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10)화 (310/504)

310화. 슬픔이 기쁨으로 뒤바뀌다

월성의 임양부, 임산현. 

7월 말에 간미 일행은 군성에서 잠시 며칠간 정박하여 휴식을 취하고 나서 드디어 임산현으로 가는 도강 부두로 향하는 물길에 올랐다. 

간미 일행은 한눈에도 부귀해 보여, 처음 부두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그들의 신분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전히 임계촌은 마을 사람들이 부두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고청운이나 고삼원이 현장에 있었다면 마을 사람들이 알아봤을 테지만 간미까지는 잘 몰랐던 것이다. 

배에서 내리던 간미는 부두가 이전보다 더 넓어진 것이 보였다. 그녀는 부두가 더 커져서 낯설었지만, 앞 평지에 지어진 건물을 보니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녀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의 부모님이 계시는데, 당장 뛰어 들어가서 그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다만 부군과 함께 생활한 지 이렇게 오래된 데다 곁에는 아이들까지 있었기에, 간미는 여정으로 홀쭉해진 얼굴을 쓰다듬으며 일단 임계촌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어쨌든 이번 귀향은 집에 몇 개월을 머무를 수 있으니, 조급해하지 않기로 하였다.

부두는 사람도 많고 어수선했지만, 방충과 소만이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어 놓고 있었다. 

간미는 소만을 시켜 고이하에게 그녀의 도착 소식을 전하게 했는데, 주인은 지금 자리에 없고 친척집에 갔다는 점원의 말을 듣고는 바로 우마차를 대절해 임계촌으로 달려갔다.

그녀와 고청운은 돌아오기 전 미리 서신을 쓰지 않고 집으로 찾아갔는데, 언제 집에 도착할지 몰라 아예 서신으로 소식을 알리지 않았었다. 중간에 보낸 서신은 아마 아직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래서 짐작하건대, 간미는 마을 어귀에 나타났을 때 마을 사람들이 식구들에게 자신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줄 거라 생각했다.

‘얼마나 놀라실까!’

* * *

“뭐라고요? 전자가 돌아왔다고요?”

고대하는 뒤를 돌아보며 크게 기뻐하고 소식을 전하는 이 씨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그럼, 전자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이 씨는 검고 노란 이를 드러내면서 허허 웃으며 굵은 손가락으로 마을 어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직 마을 어귀에 있을 테지. 우리 집 아이가 밭일을 하다가 우마차가 오는 것을 보았다네. 앞에 앉아 있는 소만이라는 건장한 총각을 알아보고는 자네 집 청운이가 돌아온 것을 알았네.”

고대하는 입술을 떨면서, 소리를 내고 싶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이 씨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마치 땅이 한 번 흔들리는 듯했다. 

그는 얼른 고개를 들고 그동안 애써 유지하던 기력으로 외쳤다. 

“아버지! 어머니! 전자가 돌아왔습니다.”

이때는 마침 석양이 서쪽으로 지며 세상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는데, 고계산과 노진씨는 안채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말고 고대하의 외침을 듣고는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했다.

노인들은 거의 날 듯한 동작을 보이며 천천히 뛰쳐나왔는데, 늘 걸어 다니던 그 느릿느릿한 모양새는 온데간데없었다. 두 사람은 앞마당 입구에서 나오는 소진씨를 보고 말할 겨를이 없이, 세 사람은 곧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갔다.

가족을 돌보는 하인들도 따라서 총출동했는데, 서로를 마주 보는 눈에는 기쁨이 넘쳤다.

입구에서 고청운이 집에 거의 도착했다는 것을 확인한 고대하는 자신이 어른임을 개의치 않고 그저 밖으로 달려나가 그들을 맞이해 주고 싶었다. 

고대하가 주변을 돌아보며 의기양양하게 걸으면서 괜히 짐짓 원망하는 척했다. 

“전자 이놈, 집에 돌아오면서도 우리에게 말도 전해 주지 않다니 말이야. 일전에 6월이 되었는데도 돌아오지를 않아 서신이라도 써서 보낼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갑자기 이렇게 직접 돌아올 줄이야! 하하.”

이어서 하하 웃는 고계산은 금세 몇 살이라도 젊어진 듯 주름살이 펴져 있었다. 

“서신은 되었다, 나는 전자가 직접 돌아오는 게 더 좋구나!”

그는 고청운을 5년 동안 못 보았으니, 정말이지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다. 

그들이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우마차는 벌써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 * *

간미는 어른들이 마중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좀 불안했다. 이윽고 우마차가 멈추자, 그녀는 얼른 마차에서 내리며 고영진과 고경을 함께 내려 주었다. 

“할아버님, 할머님, 아버님, 어머님.”

간미는 놀란 듯이 고영진과 고경을 앞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자, 너희들도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인사해야지.”

고영진과 고경은 순순히 절을 하며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인사하려 했다.

두 꼬마가 재빠르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려는 것을 보고, 고계산 외 가족들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했다.

“아이고, 증조할미의 착한 손주들아, 땅이 너무 더러우니 흙을 묻혀가며 절을 할 필요는 없단다.”

노진씨가 절하려는 것을 제지했다. 

두 꼬마는 고개를 돌려 간미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을 껌뻑였다.

소진씨는 허리를 굽혀 고영진을 꼭 껴안고 놓지 않았다. 5년 전에 고영진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던 그녀는 단번에 그 아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통통한 아이의 몸매를 보니 더욱 반가워, 아이를 끌어안은 그녀는 정말 이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소진씨는 고경도 안고 놓지를 않았다. 

고대하는 간미에게 말을 걸었지만, 말뜻이 잘 전해지지가 않았다. 

네 명의 노인은 두 아이와 우마차 세 대를 간절한 눈빛으로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간미가 머리를 돌려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확인하고 막 무슨 말을 하려던 참에 큰 소리가 들렸다. 

“소석이는? 애미야, 전자와 소석이는 어디 갔느냐?”

고대하가 급히 물었다. 

그는 속으로 기대를 하고는 있었지만, 약간 불안하기도 하였다. 

‘왜 아들이 안 내리는 거지? 혹시 길에서 무슨 병이라도 난 건가?’

“그이는 이번에 일이 있어 저희와 함께 돌아오지 않았어요…….”

간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앞의 네 사람은 큰 충격을 받은 듯했고, 소진씨와 노진씨 눈에서는 눈물까지 뚝뚝 떨어졌다.

고청운이 네 노인분들에게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던 간미는 깜짝 놀라 남은 말을 서둘러 다 하였다. 희비가 뒤섞여 있는 노인분들에게 무슨 탈이 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부군은 한 달 후에나 이곳에 도착할 거예요. 지금은 인근의 상성에서 향시 부시험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간미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고경의 작은 머리를 토닥이며 계속 말했다.

“소석이는 아직 공부 중이라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 돌봐주시고 계세요. 다음번에나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이 나오자 고씨네 가족 얼굴에 비치던 슬픔이 멈춰졌고, 고영량에 대한 걱정 역시 잠시 보류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고청운의 현황을 묻느라 바빴는데, 고청운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슬픔이 기쁨으로 뒤바뀌었고 웃음이 절로 나오고 있었다.

이때쯤, 마을 사람들이 계속해서 모여들었다. 그들은 아직 향시 부시험관의 뜻을 잘 모르고 있었지만 막 달려온 고백산과 고청명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눈 속에 깃든 기쁨을 확인했다. 

한편 간미는 모두에게 살뜰히 안부를 물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남몰래 결단을 내렸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또다시 생기면 부군에게 꼭 말해야겠구나. 먼저 서신이라도 쓰고 내려와 상황을 설명하는 게 더 나을 듯해.’

* * *

상성 시험장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던 고청운은 몸을 돌려 침상에 누웠다. 시간을 계산해 볼 때 만약 별다른 일만 없다면, 간미 일행은 지금쯤 집에 머무른 지 보름 정도가 되었을 것이었다. 

‘가족들이 틀림없이 매우 기뻐하고 있겠지?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할아버지랑 할머니의 상태를 아직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께서는 정말 담배를 끊으셨을까? 소어랑 소아를 보시면 모두 틀림없이 매우 기뻐하겠지?’

이쯤 되자 그는 고영진이 이번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또 소란을 피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반드시 하루 공부를 끝내야만 나가 놀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귀경해서 그의 친구보다 뒤처질지도 몰랐다. 

그리고 또 고청운은 집안 어르신들이 그 아이를 너무 총애하지 않았으면 싶기도 하였다. 

그런데 또다시 생각해 보니, 노인들이 아이를 총애하지 않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5년 동안이나 아이를 예뻐해 주지 못했고, 부모님도 아이들을 만나 본 지 벌써 3년이나 되었지 않은가. 그러니 아이한테 너무 오냐오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싶었다.

밤이 깊어지자 고청운은 유난히 부인과 아이들이 그리워졌다. 

그는 가만히 윤곽이 잘 보이지 않는 모기장 천장을 바라보며, 방금 생각했던 일들은 고향집에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였고, 이번 시험감독을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기량을 잘 발휘해 보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 * *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8월 15일 오후까지 기다리면 시험의 마지막 날인 셈이었다. 밤이 되면 제3장의 시험까지 모두 끝나서 수험생들은 시험장에서 하룻밤을 머무르고 다음 날 새벽부터 시험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고청운은 여전히 처소에서 열심히 답안지를 채점하며, 밤샘 초과 근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지금까지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4, 5일 정도 일을 하다 보니 이제 정신도 차릴 수 있었고 업무 효율성도 높아지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다들 자기 앞에 놓인 답안지만은 여전히 산처럼 높이 쌓여 있어서, 마치 완성될 날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대부분 의지가 굳은 사람들이라 그런 건 두렵지 않았다. 그들은 가끔 대화도 간간히 하고 좋은 답안을 발견하면 평점을 주고 돌려보기도 하였다.

고청운은 때로 그들의 대화를 추측해 보면서 꽤나 흥미진진하게 답은 머릿속에 새겨 놓았다. 대두되었던 어떤 화제는 모두 자신의 일기에 써봄직 했는데, 특히 그가 시험감독을 하게 된 경위는 더욱 자세하게 기록하고 싶었다. 이런 기록들은 그가 나중에 늙어서 일기를 정리할 때 어린 증손주들에게 그 시절의 과거 시험의 전경과 과정을 말해 주는 데 쓰일 것이었다. 

만약 그가 그때 가서 다시 출판을 하게 된다면, 만일 운 좋게도 이 내용이 후세에 남을 수 있다면, 후대에 유용한 유산을 하나 더 남겨 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시험에 관한 일도, 혹시 쓸모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신지, 시험이 끝날 때가 되면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게 시험장에서 나가서 다시 한번 둘러보고 오게.”

고청운은 시험지 한 묶음을 채점한 뒤, 서리에게 옮기라고 지시하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있었는데,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리고 답했다.

“예, 하관이 즉시 다녀오겠습니다.”

요 며칠간 진 학사는 거의 시험장 순찰을 하지 못했고, 대부분 고청운을 시켜서 하루에 세 번씩은 고사장을 돌고 오도록 시켰다. 한밤중에 일어나 순시를 하는 일도 고청운이 맡았다. 

고청운은 여기에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은 부시험관이고, 나이도 진 학사보다 어리니 정력이 더 넘쳐 더 많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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