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27)화 (327/504)

327화. 인정받다

고청운은 사장정을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한 번 훑어보더니, 그가 벌인 일이 확실함을 확인하고는 물었다.

“자네는 어쩌자고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낸 겐가?”

고청운은 어쩐지 요즘 소보를 들여다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책에 너무 빨리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직 이쪽에서는 선전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논쟁이 도처에 지펴져 있었다. 

그가 자기 스스로를 함부로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산술이라는 학문 자체가 사서오경, 경의, 시문 등의 학문이 전파되는 속도와 비견할 수가 없을 정도로 속도가 느렸는데, 만약 산술 과목이 과거 시험에 도입되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의 관심사는 지금보다도 더 많지 않았을 것이었다.

“본 부마가 그간 스스로 고민해 보다가 실행해 본 방법인데, 아주 효과가 뛰어나지 않은가?”

사장정이 생글거리면서 아직도 의기양양해했다. 마치 자신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은 처음부터 자네에게 알려주고 싶었네만, 자네가 동의하지 않을까 봐 말하지 않았다네.”

“그래, 이번엔 자네가 대단했네.”

고청운은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안 그래도 다른 필명 뒤에 숨어서 사람들과 욕이라도 하면서 논쟁을 불러일으켜야 하나 생각 중이었는데, 사장정이 먼저 나서서 손을 써 줄 줄이야.

고청운이 인정을 하는 것을 보고, 사장정은 더욱 의기양양해했다.

“내 예전부터 잘 살펴보고 있지 않았겠나, 예를 들면 자네의 <매화 반지>와 <백사전> 때도 논쟁이 있으면 있을수록 호기심이 동해 책을 사러 오는 사람이 많아졌더군. 그리고 소보만 봐도, 논쟁에 휘둘리는 기사들만 사람들이 더 주목했다네. 아이, 이렇게 간단한 도리를 이제야 깨닫다니. 분명히 이런 현상은 일찍이 나타나고 있었는데, 나는 이제야 겨우 그 기회를 잡은 걸세.”

그는 말을 마친 후 찻잔을 들어 단숨에 찻물을 들이켰다.

고청운은 웃기 시작했다. 전생에 ‘현대’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그는 이미 노이즈 마케팅과 선동이라는 수단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 것을 행하기에는 자신의 낯가죽이 너무 얇다는 걸 알았다. 그가 그러지 못한 더 큰 이유는 바로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였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는 사장정에게 이런 계획을 실행하자고 말한 적 없었다.

물론 고대라고 해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것이 결코 신선한 것만은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렇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그런 공융양리(*孔融让梨: 공융이 배를 양보하다. 삼자경에서 4살짜리 공융조차도 형에게 더 큰 배를 양보할 줄 안다라는 도덕적인 가르침을 시사함) 같은 고사성어는 어떻게 생겨났겠는가? 

세상 천지에 수많은 어린아이들이 존재하는데, 어찌 공융(孔融)이 첫 번째로 형에게 배를 양보한 사람일 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그의 이름만이 세상에 알려져 후세에까지 전해졌을까. 그 이유는 아무래도 공융이 다른 논란의 중심에 섰기 때문일 것이고, 다른 쪽으로 더 유명했던 것이 작용한 덕일 것이었다. 

이러한 이치는 장수원과 공번충이 일전에 출간한 서적의 겉표지만 봐도 알 수 있었는데, 누구누구가 어떠한 융숭한 추천을 했는지 적혀 있었다. 고청운이 낸 산술 서적도 그러했다. 출간 전, 매번 산술 학계의 저명한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서문을 얻어내는 것 역시 하나의 수단이었던 것으로, 이런 방법들은 아주 흔하게 상례적으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사장정이 아니었더라도 분명 독학으로 이런 방법들을 터득한 아군들이 나타나 소보를 통해 여론전을 선도하여 대중의 흥미를 끌 테고, 아직 과거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 역시 이 여론에 휘말려 책을 사러 오게 되었을 것이었다.

“이 일들은 자네가 다른 사람들을 시켜서 진행해도 되었을 것을, 어찌하여 자네가 직접 챙기고 있었는가?”

고청운은 차 대신 술 한 잔을 건네며 물었다.

“참, 자네 아들이 이제 막 백일이 지났을 텐데, 어떻게 시간이 나서 예까지 올 수 있었던 겐가?”

작년 11월에 안락공주가 남아를 출산한 이후로 사장정이 다시 한번 아기 돌보는 사내로 변모하여, 고청운은 고향에서 귀경한 후에도 그를 만나기 어려웠었다. 고청운이 귀경 후 딱 세 번 만날 수 있었을 뿐이었는데, 한 번은 출판 얘기 때문에, 또 한 번은 며칠 전 사장정 아들의 백일잔치에서 만난 게 전부였고 바로 지금이 그 세 번째 만남이었다. 

사실 고청운은 사장정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서적 출판과 관련된 일을 챙겨주는 것이, 실제로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스스로 머리를 숙여주는 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과분한 총애와 우대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사장정은 갑자기 안색이 변했지만 이내 그 기색을 숨기고는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이 부마라는 것이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뒹굴어 대는 일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은가. 어디 가서 그 좋아하는 연극을 하고 싶어도 아니 된다 하고, 송죽서재의 일 말고는 다른 쪽으로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네.”

특히 이번 일을 통해서 그는 교묘히 조작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주목하지 않던 산술 계통의 서적을 제일 잘 팔리는 서적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으니, 심적으로 대단히 만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거 자네 같은 인재를 너무 썩히는 게 아닌가 모르겠군.”

고청운이 말했다.

사장정은 정중히 고개를 가로젓다 말고 돌연 몸을 기울였고, 정색하며 고청운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신지, 내 다 생각해 둔 것이 있다네.”

그는 고청운이 자신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신지, 지금 자네 스스로 6품 관리에 그칠 것이라 보지 말게나. 앞으로 1품, 2품이라 한들 자네는 분명 올라갈 것이네. 물론 부마인 나보다 더 높게 오르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난 천 년, 백 년 후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바로 자네일 것이라고 믿네, 오늘날의 재상이니, 공작, 후작 같은 높은 작위를 지닌 귀족이 아니라. 자네는 다르네, 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고청운은 깜짝 놀라 멍하니 그를 보았고, 잠시 반응을 할 수 없었다. 뒤이어 말의 참뜻을 깨달은 그는 웃고 싶은 것을 참으며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라고? 누가 그런 것을 원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느냐는 말이지.”

말은 이렇게 해도 그는 마음속으로 오히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네, 내가 지금 장난으로 이런다고 생각지 말게.”

사장정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는 산술학을 체계적으로 한 번 다듬었을 뿐만 아니라, 앞서 출간한 두 권의 산술 서적만 해도 이미 새로운 소개와 해석으로 사람들에게 산술이라는 학문을 더 이상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게 하지 않았나. 

내가 이번에 번역한 <기하학>이 출간되고 난 후 소보를 읽어보니, 자네는 올해 겨우 32세의 나이로 학술계에서는 아랫사람에 속하는데도 불구하고, 자네가 제창한 무슨 아라비아 숫자에 대해 들은 사람들은 몽둥이를 들고 달려와 자네를 핍박하지 않고, 오히려 자네를 대신해 자네 의견을 거들어 주더군. 또 그간 아라비아 숫자로 문제를 해결한 건 어떤가. 이것이 실제로 사람들이 이 숫자가 더 간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여기까지 말을 마친 사장정의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고청운은 그를 보니 신이 났다.

“이는 사람들이 자네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일세! 사람들이 자네를 믿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자네가 그만큼 사람들에게 지위가 있다는 말이라네. 오늘날 사람들은 ‘산술’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자네를 떠올리게 되지. 특히 자네는 향시 부시험관을 지낸 후 이름이 더 많이 알려졌다네. 

무엇보다도 지금 이렇게 많은 거인들이 경성에 모여서 회시 참가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들이 이번에 시험에 합격하든 안 하든 고향에 돌아가고 나면 자네의 명성은 분명 더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갈 것일세.”

이 말을 마친 사장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뒷짐을 지고 왔다 갔다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이에 그의 머리에 꽂힌 꽃이 살짝 흔들렸다. 

사장정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라는 인재가 썩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네. 내가 무슨 재목이라도 된다고. 나는 그저 자네의 덕을 보고 있는 것뿐일세. 오히려 나중에는 이 서재의 이름이 나보다 더 유명세를 타게 되겠지. 바로 자네의 책이 출판되는 서재이니까 말이야!”

고청운은 이마를 짚고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고, 그들이 위치한 2층 객실에는 그들 둘밖에 없는 걸 확인한 후 안심할 수 있었다. 혹시 외부인이 있어서 이런 말을 들었다면 그는 정말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었다. 

‘어찌 사람을 이리도 치켜세울 수 있는 거지? 이거 나를 너무 콩깍지가 쓰인 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못 믿겠는가?” 

그의 맞은편에 앉은 사장정은 고청운이 조금도 격동하지 않자, 얼굴을 찌푸리고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고민하던 고청운이 정색하며 말했다.

“그런 얘기들은 나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들이라, 난 격동할 수가 없다네. 또 훗날 내가 쓴 책이 후대에 전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나 혼자만의 공이 아닐세.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을 수 있었던 덕분이지.”

방금 이 말은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내면의 진담이었다. 전생에 받았던 교육이 없었더라면, 그가 어떻게 현생에 이런 서적을 쓸 수 있었겠는가? 

이제 고청운은 책 내는 일은 일단락 짓고, 앞으로 미적분을 선보이는 연구를 중점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었다. 이 과업은 이제 막 시작점을 출발한 탓에 아직 연구라고 할 만한 단계도 오지 못했다. 

그는 이런 과정들을 겪어보니, 꿈에 그리던 평행 시공 세상 너머 시대에 새로운 사상을 불러일으키고 학문적인 개척을 이뤄낸 대단한 인물들에 대해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되었다. 

사실 그는 내심으로는 여전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부끄럽기도 또 미안하기도 했는데, 자신이 전생에서 배운 내용들을 이용하는 건 그들의 것을 컨닝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산술이라는 학문이 나중에는 아주 중요한 학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확고히 유지한 채, 주저하지 않고 의연하게 이 길 위에서 계속 배우고 탐구해 나갔을 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고청운은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 간미와 상의를 마쳐서 이번 달에는 노인과 고아들을 돌보는 사회 복지 기관에 기부하는 돈을 갑절로 늘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두고 보게, 흥흥. 비록 내가 책을 많이 읽으며 살아온 사람은 아니지만, 내 생각만은 틀림없을 것이네.”

사장정은 고청운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는 노여운 듯 ‘흥’ 하는 소리를 냈다. 

“나와는 너무 동떨어진 얘기인데, 앞으로 벌어질 일을 누가 알겠는가.” 

앞으로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중간에 발생할 수 있는 이변이 너무나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자네 말대로 된다면, 나는 꿈을 꾼 것이라고 웃으면서 꿈에서 깰 수 있을 것이네.”

고청운은 이 대목에서 웃으며 새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그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며 마저 이야기했다.

“그 말이 진짜라 하더라도, 그 또한 우리가 죽어서나 일어날 일들이 아닌가. 우리는 우선 우리 눈앞에 당면한 일들에 착안하여 그에 맞는 행동을 먼저 해야 하네.”

사장정은 그의 말이 이치에 맞는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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