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13)화 (313/504)

313화. 외가 (1)

고청운은 우선 이 사실을 숨기듯이 또 다른 답안지 하나를 집어 들고 보았는데,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내가 과연 위험을 무릅쓰고 손을 써야 하는 걸까?’ 

고청운은 만약 자신이 조심만 한다면, 진교의 이름을 보결 합격자 명단으로 올리는 일쯤은 아주 손쉬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우선 일을 처리해 버린 후, 그를 찾아 친인척 관계가 맞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몇 년이 지나서 소문이 잦아들었을 때 즈음 찾아가 친척 관계를 확인해 보는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하면 위험 요소도 많이 낮아져 그가 만일에도 감수해야 할 위험 역시 적어질 것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진교가 합격에 한발 가까이 다가설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앞으로 그가 이번 시험에서만큼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번에 낙방하고 나면, 다음 시험에서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합격까지 가야 할 것이었다. 

고청운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는 현재 단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외가에 대해 혈연관계라는 것에 얽매여, 얼마라고 할 것도 없는 감정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외가 사람들과 함께 지내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대의 세시풍속에 따르면, 세상살이에 있어 모두가 단결하여 뭐든 좋은 것이 있으면 웬만해서는 자기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하였다. 비밀스럽게 조작을 가해, 원래 혜택을 공정하게 누렸어야 하는 또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이 세계는 원래 그랬다. 지금 당장에도 맞은편 시험관들이 석차를 놓고 다투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보결 합격자 명단에 오른 몇 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는 자신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공평하고 사심을 채우지 않는 사람을 표방하지는 않았고, 반드시 실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기꺼이 자기 식구들의 이익에 편중하는 태도를 취했는데, 물론 그 행위의 전제는 대다수 사람들의 이익을 해치지 아니하고, 나쁜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 하며, 자신에게 위해로 돌아오지 않는 일에 한해서였다. 

이것은 고청운이 가진 이기적인 면모 중 하나였는데, 그는 자기 스스로가 이기적인 면이 있다는 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진교와 관련된 이 일은 반드시 그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었다. 무릇 행한 일들은 항상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기에, 일만 번은 두렵지 않지만 만에 하나는 겁나는 법이었다. 때때로 관직 생활에 있어 모든 일은 확실히 말하기 어려웠는데, 재수가 없을 때는 비록 무고한 일이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등 연루되기에 십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가족을 생각했는데,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간미, 그리고 자신의 세 명의 어린 자녀들이 떠오르자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이 기분을 한바탕 몸부림쳐 떨궈낸 후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고청운은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 이 일에 손을 쓰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이토록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31년을 살아왔는데, 이 일로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았다.

‘죄송해요.’

고청운은 남몰래 속으로 한마디 내뱉었는데, 답안지를 눈으로 한 번 흩어 내리며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방금 고청운이 향 하나가 겨우 탈 만한 이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속으로 발버둥을 치고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모두의 눈에는 그가 여전히 열심히 답안지를 고르고 있는 것만 보였을 뿐이었다. 

그는 낙방한 답안지 중 일부를 뽑아 살펴보며, 우수한 수준의 답안지임에도 탈락한 것은 아닌지 확실하게 확인해 보았다. 

* * *

최종적으로, 전체 시험관의 토의를 거친 후 진 학사의 결정까지 더해져 9월 2일 밤, 올해 상성의 향시 합격자 명단이 드디어 완성되었다. 

명단에는 자신의 관직명과 이름을 함께 새긴 인장이 찍혀 있었는데, 고청운은 그 위에 진교라는 이름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 외에는 일을 잘 성사시킨 것 같아 희열에 가득 찼다. 

이번 시차(*试差: 조정에서 파견하는 향시의 시험관) 직무는 이 정도 단계면 이제 거의 다 끝난 것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녹명연에 참석하는 것 정도였는데, 이후 응시생들이 소란을 피우거나 부정행위 신고만 없으면 거의 원만하게 임무는 종료되는 셈이었다.

합격자 명단을 붙이기 전, 고청운 등의 사람들은 하나둘씩 시험장을 떠났다. 그 안에서의 생활이 조금도 편안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항상 곰팡이 냄새가 나는데다가 쥐, 뱀, 개미, 바퀴벌레가 특히 많았기 때문에 시험장을 떠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자, 모두들 어둑해지는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마다 서둘러 부리나케 인사를 건네고 곧장 다른 숙소로 달려나갔다.

진 학사를 따라 행관으로 돌아온 고청운은 지쳐있을 틈도 없이 서둘러 고삼원에게 분부했다.

“삼원아, 너는 내일 아침 일찍 밖에 나가서 이번에 향시를 보러 온 수재 중에 진교라는 사람에 대해 좀 알아보거라. 또 그 집이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도 알아 오고.”

말을 마친 고청운이 다시 진교에 대해 간략히 적힌 종이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만약 어떤 소식도 수소문해 볼 수 없으면, 다른 방법도 생각해 보자꾸나.”

어디나 소식이 정통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진교 같은 수재에 대해서는 비교적 알아내기가 쉬운 편일 터였다. 정 소식을 알아볼 길이 막막하면 이 지역의 관료를 사귀게 되었으니, 그쪽에 도움을 구하여 자신의 인정을 빚져서라도 부탁해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고삼원이 종이를 받아 들고 자세히 보더니 놀라 질문이 튀어나왔다.

“숙부, 지금 할머님의 형제분들을 찾아내신 거예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두드리고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그런 것 같구나.”

고삼원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그는 고청운을 여러 해 동안 따라다니며 고씨 가문이 가진 이 아쉬운 역사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고향 사람들이 틀림없이 매우 기뻐할 것이고, 숙부님도 마음의 짐을 하나 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더 많은 것을 묻고 싶었지만, 고청운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 더 이상 묻기 곤란했다.

“고모님 댁과 관련해서는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고청운은 짧게 한숨을 쉬며 낮게 중얼거렸다. 하인이 뜨거운 물을 끓일 새도 없이 우물물에 몸을 씻은 그는 옷을 갈아입으며, 내일 식모에게 입던 옷을 건네 세탁을 부탁하면서 겸사겸사 이번에 시험을 보러 온 수재들이 보통 어느 지역에 묵고 있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뒤이어 침상에 누운 고청운은 몇 분도 채 안 돼 잠이 들었다.

* * *

이어진 며칠 동안도 고청운은 여전히 바빠서 쩔쩔맸다. 향시 결과가 나오자 몇 집은 즐거워했고 몇 집에는 우환이 쌓였지만, 그래도 합격자 명단에 대한 논의는 잠시 동안 잠잠했다. 필경 이번 향시에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새로 올린 사람들 중 10명은 지난번 향시의 보결 합격자로, 이는 꽤 실속 있는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낙방한 수재는 기껏해야 몇 마디 푸념을 늘어놓고, 황주를 몇 잔 걸친 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요즈음 어느 수재가 낙방 몇 번 해보지 않고, 바로 합격을 한다는 말인가? 시험에서 무난하게 한 번에 합격하는 천재는 언제나 극히 드문 법이었다.

잠시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고청운은 향시가 끝난 후 각종 연회를 누비고 다녔다. 다른 관리들이 너도나도 초청을 해 왔기 때문인데, 보통은 산수풍경을 감상하는 유람장이나 시 모임 혹은 연회 등의 장소로, 고청운은 어쩔 수 없이 진 학사와 배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먹을 것까지 직접 챙겨 다녔다. 또한, 초청받은 자리에서 받은 선물들에 대해 매번 꼼꼼하게 검사를 거쳐, 너무 값진 것은 감히 받지 않았다. 그들은 가격이 그다지 높지 않은 현지 특산물 정도만을 받아 왔는데, 이마저도 전부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진 학사와 그는 한결같은 태도를 취했다. 그렇게 몇 차례 연회석상에 다녀오자, 관료들은 그들의 의중을 알아차리고는 정교하지만 작고, 새로우며, 값어치가 크게 나가지 않고, 부피도 크지 않아 휴대하기 쉬운 것들로 선물을 준비했다. 

이날 저녁, 들어온 선물을 점검하던 고삼원은 목록을 써 내려가면서 감탄하며 말했다.

“숙부, 어쩐지 주임 시험관 자리를 놓고 다툰다 했어요. 한 번 나가면 이렇게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군요. 제가 대략 가늠해 보았는데 이것만으로도 은자 100냥은 넘을 것 같아요.”

오늘 저녁 연회 석상에서 술을 좀 마신 고청운은 해장탕을 한 입에 먹고 입안에 남은 쓴맛을 느끼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네 말이 딱 들어맞았구나.”

지방관들은 경성의 관리들보다 부수입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선물을 주는 것도 사실 그들에게 무슨 일을 도와달라고 청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관례적인 투자 개념일 뿐이었다. 즉 일종의 교제를 위한 포석 정도인 셈이었다. 이 투자들을 토대로 나중에 지방관이 상경하면 여러 곳에서 방문할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그때 가서 고청운과 진 학사가 그들이 알고자 하는 정보를 전해 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경성의 관리와 지방관의 관계는 미묘한 것이었다.

고삼원은 허허 웃으며 선물들을 정리해 담은 후, 고청운이 발을 담글 따듯한 물을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

“내일 진씨 집에 가보게 되실 텐데, 지금 그 집이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시지요? 제가 살펴봤을 땐, 할머님의 조카분은 말을 잘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고청운은 이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침묵을 지켰다. 그랬다. 고청운은 녹명연에 참석한 뒤 진교의 거처를 소상히 알아보고, 진교가 고향집으로 돌아가기 전 그에게 자신이 그와 친족 관계임을 알렸다. 친척임을 알리기 전까지 고청운의 속마음은 아주 복잡했는데, 그는 현재 자신의 생활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씨 가문의 사람들은 아주 좋았는데, 외가의 사람들은 어떠한 분들일까?’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고청운은 방희림의 사건이 있었기에 친척의 일들에 대해 더 예의주시하게 되었다. 그는 친척들과 관계된 사건에 연루되어 탄핵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

혹시라도 친척임을 인정하면서 함께 지내게 된 친척 중 말썽을 피우는 사람이라도 있게 되면 좋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들을 친척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상황의 결과가 더 나쁠 것이었다. 이제 친척들의 소식을 알게 된 이상,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평생 한을 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외가 사람들 중 만약에라도 정말 그런 부정한 친척들이 있다면, 그는 그들이 본분을 잘 지킬 수 있게 만들 방도를 만들어 낼 것이라 다짐했다. 

고청운은 다행히 진교와의 대화를 통해 외할아버지 가족이 단합이 잘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는 별다른 불상사를 발견하지 못했다. 구체적인 것은 외할아버지 댁에 가서 직접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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