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04)화 (304/504)

304화. 선물

사장정과 한 번 술을 마시고 나서, 고청운은 시험 결과를 통보받았다. 그의 성적은 기본적으로 부시험관이 될 수 있는 갑 등급이었는데, 갑 등급이라고 하더라도 다들 같은 갑 등급은 아니었다. 이번 시험 답안의 점수 결과는 다들 알고 있는 사회적인 규율에 따라 석차를 매긴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의 이름은 부시험관 배정 순위 중 제1순위의 3번째에 이름을 올렸는데, 1, 2번째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조정에서 평판이 높은 관리 2명이었다. 

장수원과 담자례 역시 이름을 올렸고, 왕 주사는 꼴등으로라도 이름을 올렸으며, 공봉명은 낙방이었다. 

다들 소식을 들은 후 당연히 서로를 축하했고, 낙방한 사람들도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거나 혹은 혼자 남몰래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실 다들 마음이 열려 있던 건 제일 큰 풍랑을 이미 다 한 번씩 겪어봤기 때문이었다. 그간의 과거 시험에 비하면 이번 시험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 *

부시험관 배정이 확정되자, 고청운과 간미는 집안의 창고에서 물품들을 한 번 훑어보았고, 마침내 적절한 선물을 골라 단오절의 기회를 빌어 한림원 오 학사의 집으로 보내기로 하였다. 

지난번 고청운의 <산학재해> 출판 때 오 학사는 산술 학계의 선배에게 도움을 구해 그의 서문 작성을 도와주었는데, 그 덕에 두 집안은 계속해서 왕래하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선물을 보내는 것이 남들의 시선을 크게 끌지는 않았다. 

고청운이 이번에 선물로 보낸 것은 창화석(*昌化石: 저장(浙江)성 창화진에서 나는 도장 돌로 매우 진귀함)으로 만들어진 계혈석(鸡血石)이었다. 이렇게 천연적으로 만들어진 보석은 일반적으로 도장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는데, 희소성과 재질로 인해 많은 문인들이 제일로 추켜세울 정도로 가치가 높았다. 

고청운은 예전에 오 학사의 사무실에서 무심코 주변을 살펴본 결과, 그의 인장이 일반적인 재질로 만들어졌던 것을 기억해 내고 이 선물을 고른 것이었다. 이번에 일을 부탁하려 하니, 고청운은 할 수 없이 심한 출혈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간미는 못내 아쉬운 듯 말했다.

“부군, 아니면 우리 다른 것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요? 부군의 인장 역시 보통 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까. 이 계혈석으로 부군의 인장을 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심지어 이 돌은 후부에서 보내준 것이니, 이를 다른 이에게 선물하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괜찮소. 물건은 내가 받았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것이오. 우리 집에 값나가는 물건이 몇 종류 없으니 선택지가 없는데, 마침 오 대인은 이걸 좋아할 거요. 기왕 선물할 거라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보내야지요. 내가 소장하고 있는 서화나 서첩을 보내자니, 오씨 가문은 학자 집안이 아니오? 오씨 가문에 이런 것들이 더 많을 거요.”

고청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계혈석은 육택이 육훤을 통해 작년 춘절에 보내준 것이었다. 당시 육훤은 육택과 잘 소통하지 못하고 말싸움을 벌이고는 고청운의 집으로 달려왔었는데, 그때 고청운이 소통과 설득을 통해 두 부자 사이를 다시 원만하게 만들어 주었었다. 그 덕에 부자가 화해를 한 후 명절 선물로 계혈석을 보내준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렇게 귀한 물건을 쓸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 줄곧 창고에 보관해 두었는데, 지금은 어쨌든 이렇게 쓸모를 찾게 되었다.

간미는 이 말을 듣고서는 더 할 말이 없었고, 그저 약간의 답답함만을 느낄 뿐이었다. 그녀는 남들에게 사적인 선물을 단 한 번도 받지 않던 고청운이 먼저 찾아가 뇌물을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고향과 가까운 성에서 향시 시험관으로 재정 받기 위한 뇌물인 셈이었다.

요새 들어 관가에서 함께 지내가 보니, 한 패거리가 되어 나쁜 물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과연 오 학사가 이 선물을 받아 줄까? 남에게 이런 청탁의 선물을 한 적이 없었던 고청운은 오 학사 역시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이 정도의 부탁은 거절하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가 자신의 오래된 상사로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받아 줄 것 같았다. 

* * *

선물을 보내고 난 어느 날, 고청운은 퇴근 후 마구간에서 오 학사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자신과 최근 학계와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오 학사가 의도치 않은 질문을 하자, 고청운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인, 하관은 이미 소속된 부서에 가족 방문 휴가를 냈습니다. 향시 시험이 끝나면 가는 길에 월성에 거주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뵙고자 합니다. 하관이 다시 경성으로 돌아왔다가 내려가지 않으려면, 고향집에서 멀지 않은 성에 가서 시험관으로 지내면 될 텐데, 그렇게만 될 수만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청운은 오 학사의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고청운의 요구를 들은 오 학사는 마음이 느긋해져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 일은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월성에 가까운 곳엔 여러 지역이 있었는데, 어느 지역으로 선택할지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자신이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부탁이 규칙을 어기는 한도 내의 부탁도 아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설령 자신이 그 계혈석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한들 도와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 자네도 참…….” 

겉으로는 고청운의 부덕함을 탓하는 듯했으나, 어느 누가 고청운처럼 하고 싶지 않겠는가. 이렇게 늘 추가적으로 장기 휴가를 내고 고향을 가면, 한림원도 그렇고, 호부에서도 상사와 동료들이 의견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결국 벼슬길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그의 말을 듣고 그저 머리를 긁적거리며 허허 웃기만 하였다. 남들이 보기엔 득보다 실이 많은 선택이기는 했지만, 그는 관직 생활에 있어 그들과 대적하느니 가족과 시간을 갖고 재회를 하고자 하였다.

예전에 그는 책벌레들만 무리를 지어 한림원에 몸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관청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적어서 능력 있고 욕심 많은 사람들은 몇 년 만에 다 한림원을 떠났는데, 남은 사람들은 싸움에 대한 투기도 강하지 않아 비교적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다. 

고청운의 같은 경우 호부로 옮겨간 후, 직위가 낮았지만 그래도 일련의 관료들 간의 신경전을 목격할 수 있었다. 몇 차례 사건들을 목도하고 나자, 그는 자신이 정말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는 관가에서 종횡무진하며 사방으로 크게 싸우고 책임지고 큰 포부를 갖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포부가 없었던 고청운은 이 방면에 연연하고 싶은 마음이 더더욱 없었다.

* * *

5월 중순, 1차적으로 주임 시험관들이 지방으로 파견을 나가기 시작했다. 황제는 예부에 향시의 주 및 부시험관들의 명단을 추리라고 하였고, 각 성별로 가장 먼 곳과 가까운 거리에 따라 5월 중순, 6월 중순, 6월 하순, 7월 중순 네 차례로 나뉘어 파견 갈 것을 지시했다.

그래서 1차 파견 명단의 목적지는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운귀 지방으로 가는 이들로, 출발 시점은 5월 중순이었다.

고청운은 2차 파견 명단에 속했고, 6월 중순 그가 파견 갈 곳은 상성(*湘省: 지금의 호남성(湖南省))으로 월성과 인접한 곳이었는데, 월성과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비교적 큰 성이었다.

또한 함께 하게 된 주임 시험관은 한림원의 시강학사로 성은 진(陳)이며, 이전에 그를 관리했던 오랜 상관이자 지인이었다.

고청운은 이 사실을 알고 크게 기뻐했다.

일전에 고청운이 한림원에서 소추의에게 걸려 하마터면 함정에 빠질 뻔했던 것을 바로 잡아 준 것이 바로 진 시강이었다. 고청운이 호부로 가고 나서, 당시 학사로 있던 진 시강은 바로 정6품의 시강직에서 바로 종5품에서 시강학사직으로 승진했다. 한림원의 시강학사 중 1~2명은 매 향시 때마다 주임 시험관이 되었다. 

그가 유일하게 생각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운이 그렇게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혹은 이런 일조차 오 학사께서 특별히 배치를 해 주신 걸까?’ 

고청운은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니 마음이 많이 놓였다. 적어도 적응하는 문제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진 학사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은 엄숙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는데, 한림원에서는 너무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인정이 없어 보이기도 했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심지어 그는 이미 퇴직한 잠 시강보다 인맥이 더 좋았다.

고청운이 보기에 이런 성격의 사람과 함께 여정을 한다면 이번 상성으로 출장을 가는 데 안전 문제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안전 문제란 주로 뇌물, 부정 등이 발생하는 것을 말했다. 파견이라는 것은 국비를 사용하는 여행인 셈이니 매우 좋은 업무이기는 하나, 재수가 없이 사건에 연루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이 가장 두려웠다. 

남을 공격하는 무기로 쓰이거나 협박을 당해 과거 시험에 대한 부정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어느 날 그 진상이 밝혀지게 되면, 그 자신의 목숨만을 담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그 죄에 함께 연루될 것이었다. 결과에 따라 그가 참수되거나 3천 리 밖으로 유배라도 가게 되면 정말이지 너무나 억울할 것 같았다.

그는 당연히 스스로는 공평하고 청렴하게 일을 처리할 것을 보장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 역시 그러리라는 것은 보장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 그는 자신과 함께 할 주임 시험관이 진 학사인 것을 알게 되자, 크게 기뻤다.

* * *

“대인, 절 찾으셨습니까?”

관선 위에서 고청운은 진 학사가 그를 찾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이번 파견은 관용 선박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지만, 가족들을 무료로 태울 수는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어차피 그를 따라 상성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와 여정의 일부만 함께할 뿐이었다. 이번에 임계촌으로 돌아가는 인원으로는 간미, 고영진, 고경, 고삼원 이렇게 네 식구에 소만과 방충만 함께 가기로 해서 인원이 많지는 않았다. 이들은 중간에 갈라져 곧바로 월양군으로 진입할 것이고, 고청운은 고삼원과 함께 상성으로 향하게 될 것이었다.

고영량과 방인소 내외는 내년 2월에 있을 현시를 대비하기 위해 올해 하반기까지 경성에 남아 있기로 하였다. 지금 고영량은 아직 황립 서원에서 공부하며 지내고 있었다. 

“신지, 어서 와서 앉으시게.”

진 학사는 고청운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급히 손짓하며 그가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고청운은 “예.” 하고 대답하고는 자리로 걸어가며 신속하게 선실 전체를 한 번 훑어보았는데, 면적은 크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럴듯한 모양을 갖춘 서재로 꾸며져 있었다. 책꽂이 위에는 책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고, 방 안에는 낯익은 묵 향기가 가득했다.

이 광경을 보자, 그는 관용 선박이 출항하던 날 진씨네 하인이 무엇이 들었는지 모를 그 많은 상자를 옮기는 것이 궁금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막 자리에 앉자마자 용모가 아리따운 계집종 하나가 그에게 김이 나는 맑은 차 한 잔을 들고 왔다.

상대방의 몸에서 전해 오는 옅은 연지 향을 맡고, 다시 청화 자기로 만든 찻잔을 들고 있는 흰 손을 본 고청운은 암암리에 눈썹을 찌푸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는 곁눈질하지 않고 더 쳐다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상대의 신분을 짐작해 볼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인이 진 학사의 부인만 아니면 그만이었다.

계집종이 나가기를 기다려, 줄곧 문 앞에 서 있던 금위군 군사 두 명이 즉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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