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상봉 (1)
9월 11일, 고청운은 드디어 귀향길에 올랐다. 그를 따라 귀향을 확정한 진씨 가족은 모두 9명이었는데, 둘째 외숙부 진은 내외와 셋째 외숙부 진동 및 진교 부자, 그 외에 두 집안의 장손들도 함께 가기로 하였다. 두 아이는 나이가 같았고, 고영량보다 한 살 더 많아 지금은 12살이었다. 이미 꽤 큰 소년들이라 장거리 여정의 고됨과 피로를 견딜 수 있을 것이었다.
노인 세 분도 따라오겠다며 극구 우겼다. 나이가 워낙 연로해서 분주하게 다니는 게 힘들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만에 만난 가족을 안 볼 수도 없어 한 번쯤은 직접 가보겠다고 했던 것이었다.
고청운은 하루라도 빨리 임계촌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인분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해, 가능한한 편한 방법의 여정을 고려해 본 결과, 돈을 아끼지 않고, 길을 아주 잘 아는 표사(*镖师: 화물 호송원, 경호원) 두 분을 청하여, 전세 마차나 우마차 혹은 수로까지 동원해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가게 되면 9월 20일에는 임계촌에 도달할 수 있을 터였다.
* * *
멀지 않은 곳에 낯익은 마을이 점차 보이고 있었다. 청산녹수에 둘러싸인 아리따운 산천 사이로 고청운은 희미하게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를 들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도, 석양조차도 다정해 보였다.
이 풍광을 보고 있자니, 지붕 없는 우마차에 앉아 있던 고청운은 눈물을 흘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구나.’
이번 여정에 들인 비용을 마저 생각해 보면, 아무리 그가 관료 신분이긴 하지만 이번 여정은 공무로 인한 출장이 아니었기에 역참을 이용하는 데에도, 자신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하지만 신분 덕분에 일반 사람들에 비해 그들 일행은 비용을 절반만 지불해도 되었다.
비록 진씨 집안사람들이 모두 의식적으로 그가 돈을 덜 부담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 절약해 주었지만, 이번 여정에 들어간 총비용을 계산해 보면 고청운은 자신이 이번에 상성 출장으로 얻은 모든 부수입을 모두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계산은 다 부질없었다. 적어도 가족을 찾을 수 있었던 것만은 정말 좋은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이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이는 정말이지 이 비용들을 지불할 만큼 가치 있는 값진 일이었다.
‘내가 호부에서 오래 일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자꾸 돈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는 걸까?’
고청운은 자신이 절대로 인색해서가 아니라 직업병에 걸린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고삼원이 마차에서 뛰어내리며 기쁨에 겨워 소리치며 말했다.
“숙부, 우리가 드디어 고향에 도착했어요! 하하, 가족분들께서 조금 있다가 저희를 보면 정말 기뻐하실 거예요! 헤헤.”
그의 말을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있었던 고천운은 지금 눈을 가늘게 뜨고 강가에서 걸어오는 한 무리의 어린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거의 헐벗고 엉덩이를 내놓은 채 자기 옷을 껴안고 이쪽을 향해 장난치며 뛰어오고 있었는데, 이따금씩 즐거움에 겨워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우마차다, 우마차!”
“누군가 있어, 누구지!”
고청운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중에서 그나마 잠방이라도 걸치고 있는 어린아이 하나가 이쪽으로 달려왔는데, 모두들 그 아이를 보고 따라 뛰어오며 고함을 질러 댔다.
아이들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청운은 아이들의 아랫배에 살들이 올라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청운은 엄숙하게 그중 한 명을 쳐다보았고, 새까맣고 통통한 아이 하나도 고청운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놀라고 또 기뻐서 눈을 크게 뜬 채 앞니가 빠진 이 두 줄을 드러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으나, 소리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 눈을 마주친 채 서 있었다.
고청운은 처참하여 차마 볼 수가 없어 눈을 감아버렸다.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이다.
‘미치겠구나, 왜 고향에 올 때마다 아들들이 골칫거리인지. 이 녀석에게 매를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소어야……. 너, 너…… 어허.”
고삼원은 입을 가리고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청운의 검게 변한 얼굴을 보고는 얼른 기침을 한 번 하고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정색을 해야 했다. 그가 곧이어 다시 말을 이었다.
“소어야, 무슨 일이니? 네 형의 예전 모습과 꼭 닮았구나.”
고청운은 희고 포동포동하던 모습에서 단번에 검은 찐빵처럼 변해버린 아이를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적응이 안 되었지만, 예전의 고영량을 떠올려 보면 또 무덤덤해질 수 있었다.
고영진은 고청운의 얼굴을 보고 입술을 꿈틀거리며 ‘아버지!’라고 겁에 질려 소리쳤다. 아버지의 눈빛이 매서웠던 것이다.
‘혹시 내가 무슨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나?’
아버지가 고향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와 다짐했던, 아무 때나 물놀이를 하러 가지 않겠다고 약조했던 내용이 생각난 고영진은 몸이 움츠렸고, 방금 전 놀라울 정도의 반가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고삼원은 뒤에 있는 우마차 세 대가 느릿느릿 다가오는 것을 보고 또다시 고영진의 불쌍한 꼴을 보더니, 잠시 생각해 보고 다시 의견을 냈다.
“숙부, 우리 빨리 소어를 집으로 보내 아버님께 도착했다는 소식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친척분들을 모시고 왔다고 알려야 하니까요.”
고청운은 가타부타 말없이 아직 구경 중인 어린애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 나이가 많은 아이는 8, 9살 정도 되어 보였고, 어린아이들은 2~3살 정도가 되어 보였다.
어린아이들이야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나이가 많은 편인 아이들은 고청운이 자신들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절로 옷으로 하반신을 가리고는, 서둘러 엉덩이를 사리며 뛰어 도망쳤다.
큰아이들이 도망가자 뒤에 있는 어린아이들도 따라서 뛰었다. 잠시 후 고영진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고, 바람도 불어와 더 쓸쓸하고 불쌍했다.
“넌 왜 아예 발가벗지 않고서는?”
한참을 있다가 고청운이 한마디 내뱉었다. 그는 방금 고향 집에 도착해서 느낀 기쁨을 떠올리며 속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화낼 필요가 없다. 어린아이가 물장난을 즐기는 것은 천성일 뿐이야. 좀 검게 그을린 것도 괜찮아. 어차피 다시 희고 뽀얗게 돌아올 것이니 말이야. 단지 그의 학업 상태만, 공부만 빼놓지 않고 잘하고 있었으면 될 것이다.’
고청운은 고영진의 양 볼 살이 더 아래로 내려오고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와 있는 것을 보고도 귀엽기만 할 뿐, 눈꼴이 시리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이 아이는 집에서 도대체 뭘 먹은 걸까? 왜 또 이렇게 살이 찐 것 같지?’
고영진은 마침내 아버지가 자기와 말을 하려 했기에 기뻐, 가슴을 펴고 큰소리로 말했다.
“저는 당연히 발가벗고 다니지 않죠, 저도 이만큼이나 컸는걸요!”
고청운이 실눈을 뜨고 웃으며 말했다.
“알고 보니 우리 아들도 자신이 7살이 된 걸 알고 있었구나. 아버지는 네가 아직도 4, 5살짜리 꼬맹이로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 말을 들은 고영진은 다시는 스스로도, 남도 속일 수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틀림없이 화가 나 있는 것이었다.
고삼원은 헛기침을 하고는 두 부자의 시선을 차단하며 말했다.
“소어야, 어서 돌아가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집에 손님이 오셨다고 전해 주렴.”
고영진은 고청운을 한 번 돌아보고 다시 우마차에 뛰어올랐고, 아버지가 이쪽을 보고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일순간 기뻐하며 황급히 대답했다.
“아버지, 삼원 형아, 그럼 전 이만 돌아갑니다.”
그는 말도 채 끝나기 전에 원숭이처럼 달아나더니, 곧바로 고청운이 보기에 작은 점처럼 보일 만큼 작게 멀어져 갔다.
* * *
아까의 소란은 잠시 뒤로 하고 계속해서 우마차를 달려 마을 어귀에 도착하자, 고청운은 더는 우마차 위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예전과 같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끊임없이 다가와서 인사를 나눠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와 유일한 차이점은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끌어당겨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그의 지위가 높아지면서 마을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갈수록 그에게 공손해지고 잡담도 너무 늘어놓지 않았고, 어느정도 나이 든 사람들만이 그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마침내 집 앞에 도착했다.
이때는 고영진이 일찌감치 집안으로 뛰어 들어와 고청운이 돌아왔다고 알려 주었기에, 그들이 집에 들어가기 전에 가족들은 이미 뱅골보리수 아래에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방문에서 고청운은 주인공이 아니었다. 물론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가족들은 감격하기는 했지만, 진씨 가족이 눈앞에 나타난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특히 노진씨와 소진씨는, 하나는 둘째 외숙모를 껴안고 또 한 명은 외할머니를 안고 흐느끼며 통곡을 하고 눈물을 흘렸고, 고계산과 진일문 역시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변의 가족들 역시 이들을 둘러싸고 위로의 말을 이어가다 보니 간간이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그제야 고청운은 왜 가족들이 예전처럼 마을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헤어진 친척들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흥분한 할머니가 바닥에 넘어져 식구들을 놀라게 했던 것이었다.
“그럼 사람을 불러 의원을 모셔오게 했소?”
고청운이 간미에게 물으며 눈으로는 노진씨를 살폈다. 그녀는 걷는 모양이 그런대로 정상적이었는데, 걸음새만 약간 비뚤어졌을 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 정도였다.
간미는 머리를 끄덕였다.
“저희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사람을 보내 의원을 모셔오게 했는데, 할머님께서 괜찮다고 하시지 뭐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틀림없이 의원이 오시면 진찰을 받으실 거예요. 사람을 보내는 김에 큰형님께도 당신이 돌아왔다는 말을 전해 두었어요.”
고청운은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돌려 잠시 서글서글한 눈으로 잠시 간미를 찬찬히 쳐다보았는데, 그녀가 조금 어색해하자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예전만큼 어여쁘구려, 다만 머리 모양을 바꾸었군? 새로운 머리 모양이 참 어여쁘오. 미아의 얼굴형과 잘 어울려 아주 우아하고 대범해 보이오.”
신혼 시절의 간미를 떠올린 그는 어떻게 된 것이 간미가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느껴졌는데, 그녀는 기질만 조금 성숙해진 것 말고는 나이도 거의 들지 않은 듯했다.
간미는 그 말을 듣자마자 하얀 얼굴을 삽시간에 붉히며 그를 교묘하게 노려보더니, 옥같이 고운 손으로 틀어 올린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어쩜 그리 능글맞게 말만 번지르르 하신지요.”
간미는 말은 그래도 속으로는 부군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꽤 좋았다. 고청운이 세심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머리 모양을 바꾸었는지도 몰랐을 것이었다.
간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얼른 얼굴의 웃음기를 거두었다.
그 모습을 본 고청운은 방긋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