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16)화 (316/504)

316화. 마무리

고청운은 새하얀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는데, 그 맛이 씁쓸한 가운데 구수한 향을 띠고 있어서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이것은 무슨 찻잎으로 우리신 차입니까?”

그러자 진교가 얼굴이 순간 굳으며 답했다.

“이것은 산에서부터 채취한 야생 차인데, 내가 직접 덖어 만든 것이네. 고상한 자리에는 오를 수 없는 맛이라, 입에 많이 맞지 않았는가?”

그 말에 다른 사람들도 긴장해서 쳐다보았다.

고청운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말했다.

“아주 맛이 좋습니다. 저는 줄곧 차 마시는 것을 즐기지 않았는데, 이 차에는 다른 차에는 없는 다른 맛이 있군요. 쌉쌀한 맛 속에도 단맛을 지니고 있어요. 또 독특한 향기도 있어서 저는 매우 마음에 듭니다.”

진씨 가족들은 그 말을 듣자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자신들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을 띠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럼 고향 집에 갈 때 좀 챙겨 주겠네. 집에 얼마든지 있으니 말일세.”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고청운은 사람들이 아직 좀 어색해 하는 것을 보고,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특별히 8명의 어린아이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들은 갑자기 놀란 듯 황급히 어른들 뒤로 몸을 숨겼다. 

진씨 가족은 머쓱한 듯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고청운에게 말했다. 

“아이들이 낯을 좀 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아이들에게도 말을 건네며 핀잔을 주었다. 

“이분은 너희 숙부이신데, 뭐가 그리 무섭느냐?”

쌍방이 서로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문제라는 것을 알았던 고청운은 다시 어른들이 앉아 있는 쪽을 바라보았는데, 외할머니만 여전히 자신을 자애롭게 바라보고 있는 것 외에는 모두 매우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만약 여기 나타난 사람이 고청운의 부모님 세대라면, 모두가 매우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것이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저희 집에는 고모가 한 분 더 계셨습니다. 단지 피난 중에 함께 떨어지게 되었는데, 엽(叶)씨 집안에 시집을 가셨었죠. 혹시 그분에 대해 알고 계시는 소식이 있으실까요?”

고청운은 잠시 뒤에 다른 주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이 정도도 자신이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 한 번의 고차로 파견 나가 바로 헤어진 친척을 찾아내다니, 심지어 할머니와 어머니의 친척분들을 말이다. 비록 그중에 몇 분은 이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그중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모두 그의 앞에 있었으니, 식구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매우 기뻐할 것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잠시 후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청운은 실망했지만, 이미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뒤이어 그는 고삼원에게 손짓을 하여 미리 정리해 표식을 달아 둔 선물을 나눠주었고, 아이들에게도 상견례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그가 준비해 온 선물들은 모두 상성 관리들이 준 것들이지만, 오는 길에 고삼원이 길에서 구비한 것들도 있었다. 

아이들은 책과 사탕 등 간식을 보고 저마다 웃음을 터뜨리고 어색함을 달래며 작은 소리로 환호했다.

고청운은 아이들이 서로의 것을 빼앗거나 다투지 않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받은 선물을 건네는 것을 지켜보았는데, 아이들은 어머니가 다시 선물들을 분배해주자, 그제야 받은 사탕을 만족스러운 듯 입에 넣었다.

“아이들을 정말 잘 가르치셨군요.”

고청운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아이들을 향해 다시 웃었다.

아이들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보고 있었는데, 그중 두 아이가 고청운에게 웃어 보이며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진씨 가족들은 고청운의 칭찬을 듣자마자 허리를 꼿꼿하게 피며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고, 외숙모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이 다 같이 방긋방긋 웃으면서 분위기가 확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다음 외숙모들은 식사를 준비하러 가고, 외할머니만 남아 고청운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남은 모두들 최근의 근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고청운이 전해 들은 상황과 거의 비슷했다.

고씨 집안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몇 마디로만 설명하고 넘어갔다. 

“고씨 집안의 영감님이 우리보다 운이 좋으신지, 너 같은 유망한 손주를 보셨구나. 우리 집에도 큰 복이야, 이런 외손주를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외할아버지 진일문은 처음 만나본 외손자를 바라보았는데, 키가 크고 마른 것이 농사꾼만큼 짱짱한 모습도 아니고, 피부가 희고 눈에는 총기가 어려 있으며, 언사나 행동거지가 모두 일반 사람들과는 달라 보였다. 

‘우리 집의 손주만 해도 평소에 학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은 문인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보니 왜 외손자보다 우리 손주가 더 까맣고 거친 느낌이 드는 것이야?’

고청운은 빙긋이 웃으며 진교를 보면서 말했다.

“표형께서도 훌륭하십니다. 제가 보니 문장 실력도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셨더군요. 다만 향시 합격에는 어느 정도 운이 좀 따라야 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은가? 이번 향시 시험이 바로 그러했다. 

진교는 고개를 저었다.

“표제가 칭찬할 필요 없네. 나는 아직 부족한 게 많으니, 자네에게 하나둘 가르침을 청할 뿐이네.”

마차에서도 고청운과 이미 말을 나누었기에, 진교는 자신이 서예 쪽과 독서량, 이 두 가지 모두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앞으로는 이 방면으로 더 매진해야 했다.

“어떤 것이든,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힘껏 돕겠습니다.”

고청운이 그를 향해 웃었다.

이때 외할아버지 진일문이 고청운과 진교가 어떻게 알게 된 것인지 그 과정을 물으며 원망하듯 말했다.

“아교가 황망하게 사람을 시켜 서신을 전하기는 했으나, 자네를 찾았다고만 했지 다른 소식은 아무것도 전해 주지를 않았단다.”

고청운은 열심히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 번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둘이 서로를 알게 된 경과를 사실과 거의 비슷하게 말해 주었다. 다만 그의 심리적인 고뇌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진씨 가족은 설명을 들으며 매우 낙담했다. 필경 진교가 상성으로 건너가 시험을 한 번 보고 돌아오는 일 자체가 매우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나마 그들의 집이 성도에서 가까운 편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들 집안에는 시간과 여비가 많이 여유롭지 못했다. 그렇지만 않았더라면 집에서 충분히 더 지지해 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진교도 자신이 이번 시험에서 합격에 그렇게 가까이까지 다가갔었는지 몰랐다가 처음 알게 되었는데, 알고 나니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외할머니가 넌지시 물었다. 

“청운아, 너는 시험관이었는데, 네 표형을 한번 붙여 줄 수는 없었느냐?”

“할머니, 안됩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게요, 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진교와 진일문의 말이 거의 동시에 울려 퍼졌다. 외할머니를 노려보는 진일문의 눈에는 경고의 뜻이 내비치고 있었다. 

고청운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고삼원이 상황을 보다가 고청운을 힐끗 쳐다보고는 대화에 껴들어 설명을 보탰다.

“조정에서 정한 규정이 있습니다. 숙부께서 상성의 시험관으로 가신 이상, 외숙부의 아들은 같은 지역에서 시험을 칠 수 없게 됩니다. 향시에 참가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전에야 두 집에서 서로 알고 지낸 것이 아니었기에 그나마 괜찮았지만, 만약 숙부께서 사사로운 정 때문에 부정행위를 저지르셨다면, 두 집안에서는 목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 나오거나 유배를 가셔야 할 만큼 큰 화를 입으셨을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바로 그런 규정이 있습니다.”

진교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외할머니는 깜짝 놀라 가슴을 치며 말했다.

“조정에서 그렇게 엄중히 단속을 한다면, 우리 청운이가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되지.”

“안심하세요, 외할머니.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

고청운은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외할아버지가 이 집안에서 제일 결정권이 크다는 것과 셋째 외숙부는 성실한 사람이었으나 계속해서 외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한편, 진교의 동생 진주는 그보다 나이가 2살 어렸는데, 용모는 셋째 외숙부의 험상궂은 얼굴과 닮지 않았고, 피부색도 밀색이었다. 고청운은 그가 계속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는 길에 고청운은 진교를 통해 진주가 비록 과거에 응시해 본 적은 없으나 집에서 틈날 때마다 진교를 따라 공부를 해 왔는데, 언제 한 번 현에 가서 시험을 보고 나서야 공부에 대한 마음을 접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탄복하던 참이었다. 

공교롭게도 고청운은 자신과 진주의 외모가 3할이나 서로 닮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눈썹은 자신과 거의 똑같이 생겼기에, 고청운은 그에게 자연히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어 세 노인의 건강 상태를 물어본 고청운은 비록 건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큰 병을 앓고 있지는 않았고, 그저 노화 때문에 약간의 잔병치레가 잦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청운은 그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외할머니를 향해 물었다. 

“외할머니, 요 며칠 몸이 좀 불편하셨으니, 지금 다 같이 각자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시는 것은 어떠세요?” 

“이 할미는 너를 보자마자 어떤 병이든 싹 사라졌구나!”

외할머니는 고청운이 자신을 걱정해 주자 겹겹이 주름진 얼굴에 국화꽃 같은 웃음을 피우며 그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저 늙어서 병이 잦은 게지, 약을 좀 먹으면 곧 괜찮아진단다. 별거 아니야.”

고청운은 진교를 쳐다보았는데,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말을 아꼈다.

결론적으로 고청운은 첫 만남에서부터 진씨 집안의 가족들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특히 큰외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두 분이 현명한 노인분들이라,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진씨 집안이 이곳에 다시 자리 잡을 수 있었겠구나 싶었다. 

담화가 끝나고 고청운은 임계촌 방문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에게는 거의 3개월에 달하는 휴가 기간이 남아 있었는데, 올해 12월 말에는 상경을 해야 했다. 겨울에는 상경하는 길이 더 불편해 보다 일찍 귀경길에 올라야 했기에, 고청운은 임계촌에 더욱 오래 머물기 위해 모레에는 임계촌으로 다시 출발할 계획이었다. 그가 다른 곳에 물어보니, 여기서 임계촌까지 빠른 길이 있어 7~8일이면 닿을 수 있다고 하였다.

양가가 친척 관계를 회복한 이상, 틀림없이 자신을 따라 임계촌으로 갈 사람이 있을 것이었다.

과연 이 이야기를 꺼내자 고청운이 여가촌에 하루밖에 머물 수 없는 것에 실망했음에도, 사람들은 곧바로 누가 고청운을 따라갈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 * *

여가촌에 머무는 이틀 동안, 고청운은 여전히 매우 바빴지만, 진씨 가족이 자신과 고삼원에게 극진히 잘 대해줘 생활에 있어 하등 불편함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은 모두들 친해지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혈연관계라고는 하나 그간 접점이 없이 갑자기 만난 것이라 천천히 적응해야 할 테니, 이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진씨 가족들은 고청운이 관원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으니, 더 경외감을 금치 못했다.

한 가지 더, 고청운이 여가촌을 방문한다는 사실은 청천현의 관청에서도 일찍이 알고 있었다. 사전에 어떤 시험관 하나가 청천현 현령을 통해 진씨 집안의 정보를 알아보고 전해 주었었기 때문이었다. 

도리에 맞게 청천현 현령은 배첩(拜帖)을 보내 그를 현도 교외의 현지 향신의 문회에 초청했고, 고청운은 이를 선뜻 거절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 너무 촉박했기에, 모레 바로 고향 집으로 떠나야 한다고 밝히며 그 초청을 끝내 거절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령은 놀랍게도 그의 일정에 맞추어 문회 모임 시간을 내일 아침으로 바꿔버렸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되자, 결국 고청운은 원하지 않았지만 초청에 응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고청운은 오후에 여가촌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녁 무렵이 되자 각양각색의 배첩이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대부분 현지의 향신들이 사람을 통해 보내오는 것들이었다.

진씨 집안사람들이 현지에서 계속해서 생활해야 하는 데다 현령이 워낙 강하게 요청해 왔기 때문에, 고청운은 결국 문회들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저녁 식사에는 여가촌 촌장도 모습을 나타났다.

……. 

이 시대에서는 이러한 인지상정의 교류와 접대가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러한 상황에 일찍이 습관이 되어 있었는데, 게다가 고삼원이 곁에서 돌보아준 덕분에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의젓하고 여유로워 보이게 일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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