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화. 외가 (2)
고청운이 진교에게 자신이 그의 잃어버린 친척임을 알렸을 때, 진교는 매우 격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워낙 말수가 적은 편이어서 그런지 자신을 대하는데 있어 조금은 어색해 보였다.
고청운이 이해한 바에 따르면, 진씨 집안은 피란하던 때 고씨 집안과 헤어지게 된 후 운이 나빠 전쟁에 휘말려 가족 전체 중 절반이 죽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식솔들도 뿔뿔이 흩어졌다고 하였다. 결국 그렇게 계속해서 정처 없이 떠돌던 그들은 상성의 익양부 청천현 관할 산하의 한 산골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현재 진씨 가문에는 단 두 집안만 남아 있게 되었는데, 그중 한 집은 노진씨의 오라버니이자 고청운이 노숙공(*老舅公: 어머니의 외숙부)이라 부르는 분의 집안이었고, 다른 한 집은 바로 외할아버지 진일문의 집안으로, 그와 노숙공은 사촌형제지간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두 가족은 정착하고 난 후, 집안의 원기가 크게 상한 탓에 최근 몇 년 동안 집안의 장정들이 계속해서 남아나지를 못했다. 노숙공의 경우엔 자식 중 아들 하나밖에 남기질 못했고, 외할아버지도 큰숙부와 둘째 숙부 두 명의 아들만 남겼는데, 이들 두 집안을 합쳐도 진씨 문중에는 20여 명의 식솔 밖에 후사를 남기질 못했다.
그들은 이 산골 마을에서는 외지에서 온 농부들이었기에 요 몇 년간 같은 마을의 처녀를 얻어 혼사를 치렀음에도, 진씨 가문 단독으로는 버틸 수 없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었다. 성인들의 경우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으나, 진교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어렸을 때 끊임없이 아이들의 괴롭힘과 싸우면서 자랐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집안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진씨 가문 전체가 힘을 보태어 이 진교라는 수재를 길러낸 모양이었다. 그는 4형제 중 가장 자질이 좋았기에, 그를 수재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 두 가족은 자산을 남김없이 쏟아 부었는데, 애당초 피란길에서 외할아버지가 금은 장신구를 줍게 된 일이 없었더라면 틀림없이 이렇게까지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었다.
뒤에 있는 그 말은 진교가 얼버무려서 넘어갔지만, 고청운은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피란길에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으니, 운만 좋으면 확실히 횡재를 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다만 그때 본래 목표는 금은보화를 획득하고자 함이 아니었을 터였다. 그 당시에는 양식이 금은보화보다 백배나 더 귀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진교는 수재에 합격하여 그들 마을에서 배출한 세 번째 수재가 되었고, 진씨 집안의 마을에서의 지위 역시 비로소 조금 높아져 요 몇 년 동안은 점차 편안해져 갔다.
고청운은 진씨 집안이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게 된 후 살면서 당했던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과 고씨 집안을 비교해 보면, 자신들은 그나마 큰할아버지가 있었기에, 더 큰 행운이 따른 셈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임계촌 사람들은 모두가 다 피란 온 사람들로 토착민들이 없었기에 고씨 집안을 괴롭히는 사람들조차 없었다는 것이었다. 고씨 집안에서 나서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 * *
고청운은 친척을 찾아냈으니 청천현에 직접 가서 진씨 집안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들을 함께 임계촌으로 데려가는 것이 나을지 봐야 했는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할머니 등 가족들이 이곳까지 직접 오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다만 며칠 전까지도 다른 행사들이 있어 아직 가보지를 못하고 있었다.
원래는 지방관의 요청만 없었더라도 이들의 시험관 업무는 녹명연을 끝으로 종료가 되었어야 하였다. 고청운은 진작에 시험관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난 보고서를 작성해 진 학사에게 올렸으니, 큰 예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바로 임계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진 학사의 경우, 내일 경성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고청운은 진 학사가 묻는 질문에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신지. 자네, 헤어진 가족을 찾은 겐가?”
진 학사는 마치 농담이라도 건네는 모습인 양 얼굴에 웃음기를 띤 채 말을 이었다.
“자네가 답안지를 보다가 응시생이 적어 낸 조상 3대의 성함을 보고 잃어버린 외숙부를 찾아낸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 또한 아주 흥미로운 일화로 남을 테지. 앞서서 본관은 자네가 한 답안지를 한참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네. 그 사람이 바로 자네의 사촌형이었는가?”
놀란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사촌형은 서예법이 충분치 못하고, 경의 문항에 대한 답안 역시 원만하게 작성치 못했습니다. 이에 다음번 시험이나 기대해 보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대답을 끝맺으며 고청운은 마치 아쉽다는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지만, 내심 너무 놀라서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다.
진 학사는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나중에 그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전해 주게나. 본관은 자네가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으니.”
고청운은 서둘러 겸손하게 몸을 낮추었다. 이후 두 사람은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고, 고청운은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번 대화 이후, 단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모든 시험관들이 자신이 오래 전 전쟁 피난길에 잃어버린 외가를 찾게 된 일을 알게 되어 잇달아 행운을 빌어주면서 얼마 후부터는 진교 집안과 관련된 소식들을 속속 전해 주었는데, 그 속도가 가히 신속하여 그를 한 번 더 크게 놀라게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보내주는 호의와 축하에 대해 고청운은 그저 웃으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건 이후, 고청운은 자신이 답안지를 채점할 때 잃어버린 친척을 알아본 사건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을 알고 매우 놀랐다. 하지만, 다행히 대부분 운이 좋게 마무리되었는데, 그 이유는 필경 몇십 년 전까지도 다른 사람들 역시 친지들과 헤어진 경험이 있었고 또 지금까지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헤어진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론이 나쁘지 않았던 데다가 어찌 그런 상황에서 이산가족을 맞닥뜨릴 수 있었는지, 사람들은 매우 신기하게 여겼다.
또한, 고청운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시험관의 임무를 수행한 것까지 알려지며 그의 명성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 듯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 고대의 소식이라는 것은, 때론 매우 늦게 전달되기도 하고, 어떤 사건들은 때론 너무나도 빠르게 퍼지면서 떠들썩하게 변모하기도 하였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고청운은 자신이 마침내 한 고비를 넘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냉정치 못하고 정에 치우쳐 일을 그르치지 않은 것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고청운은 앞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행함에 있어서 계속해서 신중하고 조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암암리에 다시 한번 마음먹었다.
* * *
이튿날인 9월 8일, 고청운은 고삼원을 대동하여 진교를 따라 청천현으로 향하는 뱃길에 몸을 실었다. 그와 동시에 고향의 가족들이 자신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걱정할까 봐 임계촌에도 서신을 한 통 부쳤다.
9월, 가을 하늘은 높고 날씨는 시원해져서 7, 8월의 무더위에 비하면, 이 시기에 길을 재촉하는 것은 별로 힘든 일이 아니었다. 찬바람도 솔솔 불어와 꽤나 시원했다.
여정은 무료했다. 고청운은 향시가 종료되고 나서 며칠을 연달아 쉬기만 했는데, 그 덕에 정신적으로 잘 회복되었다.
지금 그는 마차 안에 앉아 진교와 함께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본래 향시에서 합격자 명단이 발표된 후, 진교는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때 마침 고청운이 먼저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이에 진교는 고청운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청운의 다른 업무가 끝나기를 기다리느라 지금에야 귀향하게 되었다.
진교의 두 친한 벗인 장 수재와 이 수재는 상황을 알게 되고 나서 진교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덩달아 기다렸다.
이번 시험에서 두 친우도 진교와 함께 낙방했는데, 본디 시험에 낙방한 것에 매우 낙담하고 있었으나, 고청운과 진씨 집안의 일을 듣고는 오히려 정신이 들어 진교와 함께 집에 돌아가기를 고집했다.
진교는 고청운에게 함께 귀향해도 되는지 의사 확인을 하고 나서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네 사람이 함께 귀향하는 길에서 웃고 떠들며 잡담을 나눴지만,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 주제는 이번 향시 문제와 과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고청운은 그들의 질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해 주었는데, 어차피 마차 안에서 보내는 여정은 길이 너무 흔들려서 누워 있어도 불편했기에 그럴 바에는 그들 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이들이 묻는 질문들은 고청운을 난처하게 할 만한 난이도의 수준도 아니었다. 온고지신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도 그들과의 대답을 통해 새로운 지식의 경지를 접하게 되면 나중에 아들을 가르치는 일도 더 쉬워질 것이었다.
“대인께서 말씀하시는 바에 의하면, 이 책론 문항은 제가 이렇게 풀어내도 되겠습니까?”
장 수재는 고대하는 듯 고청운을 뚫어져라 주시했는데, 그 말투가 매우 온화했다.
고청운은 그가 건넨 책론 답안을 받아들고 다시 한번 대충 훑어보았다.
‘음, 글씨는 잘 썼네.’
고청운은 마차가 흔들리기에 이런 상황에서 책을 보는 것은 눈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들의 지식에 대한 열망을 보고 잠시 자신의 불편함을 참기로 하였다.
이 상황은 그 자신이 수재였을 때를 생각나게 하였다. 한 번은 그가 유 현령을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의 유 현령은 그들에게 학문적 가르침을 내려주었었는데, 단 몇 마디 말만으로 고청운과 조문헌에게 깨우침을 주었다. 유 현령도 그렇게 했을 진데, 지금의 자신은 그때의 유 현령보다 시간도, 정력도 더 있으니 기꺼이 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문학적 재능은 좋으나, 내용이 공허하네. 내용에 더 실속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정도 실행 가능성이 있어야 할 걸세. 과거 시험의 내용은 날이 갈수록 더 현실에 치중한 문제들이 거론되고 있으니 평소 정보 수집에 유념해야 하네.”
고청운은 아주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내려주었다. 지금 그의 지위는 진교 등 세 사람 앞에서 굳이 겉 발린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장 수재는 듣자마자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것은 그가 이틀 전에 서둘러 쓴 책론 답안으로,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대구(对仗)의 짜임새가 좋았고, 내용적으로도 근거가 있고 충실한 것 같았다.
이것이 자신이 써낸 답안 중 가장 수준이 높은 편이었기에, 그는 오늘 같은 날을 기다려 야심차게 고 대인에게 보여 평가를 받아보려 했는데 뜻밖에도 고 대인의 눈에 차지 못할 줄은 몰랐다.
삽시간에 잠시 그의 얼굴에는 낙담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내 분발하여 귀를 세우고 고 대인과 이 수재의 대화를 귀담아들었다.
그는 고 대인이 말해 주는 내용이 매우 통속적이라 알기 쉽다고 여겨졌는데, 말하는 내용 역시 듣고 있다 보면 매우 일리가 있었다. 그들이 문제를 질문하면, 고청운은 거의 오래 생각지 않고 바로바로 대답을 해 주었다. 그들은 평소에 오랫동안 해왔던 의문들을 해결함으로써, 적지 않은 이득을 보게 되었다.
진교는 오히려 그들처럼 급하지 않았다. 그는 어차피 고청운과 함께 임계촌으로 가기로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고청운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 역시 두 사람보다 많을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여정이라, 고청운은 시간이 느리지 않게 잘 흘러간다고 느꼈다. 담주부에서 익앙부 청천현까지는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더 걸리는데, 우마차를 이용할 경우 시간이 더 걸렸다.
고청운은 다행히 마차 두 대를 대절한 덕분에 목적지까지 좀 더 서둘러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진씨 가문의 사람들을 빨리 만나보고 싶었고, 그들 중 일부를 고향 임계촌으로 모시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