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28)화 (328/504)

328화. 시험 준비

“참, 그리고 일이 또 하나 있네. 신지, 매일 집에서 그걸 뭐라고 하더라, 그 일기라는 것을 쓰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일기를 쓸 때 반드시 나에 대한 내용을 많이 쓰시게. 또 반드시 나의 명성을 훼손하는 말에 대해서는 절대 써서는 아니 되네.”

사장정은 눈을 돌려 주변을 살피더니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고청운은 또다시 어리둥절해져서 눈살을 찌푸리고 그를 보았다.

“나중에 관직에서 내려오고 나면 자네가 써온 일기를 출판할 수도 있지 않은가. 승상께서도 그리하시는 것을 보았지. 그는 작년에 벼슬에서 물러나셨는데, 올해는 그 이름이 뭐라더라, 초당수필(草堂随笔)이라는 책 한 권을 펴내셨지. 한 무리의 학생들과 지인들이 그 책을 사서 보지 않았는가. 이는 일종의 입언(*立言: 후세에 전할 만한 모범되는 말과 글. 사람이 죽어도 없어지지 않고 남게 되는 세 가지 중의 하나)인데, 거기에 자네가 나를 이상하게 묘사한다면, 책으로 발간되고 나서 내 모양새가 어찌 되겠는가? 그건 아니 되지.” 

사장정은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아주 우쭐해했다. 

“나처럼 외모를 타고난 데다 영리하고 준수하며 멋스럽기까지 한 사람이 있다니, 정말 비할 데 없이 훌륭하잖은가. 아이, 반안(*潘安: 중국 역사상 가장 잘생긴 남자로 알려져 미남의 대명사로 불림)과 동시대에 태어나지 못했음이 아쉽군.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와 꼭 한 번은 붙어봤을 텐데 말이야.”

이 말을 들은 고청운은 입가에 경련을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어두워졌다.

‘영리하고 준수하며 멋스럽기까지 하다고? 너무 자신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집에서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 들은 소식인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고청운이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는 사장정에게 다시 발언권을 줘서 대화를 이어나가게 했다가는 곧 어지러움을 참을 수 없게 될 것만 같았다.

‘답답하군, 예전엔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뻔뻔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무슨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이런 생각에 미치자, 고청운은 눈썹을 곧추세우고 상대방의 안색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는 비록 사장정의 안색이 여전히 붉었으나 턱에는 이미 짧은 수염이 한 층 자라나 있고, 눈 밑에는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알아차릴 수 없었을 정도의 옅은 검은 자국이 있는 걸 보고 매우 놀랐다. 눈앞의 이 녀석은 항상 자신의 용모를 소중히 여겨 가꾸는 사람이었다. 수염도 매일같이 깨끗이 깎아 관리해 왔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러고 보니, 그는 오늘 허리춤에 어떠한 장신구도 걸치고 있지 않았다.

이 모든 것들은 사장정이 평소와는 달리 이상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고청운의 시선을 의식한 사장정은 그를 노려보며 고청운 앞에 놓인 계화떡을 끌고 와 분풀이하듯 몇 개를 연거푸 집어 먹었다.

고청운은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계화떡을 싫어하지 않았나? 자, 자네, 다른 간식도 먹게나.”

“나도 이제 계화떡 먹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네.”

사장정은 도발하듯 또 하나를 더 먹으며 그를 한 번 곁눈질했다. 

고청운은 할 말이 없어 따뜻한 차를 자신의 잔에 따르며 천천히 불어 차를 식혔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그와 함께 있을 때면 함께 유치해지는 것 같았다.

“이보게, 아직 내 질문에 대답 안 했지 않은가.”

고청운은 배꽃나무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말 안 해 줄 걸세.”

사장정은 ‘때려죽여도 말하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

‘유치하군 그래! 서른씩이나 된 사람이, 그간 먹은 나이는 다 개나 줘버린 겐가?’ 

고청운은 그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차피 고영진 아니면 고영량이 누설했을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고영량의 혐의가 가장 컸다. 

두 사람은 자주 만나다 보니 정이 꽤 들었는데, 고영량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정을 쌓아온 만큼, 사장정은 고영량을 자신의 사위로 삼겠다는 농담까지 했을 정도였다.

“공주 전하랑 싸운 게로군?”

고청운이 불쑥 한마디 물었다.

온몸을 움찔한 사장정은 처음엔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가, 막상 고청운이 자신을 외면하자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생기니 당연히 기뻤네, 천금 같은 자식 셋을 낳고 나서야 겨우 하나 생긴 내 하나뿐인 아들이 아니겠는가. 나도 아이를 아주 좋아하네. 그런데 차츰 집안 여인들이 나를 안중에 두지 않지 뭔가. 그들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침상에 누워 거품만 내뿜는 그 이빨 없는 녀석뿐이라네. 아가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그 사람들은 크게 놀라며 신기해하며 하루 종일 그 아이를 에워싸고 있지. 

허허, 난 요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눈 밑에 검은 자국까지 생겨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나한테 단 한 명도 무슨 일이냐며 묻질 않았다네.”

그는 적막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하려 애쓰고 있었다. 

사장정은 쉴 새 없이 투덜거렸고, 고청운은 말없이 눈꺼풀을 늘어뜨린 채 턱을 괴고 진지하고 열심히 듣고 있는 척 자세를 잡고 있었다. 

‘부아가 치밀어서 그랬던 것이로구나? 그도 참 재미있는 사람이야. 이렇게나 장성한 이가 심지어 자신의 친아들을 질투하며 총애를 다투다니. 그는 아들이 처음 태어났을 때 자신이 얼마나 흥분했었는지 이미 잊어버린 걸까? 

어쩐지 오늘 오랜만에 나와 그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했군. 일전에는 점심때만 되면 급하게 아이를 보러 집으로 바로 되돌아가고 했었는데 말이야.’ 

* * *

고청운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오후가 되어 있었다.

외투 벗는 것을 도와주던 간미는 코끝에서 술 냄새가 스미자 웃으며 물었다. 

“부마와 술을 드시고 오신 건가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지개를 켜고 말했다.

“술을 마시러 갔었는데, 부마가 마음이 좋지 않았는지 밖에서 취하기 전에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더군. 하지만 공주와 정이 어찌나 두터운지. 공주께서 사람을 시켜 불러오자 나와는 몇 마디 더 나누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날아가듯 사라져 버렸소. 술 취한 티가 하나도 나지 않았을 정도였소. 무엇보다 그 술값도 내가 다 냈지 뭐요.”

‘자기가 먼저 술을 사준다고 하더니.’

두 사람의 사이를 잘 알기에 간미는 빙긋 웃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부군이 누구와 술을 마시러 갔다 왔는지만 알면 됐다. 그녀가 지금 제일 싫어하는 것은 부군과 장씨네 작은이모부가 같이 술을 마시러 가는 것이었는데, 그는 늘 부군을 지저분한 곳에 데려가고자 하여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다.

“참, 사형의 준비 상황이 어떻소?”

고청운은 좀 졸려서 한숨 자고 일어나 책을 읽기로 하였다. 어렵사리 찾아온 휴일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 적절하게 잘 준비해 두었으니 안심하세요. 저희가 회시를 처음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요.” 

간미는 사람을 시켜 따듯한 물을 가져오게 한 다음 그의 얼굴을 씻겨 주었다. 

“그럼 다행이오.” 

고청운은 사실 그것에 대하여 걱정하는 바가 없었지만, 그저 한 마디 물어본 것뿐이었다. 

머지않아 3월 9일이 되면 시험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들의 집이 시험장과 가깝다는 지리적 편의 외에 하겸죽은 하인까지 대동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그의 시험 준비는 챙겨줘야 하였다. 

회시의 시작이 임박하자, 온 경성의 시선은 마치 이번 시험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과거 시험과 관련된 물건들이 매우 잘 팔렸던 것이다. 

이에 고청운도 그 덕을 보았는데, 그가 소유한 다른 저택들의 경우, 역시 세 놓기가 매우 좋아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

* * *

3월 9일의 새벽, 하겸죽은 시험장에 들어서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번엔 반드시 될 겁니다.”

고청운과 하겸죽은 나란히 문을 나섰다. 날씨가 추운 탓에 말을 할 때마다 입김이 한 덩어리씩 내뿜어져 나왔다.

하겸죽은 입을 오므리고 웃으면서 몸에 있는 가죽옷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의 얼굴색은 평온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는데, 오히려 사람이 전반적으로 매우 원기 왕성하게 보이기까지 하였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전력을 다 하겠네.”

그는 한나절이나 쉬고 나온 터라 지금 정신 상태가 매우 좋았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올해도 날씨가 역시나 춥네요. 몸조심하셔야 합니다.”

이는 또다시 그가 회시를 치렀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는데, 그때 다행히 제2장 시험 후 황제는 가죽옷을 입어도 된다고 지시했었다.

“안심하게, 내가 시험을 처음 보러 가는 것도 아닌데. 그나저나 뭐 하러 이렇게 일찍 일어나 나를 따라나섰는가? 이런 시간이 있으면 쉬는 게 낫지. 오늘 관아에 출근을 해야 하지 않는가.”

하겸죽은 마지막 말을 할 때에는 원망이 섞인 말투였으나 얼굴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좀 있다가 가서 두벌잠을 자면 되지요. 날이 밝기까지는 아직 한참입니다.”

이때 두 사람은 고택의 문 앞에 이르렀는데, 고청운이 하늘을 바라보니 드문드문 몇 개의 별만 반짝이고 있었다. 문 앞에 나 있는 큰길에는 각 집 앞에 매달린 초롱만이 길을 밝히고 있을 뿐이라, 시험장으로 가야하는 수험생이 있는 집이 아니라면 새벽 이맘때는 모두 매우 조용했다.

이때 옆집인 방택에서도 나온 사람이 있었다. 월성에서 온 거인 둘이 방택을 임차하여 지내고 있었는데, 그들의 시험장 입장 시간이 하겸죽과 비슷해 함께 마차를 타고 시험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던 것이었다.

“고 대인!” 

두 사람은 고청운을 보고 급히 인사를 했다.

고청운도 답례하며 말했다.

“시험 잘 보세요. 여러분들이 방상괘명 하시기를 빕니다.”

“감히 대인의 덕담을 새겨듣고 가겠습니다.”

두 사람은 웃기 시작했고, 눈에는 두근거림과 동경이 어려 있었다.

하겸죽을 마차를 타고 떠나가는 것까지 지켜보던 고청운은 한숨을 내쉬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옆집 방택의 문지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얼른 발길을 돌렸다.

* * *

“부군, 이번에 그가 합격할 수 있다고 보세요?”

고청운이 겉옷을 벗고 있을 때 뒤에서 갑자기 간미의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내가 시끄러웠소?” 

고청운은 살짝 놀라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혼자 침상에서 일어날 때 매우 조심했는데.’ 

“아니요. 제가 혼자 깼어요.”

간미는 침상의 머리맡에 등받이를 가져다 놓고 반쯤 앉아 있다가 고청운이 아직도 입구에서 꾸물대고 있는 것을 보고는 불렀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몸이 차갑다고 하셔도 저는 괜찮습니다.”

“내 몸이 아직 차가워서, 당신을 좀 배려하는 척이라도 해 보려 했는데.”

고청운은 웃으며 중얼거리다가 두말없이 이불을 들추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기운이 전해오자 고청운은 편안하게 숨을 내쉬며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당기고, 간미의 허리를 껴안은 채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상황을 보아하니 간미 역시 그냥 누워있기만 하기는 틀린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바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바짝 붙어 귓속말을 나누었다. 

“추운 날씨에 시험장의 입장 줄을 서겠군요. 부군, 저희 집 사내들은 앞으로 이 길을 걸어가겠지요.”

간미의 말 속에는 숨은 뜻이 있었다. 

속뜻을 알아들은 고청운이 그저 위로하며 말했다.

“심한 고생을 해 봐야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 된다는 속담이 있지 않소. 이 속담은 틀린 말이 아니오. 나중에 아들들도 관직에 오르고자 한다면 과거 시험을 보아야만 할 것이오. 허나 괜찮소, 한 번에 합격 못한다고 한들 그저 몇 번 더 시험을 치르면 될 일이니 말이오. 

앞으로 우리 집은 가내 규율을 수립하여 30살이 되도록 수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거든 더 이상 시험을 준비하지 않고 다른 기량을 익히고 배우게 하여 다른 쪽으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도록 합시다. 최소한 여러 사람의 자산을 들여 헛되이 안 될 시험만 준비하게 하며 키우지 않도록 말이오.

그 이후에는 본인이 시험에 다시 응시하고자 하면 자력으로 여비를 구하여 시험에 참가하도록 하면 되지 않겠소. 사람은 한 평생을 시험에만 매달려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아니 되는 법이라오.”

적어도 수재에 합격한 후에는 심히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구할 수는 있었다.

그의 사촌동생 고청안만 해도 올해 스물셋의 나이에도 여전히 동생의 신분에 머물러 원시 시험 하나에만 매여 있었다. 만약 그의 집이 현성이 아니었더라면, 시험을 치러 가는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으니 숙부 집에서 말썽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고청운은 확신하고 있었다. 

필경 고청평 역시 계속 향시에 응시해야 했는데, 매번 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숙부 집안에는 가게와 밭이 있다고는 해도, 매년 수중에 남길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본 고청운은 숙부의 잔꾀에 탄복했는데, 고청안이 계속해서 순탄한 과거 시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혼수가 두둑한 아내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른 가족들이 그를 도울 수 있다고 해도 모두가 각자 가정을 꾸린 사람들이라 평생 그 하나만을 도와줄 수는 없을 것이었다.

지금 고청평이 교편을 잡아 학생을 가르치러 다니고 있었고, 고청안이 서화를 표구하는 기술을 익혀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을 생각하며, 고청운은 이러한 길이야말로 옳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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