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12)화 (312/504)

312화. 놀라다

고청운은 몇몇 동고관의 눈빛이 동요하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관찰하니, 그들은 일부러 몇 개의 답안지를 한 번 휘둘러보고 있었는데, 감정을 얼굴에까지 나타내고 있지는 않았다. 

여기 있는 동고관들은 이럴 때일수록 막상 자신이 알아본 답안지가 있다고 해도 감히 함부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 이유는 합격 여부라는 것은 최종적으로 정식 주임 시험관의 권한으로,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이를 질의하거나 이 권한을 넘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동고관 중에서 진 학사보다 관직 상의 품계가 높은 사람이 있다면 재량을 발휘해 운을 떼어 볼 수는 있겠으나, 이 역시 진 학사가 먼저 입을 열어 언급한 상황에서나 가능할 것이었다.

고청운은 진 학사를 돌아보았다. 최종 선별된 140부의 답안지 중에 합격자 100명과 보결 합격자 20명이 결정될 것이었다. 뒤에 뽑히는 보결 합격자는 정식 거인은 되지 못했다. 

진 학사는 답안지 하나하나 살펴보며 서예법이 서툴고 작성이 정갈하지 않은 13부의 답안지를 직접 배제해 버렸고, 이제 127부의 답안지만이 순위 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신지, 자네 보기에 부족한 점이 보이는 답안지가 더 있는가.”

진 학사가 고청운에게 손짓했다.

고청운은 진 학사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할 줄 몰랐기에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그는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의식해 버렸는데, 답안지들 너머 느껴지는 눈빛들에 더욱 중압감이 느껴졌던 것이었다. 마치 답안지 너머에 수십 년을 어렵고 힘들게 공부해 온 답안지의 주인들이 숨어서 이렇게 가볍게 자신들의 노력을 수포로 돌릴 셈이냐고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고청운은 심호흡을 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대인, 이 수재들은 모두 일대의 인재들이라 하관이 취사(取捨) 선택을 하기 어려우니, 하관을 난처하게 하지 마옵시고 대인께서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심사숙고 끝에 고청운은 그가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 행위를 넘기려는 것을 제지했다. 이러한 선택은 가장 큰 권한을 지닌 정식 주임 시험관이 직접 합격 여부를 정할 것이니, 자신은 말을 아끼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여기에 남은 백여 부가 넘는 답안지들의 점수는 서로 비슷했다. 서예는 최고에 못 미치더라도 다들 글씨가 단정하고, 또박또박하게 잘 썼는데, 건성으로 쓴 것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아 선택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동고관들은 오히려 그런 결정을 해보고 싶어 안달복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 학사는 그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지 않았고, 누구도 감히 말을 더 꺼내지 못했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불법적인 일을 행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혹은 정적(政敌)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면 다른 방도가 없기도 하였다. 

진 학사는 잠깐 고청운을 주시했지만, 그가 여전히 꿋꿋이 자기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자, 그를 더 난처하게 만들지 않으려 자신이 직접 답안지 100부를 골라 한쪽에 놓고, 또다시 20부를 골라 다른 한쪽에 놓았다.

이번에는 다른 이들이 미봉(*弥封: 부정을 막기 위해 답안지의 이름이나 번호가 적힌 부분을 접거나 종이를 붙여 밀봉해 둔 것)을 개봉하여 응시생의 본적, 조상 3대 등의 정보를 살펴볼 차례였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석차를 결정할 수 있었다. 진 학사가 모두에게 석차에 대한 의견을 묻자, 동고관들은 일일이 자신의 의견을 내거나 심지어 흥분한 상태로 석차를 놓고 큰 소리로 다투기도 하였다.

여기 모인 동고관은 모두 상성에서 관리로 일하고 있는 자들로, 설령 현지 출생이 아니라고 해도 수년간 혹은 십수 년간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분명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생겼을 것인데, 바로 이때 정식 주임 시험관만 한번 눈감아 준다면 자신이 아는 사람을 더 앞의 석차로 올릴 수가 있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꼴찌라는 석차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정식 거인이 되는 것은 맞았지만, 끄트머리 석차의 몇 명과 제일 높은 석차 몇 명이 과연 서로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다들 바로 이런 점을 염두해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이었다. 

흥분에 겨워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거나 담담한 모습이라도 가시 돋친 언사를 내뱉는 동고관들을 보면서, 고청운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역시 처음에 응시했던 향시에서는 보결 합격자 1위에 이름을 올렸었으나, 두 번째로 응시한 향시에서는 해원(*解元: 향시의 수석 합격자)을 거머쥐었는데, 분명 자신도 이런 논쟁의 중심에 섰었을 것이었다. 그가 당시에 반박이 불가능할 정도의 고득점을 해서 수석 합격자로 선정이 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번 시험의 최고 득점자인 두 군걸(杜君杰) 역시 그러한 경우인데, 낙제 가능성은 없었다. 이변이 없는 한 해원(解元)이 될 수 있을 테지만, 동고관들 중 그를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이 있으면 순위가 조금 뒤로 밀릴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고청운은 또다시 자신을 뽑아준 주임 시험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분은 진작에 퇴직했다. 

게다가 초반에는 그와 사이마저 별로 좋지 않았었으나, 이곳의 응시생들 중 고청운과 면식이 있는 사람들이 단 한 명도 없었기에 그다지 말이 나올 만한 일은 없었다. 

고청운은 계속해서 자신이 맡은 책임을 다 해나가기로 하였다. 즉 ‘탈락 답안지 검수’ 작업으로, 선별되지 못한 남은 7부의 답안지를 다시 천천히 검토해 보는 것이었는데, 만약에 선별된 답안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판단되면 다시 선별 명단에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수 있었다. 

우선적으로 선별해 둔 그 120부의 답안지 역시 최종적으로 결정된 상황은 아니었다. 아직 최종 단계까지 가지 못했으니, 어떤 응시생들의 경우 명성이 좋지 않으면 예비 합격자 명단에서 제외될 수도 있었다. 

이 7부의 답안지 중에서 고청운은 한 부를 점찍어 두었는데, 책론 문항의 답안이 꾸밈없이 성실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잘 작성된 것이, 이 수재는 실천경험을 토대로 답안을 작성했을 것이라는 것이 티가 났다. 그래서였는지 그의 답안은 이론적인 내용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매우 타당성이 있어 고청운의 취향에 부합했다. 

다만 서예법이 좀 떨어졌다. 그의 글씨체는 규정에 맞게 써있기는 하나, 마냥 딱딱한 서체로 쓰여 있어, 어쩐지 진 학사가 그를 출락(*黜落: 과거 시험에서 이름이 낙제된 것, 낙방) 시킨 것 같았다. 진 학사는 잘 쓴 글씨를 제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지금은 이미 합격자 명단 선정에 있어 거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젠 최종적으로 누구의 답안지가 진 학사의 취향에 맞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고청운은 아까운 마음에 답안지에 써진 응시생의 이름에 시선을 돌렸다.

진교(陈桥), 자는 목교(木乔)이고, 상성의 익앙부(益央府) 사람이었다. 고청운은 그저 한 번 휙 둘러보다 말고 갑자기 시선을 멈춰 세웠다.

그는 진교의 조상 3대의 이름이 써있는 부분을 주시하고 있었다. 증조부 성함은 진대수(陈大树), 조부 성함이 진일문(陈一文), 아버지 성함은 진동(陈铜)이었다. 

고청운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진일문은 우리 외할아버지 성함인데.’

그는 어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일전에 집에 100묘가 넘는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토지들은 모두 외할아버지의 근면함과 절약 정신 덕분에 모인 것이었다. 고청운은 어머니가 사람은 이름을 따라간다며, 외할아버지가 단 1문의 돈도 절대 소홀히 생각하지 않았다고 설명해 주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리고 외숙부의 성함 또한 바로 진동이었다. 진대수라는 함자를 쓰는 증조부는 어머니가 시집을 온 지 몇 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기에, 어머니는 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꺼내지 않았었다. 

고청운은 철이 든 후로 가끔씩 더 어린 척하기 위해 왜 숙부네 집 아이들은 외가에 가면서 자신은 그럴 수 없는지를 자꾸 물었었다. 매번 그가 물을 때마다 소진씨는 외가 얘기를 꺼내며, 진동 외숙이 가장 잘 대해줬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특히 고청운이 거인 시험에 합격해 집안 살림살이가 좋아지고 나자, 소진씨는 더 자주 친정 얘기를 꺼내고는 했다. 

노진씨는 더 말할 것도 없었는데, 그녀와 소진씨는 같은 진씨가 아니던가. 게다가 3대를 넘지 않는 항렬이었다. 그녀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자주 헤어진 가족을 떠올리고는 했기에, 고청운은 진사 시험에 합격한 뒤 백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외가의 가족들을 수소문해 보았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고,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모두들 절망하고 있었다.

고청운 역시 원래 큰 희망을 품지 않고 있었다. 필시 이런 시대에서 헤어진 가족을 찾기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름없었던 것이었다. 그가 아는 사람 중에 호적 명부를 접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 만약 그런 권한이 있는 지인이 있다고 한들, 그들을 운 좋게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열려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고청운이 그들의 이름을 찾아낼 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이 진교라는 이름의 사람이 분명 자신의 큰 외숙부의 아들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애초 가족들끼리 헤어졌을 당시, 그는 태어나지 않았을 테니 소진씨가 진교의 이름을 알 리는 없었다.

고청운을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일전에 방희림에게 부탁하여 그의 예전 부임지인 악성(*鄂省: 호북(湖北)성의 옛이름이자 방희림의 예전 부임지 지명)에서 그들을 찾아본 적이 있었다. 급하게 물건을 찾을 때는 그 물건을 찾을 수 없었지만,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는 오히려 찾게 된다고 하더니. 고청운은 오히려 방희림의 고향에서 진교를 찾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저쪽에서 들려오는 논쟁 소리 덕분에 그는 자신이 답안지를 들고 서 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것을 자각하며 정신 차렸다. 그 진교라는 이름을 보고 또다시 진 학사를 보니, 마음속에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서 지금 고청운은 저 판에 끼어들어 사리에 근거한 논쟁을 통해 이득을 쟁취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진교의 답안지를 저 ‘합격’ 답안지들 뭉치 사이로 끌어다 놓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다.

필경 그에게는 저기 놓인 총 120개의 답안지 중 문제를 찾아내는 일이란 어렵지 않았으나, 시험관 회피 제도라는 것을 생각해 보니 다시 의지가 꺾였다. 

‘과거 시험의 시험관의 회피 제도라.’ 

고청운은 입속으로 이 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현재 시험관으로 부임해 있었지만, 사실 동족의 사람들은 동족이 시험관으로 관할하고 있는 성에서 과거 시험에 참여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것 외에도 요 몇 년 동안 조정에서는 이 시험관의 회피 제도에 포함되는 동족의 범위를 점차 넓히고 있었는데, 이전에는 조카나 사촌, 장인과 사위 관계 정도까지 그 범위를 정해 놓았지만, 이제는 외가 쪽의 관계, 예를 들어 외숙의 아들, 고모 아들, 처남 등 모족 관계까지 더해졌다.

만약 진교가 진짜 고청운이 찾던 사람이라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외숙부의 아들이니, 이치대로라면 과거 시험에 참가할 기회조차 없었어야 하는 것이 옳았다.

물론 고청운이 만약 진교가 이 상성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곳에서 부시험관이 되겠다고 신청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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