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08)화 (308/504)

308화. 시험장

“방금 말한 두(杜) 군걸과 방 대인은 아는 사람에게 듣자하니 같은 해 시험에 합격한 동기이기까지 한데, 당시 동기가 된 그때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고 오랜 은원 관계를 맺게 되었다지. 이번엔 방 대인이 폄하돼서 무리에서 따로 뛰쳐나오게 된 것 같군.”

장 수재는 문득 두청이 이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아졌지만, 이내 부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주임 시험관인 진 대인과 비교하면 소생은 고 대인에게 더 탄복했습니다. 농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12살에 수재에 등극하다니요. 영락없는 신동인 셈입니다! 우리 고장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인데, 게다가 월성은 문인이 별로 없는 지역 아닙니까. 그때 당시에는 사람들이 많이들 놀랐을 것 같습니다. 아휴, 요즘엔 독서에 타고난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 제일 부럽습니다. 그들 머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그도 그렇지, 맞소.”

진교와 이 수재는 맞장구를 쳤다. 특히 진교는 세 사람 중 가장 가정 형편이 안 좋았다. 그 역시 농가 출신으로 과거 시험을 준비하면서 드는 비용 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그 고 대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컸다.

그의 이런 생각은 그 자리에 있던 대다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감정으로, 진씨 같은 대가문 출신보다 고청운의 경력이 그들에게는 훨씬 더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무엇보다 그가 젊기도 하였다. 

반면, 진 대인은 10여 년 전 시집 한 권을 낸 것 말고는 다른 저서가 없었다. 대신 진 대인은 서화로 유명했는데, 이런 점은 그들이 주임 시험관의 사상적 배경을 유추해 보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청운은 그간 출판한 서적이 몇 가지나 되는지 헤아려 보면 산술 서적, 화본, 여행기 등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그들이 고청운의 사상적 면모를 추측하는데 편리했고 자연히 그의 생애에 대해 흥미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수재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갑자기 진교를 향해 물었다. 

“진 형, 헤어진 고모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일전에 진 형이 말했던 것을 기억해 보면, 어렴풋이 고모부의 성씨가 고 씨라고 하였는데, 고 대인께서 마침 친척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진교는 깜짝 놀라며 이도 저도 못하고 대답했다.

“그럴 리가 없네, 어디 그런 공교로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인가.”

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버지가 고모부 댁이 그들 집보다 가난했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진사 한 사람을 어찌 이렇게 쉽게 길러낼 수 있겠는가?

이 수재도 그저 가볍게 던져본 말일 뿐, 자기 스스로도 너무 막무가내로 말한 것 같아 더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또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시간은 흘러 8월 8일 되었고, 제1장 시험일이 다가왔다. 

고청운과 진 학사는 아침 일찍 일어나 경의, 산술, 시부를 제1장의 시험 문제로 냈는데, 그중에는 그들이 기출한 것도, 조정에서 정해준 문제도 모두 있었다. 

고청운이 건넨 6개의 산술 문제를 본 진 학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보고 또 보고 한참을 보다가 그중 3개의 문제를 골라냈다. 

고청운은 그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한차례 바삐 움직였다. 옆의 동고관들이 유유자적하며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고청운과 진 학사는 그야말로 분초를 다투며 시도 때도 없이 토론을 이어갔고, 마침내 정오 전에 겨우 모든 출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그제야 그들은 옆의 동고관들을 모시고 와서 함께 시험 문제를 살펴보았다.

시험장 규정에 따르면, 동고관은 정부에서 보낸 주임 및 부시험관이 출제한 문제를 확인하는데 협조하는 의무를 지녔던 것이다.

“본관은 이의가 없습니다.”

“본관도 의견이 없습니다.”

…….

사실 동고관들이 문제들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은 그저 형식적인  것임을 잘 알 수 있었다. 시험 문제 출제는 대개 주임 시험관의 책임 소관이니, 의심의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어떤 향시 출제 문제는 이미 황제가 훑어본 것들일 텐데, 만일 자신이 이의를 제기하게 된 문제가 황제가 내신 문제라고 한다면 공연히 생트집을 잡는 게 될 것이었다.

“제군들이 이견이 없는 이상 인쇄를 시작하겠습니다.”

“예.”

좌중의 사람들이 대답했다. 

내렴관은 고청운과 진 학사를 합쳐 모두 12명이 되었다. 고청운과 진 학사는 인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두 반으로 나눈 후, 따로따로 한 반씩 인솔하여 번갈아 곁을 지키며 야근하기로 하였다.

교대 배정을 들은 모두는 의견이 없었다.

* * *

고청운은 자기가 인쇄 현장에 가서 감독할 차례가 되기 전에 먼저 방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그는 오늘 오전 내내 머리를 싸매고 고군분투했는데, 그가 낸 문제였다고 해도 그 문제에 대해 진 학사의 질문에 대처해야 했던 것이다. 

또한, 오전 시간 동안 두 사람은 답안지를 작성해 보기도 하였다. 특히 경의 문제는 그들이 사전에 답안을 각자 작성해 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며칠 후에 어떻게 답안지를 채점할 수 있겠는가?

고삼원은 고청운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어깨를 툭툭 치면서 나지막이 물었다.

“숙부, 힘드시죠?” 

고청운은 “그래.” 하고 좌우를 둘러보며 물었다.

“웅황분은 잘 뿌려두었느냐?”

그들이 배정받은 시험장에는 여전히 푸른 이끼가 자라고 있었다. 이는 그들 방구석에도 마찬가지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젯밤에 목욕하면서 지네 한 마리가 앞에 기어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진땀이 났던 그는 목욕을 다 한 후에 재빨리 고삼원에게 부탁하여 방 모퉁이에 웅황분을 뿌려두게 하였다. 

아직은 고청운이 가장 재수 없는 사람에 당첨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른 동고관 한 사람은 실제로 지네에 물렸는지 고통을 참기 힘들어하였다. 물린 발등도 신속히 빨갛게 부어올랐는데, 약방이 가깝고 의원이 있어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위험했었을 것이었다.

그 동고관은 한바탕 욕설을 퍼부으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고청운은 밤늦게 이 시험장의 풍수가 좋지 않다는 말을 어렴풋이 들었다. 올해는 특히나 수리가 잘 안 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투입된 은자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청운은 이곳의 모든 시험관, 이곳 성 출신 사람들의 이 이야기를 몰래 들었지만,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그가 예전에 향시를 보았던 곳을 생각나게 하였다. 그곳 역시 뱀과 지네의 집합지였는데, 여기는 그곳보다 더 심각했다. 

고청운은 수험생들이 꼭 웅황분을 챙겨왔기를 바랐다.

* * *

사람들은 모두 힘을 합쳐 마침내 동틀 무렵에 서둘러 시험지를 인쇄를 마치고는 금위군에게 잘 봉인하여 간수하게 인계했다. 이때쯤 수험생들의 입장이 시작될 시간이 다 되었다. 

이제부터 고청운과 진 학사는 밖에 나가서 현장을 살펴봐야 했다. 시험장의 질서는 주로 부정행위 적발 여부에 달려 있었다.

두 사람이 시험장을 나섰을 때, 밖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오늘 밤 하늘에 달이 없었음에도 시험장 주변은 불빛을 환했는데, 군데군데 횃불이 비쳐 길게 늘어선 수험생들의 모습이 잘 보였다. 

“대인, 다들 규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규정을 정한 것이 규칙이지요. 어느 순서에 누가 줄을 서서 들어오는지 안배가 되어 있으니 한 치의 소동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한 외렴관이 진 학사에게 보고했다.

진 학사는 대오를 뚫어지게 보더니 침음하게 말했다.

“그래, 장병들이 샅샅이 수색해서 그 누구도 부정을 저지르지 않도록 해야 하네.”

“예.”

많은 사람들이 바삐 대답했다.

고청운도 절을 한 후 진 학사의 안배에 따라 대오로 갔다. 긴 줄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며 부정행위를 준비한 자는 미리 반납을 하라고 하며, 그렇지 않고 발견될 시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자명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가 말을 다 마치고 난 후에도 수재들은 멀겋게 쳐다만 볼 뿐 부정행위를 위해 준비한 물품을 내놓는 이가 없었다. 고청운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했다. 

“……스스로 과오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청운은 뒤쪽을 돌아보며 목청을 높여 마지막 한마디를 말했다.

“네!”

수재들의 들쭉날쭉한 목소리가 땅이 울리듯 우렁차게 이어졌다. 6품 관복을 입고 관리들에게 둘러싸인 고청운을 보며, 줄지어 선 사람들이 속삭였다.

고청운은 지금 선 자리에서 어떤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밖으로 이어진 긴 줄이 아직 더 남아 있었다. 그는 두 번째 문으로 들어가 보았다.

둘째 문 안쪽은 수재들이 옷을 벗고 검사하는 곳이라 그런지 몇 명의 갈빗대를 드러낸 수재들이 보였다. 고청운은 거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허여멀건한 몸을 보니 꽤나 눈을 버린 것 같았지만, 그래도 수색에 열심히 임했고, 부적절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수재들이 부정행위를 준비하지 않은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다.

앞선 검색 절차에서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어도, 시간은 아직 더 걸릴 것이었다. 일찍이 4,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입장했는데, 모든 사람이 수색하는 데는 그에 해당하는 일정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고청운 등 사람들은 여기에서 더 기다려야 했다.

밤이 깊어졌고, 고청운은 줄어드는 줄만 바라보니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점심때부터 밤이 될 때까지 잔 그는 이어서 줄곧 시험지 인쇄 감독을 하였는데, 지금은 또다시 한밤중까지 여기에서 눈을 크게 뜨고 입장하는 응시자들을 감시하려니 정말이지 너무나도 졸려 계속해서 하품만 나왔다.

아마 자신은 요 몇 년 동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유지해 오다가 이렇게 갑자기 확 바뀐 일정을 소화하려니 아직 익숙하지 않아 좀 적응이 안 된 것 같았다. 

고청운은 부역을 불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한 차 한 잔만 주시겠습니까?”

부역이 말없이 떠나자, 그 옆에 앉아 있던 진 학사가 고청운을 보았다.

“신지, 어찌 입맛이 바뀌었는가.”

그가 호기심을 보였다. 고청운이 평소 끓여서 식힌 맑은 물을 즐겨 마시며, 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습관을 한림원에서도 전해 들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피곤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원기 왕성해 보이게끔 늠름한 모습으로 빙긋 웃으며 말했다.

“대인, 하관이 입맛을 좀 바꾸어 보려 합니다. 맹물만 오래 마셨더니 너무 싱거워서요.”

진 학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가로젓고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계속 다른 관리에게 말을 걸면서, 시도 때도 없이 안과 밖을 한 바퀴씩 둘러보았다. 입장하는 인원은 점점 많아졌는데, 실제로 한 수험생은 부정행위가 발견되어 울부짖는 모습으로 사병에게 끌려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얼마 후, 시험장의 광장 구석에 그가 준비해 온 종이 뭉치가 버려졌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번 시험 동기가 된 응시생들을 다시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얼굴이 차분했고 진노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고청운은 그 수험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필경 그처럼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분명 내가 잘 숨기기만 하면 문제없을 것 같다는 심리였을 테지.’ 

고청운은 이런 광경을 하도 많이 봐서인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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