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06)화 (306/504)

306화. 도착

7월 28일에 그들은 향시가 치러지는 장소인 상성 담주부에 도착했다. 고청운과 진 학사는 도착하자마자 즉시 시험장 옆 행관(*行馆: 관료가 출장 등으로 다른 지역에 머물 때 사용하던 임시거처)에 입주하여 며칠간 두문불출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은 남들과 어울리는 등 타인과의 접촉이 일절 금지되었다. 이들은 8월 6일 정식 시험이 치러진 후에야 행관을 나와 다른 시험관들과 만나 향시를 마저 주관할 수 있었다.

향시를 마치고 다시 시험장에 갇혀 답안을 확인하고, 8월 29일 저녁이 되어야 합격자 명단을 작성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이 다 끝나야만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즉, 한 달 넘게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셈이었다.

이때 담주부에는 일찍이 성내 각 지역에서 향시를 보러 온 수재들이 모여 있었는데, 고청운과 진 학사가 부두에 도착하는 순간, 그들에 관한 출신 배경 등 크고 작은 정보들이 온 거리에 퍼져나갔다. 

* * *

고청운은 향시 행관 안 서재에서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있었다. 그는 최대한 중복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이미 각종 산술 서적을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일전에 상성의 향시에서 기출된 적이 있던 문제들까지 다 보았다. 

고청운은 첫 번째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게 냈는데, 뒷부분 두 문항의 난이도가 차례로 높아지기에 보다 많은 선택을 위해 모두 합쳐서 6문제를 출제했다. 이 중 어떤 문제를 선별해서 시험지에 실을지는 진 학사가 결정하게 될 것이었다.

산술 문항의 출제 준비가 끝나자, 고청운은 세 가지 잡학 문제를 쓰다가 고치기를 반복했고, 적당한 정도의 난이도가 완성되었을 때 드디어 붓을 멈추었다.

제목들을 다 외운 후, 고청운은 고삼원을 향해 손짓을 하였다.

“삼원아, 화로에 불을 지피거라.”

고삼원은 화본을 보며 한참을 싱글벙글해 있다가 고청운의 말을 듣고는 바로 불을 피웠다. 

원고를 불타는 화로 속에 던져 넣은 고청운은 원고지가 재가 되고 난 뒤에도 마음을 놓지 않고 있다가, 물을 끼얹는 것을 직접 다 보자 그제야 안심했다. 

‘좋아, 일언반구도 새어 나가지 않겠구나.’ 

그는 고삼원에게조차 문제들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 방면에서 그는 매우 신중한 편이었다.

“숙부, 배고프지 않으십니까? 배가 고프다고 하시면 제가 가서 밥을 좀 가져오겠습니다. 벌써 식사하실 때가 지났습니다.” 

고삼원은 고청운이 넋을 놓고 있자 조심스레 말을 붙여보았다. 

고청운은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고삼원이 음식을 들고 들어왔는데, 두 사람이 먹을 음식을 각각 한 몫씩 챙겨왔다. 

음식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고기와 채소가 골고루 있었고, 고청운이 즐겨 먹는 계란도 들어 있었다. 

이처럼 그들이 행관 안으로 입실을 하고 나서는 음식이든 무엇이든 다 다른 사람이 가져다주어야 했다. 고청운은 혹시 그들 사이에 통정사(*通政司: 국내외의 장주(章奏/황제에게 올리는 글)를 맡아보던 중국 관명)가 있지는 않은지, 혹은 다들 하나같이 특수한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다들 하나같이 조용하니 과묵했던 것이다.

이곳의 요리에는 고추 넣는 걸 즐겼는데, 그들의 음식을 만드는 재주는 취사부보다 좋을 것이 없었다. 

“맵네요.”

고삼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너무 매워요. 그간 먹어오던 것에 비하면 훨씬 더 맵습니다.”

고청운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이곳은 기후가 습하고 더우니 맵게 먹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정 못 먹겠으면, 다음에 네가 그들에게 좀 담백하게 조리해달라고 미리 청해 두거라.”

백 리마다 천 리마다 그 풍속이 다르다는 말이 있는데, 고장에 따라 풍속도 제각각이었다. 이곳은 비록 월성으로부터 인접한 지역이었으나, 기후적 특징에서 기인한 식문화는 서로 다른 지역색의 차이를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고삼원이 맑은 국물을 마시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숙부, 더는 먹을 엄두가 안 납니다. 참, 진 대인의 그 예쁘장한 여종 말입니다, 주인의 총애를 믿고 교만한 데다가, 음식이 맛이 없다고 싫다며 툴툴대더니 결국 진 유모에게 욕을 들어먹고 있더군요. 흥, 진 대인조차 내치지 않은 음식을 제까짓 게 뭐라고 그런대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여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번 고차는 시험관의 가족을 대동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었지만, 하인의 대동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허나 원체 그는 집에 하인 수가 적기도 했고, 그처럼 모든 것을 간소하게 해서 살면 많은 하인들을 대동하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간미의 두 몸종은 모두 여자아이여서 더 이상 데리고 다닐 수 없었다. 어차피 고삼원만 곁에 있으면 빨래 등 잡일을 좀 거들어 줄 수 있을 것이고, 다른 일들은 자기가 직접 할 수 있었다.

진 대인의 경우 4명의 종을 대동해서 왔는데, 남녀 두 명씩으로 두 사내는 모두 건장했고, 두 여인은 묘령의 여종 하나와 집사인 중년 부인이었다. 

고청운은 여종의 용도에 대해 이해는 했지만 그렇다고 남을 따라 하지는 않았다. 그것 좀 잠시 참는다고 어떻게 될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행관 안에서는 모두 매우 조용하게 지냈는데, 길에서 만났던 관리들의 열정과 달리 감히 이곳까지 찾아와 인사를 여쭈며 사리를 도모하는 사람도 없었다. 

허나 매일 같이 열정적인 사람들이 두리번거리며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을 관망하고 있었는데, 그 관리들이 바보들도 아니고 감히 규정을 어길 수도 없었거니와, 문 앞에 금위군이 지키고 있어 가까이 오지도 못했다.

고청운은 매일 암암리에 시험 문제를 외우는 것 말고 퉁소를 불며 심심함을 달랬다. 

성지가 내려진 후 준비 절차를 알고 있었던 고청운은 지루한 시점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퉁소를 챙겨왔다. 이제야 비로소 갑갑증을 풀 수 있게 되었으니, 예전의 심정으로 돌아가 추억을 되짚어 보며 복습을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복습하지 않으면 나중에 고영량의 실력이 그보다 더 뛰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옆에는 진 학사가 살고 있는데, 서로 갈등이라도 생길까 봐 단소를 불 수 있는 시간이 매일 너무 길지 않도록 하였다.

한편, 진 학사는 차분하게 그림을 그린 뒤 고청운과 함께 감상하고 태워버리곤 하였다. 이는 고청운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했는데, 진 학사가 그림을 아주 잘 그렸을 뿐만 아니라 그가 사용하는 안료니 종이 등이 모두 상등품이어서 멀쩡한 은자를 불에 태우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돈에 집착이 있는 그가 이 장면을 봤으니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설령 그것이 그의 은자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 * *

시간이 좀 더디게 흘러 이제 겨우 9일 동안 행관에서 지냈는데, 고청운은 진 학사와 예전보다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적어도 가끔은 공무뿐만이 아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 방면에서 고청운은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얻었다. 진 학사의 문중에서는 몇 대째 진사에 합격한 사람이 계속 있어 왔고, 문중의 자제들은 매우 규율을 잘 지켜, 밖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을 뿐더러 명성이 매우 좋았다.

또한, 고청운은 아이를 양육하는 일로 남들과 교류하는 것도 좋아했다.

고청운은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알고 자신의 자질적 특성에 맞추어 한평생을 노력해서 4품직 관리라는 고위 관리의 반열에 오르기만 해도 이미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후손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고영량과 고영진의 공부에 관한 환경은 자신의 어린 시절보다 훨씬 좋았다. 그들의 글공부를 이끌고 지도해 줄 사람으로 자기 자신과 스승님이 있었다. 고영량의 경우 이렇게 여러 해를 황립 서원에서 지내면서 사람됨이 대범하여 때로는 고영량에게 능구렁이의 싹수가 있음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황립 서원에서 아무리 육훤의 비호를 받았다고 한들, 황립 서원 내 한 무리의 친구들과 이렇게까지 잘 어울릴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매번 집에 친구를 초대해서 고청운과 간미가 일을 어떻게 진행하라고 한 번만 언질을 주면, 고영량이 일사불란하게 일을 처리하고, 거의 착오 없이 일정을 적절하게 안배하여 그의 친구들이 최대한 즐겁게 놀다가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작은 일일 수 있지만, 고청운과 간미에게는 이 일이 매우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자기 집의 큰아들이 아직 어린 나이이기는 하지만, 공부만 할 줄 아는 그런 서생 같은 사람이 아님을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 * *

가까스로 마침내 8월 6일 아침이 되자, 이른 아침부터 상성의 순무(*巡抚: 지방 행정 장관)는 사람을 보내 표리(表里) 두 폭과 금화(金花) 한 쌍씩을 전달하며, 총독이 집무하는 관아로 초청했다. 세 번을 청한 후에야 비로소 고청운과 진 학사는 가마에 올라탔다.

표리와 금화라는 것은 옷을 지어 입는 포목과 금전을 조각하여 새긴 꽃으로, 사실상 이들에게 주어지는 수고비 같은 것이었다. 고청운은 부시험관들이 으레 표리 두 폭과 금화 두 쌍을 받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정상적인 수입이라 그들이 부담스러워할 필요 없이 대범하게 받을 수 있는 것들로, 걱정할 일 없는 포상이었다. 

참석한 연회의 이름은 입렴연(*入帘宴: 입렴이란, 과거 시험의 준비 및 시험지 열람 등의 직책을 이행하기 위한 관리들이 시험장에 들어가는 것을 뜻함. 입렴 후에는 시험이 종결될 때까지 바깥출입이 엄하게 금지됨)이라도 불렸다. 

이 자리에는 그들뿐 아니라 동고관(*同考官: 과거 시험의 부심사관)들도 함께 연회에 참석했다. 본 왕조의 동고관은 상성의 진사 출신인 부현의 관원들 중에서 차출되었으며, 이 밖에도 대유(大儒)나 퇴직한 고위 관리 그리고 순무와 총독(*总督: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 행정 장관, 순무는 고정적으로 해당 지역에 부임하는 사람이고 총독은 황제의 명을 이행하거나 대리하기 위해 임시로 다녀간다)이 모두 포함되었다.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 있는 향시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는 나라를 위한 인재를 뽑기 위한 것이자, 조정의 근간을 이루기 위함이니 그 중요성을 아무리 더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었다.

동고관은 다시 내렴관과 외렴관으로 나뉘었는데, 내렴관은 주로 답안지의 열람 및 채점을 담당했다. 

상성에서는 이번에 향시에 응시하는 수재가 많았다. 신청자 명단에 따르면 총 3천여 명이 참가 예정이었기에 진 학사와 고청운이 상의한 결과, 내렴관 10명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이부에서 조건에 부합하는 인선 명단을 받아 현지에 도착한 후, 그들은 차출자 명단을 별도로 추려 발표했다. 

이것은 그들이 행관에서 행한 유일한 공무였다. 

외렴관의 인원수는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그들은 주로 시험장을 돌면서 감시하고 시험장 질서를 유지하는 등의 임무를 맡았다. 고청운과 진 학사의 경호를 맡은 금위군의 우두머리 역시 바로 그 외렴관 중 하나였다.

내, 외렴관은 문무관에 해당하며, 관원끼리 부정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상호 감시하는 역할도 하였다.

따라서 입렴연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사람들은 모두 까다로운 요구 조건에 다 부합한 사람들이었다. 

순무와 총독은 아주 친절하게 이들을 환대해 주었는데, 고청운과 진 학사의 품계가 낮다고 깔보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더할 나위 없이 환대해 주었다. 

고청운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저 평소처럼 행동하는 진 학사의 모습을 보고 새삼 놀라고 말았다. 두 사람은 결국 흠차(*钦差: 황제를 대리하는 파견 관리)였기에, 귀경 후 진 학사는 황제에게 복명하고 자신도 총결산 보고서를 황제에게 넘겨야 했으니 당연히 어느 정도 그를 꺼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고청운도 이내 무덤덤해졌다. 사람들은 서로를 추켜세우며 상성의 풍토와 기후 따위의 낯간지러운 말만 하며 대화로 이어갈 뿐 과거 시험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다들 감히 술을 마시지는 못했고, 식사를 마친 후에는 모든 시험관이 가마를 타고 과거 시험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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