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외가 (3)
9월 9일 중양절(重阳节) 오후 마침내 청천현에 도착한 고청운과 진교는 이 수재와 장 수재의 뜨거운 초청을 완곡히 거절하고, 여가촌(黎家村)으로 향했다.
이제 마차 안에는 고청운과 진교 두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은 진씨 집안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진교로부터 진씨 집안 노인들의 피란 직전의 고향 이야기를 알게 된 고청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몸담은 이 나라의 땅덩어리는 정말 너무나도 컸고 방언의 종류 또한 매우 많았다.
그는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상성에 도착하고 나서도 그와 교류한 모든 사람은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어젯밤 역참에서 머물며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지역 방언을 쓰는 것을 자세히 들어보게 되었고, 자신이 방언을 아주 조금밖에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옆에서 통역해 주는 진교가 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게 편했는데, 다행히 외가 가족들이 옛 고향 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에 고청운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임계촌에 있을 때, 고청운의 집안 어른들은 고향 방언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본토 방언을 구사할 줄 알았기에, 시간이 오래되면서 고청운도 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찌된 일인지 이때의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살게 되면서도 자기 고향 말로 가족들 간 교류를 계속하며 방언을 대물림했다. 그러나 고씨 집안에서는 그런 전통을 고수하지 않았기에, 고청운의 형제들은 옛 고향 말을 계속해서 배울 필요가 없었다.
“표제(*表弟: 내외종 사촌동생), 우리 집 살림이 여의치 못하여 대접이 변변찮더라도 양해를 해 주시게.”
한 시진이 지난 후, 여가촌이 이미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있었을 때 즈음, 진교가 머리를 긁적이며 어수룩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청운도 대답했다.
“제가 수재가 되기 전에는 저희 집도 그러했습니다. 다 같은 농가 출신인데, 누가 누구를 빈축한다는 말입니까? 표형(*表兄: 내외종 사촌형)께서도 잘 알고 계시면서.”
두 사람은 사촌형제 사이로, 진교는 고청운보다 5살 위였다. 막 서로를 알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는 아직 고청운을 표제라고 부르기 꺼렸으나, 고청운의 강요에 못 이겨 며칠 내로 그를 표제라고 부르는 것에 다소 무덤덤해질 수 있었다.
“흠흠, 며칠 전에 서신을 부쳐 부모님께 표제가 오는 것을 알렸으니, 정말 좋아하고 계시겠지.”
진교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자신의 심장 역시 매우 빨리 뛰는 것 같았다. 그는 요즈음 일어난 일들이 마치 꿈같이 느껴졌다. 갑자기 하늘에서 떡이 떨어진 것과 같았는데, 향시의 부시험관이 자신이 잃어버린 사촌동생이라니!
처음에 고삼원이 찾아와 말했을 때, 그는 어디서 사기꾼이 나타났나 생각했었는데, 시험장에서 지휘하는 사촌동생의 모습을 본 적이 있어서인지 직접 사촌동생의 얼굴을 보자 바로 그인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잠시 뒤 그들이 여가촌 마을에 거의 다다랐을 때, 진교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청운이 탄 마차가 여가촌 마을 어귀에 도착하기도 전에 벌써 한 아이가 주변을 지켜보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보자, 그 아이가 즉시 뛰어가며 내지르는 함성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들이 막 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 앞에 서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자신들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였다.
이에 고청운은 재빨리 고삼원에게 마차를 멈추게 하고 자신도 마차에서 내렸다.
그는 그 무리를 바라보며 먼저 한 번 그들을 신속하게 훑어보았다. 음, 어른들이 입은 옷은 대부분 거친 베옷이고, 아이들이 입은 것은 당목으로 만든 것으로 보아 부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젊은이들과 아이들의 얼굴에는 그래도 혈색이 돌았다. 특히나 작은 아이들은 안색이 불그스름하고 광택이 도는 것이 먹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는 듯했다.
고청운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여가촌은 3~400명이 사는 마을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의 성은 여(黎)씨였다. 다른 성을 사용하는 몇몇 집안은 거의 모두 피난 온 사람들로, 그 수는 극히 적었다. 피난민들의 마을에서의 입지 역시 그다지 높지 못했는데, 마을에서 그간 배출했다는 다른 두 명의 수재의 성은 모두 여씨였던 것이다.
진씨 가문의 현재 주요 수입원은 40묘의 토지에서 생산하고 있는 농작물들이었고, 또 진교는 평소에 현에서 지역 유지 집안의 선생님을 해 주며 수입을 창출하고 있었다. 이 둘을 계산해 보면, 생활이 여전히 빠듯하지만, 이전보다는 나은 편일 것이었다. 분명 30묘까지의 땅에는 세금을 물지 않았고, 부역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진교가 이야기해 준 내용들을 토대로 분석을 해본 결과, 그는 진씨네 집안이 매우 단결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 현재까지도 집안 식구끼리 큰 갈등을 빚은 적이 없으며, 집안에서는 여전히 기꺼이 돈을 모아 진교가 계속해서 향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함께 돕고 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
고청운이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지도 않았는데, 맞은편에서 벌써 두 명의 노인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울부짖듯 말했다.
“아교(*阿桥: 진교의 아명)야, 바로 이 아이냐?”
다른 사람들 역시 옴짝달싹 못 한 채 뚫어지게 고청운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들을 둘러싸고 뒤에서 보고 있었기에, 고청운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작은 마을이란 다 이랬다. 무슨 작은 일이 벌어져도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던 것이었다.
진교는 고청운보다 한 걸음 늦게 마차에서 내려 이미 벌어진 상황을 보고는 다급히 서로를 소개했다.
“표제, 이분들이 바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시네. 그리고 여기가 우리 아버지……. 그리고 이분이 나의 큰할아버지시네.”
진교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노인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느님께서 도우셨다. 외할머니다, 손주야! 드디어 내가 흙에 묻히기 전에 너를 찾게 되었구나! 이 할미는 곧 죽더라도 이제 여한이 없구나!”
고청운이 막 어떻게 불러야 할지 호칭을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한 노부인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고청운은 얼떨결에 다급히 말했다.
“외할머니, 저예요.”
그는 속으로 예전에 어머니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본가에 있을 때 외할머니는 그녀를 그냥 일반적으로만 대해 주고, 두 외숙부만 더 중시하여 각별히 대했다고 했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렇게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에도 이렇게 격양된 모습을 보일 줄이야.
‘아마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렇게 격양되신 걸까? 친딸의 아들이 나타난 것이라서 그런 건가?’
“외할머니, 울지 마세요.”
고청운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부드럽게 다독였다. 됐다, 이 상황에서 뭘 더 추측하고 자시고 말할 것이 있겠는가? 우선 급한 것은 헤어진 친척이 살아 돌아온 일을 알리고 서로 상견례를 하는 일이었고, 다른 것은 나중에 살펴볼 일이었다.
이렇게 고청운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진씨 가문과 격렬한 상견례를 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고청운도 연신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노인들이 고청운을 끌어안고 울부짖자, 주변에 있던 부인들이 다급히 말리며 가까스로 노인들을 진정시켜 울음을 그치도록 했다.
고삼원도 분위기에 함께 휩쓸려 눈물을 흘리고 있다가, 구경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자 진일문을 부축하며 말했다.
“숙부, 외숙공, 저희 일단 집안으로 들어가 마저 말씀을 나누시지요.”
진교가 그 말을 듣더니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맞아. 말 잘했네.”
고청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아마도 천성적으로 냉정하게 타고나서였는지, 정말 눈물이 많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슬피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괴롭기는 하였다.
여가촌에 사는 진씨 가족들에게는 예전의 가족을 찾는 일이 큰 기쁨이었지만, 고씨 가족들에게는 진씨 가족을 찾는 일이 임무처럼 여겨져 왔다. 또한 이들이 오랫동안 함께 지내오지 못했었기에, 갑자기 정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였다.
‘아마 앞으로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 * *
마을 어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진씨네 집은 고청운의 고향집과 비슷한 구성이었는데, 다만 그들 집은 네 줄로 늘어선 집들이 직사각형을 이루게 하여 긴 직사각형 형태의 마당이 딸린 집 모양을 하고 있었다.
진씨 가문의 두 집안사람들은 모두 이 가택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곳의 집은 일부분만이 벽돌집이고, 반은 누추한 초가집이었지만 지붕 부분을 보니 자주 손질을 거친 듯했고, 마당과 방 전체도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모두들 대청에 주빈으로 나뉘어 앉고 나서야 다시 한번 정식으로 누가 누구인지 제대로 소개했다.
고청운은 한 사람씩 이름을 부르고 인사를 하며, 자신이 얻은 정보와 일치하는지 은근히 살펴보았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연세는 자신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연배와 비슷했으나, 아까 외할머니가 안아주었을 때 희미한 약 냄새가 풍긴 걸 봐서는 건강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큰외할아버지는 바로 고청운의 할머니의 큰오라버니가 되는 분으로, 외할아버지와는 혈연 상 그리 가까운 사촌은 아니지만, 여가촌에 남은 친인척이라고는 그들 두 집밖에 없었기에 이렇게 몇 년 동안 두 가족은 친형제보다 더 각별히 지내면서 아이까지 함께 키웠다.
큰외할아버지의 아내분과 큰아들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작은아들만이 남아 있었는데, 성함은 진은(陈银)이었다. 고청운은 그를 둘째 외숙부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둘째 외숙부 내외는 2남 1녀를 낳았는데, 딸은 벌써 시집갔으며, 아들의 나이는 고청운보다 훨씬 많아 지금은 손자 셋과 손녀 둘을 두었다고 하였다.
이쪽의 가족 구성 파악이 끝나자, 이번에는 외할머니 쪽 식구들을 알아볼 차례였다.
외할머니 쪽에도 아직 살아 있는 아들은 하나뿐이었는데, 그가 바로 진교의 아버지인 진동으로, 고청운의 셋째 외숙부가 되었다. 셋째 외숙모는 진교가 수재에 합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셋째 외숙부라고 부르렴. 네 넷째 외숙부는 피난 때 잃었으니 불쌍하게도 셋 밖에 남지가 않았구나.”
외할머니는 눈물을 닦았다.
고청운은 얼른 외숙부를 부르며 절을 올렸다. 셋째 외숙부인 진동은 진교와 그의 동생 진주(陈舟)를 두고 있었고, 아직까지는 손자 둘과 손녀 하나를 보았다.
진동은 험상궂은 얼굴의 사내였는데, 고청운이 당황하여 쩔쩔매자 자리에서 일어나 연신 손사래를 쳤다.
“너무 예의를 차릴 것 없네, 절할 것 없어.”
“당연히 절을 올려야지요.”
고청운이 빙긋 웃었다. 현시대의 표준 정황에 미루어 보면, 그들 진씨네는 확실히 세력이 미약했고, 식솔 숫자도 많이 쇠잔해져 있었으며, 어떤 어린 아이들은 장성하기도 전에 요절하여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이 시대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요절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었다. 그것은 황실에서조차도 마찬가지였는데, 그의 사촌형인 고청명 역시 작년에 아이를 병으로 잃어 사람들이 매우 상심했었다.
고청운이 사람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고 나자, 모두들 또다시 피난 당시의 상황을 회상했고, 대청 안의 분위기는 다시 약간 더 침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