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29)화 (329/504)

329화. 승진 (1)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간미는 고청운이 이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되고 말고는 그 결과를 보면 알겠지요.”

고청운은 예전에부터 봐온 과거 시험 응시생들을 떠올렸는데, 그들은 백발이 성성한데도 체념하지 못했다. 그들의 집안 형편이 넉넉하면 그만이지만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데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아내, 심지어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불구하고 시험 때마다 돈을 빌려가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사실 황제가 은혜를 베풀지만 않았더라면, 나이가 많은 응시생일수록 더 시험에 합격할 확률도 떨어졌을 것이었다. 나이가 너무 많게 되면 진사 시험에 합격한다 한들, 황제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간이 몇 년도 채 남지 않게 되니, 이는 자원 낭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또 여러 번 시험에 불합격한 사람이 작성한 답안지는 으레 화가 나 있거나 원망을 품기 쉬웠는데, 그러한 사람이 작성한 답안지를 주임 시험관이 좋아할 리 없었다. 예전에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방인소를 통해 들어 본 적 있었던 고청운은 이번에는 상성에서 답안지 채점을 하면서 직접 그러한 경우를 볼 수 있었다.

그런 답안지는 답안이 아주 뛰어나지 않으면 합격 답안으로 채용될 수 없었고, 채용된다고 해도 석차가 하위권으로 배정이 될 것이었다.

간미는 혼자 읊조리며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고청운이 말을 계속 해 나가자, 이 화제를 붙잡고 계속해서 대화를 진행해 나갔다. 

두 사람은 다시 하겸죽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하 사형이 이번 시험에 붙었으면 하오. 사형은 올해 37살이지 않소? 이번이 세 번째 시험이라 경험이 많이 쌓였다고는 하나, 아쉽게도 과거 시험이라는 것이 경험만 많이 쌓인다고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은 아니지요. 아, 만약 사형이 전에 낙방한 뒤에 바로 경성에 남아 3년 동안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부를 계속 했더라면 벌써 합격했을 거요! 예전에 같이 공부할 때부터 사형은 똑똑하고 또 열심히 했으니까.”

고청운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 나는 사형의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소석이와 스승님 내외, 그리고 사형이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게 할 참이오. 고향 가는 길은 멀고, 스승님 내외께만 부탁드리려니 나이를 드셨거나 어린아이 밖에 없지 않소. 하인들이 있다고 한들, 내 마음이 편치 않으니.”

하겸죽이 있다면 마음을 한결 놓을 수 있었다.

간미는 당연히 다른 의견이 없어 네, 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고청운이 내심 하겸죽이 3년간 경성에 머물렀으면 했을 때도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필경 그가 여기에 남게 된다면 고향의 처자식은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분명 계속해서 기다려야 할 텐데.’

“부군, 요즘 또 외국인들과 무슨 라틴어 공부를 하고 계신다지요?”

간미는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나지막이 물었다.

“저도 따라 배우고 싶어요.”

그녀는 예전이야 아이들이 아직 어렸기 때문에 매일같이 집안에 바쁜 일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들들이 컸고, 딸은 어리지만 영리하여 잘 달래졌으며, 외할머니도 아이 곁에 있으니, 이제는 남편의 뒤를 따라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더니 크게 기뻐하며 급히 답했다.

“물론이지요, 좋소. 다음에 내가 같이 데리고 가 줄 테니 함께 공부해 봅시다. 가서 그쪽 종교만 믿지 않는다고 하면 문제가 될 것은 없소.”

이렇게 되면 집에서도 둘이서 같이 외국어 연습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그가 지금 외국 언어를 배우는 이유 중 첫 번째는 나중에 유용하게 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데, 외국과의 교류가 잦아지고 있는 추세이니 지금 배워두면 또 언제 쓰이게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외국 언어를 알아야 그들의 책을 읽을 수 있고, 유용한 책을 발견했을 때 번역도 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그들의 장점을 취해서 자신들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그는 문득 며칠 전 사장정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사장정이 예측했던 일을 떠올렸다.

속마음을 말하자면, 당시 그는 그런 말을 듣고 나서 매우 기뻤다. 세상에 어느 누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길 원하지 않겠는가? 다만 때론 사람의 예측은 하늘의 계획만 못한 것이라서, 만약 나중에 전란이라도 일어나면 그가 쓴 책들이 모두 훼손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만약 그가 쓴 책을 남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고청운은 그의 기본적인 목표는 실현되었다고 여겼는데, 적어도 지금은 모두가 ‘산술’ 하면 그를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사장정의 수법은 그의 명성을 온 경성에 떨치게 만들어 주었다.

한쪽에서 고청운이 기뻐하는 모습을 본 간미는 속으로 매우 기뻐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의 복부를 만졌는데, 음, 여전히 견실하고 잘 마른 몸의 촉감이 좋게 느껴졌다. 

고청운은 온몸이 굳어지며 호흡이 점점 가빠지기 시작했고, 그만 방금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 모두 삽시간에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부군, 그동안 책 쓰느라 꽤나 오래 바쁘셨지요. 서재에서 잠을 청하시는 날이 너무 많아 정말 고생 많으셨지 않습니까…….”

간미는 그의 귓가에 대고 한마디 던지면서, 오히려 손을 움츠리더니 눈을 감았다.

고청운이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날 보기만 해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던 예전의 아내가 맞나? 역시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기는 하구나.’

고청운은 서른이 되면 늑대가 되고, 마흔이 되면 범과 같아진다는 속담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이내 방 안에는 더 이상 그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 * *

9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하겸죽의 시험이 드디어 끝이 났다. 반나절 간의 휴식을 마친 그는 앞마당에서 고청운이 퇴근하고 귀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운이!” 

하겸죽은 그를 보자마자 눈이 반짝이며 빠른 걸음으로 맞이했다. 

“청운, 이번 시험은…….”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하겸죽은 언제나 온화하고 담담한 편이라 고청운은 그가 이렇게 흥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고청운의 뒤에 있던 고삼원도 매우 놀란 표정으로 하겸죽을 바라보았다.

고청운은 그가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회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오늘 호부에서 이번 회시에 기출이 된 문제를 모두 받아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하겸죽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있었다.

이번 회시에서는 모두 6문항의 산술 문제가 기출이 되었는데, 그가 일전에 냈던 산술 모의 문제 중 4문항이 실제 기출 문제와 비슷했다. 그랬다, 이것은 그의 운이자 하겸죽의 운이기도 하였다.

“사형,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그저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이죠. 우연이에요.”

고청운은 그의 어깨를 껴안은 채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하겸죽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 고청운의 눈빛을 보고, 아무래도 예민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청운의 손을 꼭 잡은 채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서 있었다. 

* * *

하겸죽이 시험을 마치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고청운은 다시 한번 가족들을 데리고 꽃피는 봄을 즐기러 운하 변으로 봄나들이를 갔다. 

이것은 그들 일가가 매년 고정적으로 행하는 연례행사로, 겨울 한 철을 집안에서만 묵으며 견뎌냈으니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었다.

평소대로 축국 전반전을 마친 후, 고청운은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땀을 닦으며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후반전에 대한 장내 전술과 경기 양상을 예상하며 토론을 하고 있었다. 

“신지, 듣자 하니 승진한다면서?”

왕 주사가 다가와 종잡을 수 없게 그의 허리를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그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부인하며 말했다.

“왕 형, 왕 형께서 승진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네…….” 

왕 주사는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신지, 무엇 하러 나를 기만하려 하는가? 화제를 내게 돌리지 않아도 되네.”

고청운은 몰래 눈을 희번덕이며 덩달아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제가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왕 형께서 들은 것은 모두 유언비어지요.”

지난 달 호부의 원외랑 하나가 경성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자리 하나가 공석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호부 내 일련의 주사들이 호시탐탐 비워져 있는 종 5품 호부 원외랑 직책을 노리게 되었는데, 모두 이 영양가 좋은 고기를 자신이 가져가고 싶으나 노리는 맹수는 많았고 자리는 하나뿐이었다. 승진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에, 사석에서 모두 제각기 재주를 선보이며 암암리에 쟁탈전을 벌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알게 모르게 고청운 역시 예비 승진자 물망에 올라 있었다. 그는 요즈음 자신이 출세했기 때문에 여론이 그런 것 같다고, 속으로 그 이유를 짐작해 보고 있었다.

고청운도 당연히 승진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그 자리로 갈 수 있는 승산이 크지 않다고 여겼다. 그는 호부로 옮겨 온 지 이제 3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 경력이 미천했던 것이었다. 

외부 관아의 사람들이 이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호부 내 주사들 역시 이 자리로 가고자 하는 의향이 있을 텐데, 호부 내에 주사가 총 몇 명이란 말인가? 적어도 2~30명은 될 것이었다.

설령 3년에 한 번 실시하는 품계 심사에서 고청운이 적격으로 점수를 받았다고 한들 승진할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본 왕조의 조정에서는 관원이 부임하고 있는 직위에 대한 직무 적합도를 적합, 정상 및 부적합이라는 3단계로 판단했는데, 소위 적합이란 우수하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가 알고 있기로는 이 ‘우수’ 평가를 획득하는 관원들이 이미 아주 많이 있었기에, 이것만으로는 다른 중대 사안들이 결정 나지 않을 것이었다. 이는 단지 경쟁 자격이 있다는 것만을 대표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고청운이 호부에서 근무한 이번 3년 동안 휴가를 내고 고향을 방문했다는 점이 실점으로 반영될 수도 있었다. 

또 하나는 그가 전혀 윗선과의 인맥을 형성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윗사람과 연이 닿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그는 매 주사만 봐도 자신보다 더 승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앞서 공석이 하나 생긴 일로 인해 두 사람의 분위기가 좀 이상해졌다. 겉으로는 예전과 같은 듯했지만, 고청운은 가끔씩 자신을 보는 그의 눈빛이 꽤나 수상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를 은근히 놀라게 만들었는데, 이 때문에 업무에 있어서 더욱 세밀하고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였고,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더 주의를 잘 기울여야 하였다.

그런 일이 있다 보니, 왕 주사가 헛소문을 듣고 와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고청운에게는 그다지 기쁜 일이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자네는 희망이 있네. 향시를 주관하러 가지 않았었나. 자네는 분명히 너무 크지도, 적지도 않은 적절한 공을 세우고 돌아온 것이지. 한림원에서 자네가 제시한 답안지 채점 방법에 대한 변경 의견을 받아들여, 이번 회의에서 바로 그 방법을 실행하기로 하지 않았는가 말일세. 그리고 자네는 최근 외국의 산술 서적까지 번역해 냈으니, 자네 이상 후보로 점찍을 수 있는 자가 더는 없다네. 그러니 모두들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이 자네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는 게지.”

왕 주사의 말투가 매우 애매했다.

고청운은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기 마련이니 말을 아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고개만 가로저을 뿐이었다. 

향시를 주관하고 돌아온 뒤, 진 학사가 올린 상주문 때문에 고청운은 작은 공을 세운 것이 인정되어 은자 100냥을 상으로 하사 받았다. 이는 겉보기와 달리 상을 받았으니 이미 다 끝난 일이 되어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이기도 하였다.

징 치는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자 고청운은 들고 있던 물을 고영량에게 건네주고는 몸을 약간 풀고 다시 후반전 축국 경기를 뛰기 위해 나섰다.

고청운은 모처럼 나왔는데 승진 일은 잠시 잊고, 온몸을 던져 운동하니 매우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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