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담화
오후 근무가 끝난 뒤, 고청운은 자신의 말을 끌고 마구간 문을 나섰고, 그의 뒤로 고삼원도 말 한 마리를 끌고 따라나섰다.
그랬다. 그는 집에 말 한 필을 더 들였는데, 최근에 원고료와 황제로부터 받은 상금 등이 마침 수중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가 이미 500냥에 달하는 은자를 해외 무역에 투자했다고는 하나, 집안에는 그래도 예전보다는 더 많은 은자가 비축되어 있었다. 특히 지금은 사장정과 여러 성의 서점들이 합작하여 그의 책을 다른 성에서도 그대로 가져다 팔고 있었기에 고료도 이전보다 더 많이 받게 되었다.
그래도 고료가 그렇게 많게 늘지는 않은 것은, 책 운송에 드는 비용이 높았던 탓에 그에게 배분되는 고료가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사장정의 서재에는 최근에 또 몇 명의 유명하고 전문적인 화본을 집필하는 문인들이 들어왔는데, 이에 순식간에 그의 서점은 경성 제일의 서점으로 급부상했다.
“신지!”
공번충이 말을 끌고 고청운의 앞에 나타나 인사를 건넸다.
고청운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에게 더 바짝 다가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공 형, 무슨 일 있으십니까?”
‘따로 날 만나기 위해 찾아와 기다리고 있던 건가?’
고청운이 사방을 둘러보니 퇴근을 맞은 다른 관리들이 그들 두 사람을 보고는 모두 무의식적으로 돌아보며 흘긋대고 있었는데, 표정이 다들 자못 놀란 듯했다. 평소에 그 둘의 만남이 얼마나 적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공번충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와 나란히 걷다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
“신지, 요즘 자네 집이 아주 시끌벅적하다지?”
“그저 그렇지요 뭐.”
이 말에 고청운은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낮은 소리로 답하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는 이런 상황에 대해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8월 말에 원시 시험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부터 그의 집에는 차츰차츰 방문객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은 바로 왕가준 때문이었다.
왕가준이 처음 당면했던 상황이 어떠했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듯, 왕씨 문중의 족학 선생님은 그의 기초가 아직 튼튼하지 않다고 단정하며, 그가 수재에 합격하려면 적어도 30세가 될 때까지 학문을 더 쌓고 난 다음일 것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30살이 되어서도 그때의 왕가준이 공부를 계속할지, 장사를 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올해, 왕가준이 열아홉의 나이로 드디어 원시 시험에 합격하여 수재 신분이 된 것이었다. 심지어 그는 품생(*禀生: 원시 시험에서의 1등)으로 원시 시험에 합격을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왕씨 집안에서는 큰 파문이 일었다.
왕가준 본인의 발언과 함께 참작하여 모두들 그 이유에 대해 분석을 해 본 결과, 이번 시험에서 왕가준을 1등으로 수재에 합격시킨 것에는 고청운의 공이 컸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왕가준 스스로 열심히 공부한 데다 약간의 시험 운도 따랐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는 유명한 스승을 숭상하던 시절이 아닌가. 게다가 고청운은 일찍이 황립 서원의 선생으로 지냈고, 본인 역시 정식 진사 출신이기까지 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당연히 왕가준의 정수리에 명스승이라는 후광이 하나 얹어져 있는 듯했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이후로 권세가 있고 관직이 높다는 집이라면 거의 다 고청운의 집안 문턱을 허물 기세로 그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자기 집 아이들의 공부를 부탁하고자 함이었는데, 특히 둘째, 셋째 아들들을 어떻게든 그에게 찔러보며, 그가 몇 년 내에 그들을 훌륭한 인재로 탈바꿈시켜 수재나 거인으로 만들어 주기를 희망하면서 고청운을 여간 성가시게 했다.
허나 그는 지금은 너무나 바쁜 시기였고 또 학생을 받기도 싫어서 줄곧 완곡하게 거절하고 있었다.
반면, 그를 기쁘게 한 소식도 있었는데, 바로 사촌동생인 고청평이 이번 시험에서 수재에 합격했던 것이었다. 비록 또 다른 사촌동생인 고청안은 이번 시험에서도 낙방을 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고청평의 성공이 있었으니 고씨 집안은 이번 사건으로 사기가 매우 높아졌다.
그는 아버지와 고청평이 보내온 서신에서 드러나는 흥분을 보고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두 번째 소란은 바로 그가 쓴 <백사전> 때문이었다. 그간 이미 100만자에 가까운 글을 탈고해낸 그는 지금 거의 이야기의 대미를 앞두고 있었다. 다음 달인 11월에 바로 결말 부분을 발표할 예정이라 마지막 5만 자를 아직 손에 들고 있었는데, 이미 독자들 사이에서는 불길한 예감이 조성되어 있었다.
독자들 입장에서는 1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해 온 이 작품에 자연히 어떤 감정들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었다. 만약 결말을 행복한 설정으로 가게 되면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 원만하게 작품 활동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겠으나, 지금 작가의 문풍이나 분위기 때문에 모두들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었는데, 독자들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자연히 그들은 주범을 찾아가서 결판을 지으려 하였다. 다행히 고청운은 아직까지는 의심을 받는 작가 중 한 명일 뿐이었고, 독자들도 그가 지금 바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치상으로는 그가 화본을 쓸 시간이 없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굳건하게 의견을 고수하고 있는 일부 독자들은 산곡거사의 정체가 고청운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백사전>의 문풍은 이전 작품들보다 더욱 섬세했지만, 사람은 아무리 변해도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일부 사람들은 아주 예리하게 동일 작가의 작품이라고 여기고 있던 것이었다.
이에 고청운은 자신이 지금 관리의 신분이라는 것에 찬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 관리 신분이란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위협적인 위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신분이 낮은 자는 감히 그에게 경거망동할 수 없었고, 그보다 지위나 신분이 높은 자라고 한들 공적인 신분의 그에게는 비교적 신중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음, 자네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확실히 일가견이 있네.”
공번충은 긍정적으로 말하며 주위를 둘러보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년은 향시 시험이 열리는 해일세. 최근 우리 한림원에서는 내년 부시험관 임용에 대해 논의 중인데, 자네 여기에 관심 없는가?”
고청운은 깜짝 놀랐다. 향시 시험에서는 한림관이 부족하면 다른 부서에서 인재를 차출해 부시험관으로 일하게 하기도 하였다. 이미 한림관을 해봤거나 관련 학식이 풍부하다면, 소속 부서의 동의를 얻는 것만으로도 한두 달 휴가를 받아서 부시험관으로 활동할 수가 있었다. 그가 속으로 헤아려 보니 자신은 바로 요건들에 부합하기는 하였다.
“한림원에서 필요하다고 하신다면, 저는 큰 이견이 없습니다.”
공번충은 그 말을 듣더니 안색을 누그러트렸다.
“내가 보기에는 학사 대인께서 자네가 가기를 바라고 계신 듯하네. 오늘 대학사께서 자네를 언급하셨지. 자네가 집필한 산술 서적 제2권이 아주 좋다고 하셨다네.”
고청운은 말을 듣고 방긋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한 가지 추측을 해 보았다. 아마 그에게 산술 문제를 내라고 할 예정이신 것 같은데, 그에게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오히려 아주 반가운 일이었다.
“듣자 하니 요즘 외국책을 번역하고 있다던데, 그들의 언어가 배우기 어렵지는 않은가?”
공번충은 또 한 번 고청운을 쳐다보았고, 무표정한 얼굴에 호기심을 내비쳤다.
“적당한 사람을 찾아 배움을 구하고 거기에 노력과 시간만 좀 더 들이면 문제 될 건 없습니다.”
고청운은 웃어 보이곳 덧붙여 말했다.
“우리가 그 일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에 달려있을 뿐이죠.”
“자네는 정말 이상한 사람일세.”
공번충이 한마디 했는데, 어떤 생각에 잠겨있는 듯했다.
“만만치 않으시면서.”
고청운은 남몰래 눈을 뒤집었다. 이 집돌이야말로 가장 이상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는 집의 깊은 곳에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와 사람과 만나는 일이 드물었는데, 모두들 그가 집에 틀어박혀 무엇인가 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아니면 책이라도 보는 것일까?
그래도 그의 진사 동기들은 ‘역시 우리 장원이지!’하는 생각에 다시금 탄복하고는 하였다.
고청운과 공번충은 몇 마디 더 나눈 뒤, 길목에서 헤어졌다.
이후 고청운은 말을 타고 황립 서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일은 휴무일이었고, 오늘 오후부터는 아들의 서원도 휴무일이었기에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날이라 마중을 나가야 했던 것이었다.
* * *
“아버지, 소보 형님이 앞으로도 황립 서원에 남아 계속 공부를 한다고 해요. 이후로 무관으로 종사하면 전쟁터에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위험하지 않나요?”
고청운의 말 한 필에 동승한 고영량(*顾永良: 소석의 본명)은 거의 고청운의 품에 안긴 듯이 고청운의 앞에 앉아 말했다.
고청운이 자신의 턱 밑에 있는 검은 머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군대에 간다는 것은 당연히 전쟁터에 나간다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공을 세우겠느냐. 전쟁터에 나간다는 것은 백성을 보호하고 또 조정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란다. 안심하거라, 후부 나리가 있지 않으냐. 너의 소보 형님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게야. 그러면 더 안전해질 수가 있지.”
그러면 전쟁터에서는? 아마 앞으로는 해전이 더 많아질 것이었다.
“오, 그럼 이제 소보 형님은 장군이 되겠네요. 나리와 마찬가지로 말이에요.”
고영량이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 말에 고청운이 생긋 웃었다.
“아 참, 아버지. 스승님께서 제가 지금 현시나 부시를 볼 수 있다고 하세요. 아버지 보시기에 제가 내년에 시험을 보러 가야 할까요?”
고영량의 말투에는 시도해 보고 싶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아들은 공부를 잘했는데, 사서오경은 이미 다 배웠으며 경의와 시부 방면의 깨달음은 그보다 높았고, 학식 또한 또래 중에서 가장 우수한 편이었다. 고청운 역시 아이가 시험에 합격해 동생 신분이 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필경 현시와 부시에서는 첩경(*帖经: 과거 시험의 일종으로, 경문을 얼마나 잘 외우고 있는지를 시험하는 방식)이 점수를 차지하는 비중이 컸는데, 주로 응시생의 기억력과 서면 작성 능력을 살펴보는 문제로, 이 두 가지 모두 아들이 잘하는 분야였다.
11살의 동생 신분이라, 듣기에는 그럴듯했다. 어렸을 적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청운은 아들 역시 이렇게 빨리 고시의 길에 들어서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내후년까지 기다려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 그때 외증조할아버지께서 낙향하시면 같이 따라가서 한 번에 시험에 붙어 수재가 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구나. 왔다 갔다 고생하지 말고 말이야.”
고청운은 한 번에 시험에 붙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원시라는 시험이 3일간 치러지는 시험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고생길을 걸어보았던 고청운은 진심으로 아들이 너무 어린 나이에 그런 고생을 겪지 않기를 바랐다. 만약 몸이라도 상해, 평생 건강에 해를 끼치기라도 하면 어쩌겠는가?
“좋아요, 아버지. 아버지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그는 생각해 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제가 2년 후에 고향으로 돌아가 시험을 본다면, 황립 서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은 동생에게 물려줄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