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고차(考差) (2)
“대인, 하관은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고청운의 말투는 확고했다.
“그것도 좋지. 자네는 아직 젊고, 학식도 아직 견고하지 않나. 심지어 한림관 출신이라 고차 시험 통과는 무난할 것이네.”
고개를 끄덕이던 완 낭중은 눈앞에 서 있는 젊은 사내를 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동글동글한 배를 만졌다.
고청운의 검은 머리카락은 마치 먹처럼 짙었고, 피부는 깨끗하고도 희었다. 훤칠한 키에 늘씬한 몸매, 수려한 이목구비에 수염이 깔끔하게 깎여져 있어 얼핏 보면 20대 초반의 모습으로 보이는 그는 보통의 청색 관복을 고분고분하게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보다 더 준수해 보였고, 품위 있는 자태가 돋보였다.
‘음, 마치 젊은 날의 날 보고 있는 듯하네.’
어쩐지 자기 집 부인도 그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했다. 사람을 황홀경으로 몰입하게 만든다는 그가 집필한 화본을 제쳐 두고서라도, 완 낭중의 눈에는 고청운의 겉모습이야말로 여인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제일 주요한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와 같은 수준의 화본을 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째서 하필이면 유독 그만이 가장 유명할 수 있을까?
다만 그의 또 다른 저서인 두 권의 산술 서적을 생각해 보면, 특히 제2권의 일부 내용은 심지어 그조차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좋네, 본관이 동의했으니 가져가서 날인을 찍어 제출하시게.”
결국 완 낭중은 그의 앞길을 막지 않고 지원서 제출에 동의해 주기로 하였다. 게다가 황제는 진사 출신들이 고차에 참가하는 것을 독려하고 있지 않은가.
다만 그는 운남사에서 일 잘하는 주사 하나가 몇 개월간 외부 지역에서 바삐 지낼 것을 생각하니, 두통이 일었다. 다행히 매 주사는 동진사 출신이라 고차에 참가할 자격이 없었다.
고청운은 완 낭중의 허가를 듣고 얼굴에 잠시 희색이 돌았다.
그가 막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완 낭중이 다시 질문을 했다.
“아 참, 신지, 자네가 쓴 <산학재해(算学再解)>에 해설집을 더 엮어낼 생각이 없는가? 우리 집 맏아들이 요즘 이 책을 깊이 연구 중인데, 뒤쪽에 수록된 문제 몇 가지에 대해 좀 의문이 있다고 하네.”
고청운은 눈을 깜빡이며 완 낭중의 큰아들이 저번 시험에서 수재에 합격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때 그들은 합격 축하주를 마시러 갔었다.
고청운은 그가 올 8월 향시에 응시할 것으로 예상이 되어 곧바로 대답했다.
“있습니다. 내일 하관이 해설집 한 권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부시험관이 되고 싶어 하는 것 말고도 또 다른 생각이 있었던 고청운은 시험관 합격이 확정된 후에 머지않아 다시 한번 그를 귀찮게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역시 그에게 잘 보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완 낭중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이만 나가보아도 좋다는 뜻을 보였다.
* * *
고청운은 신청서에 호부의 인장을 날인한 후, 이제 예부로 가져가 신청 절차를 마무리하면 되었다.
인장을 찍다가 마침 함께 축국 경기를 뛰었던 왕 주사를 마주쳤는데, 그의 손에도 고청운과 같은 규격의 신청서가 들려있어, 서로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왕 형도 같이 참가하십니까?”
고청운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왕 주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헤 벌리고 흰 이빨을 드러낸 채 웃기 시작했다. 그가 건장한 몸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두말없이 어깨에 팔을 걸치자, 고청운은 그와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은 충동을 참기 힘들었다.
‘답답해라.’
그는 자신보다 키가 더 컸다.
“그렇다네, 자네도 신청하는 겐가? 잘됐군! 우리 같이 시험 보러 가세. 참, 자네는 어느 성으로 가고 싶은가?”
왕 주사는 힘주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시 원망하듯 말했다.
“며칠 뒤 축국 경기에 참가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도감원(*都察院: 행정 기관을 감찰하는 관청)과의 경기일세. 자네, 시간이 나면 반드시 꼭 와주게. 자네가 오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이길 승산은 별로 없을 걸세. 그럼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네.”
“아직 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시험이 끝난 것도 아니고, 만일 이번에 시험에 떨어진다면 모두 도로 아미타불인데, 이 상황에서 축국까지는…….”
고청운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말했다.
“그리고 너무 과찬이십니다. 어딜 봐서 제가 축국 경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게 보인단 말입니까? 그리고 시합에 갈 수 있을지 말지도 우선 시간이 나야 하는데, 제가 요즘 너무 바빠서요. 마침 저희 부서에 축국을 아주 잘하는 동료 몇 명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가서 의향을 한번 물어보심이 어떠십니까?”
그는 속으로 끊임없이 고향집에서 가장 가까운 성의 부시험관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험 일정이 끝나고 가는 길에 고향집에 들를 수 있을 것이었다. 올해는 마침 3년 기한을 다 채워 가족 방문 휴가를 신청할 수 있는 해였다. 향시가 8월에 있는 것만 아니라면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휴가를 내어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청운의 말을 들은 왕 주사는 조금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럴 수 없네. 자네 같은 사람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자네는 3년 전까지만 해도 한림원에서 지냈지 않았나. 나는 진사에 합격하자마자 바로 호부로 들어왔다네. 아, 안 되지, 당분간은 나도 집에 가서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겠네.”
왕 주사는 자신의 머리를 세차게 두드리며 고청운을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진사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바로 다른 일들에 기웃거리고 다니느라 그간 사서오경이니 하는 책들이 이미 생소해져 버렸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도 그러합니다. 그간 해 온 공부를 다시 복습해야 하지요.”
다행히 고청운은 아들이 글공부 중이라 자주 아이의 학업을 지도해 주느라 함께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자신 역시 그간 배워왔던 내용들을 다 잊어버렸을 것이었다.
“어느 누가 방상괘명(*金榜题名: 전시에 급제하다는 뜻의 사자성어)까지 한 우리가 그간의 공부를 복습하게 될 줄이나 알았겠는가.”
왕 주사가 소매를 한 번 뿌리쳐 뒷짐을 지고, 황당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신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이번 고차가 정말 자신이 없네.”
고청운은 잠시 생각해 보고는 바로 물었다.
“아드님께서 공부하고 있을 텐데, 공부를 지도해 주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어, 그게…….”
왕 주사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난처한 듯 웃음을 띠었다.
“내 아들은 공부를 그다지 잘 못하네. 검과 창을 사용해 무예를 익히는 것을 더 좋아하지. 내가 때려도 보고, 욕도 해 보고 했지만, 이놈이 아주 튼튼해서 조금도 겁을 먹질 않는다네. 집안 어른들까지 아이를 너무 총애하시니 이 아이를 어떻게 할 방도가 없어.”
고청운은 말없이 자신이 만난 적 있던 왕 주사의 아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의 나이는 고영량보다 네다섯 살 더 많았고, 몸집도 매우 컸었다. 키가 보통 어른들보다 더 크고 근육질이라, 만약 아직은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입 주변에 난 솜털까지 없었더라면 슬쩍 봐서는 그냥 성년이 다 된 청년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면 무술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결국 고청원은 이런 말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왕 주사가 적자인 큰아들 외에도 3명의 딸이 더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중 하나만 적녀이고 나머지 둘은 서출이었다. 그는 얼마 전 막 막내아들을 보았는데, 비록 서출이나 고청운은 이 일로 아이의 만월주(*满月酒: 아기가 출생한 지 만 한 달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마시는 술)도 마시러 다녀왔었다.
왕 주사는 여전히 한숨을 내쉬고 미간을 찌푸린 채 근심에 젖어 있었다.
“내가 애초에 진사에 급제할 수 있었던 것은 조상신 덕분에 길조가 들었기 때문이라네. 난 우리 큰아들에게도 책을 읽게 하여 진사 시험을 치게 하고 싶었는데, 그 녀석은 책을 보자마자 잠들어버리기 일쑤네. 나는 아들에게 무엇인가 일을 추진시킬 만한 힘이 없어. 이제 남은 것은 우리 막내아들의 자질이 어떠한지 알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보는 것이지. 무인의 길을 간다라……. 지금은 온 세상이 태평할 때이고, 변강들의 족속들마저 다 굴복시킨 마당인데, 어디 전장에나 나설 일이 있겠는가?”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웃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잘못했네. 전쟁이 없는 것은 폐하께서 영명하신 덕분이니, 장군 병사들이 위용을 떨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마땅히 기뻐해야 할 일이지.”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두 사람은 오는 길에 한림원의 양유를 만났는데, 책 한 무더기를 안고 분주히 돌아다니는 모습에 별다른 말은 섞지 못하고 인사와 답례만 겨우 한 뒤 헤어졌다.
두 사람은 바빠 보이는 이들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한림원이 이번에 고차 준비로 바쁜 게로군.”
왕 주사의 어투에 확신이 묻어 있었다.
고청운도 그 말에 동의했다. 아직 예부까지 도착하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대화를 계속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네의 아들은 잘 크고 있는 것 같더군. 황립 서원에서 공부하면서도 성적이 최상위권이라고 들었네. 그 정도면 나중에 진사 시험에도 반드시 합격할 테니 부자가 둘 다 진사가 되면 분명 타의 모범이 될 걸세.”
고청운이 말없이 있자, 왕 주사는 급히 화제를 돌리며 칭찬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쁨이 일어 자신도 모르게 자부심이 솟구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으나, 이내 기침을 하고 입을 오므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과찬이십니다, 과찬이에요. 그 녀석은 집집마다 다 있을 법한 그냥 보통의 아이입니다. 지금이야 배움이 나쁘지 않아 보이겠지만, 앞으로의 경과는 반드시 아이 스스로의 노력 여부나 운에 달려있습니다. 정말 운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 그는 스스로에게 절대로 웃음을 보이지 말자고 최면을 걸며 명령하고 있었다. 이럴 때 잘못 웃게 된다면 분명 미움을 사게 될 것이었다!
고청운은 매번 아들을 데리고 나가 연회에 참석할 때면, 자기 아이를 칭찬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하였다. 고청운은 이를 언제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모두들 겉치레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왕 주사는 조금 달랐다. 고청운은 왕 주사의 말에 정말 진심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고, 이런 점이 더욱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고청운은 진짜 자신의 아들들이, 큰아들이나 작은아들이나 할 것 없이 둘 다 아주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타고난 자질이 괜찮았고 또 스스로 노력까지 하고 있었기에, 이 상태를 잘 유지해 나가기만 해도 후일 인재로 거듭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여겼다. 그리고 딸인 고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약간의 결점이 있다고는 하지만, 고청운은 여전히 딸아이에 대해 자신감이 충만했고, 발전 가능성이 반드시 있는 아이라고 확신했다.
이런 것들은 그가 이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게 하는 충분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다만 그는 딸이 어떤 면에서 발전해서 출세를 할지는 잘 몰랐다. 남편과 금실이 좋아 가정이 화목할까, 재능 있는 규수로 성장할까, 아니면 자기 스스로 강점을 살려 살아갈까…….
고청운은 그저 딸이 뛰어난 재주와 취미를 소유해 타인의 감정에 무리하게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요컨대, 그는 딸이 앞으로 어떤 좌절을 겪어도 꺾이지 않는 강인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다.
때때로 그는 속으로 ‘내 이런 바람이 너무 큰 것인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