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05)화 (305/504)

305화. 상성으로 가는 길

진 학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헛기침을 하였다.

고청운은 시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할 것임을 직감하고, 얼굴빛을 바로 하였다. 

역시 진 학사는 시험 문제 얘기를 꺼냈는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지, 본관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을 테지. 시간이 촉박하니 불필요한 소리는 하지 않겠네. 이번 향시는 폐하와 여러 대인들께서 이미 기조를 정하신 바, 일부 주요 시험 문제는 이미 나와 있으나 일부 문제는 우리가 내야 한다네. 신지, 자네는 산술에 능하니 세 가지 산술 문제를 내고, 잡문 한 문제도 맡아 주게나.”

진 학사는 말을 마치자마자 종이를 한 장 떼서 고청운에게 건네주었다.

고청운이 종이를 급히 받아 들고 자세히 보니 기출 요구 사항이 적혀 있었는데, 예를 들면 산술 문제의 경우 난이도가 쉽고 간단해야 하나 일정 난이도를 지닌 문항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 한 문제는 난이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구성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었다. 

이치는 매우 간단한 지시들이었다. 한마디로 난이도에 차등을 두되 출제한 문제가 모든 수재가 다 풀 수 있을 만큼 쉬워서는 아니 되고, 단 몇 명만이 풀 수 있는 어려운 난이도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인재를 가려내는 데 실패할 테니 말이다.

보기에는 쉬워 보이는 요구 조건이었으나, 고청운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예전에 한림원에서 본 각 성(省)의 거인들이 치렀던 향시 시험의 시험 답안지가 생각났다. 매번 향시에서 합격한 시험 답안들은 한 부씩 한림원으로 보내졌는데, 그 후 한림원에서는 서길사 혹은 편수를 시켜 이 답안지들을 재검사하게 하였다. 그들은 보통 한 부씩 일일이 살피지 않고 일부만 추려내서 잘못이 없는지, 명백한 부정이 없는지 확인했고, 만일 글의 내용이 엉터리라면 책임자를 반드시 추궁했다. 

고청운도 일찍이 몇 년 전에 상성에서 보내온 시험지를 본 적이 있었다.

그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본 진 학사가 고청운을 위로하듯 말했다. 

“본관이 미리 자네의 마음 준비를 시킨 것일 뿐, 지금 당장 문제를 가져오라는 것이 아닐세. 자네는 먼저 돌아가서 어떤 기출문제를 낼지 생각하고 있게. 그리고 지금부터는 시험 문제를 절대 종이 위에 쓰거나 다른 사람과 토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기억하시게.”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성을 벗어나기 전에 이미 관련 교육을 받았으니, 당연히 규정을 지킬 것이었다.

향시 문항은, 일부는 시험관이 출제하는 것도 있었고 조정에서 하달을 받아 기출한 문항도 출제되기도 하였다. 조정에서 낸 문제 같은 경우, 작은 상자 안에 담겨 있었다. 고청운은 총총히 상자를 한 번 쳐다보았는데, 한 무리의 금위군들이 이 상자를 지키고 있었고 열쇠는 주임 시험관이 쥐고 있었다.

그들의 행차에 금위군이 동행하는 것은 그들을 보호하고자 함이 아닌, 일종의 부정을 방지하는 감시를 하고자 함이었다. 

결국 금위군은 황궁을 지키는 군대로,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군대이니 말이다. 소속된 군사는 출신이 좋은 자제들 혹은 공훈 무장의 관계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전쟁터에서 단련된 자들로 훈련이나 연판장에서 키워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솔직히 이런 자들의 경호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고청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주임 및 부시험관에게 각 성의 지방장관들이 접선을 망설이게 만들 것이고 그 덕에 부정행위가 발생할 가능성 역시 조금 더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에 대해 의논을 마친 후, 고청운의 시선은 그의 뒤 서재를 향했고, 진 학사는 수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책이 있으니 필요하면 몇 권이라도 가져다 보게. 본관에게 돌려주는 것만 잊지 말고.”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고청운이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한 것은 그가 책을 빌려줘서가 아니라 그에게 문제를 출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서였다. 이는 자신의 사상을 관철하고 공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몇몇 주임 시험관들은 시험 문제 출제를 도맡아 처리하고 부시험관들을 외면하곤 하였다. 

따라서 고청운은 자신이 예전 부하 직원이었기 때문이든, 다른 이유에서든 자신을 참여할 수 있게 해 준 것에 대해 진 학사에게 감사해야 했다. 스스로 주임 시험관이 이번 향시를 지도하는 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면, 주임 시험관이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향력이 크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자신에게 돌아가는 공로 또한 없을 터였다.

예를 들어 진 학사는 자신이 낸 문제를 보고 향시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아예 채택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모든 문제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고청운이 대처할 방법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보통의 관원은 그렇게까지 구구절절하게 부시험관들을 대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고생스럽게 시험 문제 출제를 위해 먼길을 가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들 먼 지방 각지로 떠나는 것은 바로 공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닌가.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반드시 큰 원한을 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법이었다. 모두 같은 왕조에서 벼슬을 하는데, 원한이 깊지 않았다면 불필요한 마찰도 겪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청운 외 사람들이 애써서 시험관 자리를 얻으려 했던 이유이기도 하였다.

고청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무렇게나 한번 서가를 훑어보았고, 수많은 책 중 자기가 본 적 없는 두 권의 책을 집어 들고는 황급히 진 학사와 작별을 고했다.

고청운은 자신의 선실로 돌아가는 동안 뒤에서 따라오는 감시에 대해 이미 익숙해졌다.

* * *

바닥에 돗자리가 깔린 선실 안에서 고영진은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고경은 연둣빛의 배두렁이를 입고, 아래에는 사각형의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뽀얗고 말랑해 보이는 팔다리가 드러나 시원시원해 보였다. 그래도 이마가 살짝 젖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칠교판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히 아주 덥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부군, 돌아오셨습니까?”

보던 책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가볍게 말하던 간미가 그의 손에 들려있는 책을 보고는 순간 눈을 반짝이며 어디서 가져온 책이냐고 물었다. 

“진 대인으로부터 빌려온 것인데, 시집 두 권이라오.”

고청운은 그녀에게 건네주고 또 한 번 열심히 책을 보고 있는 고영진을 보았다. 아이의 다리를 보니 공중에 떠서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곳은 집이 아니라 소어 키에 맞는 걸상이 없어 곤란하구려.”

고영진은 이 말을 듣자마자 더는 책 보는 척을 하지 못하고 급히 책을 내려놓고 뛰어내려 고청운의 팔을 껴안고 말했다.

“아버지, 저는 갑판에 가서 바다를 보고 싶어요. 커다란 물고기들이 있는지 보고 싶어요.”

“안 된다. 지금 햇볕이 너무 많이 내리쬐어서 피부가 상할지도 몰라. 착하지, 책을 더 보고 싶지 않으면 가서 여동생과 놀아주거라.”

고청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지 몇 걸음만 걸었을 뿐인데 고청운의 등은 흠뻑 젖어 있었다. 다행히 내려가는 동안의 여정에서는 관복을 입지 않아도 되었는데, 관복까지 입어야 했더라면 너무 더울 뻔했다. 

막내아들은 오늘 공부 시간이 충분했기에, 고청운은 날씨가 너무 덥고 하니 더 강요하지 않기로 하였다. 지금은 장거리 여행 중이므로 아이에게 더 강요하기도 어려웠다. 

6월 중순에 길을 재촉해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했지만, 다행히 창문을 열 수 있으니 바닷바람이 약간씩 들어오면 더 시원해질 것이었다.

고영진은 여동생을 보더니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좀 외증조할아버지와 외증조할머니 그리고 형아가 보고 싶어요.”

아들은 못내 근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고청운과 간미는 서로 마주 보고 웃고는 나긋한 목소리로 그가 만족할 때까지 위로해 주었다. 뒤이어 아들이 고경에게 달려가 함께 놀아주는 모습을 본 그들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두 사람은 잡담을 이어갔는데, 무심코 다시 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7월 중순에 민성(*闽省: 복건성(福建省))에 도착하면 우리는 잠시 떨어져 가겠군요. 향시는 8월 초 9일에 시작해서 8월 말에야 비로소 성적이 발표되지요? 또 무슨 녹명연(*鹿鸣宴: 향시 합격자를 발표한 다음 날에 행해진 시험관과 합격자와의 합동 연회)이니 하는 연회까지 참가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계산해 보니 9월 중순이나 되어야 집으로 오실 수 있겠군요. 두 달이라니, 정말 긴 시간입니다.”

간미가 매우 서운해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청운이 위로했다.

“두 달이면 시간이 아주 빨리 지나갈 것이오. 우리가 아예 안 떨어져 본 것도 아니지 않소.”

이 말을 꺼내자, 간미의 눈빛이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바뀌었다.

고청운은 하하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들은 고청운이 혼자 임계촌으로 돌아갔던 석 달을 빼고는 지금까지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무슨 재미있는 말로 간미를 웃게 해 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내아들과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하게 자신들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촛불 두 개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셋이었으니 망정이지, 두 명만 더 많았어도 고청운은 정말 더 이상 아이들의 시선을 참을 수 없게 됐을지도 몰랐다.

* * *

7월 20일, 고청운은 예정된 계획에 따라 민성의 부두에 내린 후, 다시 내호(内湖)의 수로로 상성 성도의 담주부(潭州府)로 가게 되었다. 바로 여기서 고청운과 간미 일행은 갈라지게 될 것이었다. 

사리에 밝았던 진 학사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보고 이곳에서 하루를 머물 수 있게 일정을 조율해 주었다. 

고청운은 이때 적당한 표국(*镖局: 고대 중국의 운송, 보험, 경비 업체)을 찾아서 처자식이 배에 올라탄 것을 확인한 후 비로소 상성을 향해 서둘러 다시 출발했다.

민성에서 상성으로 가는 동안, 고청운은 중간에 강서성(*江西省: 양자강 하류 강의 북쪽 지역) 지역을 지났는데, 그곳은 수로와 육로가 다 있었지만 그나마 수로가 괜찮았다. 그 이유는 예전과 같았는데, 도적을 만나거나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현지의 지방 관리들이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접수하게 되면, 온 여정 및 일정이 그들의 예상을 벗어나게 될 터였다. 중간중간 지방관들을 직접 만나야 하거나 그들이 보내온 사람들을 만나 안부를 묻기 시작할 테니, 고청운 등 두 사람이 여간 시달려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특히 고청운을 놀라게 한 것은 강서성의 최고 행정 장관조차 이들이 강서성 밖으로 이동하려 하자 사람을 보내 쫓아왔다는 것인데, 심지어 그는 인편에 노자로 쓰라며 물품까지 전해 왔다. 

그러다 진 학사가 강서성의 지방 관리를 담담하게 내치는 모습을 본 고청운은 그에게 탄복했다.

그러나 진 학사는 되레 웃으며 고청운에게 말했다.

“본관은 3년 전에 부시험관을 한 번 지내보았다네.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이니, 규정대로 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될 것이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정에서 그는 진 학사의 처신과 사람됨을 관찰하면서 많은 것을 듣고 보았다. 그는 몇 년 후 만약 스스로 원해서 또다시 주임 시험관으로 파견이 된다면, 그쪽은 더 이상 손을 댈 일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는 주임 시험관으로 부임할 수 있는 품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경험이 없어 부시험관부터 관련 업무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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