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화. 재산 (1)
고청운은 정신을 차리고 앉아 같은 상에 앉은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고청운이 살펴본 바로는 자신의 관직과 지위에 비추어 보아 원래 장수원과 한 상에 자리했어야 했는데, 후부에서 자신을 가족석 가까이에 배치해 둔 것 같았다. 이곳에는 담자례가 동석해 있었고, 물론 초유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초유는 한림원을 나와 첨사부(*詹事府: 황자가 거주하는 동궁의 살림 및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로 갔는데, 그 후 두 사람은 만날 기회가 영 뜸해졌다.
고청운은 태자가 훗날 황제가 된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출세를 위해 미리 그에게 아첨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이유엔 그가 게을러서도,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도 있었다. 분명 아첨꾼인 그가 하나 더 늘어났다고 해서 받는 이익이 늘지는 않을 것이고, 그가 아첨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이 생길 것도 아닐 터였다.
고청운은 자신이 어차피 그쪽으로는 머리도 잘 돌아가지 않으니, 그런 물에 흐려지고 싶지 않았다. 이에 차츰 초유와의 관계도 냉랭해졌고, 이따금씩 어쩌다가 만나면 몇 마디 정도 나누는 게 다였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말이다.
초유는 3년에 한 번씩 승진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첨사부 우춘방(*右春坊: 태자가 거주하는 궁)의 종5품 관리로 관원으로 승진했고, 관직명은 우유덕(右由德)이었다. 그는 관직 생활 행보가 빠르고 안정적이어서, 한 무리의 동기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고청운은 그들 진사 동기들 중에서 초유나 공번충 등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계속해서 승진을 거듭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자리걸음 중이었다.
이때의 초유는 확실히 의기양양해 보였다.
그가 고청운을 보면서 화기애애하게 웃었다.
“신지, 오랜만이네.”
초유와 고청운은 서로에게 손짓을 하며 담자례를 사이에 두고 몇 마디 잡담을 나누었다.
“언제 축국 경기나 같이 갈까?”
“좋지요.”
초유 역시 축국의 명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요, 둘 다 그만하시죠. 저를 이 자리에 없는 셈 치려 하십니까?”
담자례는 두 손을 맞잡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고청운과 초유는 그의 성난 척하는 얼굴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니면 우리가 자리를 좀 바꿀까?”
초유가 웃으며 제의했다.
“저는 싫습니다, 여기 앉아 있고 싶습니다.”
담자례는 검게 변한 얼굴로 불만을 표했다.
고청운은 그 모습에 이마를 짚었고, 함께 상에 앉아 있던 몇몇이 자신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기에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자신들이 같은 해 과거 시험에 합격한 진사 동기이자 한림원 동기로만 보일 테니, 자신들이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 * *
축하연이 끝나고 고청운 일가족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시간이 이미 너무 늦어서 하마터면 통금시간을 넘길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지금은 경성 통금 시간이 갈수록 늦춰지고 있었고, 명절에는 통금마저 없애 주는 추세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후부 댁에 하루를 머물다 와야 했을 것이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또다시 술기운에 얼큰했지만, 이번에 간미는 그에게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소세자(小世子)의 성혼을 어찌 이리도 기뻐하십니까?”
간미는 그를 등받이 의자에 앉게 도와주고 웃으며 물었다.
고청운은 얼굴이 불그스름한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당연하지 않소, 성혼했다는 것은 육훤이 어른이 되었다는 말이니 말이오. 아, 오늘 밤 그 아이가 술을 권하는데, 아주 기뻐하지 뭡니까. 미아, 육씨 집안은 정말 인정이 후한 것 같소. 나는 단지 육훤을 2년 밖에 가르치지 않았을 뿐인데, 나를 계속 스승으로 대해주더라고요. 춘절 명절에도 나를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주지 않소. 미아, 내 어찌 너무 과분하게 받는 것에 미안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랬다, 오늘 밤 그도 여러 사람이 자신과 후부와의 관계를 논하고 있는 것을 들었다. 고청운은 스스로도 후부의 덕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술기운을 빌어 간미에게 이 일을 털어놓았다.
“소세자는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지요. 두 분의 감정이 서로 좋은 것은 당연한데 부끄럽고 말고 할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딴 생각 말고 어서 해장탕을 드시고 씻고 주무셔야지요.”
간미는 그의 이마를 더듬어 보았지만, 몸이 나쁘거나 하는 이상은 발견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오. 나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질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소.”
그가 시쳇말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그는 밤새도록 아무 말도 더 하지 않았다.
* * *
8월, 육훤이 그들에게 안겨준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청운은 자신이 투자했던 선박이 드디어 항해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싣고 온 물건의 거래가 다 끝나고 나니, 왕씨 집안에서 보내 온 돈이 무려 은자 1,080냥이나 된다고 하였다.
1년을 기다린 것을 감안하고 원금 500냥을 들였는데, 이렇게나 많이 100%의 이윤으로 돈이 불어나다니. 역시 해상 무역의 이윤이 크다며 고청운은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아직 이렇게 적은 돈을 투자했을 뿐이었는데, 더 큰 액수를 들이면 어찌 더 많이 벌지 않겠는가?
돈을 받은 고청운과 간미는 자신들의 작은 금고 속을 가늠해 본 후, 다음 단계의 재정 정비 및 투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 *
가을 오후, 하늘은 높고 공기는 상쾌했다. 하늘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취하게 할 정도로 하늘은 파랗고, 나른한 햇빛은 흰 벽과 기와를 비추고 있었다.
정원의 정자에서 고청운은 반쯤 누워 졸고 있었는데, 그의 몸 위에는 고경이 엎드려 있었다. 꼬맹이는 작은 화원에서 한참 놀다가 지쳐버렸는지, 고청운과 똑같은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가 이따금 또 갑자기 눈을 뜨면서 같이 나른해하고 있었다.
정자 중간의 나무 탁자와 나무 의자에서 간미는 가벼운 동작으로 주판을 튕기며 숫자를 계산하고 있었다.
“부군…….”
계산이 끝나자 간미는 그를 불렀다가 그 둘의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단 소아를 방으로 데려다 주겠소.”
고청운은 작은 목소리로 한마디 대답했다. 엎드려 자는 것이 몸에 좋지 않으니, 역시 딸아이를 침상에 눕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청운은 침실에서 나와 간미의 손으로부터 장부를 받아 보고는 매우 기뻐했다.
“좋군, 우리 집안에도 이런 가산이 생길 줄은 생각도 못했소.”
이 장부에는 아직 고향에 있는 250묘의 밭과 두 개의 점포, 집 한 채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이 2중 정원의 사합원에 딸린 논밭은 원래 20묘밖에 안 되었다. 그런데 올해 초 몇 명의 관원이 일을 저질러 그들의 가산이 나라로 귀속되었고, 이때 그 관원들의 밭과 상점들도 팔리게 되었지 뭔가.
고청운은 현직 호부 관리로서 직무상의 특성상 저가로 그 매물들을 취득할 수 있었기에, 이때 50묘짜리 작은 장원이 훌륭한 논인 걸 알아보고 매입했다. 이 논은 경성에서 반나절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400냥의 은자밖에 들지 않았는데, 이것은 이미 저가로 매입한 것으로 시중 가격보다 무려 3배나 싼 것이었다.
원래는 더 싸게 살 수도 있었지만, 고청운은 이를 위해 더 발품을 팔지 않고, 값을 깎지도 않았다. 더 큰 번거로움이 생길까 봐 우려했던 그는 이 정도 가격으로 이런 땅을 살 수 있다는 것에 이미 만족했기 때문에, 불필요한 행위를 추가로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거래 중에 그는 추가적으로 몇 가지 작은 옥기를 손에 넣게 되어서 간미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이를 보고 매우 기뻐했다.
이것 말고도 그들 집에는 세를 놓을 수 있는 정원이 있는 저택 두 채가 더 있었는데, 황립 서원 쪽에 위치한 작은 마당 하나에 네 채의 집이 함께 딸린 집의 경우, 한 채당 임대료가 몇 년 전 5냥에서 6냥으로 올라 한 달에 24냥의 수입이 생겼다.
여기에 처음 마련한 시험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일남방 쪽 저택의 임대료까지 더하면, 고청운은 임대료만으로 매달 40냥 정도의 수입을 얻게 되었다.
소지한 상가 두 채의 임대료로는 매달 25냥의 수입이 들어왔다. 물론 그중에서도 한 채는 간미의 소유이기에 공동 가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하면, 고씨 가문의 공통 장부에는 월 임대료 평균 수입이 55냥으로 기록되었다.
이렇게 계산하면 매년 660냥에 달하는 은자가 그들의 임대 수입이 되었다.
한편, 그의 녹봉과 가봉을 모두 합하면 매년 겨우 180냥밖에 되지 않았는데, 간미는 그래도 그의 연봉의 3분의 1을 받고 있었다. 그중 가봉을 제외하면 연봉으로 받는 녹봉은 매년 20냥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청운의 경우 이외에도 매년 약간의 부수입을 얻고 있었다.
장부에 따르면 작년 고택에서 취한 연간 수입은 거의 1,000냥에 달하며, 지출은 500냥이 넘었고, 매년 하는 연간 총결산을 마치고 나니 400냥 정도가 남게 되었다. 유감스럽게도 몇 년 전까지는 경성 주택의 임대 수입이 이렇게 높지는 않았으니, 지금 들어오는 것보다는 금액이 좀 적었다.
화본과 산술서의 수입에 관해서는, 화본은 더 말할 것도 없었지만, 꾸준히 계속 팔려나가고 있는 서적에 대한 수입의 대부분은 서재에서 가져가고 있었기에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산술 서적 수입은 그가 번역한 <기하학>이 큰 화제를 일으킨 것에 비해 화본보다는 수익이 적었는데, 인쇄 비용을 빼면 이윤이 겨우 원금을 상환할 정도였다. 다행히 그는 산술 서적으로는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원금 보전만으로도 성공한 셈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돈이 없어서는 안 되는 법인데, 다행히 고청운과 간미는 돈을 마구 쓰거나 돈에 집착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사람은 가산과 돈에 관심이 많은 덕에 매년 초과 지출을 하지 않았고, 여유 있게 생활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이들의 영향으로 아이들도 각자 자신의 용돈을 기록하는 장부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고청운은 그들이 자기 장부를 꺼내 연말에 꼼꼼히 계산하는 것을 보고는 복잡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이것이 바로 ‘부모는 몸소 말로 전수하고, 아이들은 귀동냥해가며 집안의 학문이 깊어진다.’는 옛말을 행하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아니면, ‘윗물이 탁하면 아랫물도 탁하다’인가. 하지만, 이른바 귀하고 유서 깊은 집안에서는 자신이 이런 말을 가져다 쓰는 것에 대해 분명히 모욕감을 느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 집안의 사적 활동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자신의 집안에 이 정도 소득이면 겨우 모자라는 것은 피한 셈이었다. 최근 3년 동안 모은 돈으로 올해 50묘짜리 장원을 매입하느라 남은 은전이라고는 겨우 700냥 뿐이었는데, 지금 갑자기 1,000냥의 은자가 한꺼번에 장부에 기입이 되니 집안의 장부가 전에 없이 보기 좋았다.
이때, 고청운은 맨 아랫줄의 남은 총액의 숫자들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얻은 이윤으로 계속 해운 사업에 투자를 해야겠소.”
고청운이 말을 이었다.
“공부(工部) 사람들로부터 지금의 선박 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있고 항해 기술도 향상되어 있어, 해운 관련 안전성이 더 높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소. 이에 해운 산업에 종사하는 상인들이 지금 매우 기뻐하고 있지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상인들은 10년이 다 되어가도록 공부에 돈을 기부하여 해선 설계에 공동 지원을 했는데, 그 결실이 이제야 빛을 발하게 되었다.
이 일로 공부는 일약 인기 부서로 떠올랐는데, 운영 경비도 충분하고 성과도 내고 있으니 황제와 조정 대신들의 칭찬을 받고 있어, 모두 그 부서에 들어가 함께 동승하고자 하였다. 고청운이 돌아보면, 요즈음 공부의 사람들은 걷는 것만 봐도 모두 바람기가 있어보였는데, 그 훈풍이 여러 사람의 가슴으로 번지고 있는 듯했다.
고청운은 조정 대신들과 그 위에 군림하는 황제의 안목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상인들이 나라의 제안에 기꺼이 돈을 내고 공부에 투자해 선박 기술을 개선하다니, 그 사람들이 얼마나 명석한 사람들이던가. 절대로 확실하게 이익을 볼 전망이 없었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 팽배한 관본위(*官本位: 직위나 권력으로 개인이나 단체의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는 가치관) 사상만 생각하면, 고청운은 또 무덤덤해지기도 하였다.
어찌되었건 그 역시 이번 일로 덩달아 기뻐했는데, 상선이 하루 빨리 세대교체를 하게 되면 나중에 그가 귀향하는 시간 역시 짧아져 더 안정적인 귀향이 가능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