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대역무도한 사상
“좋습니다. 결정하신 대로 하시지요.”
간미는 큰아들도 어렸을 때 부군에 의해 장원으로 끌려가 농부의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녀는 평소 아들들에 대한 훈육에 별로 관여하지 않고 있었는데, 부군이 나름의 본분은 지켜서 아이들을 훈육한다고 생각해 오고 있었다.
고청운은 하품을 했다. 요 며칠은 정말이지 바빠서 쩔쩔맬 정도였는데, 떨어져 있다가 만난 부부는 신혼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어젯밤에는 또 한 차례 운동까지 했더니 피곤하긴 하였다.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났으니 정말 좀 졸렸다.
“눈을 좀 붙여야겠소. 도착하면 깨워 주시오.”
간미의 말랑말랑한 허벅지에 옆으로 누워 있던 고청운은 우마차의 흔들림을 느끼며 의식이 희미해졌다.
웃음을 참지 못한 간미는 최대한 지금 자세를 유지해 보기로 하였고, 눈도 깜박이지 않고 고청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를 이렇게 바라만 보는 동안, 그녀는 눈을 깜빡이는 것도 아쉬웠다.
부군이 방금 말한 일을 생각하던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퇴직에 대한 생각이 있음을 간파했다.
다만 그녀는 만약 부군이 감히 사직을 감행한다면 집안의 노인 몇 분이 단식을 해서라도 부군을 말릴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부군이야말로 이런 사실을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 * *
며칠 지나지 않아 진씨 가문의 이주설이 나돌았지만, 이는 뜬소문일 뿐 실제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진씨네는 이곳에서 5~6일을 지냈다. 그 후 외할아버지 일행은 집안의 농사 문제가 마음에 걸려 더 이상 머물 생각이 없었는지, 한사코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하였다.
고씨 집안사람들도 더는 방법이 없어 그 의견에 응낙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양쪽 집안이 사는 지역 간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아서 앞으로 1년에 한 번 꼴로 서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역참이 발달해 양가가 편하게 서신을 왕래할 수 있게 된 것도 서로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었다.
진씨 가족은 상성의 특산물을 많이 가져왔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고씨 집에서 챙겨 주는 것이 더 많았다.
진씨 가족을 떠나보낸 후, 고청운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정신이 예전보다 더 명료해지고, 어머니도 예전보다 더 많이 웃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후 고이하 가족 일가가 현성으로 돌아왔고, 사촌동생들을 임계촌에 남게 하여 정해진 시간마다 고청운에게 학업에 대한 도움을 구하게 하였다.
지금 고씨 가문 문중의 발전에 힘입어 식솔 수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었는데, 고청운만 해도 아이 셋을 낳았고, 고청평과 고청안의 집도 각각 같은 수의 아이들을 보았다. 고영량의 항렬에는 6명의 형제와 3명의 자매가 생기게 되었다. 고백산의 집안까지 감안하면 아이들 수는 14명으로 늘어났다.
지금도 고연이 가끔씩 임계촌으로 와서 며칠씩 묵다가 갔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더 많아졌다.
고계산과 노진씨는 가지가 많고 잎이 무성해진 광경을 보면서 심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고 즐거워했다. 30년 전 집안에 오직 고청운이라는 외동아들 하나만 있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의 집안은 얼마나 번성하고 있는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이가 많아지면 집안 공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집에 모인 틈을 타, 모두들 또 다른 집을 짓는 문제를 의논하게 되었다.
주요 논제는 고이하의 집에서 사들인 집 옆의 땅에다가 정원이 딸린 저택을 지어 올리는 것인데, 완공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모두 큰집에서 사용하게 넘겨주려고 하였다.
고청운은 당연히 반대 의견이 없었다.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으면 뭐 반대할 것이 있겠는가. 비록 비용이 어느 정도 들어간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간의 수입으로 충당 가능하다며 그의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이변이 없는 한, 아들 세대는 거의 이 정도에서 더 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영향 때문인지 사촌동생들 역시 낳은 아이가 많지 않아 아들 둘 정도만 생기면 더 자식을 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 사실은 그를 매우 겸연쩍게 하였다. 고청운은 젊었을 때부터 아이는 많은 것보다는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만약 잘 가르치지 못하면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를 해왔었는데, 자식 열이 있어도 자질이 뛰어난 아이 하나 없는 것보다 잘 가르친 아이 하나가 조상을 대대로 빛낼 것이라고 역설해 왔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그의 진실한 생각으로, 그는 확실히 너무 많은 자식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가 너무 많으면 제대로 돌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하인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인은 부모와 같지 않았고, 아이가 많아지면 부모들이 모든 아이들에게 들일 수 있는 관심 역시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편파적이어서 항상 더 특정 아이만을 총애하게 된다면 다른 아이들은 또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이 많아지면 갈등도 많아지고, 나중에 잘못 처신하면 연로하여 벼슬을 내려놓고 나서 자식들에게 우환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고대에는 정말 대역무도한 사상이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다자다복(多子多福)을 중시했기에, 고청운처럼 자식의 숫자를 통제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이렇게 오래 이 시대를 살아오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아, 아니다. 아마 오 선생님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특이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당시에 거침없이 자신의 사상을 말했었고, 이후 그의 형제들도 그의 말을 귀담아들었었는데, 비록 제수씨들이 가임기에 있었지만 그들의 뜻을 보니 자식들을 더 볼 생각은 없는 듯했다.
이런 사상이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을 더 길게 두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으나, 아이들이 서로 가지고 있는 감정만큼은 어른들을 흐뭇하게 만들고 있었다.
집안의 모든 사람이 흐뭇하게 웃고 있었지만, 노진씨만은 웃을 수 없었다.
3일 동안 고청운이 매일 고영진을 데리고 옥수수밭에 나가 김매는 것을 보던 그녀는 어린 손자의 말랑한 어린 손이 풀에 긁혀 몇 가닥 핏자국까지 나자 마음이 몹시 아파왔다.
“아이고, 전자야. 너 아버지 노릇 한번 독하게 하는구나. 우리 소어가 너무나 불쌍하구나, 이 작은 손 좀 보거라…….”
노진씨는 고영진의 손을 매만지다가 자신의 눈앞에 손을 들어다 가까이 보았다. 여린 손바닥에 물집이 몇 개 생겨 있는 게 보이자 가슴은 아팠지만, 드러내 놓고 반대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지 못하겠다는 시선으로 고청운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고청운은 손발을 깨끗이 씻은 뒤 걷어 올린 바짓가랑이를 내리고 급히 걸어 나왔다. 과연 아들의 손에 물집이 잡혀 있는 것을 보고 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쪼그려 앉아 아들의 얼굴을 매만지고 손발과 얼굴을 깨끗이 씻겨준 뒤, 손바닥에 생긴 물집을 입으로 호호 불어주며 나지막이 물었다.
“왜 아버지한테 손바닥에 물집이 잡힌 것을 알리지 않았느냐?”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있던 고영진이 끝내 입을 오므린 채 입을 열어 큰 소리로 말했다.
“묻지도 않으셨잖아요! 음, 음……. 제가 손이 계속 아팠는데, 상대도 안 해주시고는…….”
목소리는 이미 울먹이며 매우 억울해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이마를 쓰다듬으며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주물러대다가 다시 부드럽게 물었다.
“너 지금 아버지한테 화풀이하는 게냐? 네가 어렸을 때 네 형도 아버지를 따라 밭에 나가 일했다. 그때는 거머리에게 물리기까지 했었지.”
이후 고영량도 독서에 대한 열의가 한 단계 더 고취되었었다.
고영진은 듣자마자 머리가 핑 도는 듯 얼른 입을 다물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네 나이 또래 친구들은 평소에 학당 수업 외에 밭일도 하고 있지 않으냐?”
고청운은 두 손으로 아이의 어깨를 잡고 끈기 있게 설명했다. 사실 그는 농사일을 조금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아들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밭에 따라 나가고 있었다.
요컨대 가끔 그들을 데리고 밭에 나가 일을 시키는 것 자체가 고청운의 교육방식 중 하나였던 것이다. 고청운은 자신이 농사를 짓기 싫어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으니, 아들들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가 닦아둔 기초가 있어 아이들이 농사일을 선택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세상일이라 무릇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준비를 많이 해 둬야 했다. ‘막다른 곳에서도 길은 열린다.’ 라는 말은 준비를 잘해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또 고청운은 가족의 경쟁력을 유지하게 시키려면 공부만 해서는 안 되고 때로는 몸을 움직일 필요도 있다는 이치를 어느 책에서 읽고, 시험 삼아 계속해서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효과가 있다면 이 항목은 나중에 그들의 집안의 규칙 혹은 문중의 규율에 추가될 수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고영진도 생각하는 바가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 아버지는 네가 앞으로 땅콩이 나무에 열리는지, 땅에서 열매를 맺는지도 모르고 살지 않기를 바라.”
고청운이 다시 아이의 작은 손을 호호 불어주었다.
고청운의 입김에 고영진은 꺅꺅거리며 웃었다.
옆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가족들은 두 부자가 다시 다정하게 껴안고 담소를 나누자 눈을 마주치고는 서로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이 서로 납득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또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 * *
이날 아침, 고청운은 정권을 몇 차례 연마하고 활을 당겨 화살을 쏘다가 땀이 나자 비로소 아침 운동을 멈췄다.
수건으로 얼굴을 닦던 그는 이때는 날이 이미 밝아 아침 바람이 불고 나뭇잎 위의 이슬이 굴러떨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마당을 나서서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고향에 돌아온 지 거의 열흘 정도가 지났는데, 줄곧 바빠서 한동안 마을을 돌아본 적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새집을 지었다고 하니, 한 번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줄곧 앞문에 서 있던 강아지가 고청운이 나가는 것을 보고 짖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고청운은 개가 꼬리 흔드는 것을 한 번 보고 빙그레 웃었다. 이 개는 그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소흑의 후손으로, 3대째 여전히 그들의 집을 지키고 있었다.
* * *
큰할아버지 고백산의 집 근처로 발걸음을 옮겼을 때, 마침 고청명이 반대편 오솔길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살짝 놀라고는 이내 웃었다.
옅은 아침 안개 속에서 고청운과 고청명은 나란히 걸었고, 그들의 뒤로는 검은 개 한 마리가 따르고 있었다.
“너는 내가 운이 조금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내 학문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해. 사람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한데, 너에게 부탁해서 가져온 자료를 나도 솔직히 봤지만, 시험장에서 몇 분 만에 그런 답안을 쓸 수 있을까? 이번에 낙방한 후로는 차라리 아들에게 집중하여 공부를 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그 아이가 나보다 자질이 더 좋더구나.”
고청운은 이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남들과 상관없이 스스로 다 포기하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거 시험은 남이 아무리 많이 도와줘도 결국 자신이 직접 나서서 시험을 봐야 했던 것이다. 진교 또한 그랬는데,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서첩의 탁본과 참고 자료를 보내줬다고 해서 그가 과연 합격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 자신의 노력과 운에 달린 것이었다.
“형님, 제가 딱 몇 말씀만 드리자면, 이번 왕조는 나날이 번성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만 보아도, 새로 지어진 집들만 봐도 아시겠지요. 요 몇 년간은 아주 순조로운 나날들이 지속되고 있었기에, 마을 사람들이 은자를 가지고 새집을 지을 수 있는 거예요. 만약 거기서 돈이 더 들어오게 되면, 아이를 공부시킬 생각을 하겠죠.
그리고 제가 역사책을 보니까, 전 왕조의 건국 초기 때 생겨난 많은 귀족 문관들은 모두 발에 흙을 담그고 살던 농민 출신들이었어요. 초기 10여 년 동안 정세가 불안할 테니, 이때 합격한 진사의 10분의 8이 하층민이나 염세한 집안 출신들이었겠죠.
건국하고 30~40년 후 생활이 안정되고 문인이 많아지면서는 진사의 10분의 6만이 하층민과 염세한 집안 출신이었어요. 왕조의 중, 후반에 이르러서는 유식한 사람들이 개혁을 일으키지 않는 한, 진사 합격자의 10분의 2만이 하층민과 염세한 집안 출신 사람들이 되었는데, 이마저도 더 적을 수 있습니다.”
고청명은 뭔가 의심스러운 듯 눈을 깜박거렸는데, 고청운이 이런 긴말을 무슨 뜻으로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