그럴 리가. 내 어찌 자기 아들을 질투할 수가 있겠습니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말을 하다 보니 말투에 점점 더 확신이 서고 있었다.

“천보는 우리의 하나뿐인 아들이 아닙니까? 귀여워하기만 해도 모자란 것을. 아이가 어려 내 모든 것을 아이 앞에 가져다주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더 중시해도 모자라지요!”

안락공주는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그제야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오늘은 일찍 오셨군요. 고신지와 술 마시러 나간 것이 아니십니까?”

다른 사람과 나갔더라면 그녀는 마음이 놓이지 않을 테지만, 그 사람과 함께 나가는 것은 매우 안심할 수 있었다.

“신지가 어디 나와 놀아줄 시간이 있는 사람입니까? 그는 너무 바쁘지요. 대황자가 지금 호부에 있는데, 듣자하니 요 며칠 그가 일하고 있는 운남사에 계시다고 하더군요. 무슨 예년의 장부를 보면서 지금 호부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듣고 계시답니다. 

나와 유시(*酉 : 오후 5시~7시)에 만나자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신지는 그에게 자료를 찾아줘야 해서 술시(*戌时: 오후7시~9시)가 되어 겨우 약속 장소에 당도했지요. 나를 한 시진이나 기다리게 하다니!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대황자를 응대하느라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말을 들은 안락공주는 다시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무슨 생각한 바가 있는 듯했다.

사장정은 아무렇지 않게 책상 위에 놓여있던 화본을 마치 귀한 보물을 전해 주듯 건네주며 말했다.

“이 책은 ‘황량일몽(黄粱一梦)’이 새로 펴낸 화본인데, 제 입맛에 딱 맞는 내용에 남성적인 시각에서 쓰인 책입니다. 어떤 나라의 사람이 해외에서 금광을 발견했는데, 그 지역의 토질이 비옥하고 기후가 적당한 것을 보고, 귀국하여 왕에게 보고하고 작위를 하사받은 후 결국 왕에 의해 정식 파견되어 해외에서 한족의 도시를 건설하는 내용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공주께서 반드시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안에 수록된 내용들이 꽤나 참신하거든요.”

‘만약에 나였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성곽을 쌓는 내용을 담았을 텐데, 그러면 얼마나 아리따웠을까?’

안락공주는 그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고신지가 쓴 책이라면 본궁도 볼만하지요.”

‘방금 부마가 말했던 이 화본에 고신지는 도대체 무슨 장난질을 해 둔 걸까? 그런 일을 일반 사람이 할 수 있기나 한 건가?’ 

“아니, 고신지는 ‘일침황량’과 ‘산곡거사’라는 필명을 쓰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무슨 ‘황량일몽’이라는 필명을 쓰는 거죠?”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결국 어디가 이상했는지 떠올렸다. 

“맞습니다. 신지 본인의 말로는 자신은 조정의 명관이라, 공명정대하게 화본을 쓰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다고 하는 소리도 듣기 싫고 해서 이렇게 새로운 이름을 생각해 낸 것이지요. 어차피 ‘일침황량’이라는 필명이 유명세를 타고 난 뒤에 많은 사람들이 유행에 휩쓸리듯 비슷한 필명을 만들어 써대고 있지 않습니까. 남들이야 어떻게 추측하건 말건, 인정하지 않고 그들이 추측하게 두면 될 일이지요.”

사장정도 처음엔 동의하지 않았지만 결국 고청운에게 설득당하고 말았다.

오늘은 고청운의 화본이 새로 나온 날로, 화본의 제목은 예전처럼 단순하고 거칠게 <해외건성기(海外建城记)>라고 지었다. 

안락공주는 잠시 책을 뒤적이며 조금 읽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궁은 책 내용이 조금 더 나오면 그때 가서 몰아서 다시 보겠습니다. 조금 있으면 묘아(妙儿)의 생일이라 본궁이 연회를 열어야 하는데, 연회석에서 이야기 나눌 한두 마디 정도 있으면 우선은 그것으로 되었어요.”

“또 누가 오셔야 하는군요.” 

사장정은 중얼거리면서 안락공주의 손을 잡고 말했다.

“공주, 하고 싶은 것은 다 하십시오. 나는 어떻게 해도 당신 편입니다.”

그는 안락공주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녀도 그를 속인 적은 없었지만, 자신의 일에 연루시키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사장정은 자신이 공주에게 장가를 들은 이상, 어떤 일에도 전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유일하게 위안이 된 것은 공주가 매사에 은밀하게 행동하고, 겉으로는 남동생들을 모두 동일시하게 대하며, 평소에는 조용하게 행동했다는 점이었다.

그는 공주의 이런 행동에 또 다른 저의가 계산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바로 천보에게 작위를 얻어주기 위해서였다. 공주의 다른 딸들은 총애를 받아 작위가 주어졌지만, 아들에겐 이름뿐인 직책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작위 책봉에 대해서는 황실이 매우 신중하게 다루는 문제라서, 공로가 없으면 작위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자기 집안에도 작위는 있지만, 자신이 공주를 아내로 맞이한 이후 그의 아버지, 큰형 내외 모두 후일 재앙을 방비하기 위해 자신의 집안에 재앙이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황실에 핑계를 대어 작위를 반납했다. 그가 어이가 없어 할 정도로 그들은 더욱 신중히 행동하고 매사에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좋습니다. 이리 본궁을 지지해 주신다니, 그럼 지금 가서 정권을 좀 연마하고 오세요. 부마, 요즘 연무장에서 수련하시는 시간이 줄어드신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마친 안락공주는 사장정을 문밖으로 밀어서라도 나가게 할 기세였다.

사장정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녀로부터 급히 멀어지며 말했다.

“내가 지금 너무 바빠서 무슨 주먹질 같은 것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어, 그래, 연극의 종류에 대해 정의를 해야 하는데, 이게 정말 할 일이 많습니다. 정말로 바쁩니다. 이 일은 신지가 나한테 해 보라고 권유를 해서 시작하게 된 일인데, 만일 내가 정리해 놓은 내용이 진짜로 출판이 된다면 나도 저서가 있는 문인이 될 것입니다. 하하, 이것은 정말 큰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공주, 꼭 나를 응원해 주십시오.”

“그야 어렵지 않지요, 제가 손님을 몇 분 청하여 자료를 정리하게 하고, 출판할 때 공동 저서로 이름을 같이 올리시면 되지 않습니까.”

안락공주는 담담하게 그의 말을 따랐다. 

사장정은 잠시 어리둥절해졌다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 되지요. 그렇게 하면 남들이 만든 것이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찌 내가 남의 성과물을 점용할 수 있겠어요.”

“당신도 참, 아직 방법이란 것을 잘 모르시는군요. 우리 셋째 숙부께서 경서 몇 권을 읽으시고 나서 한 무더기의 문인들을 초빙하시어 도움을 얻어 책을 발간하신 적이 있는데, 그 책은 심지어 부황에게 칭찬까지 받았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는데 무얼 두려워하시는 겝니까? 하여간 우리가 돈을 내면, 당연히 그들을 도운 셈도 되겠지요.”

공주는 이 말을 마친 뒤 사장정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업어들고 정권을 연마하러 가려고 했는데, 그가 발버둥치자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 역공을 배울 생각은 없나요?”

그 말에 사장정은 멍하게 지난날 붙잡혀 열심히 연습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연습 덕분에 얇게나마 근육이 잡혔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자 다시 천천히 사라져 버렸다.

“알겠습니다, 알았다고요! 제가 스스로 갈 테니, 붙잡지 마세요.”

사장정의 눈에서 안광이 빛났다. 그는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먼저 서재를 나섰는데, 신이 난 모습이었다.

뒤에 있던 안락공주는 이번에는 부마가 얼마나 버틸지 기대를 하면서도 내심 고개를 저었다.

* * *

월성 임양부 임계촌.

고영량은 임계촌으로 돌아온 후부터 사랑에 포위되어 있었는데, 집안 어른들이 그에게 너무 잘 대해 주며 무엇이든 아낌없이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계란을 먹겠다고 하면 절대 오리알 같은 것으로 대체해서 주지 않고 아주 충실히 오직 아이가 원하는 것만 챙겨 주며 총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이런 대우에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마음이 상쾌하여 하루 종일 꿀단지 속에 갇혀 있는 것과도 같은 기분을 느꼈다. 다만 그는 뜻밖에도 경성에서는 자신에게 늘 잘 대해 주던 외증조할아버지가 외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그의 친아버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엄하게 대하자 괴로웠다. 

이날 저녁, 고영량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택으로부터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왔는데, 오는 길에 타고 있던 우마차에서 잠이 들어 집 앞에 당도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막 잠에서 깨어난 그는 어른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저는 아무 일 없어요. 괜찮아요.”

하나같이 관심 어린 눈빛들이 보이자, 고영량은 서둘러 설명했다.

“그냥 우마차가 너무 느려서 칠칠치 못하게 잠이 들어버린 것뿐이에요.”

소진씨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애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배는 안 고프고?”

고영량은 눈을 깜박이면서 ‘배고프다’는 눈빛을 보냈다. 사실 돌아오기 전에 외증조할아버지 댁에서 간식을 좀 먹고 와서 그리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으나, 잠을 자고 일어나니 배가 좀 출출하기는 하였다. 

노진씨가 그 말을 듣자마자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이 증조할머니가 바로 사람을 시켜 먹을 것을 좀 만들어 오마. 너는 아직 어리고, 몸이 자라고 있으니 굶어서는 안 돼. 앞으로 네 아버지 키만큼은 자라야지.”

고영량이 머리를 매만지며 웃어보였다. 

“증조할머니, 걱정 마세요. 저는 분명히 아주 키가 크게 자랄 거예요. 그리고 집에서 한 훈제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요.”

“좋다, 우리 소석이가 먹고 싶은 걸 다 구해다 주마.”

이젠 제법 무거워진 증손자가 자신의 팔을 안고 응석을 부리는 것을 보자, 노진씨는 마음이 다 녹아버리는 것만 같았다. 웃느라 입이 다 다물어지지가 않아 이빨 몇 개밖에 남지 않은 입 속이 다 드러난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바로 몸을 돌려 작은 걸음으로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때 고계산이 묻기 시작했다.

“소석아, 외증조할아버지 내외는 잘 계시느냐?”

“네. 외증조할아버지께서 또 뒷마당에 씨를 뿌리고 채소를 심을 준비를 하고 계세요.”

웃어른들의 외증조할아버지에 대한 관심에 대해, 고영량은 일찌감치 익숙해져 있었다.

만약 외증조할아버지가 싫어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집안의 웃어른들이 틀림없이 사흘이 멀다 하고 자주 찾아뵙고, 또 바지런히 물건을 싸다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다행이구나, 좋다.”

고계산은 만족스러운 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충고했다.

“외증조할아버지는 네게 좀 엄하게 하시지만, 그건 다 네가 잘되라고 그러시는 것이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고대하와 소진씨는 큰손주가 매일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오는 것을 아쉬워했지만, 그의 공부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특히 그의 공부를 봐주고 있는 대상이 방인소였기에 더욱 그랬다.

지금이야 고청운이 정6품 관원이라지만, 앞으로의 직위는 방인소보다 높아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대하와 소진씨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방인소의 지위가 매우 높았고, 또 그가 고청운의 스승이라는 것만으로도 만약에라도 있을 수 있는 반대 의견을 그들의 뱃속에만 머물게 할 뿐,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지는 않았다. 

고계산과 노진씨 역시 같은 생각이었는데, 증손자가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는 것이 나중에 그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영량을 향한 이런 호의에 대해 처음에는 고청평과 고청안의 아들들이 질투하기도 하였다. 고향에 내려가서 늘 사랑만 받던 어린 아이들이지 않은가. 그들은 요즘 이 큰형님이 고향을 돌아오자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등이 그에게만 빙빙 맴돌았기에 기분이 언짢았다.

하지만 그까짓 불쾌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작년에 고영진과 고경이 돌아왔을 때 이미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어 어느 정도 면역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었다. 게다가 경성에서부터 고영량이 그들에게 가져온 선물과 큰형님으로서 몸소 선보인 우호와 총명함은 두 꼬마가 태도를 바꾸고 그를 숭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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