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시험 (2)
한참을 기다리자, 그에게도 시험지가 전달되었다.
고청운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시험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시험 시간은 하루뿐이었고 시험 문제의 개수도 많지 않았는데, 사서오경에서 각 경의 문제 하나씩과 책론, 율법, 산술, 잡문, 시부 분야에서도 각각 한 문제씩이 기출되어 있었다.
이 문항들은 모두 향시에서 기출이 될 문제들로, 시험관들의 이에 관한 지식의 습득 정도를 고찰해 볼 수 있었고, 이러한 문항들을 생소하게 다루지는 않는지 시험해 볼 수 있었다.
고청운은 두 개의 경의 문항 제목을 빠르게 읽어 내렸는데, 다행히 큰아들의 공부를 복습시키며 지도하고 있던 터라 덕분에 문제들이 낯설지 않았다.
율법과 잡문은 모두 관직 생활 중 귀동냥으로 들어온 것이 있어 어렵지 않았다. 특히 잡문은 한림원과 호부에서 하도 단련이 잘되어 있어 제목만 봐도 바로 답을 쓸 수 있을 정도로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이와 유사한 잡문들을 얼마나 여러 번 써왔는지…….
산술, 이것은 그에게 점수를 주기 위한 과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예닐곱 년의 시간을 들여 산술 연구에 전념했고, 또 두 권의 책을 출판하기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고청운의 산술 지식은 매우 착실하게 쌓여갔던 데다가, 시험지에 적힌 이 문제의 경우, 자신이 낸 산술 서적 제2권에도 예제로 실려 있는 것이라 숫자만 조금 바꾸어 대입해도 바로 정답이기에 두말없이 바로 답안을 종이에 써 내려갈 수 있었다.
이 모든 문제를 다 풀고 다시 하나하나 답안지에 옮겨 쓰고 나자, 시간은 이미 정오가 되어있었다.
제공되는 점심 식사는 매우 간단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뼈 육수 한 그릇과 계란 반죽으로 만든 찐빵 세 개로, 일전에 전시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구성이라 그때와 엇비슷하게 간단하고 싱거운 맛이었으나, 그때와 유일한 다른 점은 식사로 뜨거운 물이 아닌 뼛국이라도 나와 고기 냄새가 조금 풍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기 냄새를 조금 풍기는 이 정도의 호의는 모두에게 무시되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최소한 3년 이상은 시험장을 떠나 있던 자들이었던 것이다. 평균 6년 이상, 고청운은 8년을 시험장을 떠나 있었다. 이들이 평소에 집에서 먹는 음식은 산해진미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고기반찬이 많았을 테니 이 정도 대우와 식사 구성에는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고청운은 제공된 식사 구성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요 몇 년 동안 그의 집은 고기를 살 돈이 부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비교적 소박하게 식사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매달 들어오는 임대료 수입과 하인들에게 지불하는 월급 및 생활비가 서로 거의 맞먹어서, 그들 집안에는 남는 수입이 적었기도 했고,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 가족 수도 많고 아이들도 성장기라 가끔씩 어디가 아프거나 감기라도 들면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고영진의 경우 어렸을 적에는 형의 낡은 옷을 그대로 입고 다닌 적도 있었다. 또 한 몫 차지하는 지출로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는 건 그들의 학업에 쓰이는 경비였는데, 매년 한 가족의 문방사우 비용으로 지출되는 금액이 굉장했다.
평소 지인들과 교류하면서 드는 비용의 원천은 모두 그와 간미의 녹봉으로 유지가 되었다. 다행히 그가 유일하게 '상납'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완 낭중과 첨 원외랑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다른 동료와 주고받는 선물들은 서로 엇비슷한 수준이라 비용이 상쇄되었다.
고청운은 수입이 적다고 해서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여 새로운 재원을 창출하지 않았고, 불경한 수입도 집안에 들이지 않았다. 그의 집에서 받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탄경(*彈敬: 지방 관리들이 경성의 권세가에게 겨울에 보내는 선물) 정도였다.
물론 지금도 화본과 산술 서적에 대한 수입은 한결같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최근 2년 동안에는 왕씨 집에서 풍성한 명절 선물이 들어오고 있기도 하였다.
그가 동업하여 해외로 보낸 선박이 돌아오기만 하면, 이변이 없는 한, 그가 들인 투자금은 더 많은 이윤이 되어 돌아올 것이었다.
코끝에서 육수 냄새가 와 닿자 고청운은 슬며시 배를 더듬어 보았는데, 확실히 배가 고프기는 하였다.
그는 한림원에서 편수직을 역임할 때 부엌에 따라 들어가서 전시에서 제공되는 식사의 준비 과정을 본 적이 있었는데, 사용되는 재료가 훌륭하여 요리도 최상급 수준이었고 요리사의 솜씨도 매우 좋았다.
음식을 자근자근 씹으며 천천히 한입 또 한입 찐빵을 다 먹던 그는 옛날에 시험이 얼마나 어렵게 느껴졌는지가 생각났다. 그때의 일이 아주 먼 일처럼 느껴졌다.
‘큰 성취를 얻은 것까지는 아니지만 이미 최선을 다했으니 양심에 거리낄 게 없다.’
그간을 노력을 돌이켜 보던 고청운은 이런 생각까지 미치자 웃음이 났다.
감시를 받으며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온 고청운은 마지막 남은 두 문제인 시부와 책론의 답안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시문은 잠시 제쳐 두고, 책론 문제를 바라보았다.
‘음, 아주 일반적인 문제로군.’
이 문제를 단 두 마디로 요약하면 ‘지금 우리나라에는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가? 어떤 대책과 건의사항이 있는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평소 이쪽 방면의 정보를 수집해 오고 있던 터라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바로 해결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가 답안으로 생각해 낸 것은 바로 상업 교역의 번창이었다. 하 왕조는 찻잎, 포목, 도자기 등 전통적인 수출 상품이 잘 팔려서 상인들에게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서 강남 등지의 농가에서는 대량으로 누에를 치길 원했는데, 이렇게 하면 곡식만을 재배하던 이전보다는 수입이 훨씬 높아질 것이었다. 이러한 재배 품목 전환은 나쁜 일이 아니었다.
사실 오늘날의 포목 분야는 시장에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인들은 더 많은 농민들이 뽕을 심고 누에를 기르길 원했고, 인력을 방직장으로 보내지 못하는 것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에서는 전업 방직 노동자들이 대거 생겨나고 있었는데, 만약 기술과 원료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던 문제만 아니면 포목 생산량은 지금보다 더 늘었을 것이었다.
이에 조정에서 일부 대신들의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들 중엔 강남 지역 사람들의 도덕성이 실추되고 이익만 따진다며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아직 자신이 걱정할 단계까지는 아니었다. 고청운은 지방관으로 부임 중인 동기들이 서신을 통해 전해 준 일들이 생각났는데, 요 몇 년 동안 인근 성, 시의 식량 가격이 이전보다 올라서, 크고 작은 사람들이 모두 이런 상업적 거래를 통해 일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던 것이었다. 비록 제일 밑의 층의 농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미미했지만 말이다.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고청운은 황급히 자신의 책론 답안을 써 내려갔다. 그는 책론 답안에서 방직 산업에 기술 혁신을 도입해야 한다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뤘는데, 방적기를 더욱 선진화하고 인력을 더 투입해 생산력을 높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특히 장인들에게 거금의 상금을 내걸어 좀 더 선진화된 방적기를 개발해 내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영국의 산업혁명이 방적기의 개혁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돈의 유혹이 더 커지면, 이렇게 똑똑한 이 땅의 사람들도 더 발전된 기계를 발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고청운의 생각이었다.
이 외에도 본 왕조의 선박 건조(建造) 기술이 어느 정도 좋아져서 임계촌에 한 번 다녀오는 데 한 달 남짓밖에 걸리지 않는다고는 하나, 10여 년이 지나도록 선박 기술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않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여기까지 쓰면서 고청운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해권론을 다시 한번 역설했다.
그는 전시 때 서술했던 내용 이후 여러 해 동안 고민해 오고 있었기에, 그때보다 훨씬 더 잘 정리되고 오늘날의 환경에 적합한 내용을 서술할 수 있었다.
거침없이 글을 써낸 고청운은 자신이 써 놓은 답안지 두 장을 보고, 또 맨 앞에 놓인 물시계의 시간을 확인하고는 시간 부족을 방지하기 위해 우선 완성된 답안을 옮겨 적은 다음 마지막 시부 문제의 답을 작성하기로 하였다.
화본을 집필하며 단련된 덕인지 그의 글씨 쓰는 속도는 여전히 매우 빠른 편이었다.
고청운은 귓가에 무거운 숨소리들이 들려오자 고개를 가로젓다 무심코 살펴보았는데, 공봉명이 붓을 들고 빠르게 글씨를 써 내려가고 있는 게 보였다. 4월의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고 딱 적당했건만, 그의 이마에는 오히려 땀방울이 송송 맺혀 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청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오늘 시험 문제가 어려웠나?’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답안을 옮겨 적었다.
다 쓰고 나서 남은 시간을 확인해 보니, 반 시진도 채 남지 않았다. 남는 시간에 시 한 편을 쓰는 것은 그럭저럭 충분할 듯했다.
요 몇 년 동안의 단련을 통해 고청운은 여러 유형의 시구를 써 보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무수히 많은 시를 보내 보기도 하였는데, 그중에는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닌 것도 있었다.
그는 시들을 모아 정식으로 출판한 적이 없었고 또 답안으로 사용할 시도 누구에게 보여준 적이 없었기에, 기존에 지었던 시를 활용하기로 하였다.
고청운은 귀와 볼을 긁어가며 심사숙고한 끝에 시험 시간이 끝나기 전 답안지 작성을 마칠 수 있었다.
하하, 그는 시 쓰는 실력이 또 한 층 올라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았으나, 자신의 집 첫째 아들 고영량을 생각하니 답답했다.
지난 중추절에 온 가족이 시와 사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는데, 아들의 시를 쓰는 능력이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 같았다. 그때 꼬맹이가 자신보다 더 빨리 시와 사를 지어내어, 만약 고청운이 그간 비축해 둔 내용이 없었더라면 간미의 공세까지 더해져 아들들 앞에서 큰 망신을 당했을 것이었다.
반면, 둘째 아들 고영진은 시를 짓는 쪽으로는 크게 실력이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아직 나이가 어려 그런지, 시를 압운(*押韵: 시에서 두 음절로 된 단어를 도치하여 운율을 주는 것)할 줄까지는 알지만 내용이 무미건조하고 간결하게 표현해 역동성이 떨어졌던 것이다.
이것은 정말 자기 자신을 닮은 게 문제인 것 같았다. 이러면 그가 나중에 시험 볼 때 난관에 부딪힐 수도 있었고, 시험장에 또 한 명 뺨을 긁적이며 앉아 있게 될 사람이 추가될 것이 뻔했다.
손을 콕콕 찌르는 수염을 매만지던 고청운은 시험을 보는 와중에 아이가 시험 볼 걱정까지 하고 있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아이고, 아이가 생긴 후로는 본의 아니게 아이들이 생각날 때가 많았는데, 아마도 다른 부모님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었다.
안간힘을 써 정신을 다시 집중시킨 그는 진지하게 시험지를 한 번 검토한 후 사용을 조심해야 하는 글귀 및 오탈자가 없음을 확인했고, 붓을 내려놓고 사용한 벼루들을 물로 씻기 시작했다.
그가 가지고 온 문방사보들은 이전에 시험용으로 사용했던 것에 비해 품질이 아주 높아졌는데, 사물은 갈수록 좋은 것을 찾게 된다고, 이 구성을 갖추는데 60여 냥의 은자가 들었다.
이 구성 중 어떤 것은 자신이 산 것이고 또 어떤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도 있었다. 비싼 물건이 역시 사용하기 좋은 건 당연했다.
고청운은 소지품을 챙겨서 시험장 바구니에 넣은 뒤, 자신의 해서(楷书)체를 감상하며 잠시 고민했다. 방인소는 그가 한림원에서 나온 후 서예 실력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아무리 연습해도 발전이 없겠다고 하였다. 정체기에 진입한 것인데, 이는 계속 연습을 해서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과연 어느 날 문득 깨달음을 얻어 한 단계 더 위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 말은 어떻게 생각해 보면 가당치 않은 말이었다. 어떻게 해야만 갑자기 깨닫고 진보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는 너무 뭉뚱그려져 도무지 어처구니가 없는 말에 의지하지 않고 매일 최소 30분간 글자 연습 시간을 가지며 그저 언제라도 자신의 서예 실력이 향상되길 바랄 뿐이었다.
오래지 않아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는 답안지를 제출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