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03)화 (303/504)

303화. 시험 (3)

고청운이 황궁 문을 나서자, 공봉명이 말했다.

“신지, 자네는 시험을 잘 보았는가? 보아하니 답안을 아주 빨리 써 내려가던데, 사색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답을 써 내려갈 수 있는 경지가 내게 자극이 많이 되었다네. 나는 뒤에 배치된 책론과 시부의 답안이 형편없을 듯해. 자칫 시간이 모자랄 뻔했지 뭔가.”

그는 말미에 약간 상심한 말투로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5일 전에 축국 경기에 참가하지 않았을 걸 그랬네. 그날 차라리 책을 읽었더라면 오늘 더 수월했을 것을.”

그는 이번 시험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지금의 제형안찰사사(* 提刑按察使司: 1개 성(省)의 형, 옥을 총괄하는 사법기관)에서의 일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관과 협치가 잘되지 않았던 그는 이번 시험을 통해 한 번이라도 외부로 나가 근무를 하고 돌아와 공적을 좀 더 세워서 다른 부서로 옮겨가는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아니면 아예 학정으로 임명되어 지방으로 내려가는 게 지금의 처지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곳이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한림원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 또한 생각해 보면 지금 자신이 너무나 젊었기에 그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지 않기도 하였다.

고청운은 장수원을 찾아가 함께 돌아가고 싶었기에, 그저 겸손하게 얼른 그의 말에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시험 전에 복습을 한 덕에 조금 더 순조로웠을 뿐입니다. 시험 결과에 대해서는 저도 감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채점을 하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는 사실 마음속으로 이번 시험에 대해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자신의 시험에 대한 능력이 아직 퇴화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시험 전에 스스로 시간을 정해 가상으로 모의시험을 풀어 봤던 것이 아주 효과적이었는데, 그런 연습이 없었더라면 자신도 답안을 작성하는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었다.

공봉명은 낙담한 표정으로 한 손엔 바구니를 들고, 한 손은 그의 어깨에 걸치고 시큰둥한 말투로 말했다.

“집에서 종일 책만 봤다 해도 내가 자네보다 못했을 것이네. 특히 산술 문제는 자네 입맛에 딱 맞는 문제였지 않았는가.”

고청운이 웃으며 그를 격려했다.

“공 형이 제일 못한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성적이 아직 나오지 않았잖습니까.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번 채점은 내각에서 시험지를 정비한 후 황제에게 올리면, 황제가 다시 친히 갑, 을, 병으로 등급을 매길 것이었다. 여기서 갑 등급에 들어야지만 시험관이 될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었다. 황제가 시험지를 다 열람하고 나면, 시험지는 다시 내각에 봉인하여 시험관 임명에 사용되었다. 

관례상 4월 말이면 성적이 나올 테니, 이제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었다.

이때쯤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시작했다.

고청운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담자례에게 물었다.

“공 형은 시험에 참가하러 오지 않으신 겐가?”

공번충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담자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외부로 나가기 싫다고 했습니다.”

담자례가 다시 고청운은 돌아보며 물었다. 

“시험은 어찌 보셨습니까?”

어투가 아주 건성이었다. 

고청운은 속으로만 눈을 희번덕거리며 답했다.

“나쁘지 않네, 비교적 순조로웠지.”

장수원이 부채를 꺼내 흔들며 활짝 웃었다.

“나도 잘하고 왔네.”

“이게 무슨 회시 시험을 치는 것도 아니고, 자네들 뭘 그리 긴장하는 겐가!”

투덜대던 왕 주사가 고청운을 보고 농담처럼 말했다. 

“신지, 내 감히 장담하건데, 자네가 앞으로 어느 성에 가서 향시의 시험관이 되건 간에 자네 책은 아주 잘 팔릴 걸세.”

담자례는 그 말을 듣자마자 흥 하는 소리와 함께 말했다. 

“지금 그런 말을 하기엔 너무 이른 것 아닙니까.”

“물론 자네와 천리 형의 책 모두 잘 팔릴 걸세.”

왕 주사가 대뜸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고청운은 담자례를 한 번 흘겨보았다. 사실 고청운은 때때로 그를 상대하기 싫었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매번 두 사람이 함께 공공장소에 나타날 때마다 담자례는 주동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자기에게 이야기를 건네고는 하였다. 고청운은 하필이면 그의 말투가 간간히 괴상야릇하여, 정말이지 그가 귀찮게 느껴졌다.

또한, 고청운은 말하기가 거북하지만 그의 얼굴도 보기가 싫었다.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수염까지 기르고 있어 매우 성숙해 보였던 것이었다. 매일 아침 면도를 하는 자신이 보기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자신이 젊은 척을 하고 다니는 것인가?

“이건 저뿐만 아니라 누가 시험관이 되든 여러분이 집필한 책이라면 모든 수재들의 주목을 받게 될 겁니다.”

고청운은 잠시 딴생각을 접고 빙긋 웃었고, 과거에 시험관의 성향을 분석하던 옛날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도 예전에 똑같이 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하자 모두들 말없이 웃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난 데다 날도 이미 늦은 터라, 사람들은 궁 밖의 대기 중인 자신들의 마차를 찾아 각자 헤어지기로 하였다.

* * *

자신의 집 마차에 들어간 고청운은 피곤함을 감추지 못하고 방석 위에 반쯤 누웠다. 온종일 열심히 문제를 풀어댄 탓에 두뇌가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확실히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고삼원이 건넨 뜨거운 물을 받아 느릿느릿 몇 모금 마시고 나서 고청운은 그가 하는 경성의 뜬소문들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 시험은 느낌이 그래도 매우 좋은 편이야. 다만 주관식 문제가 객관식보다 많던데, 채점을 하는 사람들의 의중이나 평판까지는 알 수가 없었지. 그 외에도 산술 학문이 어느 정도 발전해 온 것 같더군. 황제의 취향과 학계의 권위자들의 연구 외에 시험지에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적어도 시험 후 답을 맞혀보면 내가 옳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거야.’ 

“……잠깐, 뭐라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고청운은 갑자기 고삼원의 어떤 한마디에 자극을 받아 급히 물었다.

“장씨 가문에서 요즘 황립 서원 입학에 관한 일로 시끄럽다고 했느냐?”

고청운의 반응에 어리둥절하던 고삼원은 그를 바라보며 기억을 더듬다가 다시 말했다.

“예, 맞습니다, 숙부. 제가 장씨 집안의 마부와 한담을 나누다가 듣게 된 것이니, 맞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 마부가 말하길, 장씨 집안의 둘째 도련님이 모든 도련님들이 다 황립 서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일을 알고는 며칠 동안 집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합니다.”

고청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 전 황궁 문을 나설 때, 장수원은 장씨 집안의 큰아들 장연해(张延海)가 곧 황립 서원에 입학한다면서 고영량에게 잘 돌봐 달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까지 했었다. 장수원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적자 하나에 서출이 둘이었다. 그의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이 아니고서야 서자에게 황립 서원의 입학 정원을 내어 줄 리가 있겠는가?

‘아까 만났을 때 장 형의 정신은 온전해 보였어. 그의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니니, 그 사촌 누이라는 첩실도 큰 풍파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야.’

“아직도 난리를 피우고 있다더냐?”

고청운은 양미간을 눌렀다. 방자명이 항주에 가 있는 동안 장씨네 집안의 동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부탁하지 않았더라면, 그도 그간 장수원과 그렇게까지 가까이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만약 방 누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즉시 서신을 써서 방자명에게 보내주어야 했다. 

그가 말했던 바와 같이, 첩을 들인다는 것은 결점을 만드는 것과도 같았다. 서로가 모르는 사이에 갈등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 어미에게 난 친형제라도 부모의 관심을 나눈다는 건 다툼의 여지가 있는 일인데, 이복(異腹)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일을 외면하는 사내들만이 자신 집의 후원이 화목하며 처첩이 잘 어울린다고 착각하는 것이었다.

고삼원은 하염없이 고개를 가로젓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그럼 제가 다시 더 잘 알아보겠습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장씨 집안의 기강이 매우 엄한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장수원과 고씨 집안 남주인이 친척이자 친우 관계가 아니었더라면 속사정을 알아보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었다.

가령 자기 집안만 해도, 소식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울타리를 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물론 전하고 싶어도 그의 집안엔 별다른 일이라는 게 별로 없기도 하였다. 

고청운으로 말하자면, 기껏해야 오늘 고영진의 축국 시간이 너무 길어져 그에게 경전을 필사하는 벌을 내린 게 다였다. 내일은 고영량이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야 했는데, 고청운은 간미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게 하고 그에게 어떻게 손님을 대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게 했다. 이렇듯 그의 집안에는 이 정도의 작은 일만 있었다. 

아주 가끔 고청운은 두 아들에게 벌을 주었는데, 방인소가 아이들이 혼나는 게 마음이 아파 핑계를 대서 외려 고청운에게 벌을 주기도 하였다. 

이런 작은 일들은 매우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고청운과 간미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평소 하인이 밖에 주인의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엄격한 요구를 해 왔다. 물론 요 몇 년 동안 자신들 스스로도 별다른 큰 실수를 범한 적이 없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으면 전해 주거라.”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별일이 없을 것 같자, 고청운은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눈을 감고 마음의 평정을 찾기 시작했다.

고삼원은 그런 그를 보더니 찻잔을 잘 내려놓고 가볍게 얇은 담요를 덮어주고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 소만과 함께 앉았다.

가족들은 집에 돌아온 고청운이 시험을 잘 봤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 * *

며칠 후, 고청운은 성당에서 몇 가지 번역상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돌아와 사장정이 보내온 서신을 받았다.

서신에 쓰인 웅장하며 기이한 그의 글씨체에 고청운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부군, 사씨 집안에 무슨 경사라도 있다고 하던가요?”

옆에 있던 간미가 웃음소리를 듣고는, 한 손에는 장부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주판을 튕기다 말고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신기한 듯 쳐다봤다.

“하하, 경사고 말고. 공주께서 또 회임을 하셨다고 하오. 갓 석 달이 되셨다는군.”

고청운은 사장정의 일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의 집에는 딸만 3명인데, 황태자가 늘 그를 불러 말을 하고 황후도 항상 물건을 보내면서……. 여하튼 부부가 받는 중압감이 꽤 있었다. 이 일로 예전부터 사장정이 자신의 앞에서 내색한 적이 있었는데, 다시 회임을 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었다.

고청운은 올해 31살로, 사장정이 그보다 2살 연하였던 점을 고려하면 안락공주도 지금 28살 정도일 테니 아이를 갖는 것과 관련해서 아직 그리 늦은 편은 아니었다. 게다가 황가에는 어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니, 그녀는 틀림없이 최고의 보살핌을 받을 것이었다.

“그럼 축하 선물을 보내드리러 가야겠습니다.”

잠시 읊조리던 간미도 얼굴에 덩달아 웃음을 띠었다. 신분의 차이가 많이 나는 간미와 공주는 사교계에서도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 그저 예전에 공주가 초대해줘서 공주부에 한 번 가본 적만 있었을 뿐이었는데, 부군과 사 부마는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두 집안의 교제는 매우 밀접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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