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고차(考差) (1)
고청운은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천천히 말했다.
“스승님은 65세를 막 넘기셨는데도 이렇게 몸이 정정하시지 않습니까. 너무 시간이 한가하다 싶으시면 자서전을 써보심이 어떠할까요? 스승님의 몇십 년 동안의 경험을 책 한 권에 담아보는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저는 사 부마와 절친한 사이입니다. 그에겐 인쇄 공방이 있어서 출판을 하시려거든 인쇄하기도 여건이 좋으니 때가 되면 한 번 써보세요. 출간하신다고 하시면 제가 비용을 대겠습니다.”
스승님이 그동안 무기력해 하던 것은 정년퇴직 증후군 같은 것이 아니던가? 이런 증상은 퇴직한 관료들에게 발생할 확률이 높았다.
“노부의 보잘것없는 재주로 어떻게 자서전을 쓸 수 있겠느냐.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까 두렵구나. 아니 된다, 안될 일이야!”
방인소는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일은 너무 진지하게 접근할 일도 아닙니다. 그저 스승님의 인생 경험을 써 내려가는 것이지요. 스승님의 인생 역정을 후세가 참고할 수 있게 써보시면 됩니다. 역사서를 쓰거나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고청운은 자신의 진정성을 담아 추천해 보았다. 물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는데, 그의 <기하학> 책을 아직 절반밖에 번역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요즘 알파벳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운남사 일도 많아져서 피곤하고 정신이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춘절이 막 지나자마자 또 더 바빠지기 시작했다.
방인소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면 어차피 한가해지신 김에, 황립 서원의 초청에 응해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후학에 열정을 발휘하시는 셈 치실 수도 있고요. 귀여운 아이들과 한데 어울려 지내는 것은 어떠십니까? 아이들이 어찌나 귀여운데요.”
고청운은 엊그제 이야기를 언급했다. 황립 서원에서 스승님에게 교사 초빙을 보내왔는데, 서원에서 산술, 경의, 시부 등 스승님이 원하는 과목으로 정해서 교사로 모시겠다는 내용이었다. 대우도 나쁘지 않았다.
방인소는 정식 진사 출신으로 관직 생활에 있어서도 나쁜 행적이 없었으며, 조카와 제자들도 모두 이갑 진사 출신이었다. 또 지금은 본인도 퇴직을 했으니, 시간이 많이 남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사용할 수가 있었다.
방인소가 서원의 초청을 수락하여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면, 고청운은 이에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터였다.
그의 말을 들어보던 방인소는 교사로 부임하는 것이 싫은 듯했지만, 아직 황립 서원에 답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안 돼, 안 된다. 노부는 개구쟁이 꼬맹이 녀석들을 견디지 못할 게다. 나이 들어서 고생하기 싫구나.”
방인소가 ‘꼬맹이들’을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석이와 소어가 어렸을 때야 한 번씩 이 노부를 괴롭혀도 괜찮았었지만, 지금은 몸이 예전 같지 않단다. 정말이지 아이들과 씨름할 수가 없을 것 같구나.”
“아니, 스승님. 제가 아는 스승님께서는 일전에 저를 꽤나 잘 들볶으셨지 않습니까.”
고청운은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녹음의 수풀 속 그 왜소한 그림자를 주시했다.
고영진(*顾永辰: 고청운의 둘째 아들의 본명. 아명은 소어)은 까치발을 하고 엉거주춤하게 이쪽으로 천천히 이동하다가 고청운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오른손 검지를 입술 중앙에 대고 ‘쉿’ 하는 동작을 하였는데, 온몸에 두꺼운 솜옷을 받쳐 입고 있는 탓에 더 엉거주춤해 보였다.
고청운은 웃음을 참으며 방인소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애초에 아이들은 다 말을 잘 듣고 앙증맞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자신이 매번 아이들을 야단칠 때마다, 방인소와 연 씨는 그의 곁에서 마음 아파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방인소는 가끔씩 매서운 눈빛 세례까지 보냈었다. 고청운은 이것이 생각나서 일부러 이렇게 말을 내뱉었다.
만약 고청운과 방인소 내외가 훈육에 대해 사전에 약조한 것만 아니라면, 고청운은 그들의 분노를 무릅쓰고 아이들을 제대로 훈육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랬다면 지금의 아이들이 어떻게 변모해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아, 대개는 앙증맞지. 앙증맞지 않을 때도 있긴 하다만…….”
방인소는 뒤쪽의 동정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속해서 말했다.
“갑자기 한가해져 버리고 나니 아직 적응은 잘되지 않지만, 그래도 천천히 적응해 나가면 될 것이다. 황립 서원에 간다는 것은 명분이야 참 듣기 좋다만, 노부는 이미 기력이 좋지 못하니 아이들을 가르치러 가고 싶지가 않구나. 그리고 소어 말인데, 지금의 서당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지 않느냐. 노부가 집에서 그 아이의 공부를 지도해 줄 수도 있고 말이야.”
고영진은 눈을 깜박이며 방인소의 뒤에 가서 섰는데, 자못 억울하다는 듯이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턱을 매만지던 고청운은 방인소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제자를 단 한 명만 받았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임산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인소의 문하에 들어가고 싶어 했던가. 만약 그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더라면 지금의 건강 상태를 감당해서라도 교편을 잡았을 것이고, 방자명의 아이가 황립 서원에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스승님의 연세는 이미 66살이 다 되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来稀)라고, 예로부터 사람이 70살까지 살기란 드문 일이었다.
벼슬자리에서 내려온 그는 비록 녹봉이 없다고 하지만 논밭, 장원에 점포까지 가지고 있으니, 의식주 문제가 없는 마당에 또 무슨 일을 하러 갈 필요가 있겠는가? 한평생을 그리 바쁘게 산 것이 이젠 질릴 법도 하지 않겠는가. 이제는 인생을 즐길 때가 된 것이었다.
이때 작은 손이 뒤에서 갑자기 뻗어 나와 방인소의 귀를 쓰다듬었다.
“외증조할아버지, 아버지와 무슨 말씀 중이세요? 소어 이야기 중이신가요?”
고영진이 시원시원하니 또렷한 말투로 물었다.
“소어는 아주 말을 잘 듣는데요.”
마지막 이 한마디를 할 때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한층 더 달콤했다.
방인소는 손에 있던 가위를 얼른 내려놓으며, 양손으로 무릎을 짚고 부들부들 떨며 일어나더니 다급히 말을 이었다.
“이 외증조할아버지는 우리 소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단다. 우리 소어가 이렇게나 앙증맞아서 이 할아비가 어찌나 기쁜지 모르겠구나.”
고청운과 고영진은 방인소에게 다급히 손을 뻗어 부축해 일으켜 주었다.
방인소는 고영진이 고청운을 똑 닮아 힘까지 센 것을 보고 있자니, 방금까지의 다리 저림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 같이 느껴졌다.
“방금 뭐 하러 다녀온 게냐? 어찌 이리 차가워진 손으로 외증조할아버님을 만진 것이야?”
고청운은 고영진의 통통한 뺨을 어루만진 후 아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다시 놀리며 말했다.
“한 해가 지나면서 더 통통해졌구나. 우리 집에서 지금 네가 제일 뚱뚱한 건 아느냐? 네 여동생보다 더 뚱뚱하구나.”
아가들이야 동글동글한 모습이 귀엽게 보이지만 고영진은 이제 7살이었다. 고영량이 7살 때는 이미 살이 빠지고 있었는데, 오직 이 녀석만 이렇게 아직까지 통통한 모습이었다. 이런 점은 고청운을 기쁘게도 하였지만, 아주 조금은 걱정스럽게 하기도 하였다.
이 말을 꺼내자마자 방인소가 아주 여러 번 눈을 부릅뜨고 고청운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아이들이란 자고로 이렇게 자라야만 보기 좋은 게다. 자꾸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할 것이냐? 이러다 만약에 우리 소어가 잘 먹지 않게 되면, 그때 가서 얼마나 더 조급해하려고 그러는 것이야!”
고영진은 입을 오므린 채 몰래 아버지를 한 번 쳐다보았다. 아이는 외증조할아버지가 자시 편을 들어주자 속으로는 아주 기뻤지만, 감히 얼굴에 득의양양한 표정까지는 짓지 못했다.
“저는 아까 여동생이랑 놀러 갔었는데, 여동생이 말을 잘 듣지 않았어요. 또 오줌을 싸서 어머니께서 지금 옷을 갈아입혀 주고 계세요.”
고영진은 분백색의 얼굴에 당혹감을 드러낸 채 말했다.
“여동생이 어제도 오늘도 또 바지에 오줌을 쌌지 뭐예요. 아유, 그 앤 너무 게을러요.”
아이는 말을 마치고 정말 그럴듯하게 신경 쓰인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작은 얼굴을 찌푸렸는데, 입에서는 흰 입김이 새어 나왔다.
고청운과 방인소는 마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이 집의 막내 아이는 정말이지 말 한마디를 마치 금덩이처럼 아끼는 아이였다. 심지어 놀이에 집중이라도 할 때면 요의가 있더라도 어른들에게 말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막내는 이미 한두 살짜리 아기도 아니고 벌써 3살이었는데도 오직 자기 기분이 좋을 때만 한마디 하고는 하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간미가 딸아이를 데리고 손님으로 어딘가를 방문할 적에는 단 한 번도 바지에 실수하지 않고 요의가 있다는 것을 어른들에게 알리고는 하였다. 이런 아이의 모습에 어른들은 이 상황이 매우 기이하여 분명 이 꼬맹이가 바지에 실례하는 것이 고의적이라고 여기고 있었으나, 확실한 증거는 얻지 못하고 있었다.
방인소는 하늘을 바라보며 고영진의 손을 이끌고 나긋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소어야, 앞으로 할아비가 시간 날 때 너를 서당에 데려다주고 또 데리러 가면 어떻겠느냐? 그리고 앞으로 네 공부도 이 할아비가 맡아 줄까 하는데.”
고영진은 핏대가 퍼져 있는 그의 큰 손을 조몰락거리며 고청운을 한 번 돌아보았고, 고청운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소어가 반드시 착하게 말도 잘 듣고, 책도 잘 읽을게요.”
고청운 고개를 저으며 한숨까지 내쉬었다. 이것은 한쪽은 맞으려 하고, 한쪽은 때리고 하고 싶어 하는 형국이 아닌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로 저 둘의 이해가 들어맞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방금 전까지 애들에게 들볶이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자진해서 이렇게 나서시는 건가?’
고청운이 허리를 굽혀 아까의 그 가위를 줍느라 그의 가죽옷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뒤이어 그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 쫓아갔다.
* * *
시간이 흘러 3월이 되어 고청운은 향시의 주임 및 부시험관 모집에 관한 공문을 하달받았다. 그는 응시에 대한 필요조건을 자세히 살펴보니 모두 자신에게 들어맞는 조건들이었고, 또 공번충과 했던 대화가 떠올라 한참을 심사숙고하다가 결국 모집에 응시해 보기로 하였다.
“신지, 자네 시험관으로 출장 나가는 업무에 지원할 예정인가?”
완 낭중이 그의 지원서를 보며 중얼거렸다.
고청운은 조금 민망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하는 사람인지라 호부에 막 전근하자마자 3개월짜리 가족 방문 휴가를 낸 데 이어 향시의 부시험관까지 신청하게 되었는데, 마치 본업을 등한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가족 방문 휴가를 신청한 것이나 부시험관 신청이나 당연히 신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본 왕조의 과거 시험 규정에는, 각 성의 향시의 정(正), 부(副)시험관으로 경성의 관리가 임명되어야 했는데, 이를 시차(*试差: 조정에서 파견하는 향시의 시험관)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정당하고도 유익한 파견 근무에 관하여 진사 출신의 관리라면 누구나 이 '나라를 위해 발로 뛰는 인재'라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욕심을 내기 마련이었다. 나라를 위해 파견 나가 임무를 수행하는 관리라니, 듣기에도 이 얼마나 품위 있고 고급스럽단 말인가.
그러나 이 시차 직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많았다. 이에 아주 오래전부터 영안제는 시험관 임명 전, 먼저 임명을 희망하는 자들을 모아 시험을 치러 시험관을 선발했는데, 시험관의 자질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도 있었지만, 시험관들이 벼슬을 시작한 후 학식을 등한시해 시험에서 진정한 인재를 뽑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그런 것도 있었다. 이 시험은 고차(*考差: 과거 시험의 시험관 선발제도)라고 불렀다.
결국 관리들은 과거 시험을 제외하고, 관직에 나아가서까지도 시험을 쳐야 했다.
고차는 4월에 실시하는데, 구체적인 시험 일정은 황제의 분부에 따라 결정되었으나 일반적으로 5월을 넘기지 않았다. 5월 내로 시험이 치러져야 했던 연유는 향시가 8월에 치러졌기 때문이었다.
국토 면적이 너무 넓었던 탓에 내륙에 위치한 성으로 파견을 나가야 할 경우, 수로를 이용하지 못하는 지역으로 가야 하는 시험관들은 너무나도 오래 육로를 이동해야 해서 이렇게 긴 시간적 준비가 필요했다. 예를 들면 운귀(*云贵: 운남(雲南)성과 귀주(貴州)성의 합칭) 지역의 경우, 적어도 두 달 이상 걸리기 때문에 5월 중순에는 경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