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09)화 (309/504)

309화. 채점

마침내 수험생이 모두 입장을 마치고, 시험장 문은 자물쇠로 봉해졌다. 진 학사의 인솔로 시험관과 수재들이 공자상 앞에서 참배하고 일련의 절차를 마친 후 날이 밝아오자, 시험지가 내려오고 향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정식 시험이 시작된 후 고청운은 진 학사와 헤어졌고,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내렴관과 함께 시험장을 담당했다. 어쨌든 그는 시험장을 순시하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제1장의 시험이 끝난 후 시험지를 걷고 나면, 수험생들은 시험장에서 잠을 자거나 음식을 끓여 먹으며 쉴 수 있었는데, 시험관들은 이때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등사관의 지휘에 따라 시험지를 베껴 쓰고, 다른 한쪽에서는  답안지를 채점하기 시작했다.

조정에서는 늦어도 9월 5일까지는 합격자 발표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답안지를 채점하는 사람이 적었던지라 고청운 같은 사람은 당연히 정해진 시간 내에 합격자 발표를 마치려면 서둘러야 했다. 다만 올해는 답안지를 채점하는 방식이 개정되었기에, 예전처럼 한 사람이 모든 시험지를 채점하지 않아도 되었다. 

“제1장의 시험은 모두 12문항이었는데, 우리는 마침 12명이니 한 문제씩 채점하기로 합시다. 진도는 여러분들이 각자의 속도로 정하시오.”

진 학사는 답안지를 채점하는 규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다른 시험관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규칙을 이렇게 바꿔도 되는 것인가?’

이 방법은 고청운이 진 학사에게 건의한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후대에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예전에 한 사람이 한 명의 답안지를 다 채점했을 때보다 더 공평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며칠 전 행관 내에서 그가 방금의 의견을 전하자, 진 학사는 잠시 생각해 본 후 한번 고려해 보겠다고만 하고 확답을 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막상 시험장에서 이 의견을 실행에 옮기려 하다니 고청운은 의아하기만 하였다.

당초 고청운은 자신의 의견만 제시하려고 했을 뿐이었다. 그랬다, 그는 향시라는 이렇게 중요한 시험을 공평하게 처리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다만 진 학사가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현장에서 바로 접목시킬 줄은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바였다.

“대인 여러분, 걱정 마시오. 모든 결과는 본관이 책임질 것이오.”

진 학사는 엄숙한 얼굴이었는데, 말하는 목소리는 청아했고 문장 또한 참 아리따웠다. 

고청운은 오히려 이 말을 듣고 안절부절못했다. 이 방법은 스스로 고안한 것으로 만일 황제가 죄를 물으면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는데 어떻게 진 학사에게 혼자 책임을 지게 할 수 있겠는가. 이쯤 되자, 고청운은 후회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말했다.

“대인, 하관이 제기한 방법이오니 하관도 책임의 소지를 지겠습니다.”

진 학사는 그를 곁눈질하고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제위들은 공정한 마음으로 업무를 행하시게. 나라를 위하여, 그리고 폐하의 성은에 보답하기 위해 민의가 들끓지 않도록 모쪼록 힘을 써 주시게.”

“삼가 명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좌중의 사람들이 일제히 응낙했다.

사람들은 문득 진 학사의 배경을 떠올렸다. 진 씨의 집에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군왕과 혼인하여 황실과의 연을 맺은 사이였다. 또, 다시 생각해보면 시험장에서 정식 주임 시험관의 권한이 가장 컸기 때문에, 어차피 두 분의 흠차가 하라는 대로만 따르면 될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답안지를 채점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 무슨 큰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하물며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정예이고 모두가 다 진사 출신들인데, 부정행위로 인해 얻어진 공명만 아닌 이상, 또 이 몇 년 동안 호강에 겨워 머리를 못 쓰게 되지 않은 이상은 곰곰이 잘 생각해 보니, 이런 방식이 이전에 쓰이던 방식보다 더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한 사람이 동일한 문제의 답안을 계속해서 채점하게 되면, 능숙해 질 것이었다. 또 자신이 답을 채점하는 시간은 더 적어질 것이고, 같은 기준에서 얻는 점수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더 공평해 질 터였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이 방법이 매우 교묘하게 느껴졌다. 이 간단한 방법을 어떻게 이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곧이어 진 학사가 임무를 배분해 주기 시작했다. 비교해 보면 산술 문제 채점이 가장 쉬웠고, 경의 문제가 제일 어려웠는데, 고청운은 경의 문제 중 뒤에서 두 번째 문항의 답을 채점하는 것을 배정받았다. 

경의 문제의 답안은 길게 쓰기 마련이라 시험지를 채점하는 시간도 그만큼 더 늘어났다. 어떤 수험생들은 경의 문제 답안을 매우 많이 썼기에, 그만큼 답안지를 채점하는 시간도 더 길었다. 경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비평하는 내용도 들어가다 보니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문제를 받은 고청운은 눈썹만 움찔했을 뿐, 거절을 하지는 않았다. 

12명이 한 방에서 공동으로 답안지를 채점하는 동안, 시험지를 뒤적이는 소리와 가끔 기침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다들 시간이 촉박한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박차를 가했는데, 밥 먹고 자는 것 외에는 답안지를 채점했고, 몸을 씻는 일조차 생각나면 하는 것이고 기억나지 않으면 그냥 안 하고 넘어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고청운은 씻지 않고는 못 견뎠다. 지금은 8월이고, 이곳의 기후는 남쪽의 기후였던 것이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는데, 방 안에 얼음이 있다고 한들, 열몇 명의 냄새 나는 사내들이 온종일 함께 모여 앉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니 고청운은 매일 씻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다른 시험관들이 밤을 새서 답안지를 채점하는 것에 비해, 고청운은 자신의 속도를 고려하여 시간을 적절하게 안배해 채점을 진행했다. 

그는 매일 대략 현대 시간 오후 10시 정각에 잠자리에 들고, 아침 4시에 일어나 답안지를 고치고, 점심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채점을 진행했는데, 이렇게 하니 더욱 왕성한 기력으로 채점을 해나갈 수 있었다. 

다른 시험관들은 그의 원기 왕성한 모습을 질투했다. 

“역시 젊은 게 좋구려. 고 대인은 젊어서 이 고생을 이겨낼 수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 같은 늙은 몸으로는 견디기가 힘이 든다네.”

고청운은 말이 없었다. 답안지를 채점하는 것은 매우 큰 공사였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내심이 강해야 했는데, 애초 진 학사와 그가 동고관을 선택했을 때 나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은 모두 선별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여기 모인 동고관들은 장년층으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50대였지만 전혀 늙은 편이 아니었다.

진 학사는 하품을 하면서 고청운을 한 번 자세히 보았다.

“신지, 시험장에 한 번 다녀와 주게.”

모두 3,500장에 달하는 답안지를 고쳐야 하는데, 매일 진도를 정해서 완수하지 않으면 잠을 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역시 어젯밤 답안이 멋진 답안지 몇 장을 보고 또 읽으며 시간을 보내느라 잠을 설쳤다. 

‘보아하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작성한 것 같은데, 젊은이들이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의 답이로구나.’

고청운은 자신이 주임 시험관이 된 후에야 알았다. 어떤 답안지는 공백이거나 아주 조금만 내용을 적은 것은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답안을 채점을 할 가치가 없었기에, 4,000명에 육박하는 응시 인원수에 비해 그들이 채점해야 하는 분량은 더 적어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3천여 건이 넘는 답안지를 일일이 채점한다는 것은 확실히 굉장히 많은 업무량이기는 하였다. 

“예.”

고청운은 진 학사의 부탁에 무표정한 얼굴로 공수했다.

다른 시험관들이 이 상황을 보고 바로 하하 하고 웃었는데,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다 베테랑이 아닌가. 이것은 그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안쓰럽게 여기는 것이었다.

오늘은 시험이 시작한 이래 5일째인데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았기에, 지금 시험장에서 어떤 냄새들이 풍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어제 진 학사는 한 바퀴 돌아보고 와서는 얼른 옷부터 갈아입고 자리로 들어왔는데, 얼굴 한쪽이 더 까무잡잡해져 있었다. 

* * *

양손을 등 뒤에 지고 외렴관들이 빼곡히 둘러싸여 있는 복도를 지나던 고청운은 자신의 손을 등 뒤로 지고 있지 않으면 그만 여기서 풍겨 나오는 냄새들을 참지 못하고 코를 가릴까 봐 걱정했다. 실수로라도 그렇게 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보기 좋지 않을 것이었다. 

“윽, 이 냄새, 죽을 맛이로구나!”

뒷간을 지날 때, 고청운은 숨을 죽이고 희미하게 말했다. 재빨리 걸음을 옮기고도 숨을 쉬지 못했는데, 그 매캐한 화학적 냄새가 공기 중에 풍겨왔다.

그의 뒤를 따르던 외렴관들 역시 일사불란하게 그와 같은 호흡 동작을 보였다.

고청운은 깜짝 놀라 그들을 돌아보았다. 그 속뜻은 ‘소리가 너무 크면 안 좋겠죠?’였다.

그들도 회답하듯 고청운을 돌아보았다.

이들은 말없이 눈짓만 주고받으며 순찰을 계속했으나, 발걸음만은 빨라질 뿐이었다.

고청운은 좌우 양쪽에 호실 속에 있는 수험생들을 둘러보았는데, 다들 온갖 자세를 잡고 있었다. 쿨쿨 자고 있는 학생들, 짜증스럽다는 듯 머리채를 쥐어 잡고 있는 학생들, 웃통을 벗고 있는 학생들……. 

회시를 볼 때와는 다른 관경이었다. 회시를 보는 호실은 폐쇄적이었다. 다만 작디작은 창문이 밖을 향해 나 있었는데, 시험관들이 수험생들을 보고 싶으면 옹졸해 보이기는 해도 허리를 숙여 작은 창문을 통해 수험생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향시는 그렇지 않았다. 호실에는 문이 없고 건너편의 응시생의 동작까지 보였던 것이다. 물론 시험관들 역시 그들을 보다 더 수월하게 볼 수가 있었다. 

이 익숙한 광경을 보며 고청운은 어렴풋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년이 흘러갔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두 번의 향시를 치렀다. 16살에 한 번 치르고, 17살에 은식(*恩式: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던 과거)으로 한 번 치렀는데, 이 낯익은 시험장을 보자마자 그는 자신이 처음 향시를 치렀을 때의 일을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악명 높은 호실을 배정받은 고청운은 혹독한 시달림을 받았었다. 장수원은 그와 같은 배열의 호실을 배정받았음에도 그보다 훨씬 좋은 자리, 냄새나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위치의 호실을 배정받았었다. 2차 시험엔 황언성이 그의 맞은편 호실에 있었다. 몇 달 전 막 그와 주고받은 서신에 그가 아직 향시에 응시하고 있다고 했으니, 지금쯤 월성 시험장에서 고생하고 있을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고청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다른 수험생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었고, 이 임무는 그가 자신 있어 하는 것이었다.

전생에 어디선가 들은 말이 있는데, 예전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늙음을 의미한다고 했었다. 

‘설마, 나도 이렇게 늙어가고 있는 걸까? 안 돼, 반드시 시간을 더 내서 몸을 단련해야겠구나! 설령 지금은 시험장에 갇혀 있지만, 여기에서도 매일 밤과 아침 운동을 꾸준히 계속해야겠어.’

고청운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마저 시험장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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