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호감
고청운이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나가자, 진 학사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한림원에 있을 때 고청운은 정7품으로 승격해 편수가 되었는데, 자신은 고청운의 상관이 아니었기에 그와 접촉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가 선배에게 존경심을 잘 내비치지 않는다는 소문이 희미하게 나돌았는데, 소추의에 대한 공손함이 덜했다고들 하였다. 하지만 진 학사는 스스로 생각하는 바가 있었기에 고청운에게 담담하게 대했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3년이 지나, 그는 고청운의 일신에 그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자신과 반대로 젊은 나이에 광명을 얻었으면서도 광기 어리게 행동하지 않았는데, 그의 성정 자체가 침묵을 즐기고 성실한 걸 추구하는 듯했다.
몇 년 동안 진 학사는 그의 결점을 찾아보려 했으나, 그가 뜻밖에도 관운이 형통하여 호부에 들어갔고, 또 마침 자신과 함께 지금 이렇게 향시를 주관하기 위해 상성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진 학사는 이런 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고 신지라는 이 조수는 일을 시키면 정말 꼼꼼하게 잘 처리했다. 그는 가끔 상대방이 소홀한 것이 있어도 드러내지 않고 남몰래 보충해 주기도 하고, 또 열심히 일했는데, 고된 일이나 힘든 일을 시켜도 군말 없이 모두 나서서 잘하려고 하니, 그 덕에 자신의 임무가 훨씬 홀가분해졌다.
찻잔을 들고 점잖게 차를 한 모금 마시던 그는 황제 폐하께 보고할 내용이 또 이렇게 많아졌음을 느꼈다.
다른 동고관들은 계속해서 진 학사의 동작을 보고, 각자 서로의 눈을 마주쳤는데, 눈빛이 마구 흔들리는 걸 보니 다들 안에 속셈이 있어 마음이 준동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 * *
고청운은 자신이 나간 후 발생한 내부의 사정은 모르고 있었다. 이때의 그는 대오를 인솔하여 시험장을 순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장소가 시험장만 아니었더라면, 그가 마치 귀족 가문의 도련님이라도 된 듯 자신의 뒤에 한 무더기의 사람들을 이끌고 거리를 순찰하듯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였을 터였다. 심지어 눈은 여기저기 사방을 둘러보고 있으니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었다.
이를 상상하며 슬쩍 웃던 고청운이 구석 모퉁이를 돌려는데, 옆의 호실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악!”
놀란 고청운은 소매를 흔들며 급히 성큼성큼 걸어갔고, 막 모퉁이를 돌자마자 머리를 산발한 사람이 쏜살같이 달려오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는 걸어 다니며 걸치고 있던 피풍의를 벗어젖혔는데, 그들의 앞까지 달려왔을 때는 갓난아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광란한 태도를 본 고청운은 한숨을 쉬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뒤에 있던 건장한 체격의 군사 두 명이 걸어 나와 난동을 부리는 수험생을 그대로 바닥에 짓눌렀다.
뒤이어 고청운이 헛기침을 한 번 하자, 그중 한 군사가 누군가가 던진 손수건을 제압한 응시생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속해서 마구 고함을 지르자, 또 두 명의 군사가 나와 수험생을 직접 메고 나갔다.
순식간에 소란은 평정되었고, 모두의 몸짓도 빨라졌다.
고청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는 이 군사들이 잘 훈련되어서가 아니라, 요 며칠 사이 사고가 잦아져 다들 손놀림이 능숙해진 것이었다. 시험이 끝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수험생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는데, 시험장 환경이 너무 열악해 불안정해지는 사람들이 출몰하고는 하였다. 스스로 잘 다잡지 않는다면, 이렇게 정신 착란이 일어나기 쉬웠다.
이런 예는 시험장에서 보기 드문 것이 아니었다. 고청운은 전에 자신이 참가한 시험장에서도 이미 이런 상황을 본 적이 있었다. 십몇 년 전에 비해 지금의 향시가 더 까다롭고 과목의 난이도도 높아져서인지, 수험생들의 스트레스는 더욱 커져 가고 있었다.
양쪽에서 수험생들이 불안하게 쳐다보자 고청운이 말했다.
“끝날 시간이 두 시진 앞으로 남았소. 여러분은 시험에서 한눈팔지 말고 서둘러야 할 것이오.”
말을 마친 후 바로 고청운이 옆을 한 번 쳐다보았는데, 수험생 한 명이 물끄러미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머리만 겨우 가지런히 빗어 올리고 있는 그는 대략 서른 대여섯 살쯤 되어 보였고, 이마가 넓고 입술은 두꺼웠으며,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무던해 보였다.
고청운은 눈썹을 약간 찡그리며 낮은 기침을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바로 고개를 떨구고 다시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고청운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수험생은 이전에 순시할 때 주의 깊게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악취가 나는 호실 옆에 앉아 시험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은 마음 자질이 좋은 편이었다. 특히 자신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친근감이 더했다.
이 사람의 외모가 호감 갔던 건 아마도 그가 농가 출신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조금씩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됐지만, 상대방의 시험에 누가 될까 봐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 * *
8월 16일 새벽, 3년에 한 번 열리는 향시가 드디어 끝났다. 응시생들이 시험장 입구를 통해 빠져나간 후, 고청운 외 시험관들은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응시생들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바로 무궁무진에 가까운 분량의 답안지들이었다.
고청운의 요즘 생활 방식은 거의 고정불변이었다. 그는 한동안 매일 눈만 뜨면 바로 답안지 채점을 하러 가야 했다.
응시생들이 남기고 간 답안지들은 각양각색의 기괴한 모양들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써본 답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을 썼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관점으로 자신의 학설을 그럴듯하게 잘 구성해 작성했는데, 이러한 답안들에는 분명 적정 점수가 부여되었다.
채점 과정이 이렇다 보니, 고청운이 소모해야 하는 시간은 가면 갈수록 길어졌다.
이 기간 동안, 고청운과 진 학사는 답안지 외에도 신경 쓸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또 다른 동고관들의 동태를 살피는 것이었다. 결국 어떠한 형태든 부정행위가 나타나면 설령 그와 진 학사의 잘못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책임의 소지가 돌아갔기에 유의해야 했다.
다행히도 감시가 엄격했고, 또 많은 사람들도 그럴 마음이 없었기에, 현재로서는 그 어떠한 나쁜 징조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고청운이 과거에 들어 본 적 있는 향시 시험 부정 사례를 돌이켜 보면, 일반적으로 주임, 부시험관 정도는 되어야 부정행위에 관여할 수 있었다. 정해진 규정에 따라 시험과 관련된 절차가 진행됐기 때문에, 다른 시험관들이 부정행위를 시도하고자 한다면 그 난이도는 극히 높을 것이었다.
부정행위라는 것은 엄청난 모험을 수반하는 행위였다. 모두 똑같이 어렵사리 이 직위를 꿰찬 것이니 분명 조심, 또 조심해야 했고, 확실한 안전이 보장되는 방법이 아니라면 아예 손을 써 보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자신은 운이 좋아 좋은 상관을 만났으니, 위험이 크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고청운은 한 번 옆을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시험지를 바라보던 진 학사를 주시했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숙여 답안지 채점에 몰두했다.
이번 향시에서는 100명의 거인을 합격시키기로 되어 있었고, 보결 합격자로는 20명이 선발되었다. 시험관들은 마지막으로, 채점을 거쳐 200위 안에 드는 답안지를 모두 선별하여 한데 모아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하였다.
향시 답안지 채점 방식은 점수 배점을 둬서 채점 및 평가를 하였는데, 점수만 높다고 해서 합격이 되는 것은 아니었고,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최종 합격 여부를 선정했다.
시 한 편에 대한 점수를 예로 들어보면, 응시생이 적은 이 시가 첫 번째 채점관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다른 채점관들의 관점에서는 훌륭할 수 있었는데, 이런 경우에는 재량을 발휘해 조금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재검사 과정에서 시험관들은 응시생들이 총 3장의 시험에 걸쳐 제출한 모든 답안지를 꺼내 일일이 살펴본 뒤 합격시킬 만하다고 판단되면 시험지에 ‘추천(荐)’이라는 표기를 했고, 이 ‘추천(荐)’ 표기를 2개 이상 받은 답안지만을 부시험관에게 전달했다.
부시험관인 고청운이 보기에도 합격 수준에 부합하면 ‘취(取)’자를 표기하여 진 학사에게 답안지를 넘겨주었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만약 진 학사 생각에 합격에 미달하는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대로 떨어지는 것이고, 진 학사가 보기에도 괜찮은 답안지들에는 ‘중(中)’이라는 표기가 붙을 것이었다.
요컨대, 이처럼 여러 가지 수단을 사용하는 이유는 적합한 인재 선발을 위해 최대한의 공평성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인력은 한정돼 있고 들일 수 있는 노력 역시 한정되어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절대적인 공평성을 부여해야 했다. 이는 이 시대로부터 몇백 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하게 보증할 수 없는 문제이기는 하였지만, 고청운은 지금 조정에서 시행하는 이런 제도는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평성을 보장한다는 방면에서는 특히 또 다른 규정이 하나 더 존재하고 있었는데, 시험에 응시했던 자는 합격자 명단이 공표되고 난 후, 약 100문이 넘는 비용을 지불하면 자신의 답안지를 열람하여 자신에게 어떤 점이 부족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듣기로는 이러한 조치가 시행되고 난 후, 향시 시험지를 보관하는 부서에서 매우 반색했다고 하였다.
고청운은 현재의 이런 제도들이 조성해 놓은 기류에 편승하여 정식 주임 시험관의 권력이 실로 대단하다고 여겼다. 역시 ‘시험의 합격 당락 여부는 전적으로 시험관에게 달려있다.’ 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절차들을 알게 되면서 고청운은 예전에 자신의 합격을 선별해 준 주임 시험관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전 왕조에서는 거인과 진사들이 자신이 시험에 합격했을 당시의 주임 시험관을 자신의 좌사(座師)로 삼기도 하였는데, 이렇듯 이 좌사가 내리는 ‘중(中)’ 한 글자는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을 만큼 대단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하 왕조 때에는 조정에서 시험 응시생들과 좌사들의 결탁을 달가워하지 않았기에, 자연히 시험관을 좌사로 삼는 것에도 역시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전통의 힘은 대단해서, 고청운도 자신을 회시에 합격 시켜준 주임 시험관인 백엽(白烨)을 만나면 아직도 좌사(座师)라고 칭했다.
* * *
답안지 선별 작업은 이틀에 걸쳐 바쁘게 지속 되었다. 이렇게 8월의 마지막 날이 되자, 이미 모두의 기력은 부족해졌고, 사람들의 두 눈에는 핏발이 가득 서 있었으며 눈 밑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우수한 200부의 답안지 중 또다시 제일 우수한 것들을 선별해야 했고, 총 200개로 선별된 답안지 중에서 140부를 선별해 냈다.
진 학사는 아직 최종 선택을 내리지 않았는데, 최종 절차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그들은 필사된 답안지를 읽지 않고, 응시자 본인이 직접 작성한 원본 답안지를 찾아와 일일이 살펴봐야 했다. 이 과정에서 필사자의 잘못이 발견되면 반드시 책임을 지게 해야 했는데, 물론 이런 상황에서 잘못이 발견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이번 과정에서 시험관들이 중점적으로 살피는 것은 바로 서예 실력이었다. 원본 시험지에 기재된 이름은 아직 호명(*糊名: 과거 응시자의 시험지에 쓴 성명을 풀칠하여 봉함) 상태지만, 만약에라도 시험관에게 익숙한 필체를 구사하는 자의 답안지가 있다면 그가 합격자로 뽑힐 가능성이 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