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294)화 (294/504)

294화. 서신 (2)

왕순이 상자를 들어줄 필요 없이, 고대하는 자신이 직접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마당에 서 있던 고계산이 말했다.

“방금 누가 왔느냐. 또 무슨 잔치 초대한다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요, 우리 전자가 서신을 부쳐왔다고 합니다.”

고대하는 돌아보며 하하 웃었다. 경성에 다녀온 후, 그는 늘 다른 사람의 초청을 받고 있었는데, 본현이 아니면 이웃 현에서까지 초청이 쏟아졌다. 다들 경성에서의 생활이 궁금했던 탓이었는데, 그가 몇 번이고 경성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해 주어도 모두들 여전히 매우 흥미 있어 했다. 

그의 말을 들은 온 집안 식구들은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서둘러 그를 둘러쌌다. 고택에는 식솔이 별로 없었는데, 고향으로 돌아온 고대하 부부가 다시 현성으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었다.

상자가 열리자 모두들 먼저 가지런히 놓여 있는 몇 권의 책에 눈이 갔다. 

“이것이 전자가 쓴 두 번째 산술 서적인가 봅니다!”

열심히 책을 훑어보던 고대하는 표지에 적힌 아들의 이름을 보고는 기쁨에 겨워 외쳤다.

“우리 전자가 또 한 권의 책을 써내다니!”

“아미타불, 보살님의 가호 덕분입니다. 우리 집 전자는 참으로 똑똑하고 대단하기도 하지!”

노진씨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곧 불경을 외며, 자신의 손에 있는 염주를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얼굴에 있던 주름살까지 다 펴져 있었다. 

노진씨는 많은 노년 부인들처럼 먹고 입는 것을 걱정하지 않은 삶에 들어서자 불의에 빠지게 되었는데, 때때로 절에 가서 큰손자가 바깥에서 잘 지내도록 도와달라고,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리고는 하였다. 더불어 그녀는 평평이와 안안이가 하루 빨리 수재에게 합격할 수 있도록 향불을 태우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고대하는 주위를 돌아보며 편지를 펼쳐 읽어주었다. 

네 사람은 고청운의 모든 것이 괜찮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을 놓았다.

소진씨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깊게 숙이고 말했다.

“편지에 책 한 권은 족학으로 보내고, 두 권은 현학으로 보내라 하지 않았어요? 여보, 일찌감치 가져다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여기 우리 집에 둘 것도 한 권 남았네요.”

고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분명히 그리하리다.”

고계산은 싱글벙글 웃으며 책을 매만지다가 손을 고청운의 이름 석 자가 있는 곳에 가져대고 이상한 듯 물었다.

“전자가 족학에는 한 권만 남기고, 현학에 두 권을 건네주라 하였다고? 어찌 그랬을꼬?”

“아이고, 아버지. 전자의 이번 산술 서적은 난이도가 높아서, 족학에 다니는 아이들이 배우기에는 내용이 너무 심오합니다. 현에 두고 배우면 딱 적당하다는 뜻이에요.”

고대하가 황급히 설명했다.

고계산은 고청운의 의중을 알게 되자 더 이상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고대하는 아들이 자신에게 보내온 화본을 보며 더욱 기뻐했다. 경성에서 무료한 마음에 화본을 보게 된 이후, 아들은 그에게 계속 화본을 사다 주었는데, 고향집으로 돌아가도 어김없이 이렇게 조금씩 부쳐주고는 하였다.

특히 아들이 <백사전>을 집필하기 시작한 후 며느리와 함께 아들의 열렬한 독자로 거듭난 그는 한동안 새로 간행된 내용을 보지 못하면 밤잠을 설치고는 하였다. 

고대하는 아들이 서신으로 생활이 평온하다고 전한 정황을 확인하고는 답장은 조카들의 원시 성적이 나온 뒤로 미루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 미리 답장을 다 보내버렸다가 조카들이 뒤이어 수재에 합격해 버리면 경성으로 다시 한번 서신을 부쳐야만 했던 것이었다. 

말을 좀 덧붙이자면, 조카들이 이번 시험에 합격할 확률은 매우 높았다. 지난번에 현성에 가서 둘째네 집에 들렀을 때, 조카들은 예전보다 훨씬 영리해진 모습이었다. 모습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책을 많이 봐서 변했나 싶었다. 더 이상 어리벙벙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아들 반만큼은 아직 영리하지 못했다. 

‘됐다. 이런 건 더 생각할 필요가 없고, 지금은 아들이 보내온 화본을 다 읽어야 할 때다!’

그의 표정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던 소진씨는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그녀도 화본을 아주 좋아했지만, 글을 읽을 줄 몰라서 남편이 그녀에게 읽어주기를 기다려야 했던 것이었다. 

* * *

중추절 즈음하여, 고청운은 아직도 원시 결과가 발표 전이라는 생각에, 자신의 사촌동생이 생각나 이번에는 꼭 합격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아들이 커서 몇 년 후 고향으로 돌아가서 당숙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면, 그는 사촌동생들의 체면이 서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사촌동생들이 늦게까지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고 있다가도,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여 독서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이번은 다를 것이었다. 

예를 들어 고청평은 고이하를 따라서 가게, 밭 관리 공부를 하며 앞으로 가업을 함께 이어갈 준비를 시작했다. 고청안은 어느 서점에 가서 서화를 표구하는 법을 배웠는데, 이는 일종의 밥벌이가 가능한 기술을 익히는 것으로, 스스로 자신의 몸을 건사할 수 있었다. 서화와도 관계가 있는 직종이었기에 꽤나 우아한 편이었는데, 그가 나중에 동창에게 선물을 보낼 때 자신이 직접 표구한 서화를 보내주자 매우 정성이 깃든 선물이 되었다.

그들 둘 외에도 고청운은 그를 따라 반년 동안 공부한 소년 왕가준도 걱정되었다. 그 아이는 작년에 동생에 합격한 후 올해에 더욱 학업적 성취가 향상되었는데, 6월에 잠시 이별을 고하고 월양군으로 내려가 시험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고청운이 고향집에 보낸 물건은 바로 왕씨 댁의 도움을 받은 것들이었다. 

고청운은 그 아이도 시험에 붙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중추절이 지나고, 조정에서는 호부에서 내놓은 방안에 동의해 운남 지역에서 이 책론을 시행해 보기로 결정을 하였다. 

이후 호부는 빠지기 시작했는데, 일단 운남을 발전시키려면 먼저 투자가 이뤄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최소한 도로 정도를 보수하려고 해도 이는 국가 경비 예산 문제와 관련되어 있어, 호부가 이 예산 작업을 완료해야 했고, 이 예산을 추렴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다 억지를 써야 했다.

고청운은 비록 바빠졌지만, 이번에 이리 바빠진 것에 내심 기뻤다. 필경 그가 처음 제기한 책론이 조정에서 받아들여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호부의 다른 상관을 거쳐서 다른 사람이 중간에 내용을 수정하거나 추가했는데도 고청운의 공은 가려지지 않았다. 자신이 처음에 봉인한 상주문이 그대로 보고되었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고청운은 황제로부터 상까지 하사받았지만, 승진은 하지 못했다.

황제가 하사한 상이라는 것은 은자 300냥이라는 가장 실속 있는 포상이었다. 다른 옥여의(*玉如意: 좋은 길조가 있고 뜻하는 바가 소원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뜻에서 소장하는 옥 장식품), 보병(*宝瓶: 꽃병을 아름답게 부르는 말) 따위는 조심스럽게 받들고 살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는데,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것이니 절대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고청운에게는 당연히 은자가 더 실용적인 포상이었다. 

과연 이 포상은 적절한 것인가. 고청운이 평소 보았던 영안제의 품격으로 미루어 보아, 아주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영안제는 보통 규율에 맞추어 일하는 것을 중시하는 황제로, 파격적인 행보는 드물었다.

어쨌든 그들 고씨 가문도 이제 황제의 어사품(御賜品)을 보유한 셈인데, 이것은 그들 가문이 큰 진전을 이룩한 셈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가 가장 원했던 것은 황제가 그에게 황립 서원의 추가 입학 허가를 허하여 주는 것이었는데, 황제가 상을 하사할 때 본인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이미 집으로 상을 보냈다는 점이 정말 아쉬웠다.

 허나 고청운은 별다른 생각을 더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는 지금 호부에서의 이런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보아하니, 시간의 힘에 의해 한 집단에 서서히 융화되는 방법 말고도 단체 운동 경기 등의 방법으로 기존 조직과 함께 하나가 되는 방식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 * *

운남지역 발전계획이 정식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고청운은 방희림의 서신을 받게 되었다. 

고청운은 반년 동안 그의 서신을 받지 못해 정말로 걱정하고 있던 차였다. 그와 방희림은 알고 지낸 지 오래된 편은 아니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정말 인연이라는 것을 따지는 것인지, 아니면 풍겨 나오는 분위기를 통해 출신 배경이 비슷한 것을 느껴서인지,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된 이후로부터 줄곧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 반년이 넘도록 연락이 없던 것이었다. 고청운은 비록 운남의 교통이 불편해서 이런 간극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혹여나 그가 강매양전(*强买良田: 양민의 전답을 강제로 매매함) 사건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사건 당시 그가 큰 변화를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자신 말고 경성의 다른 동기들 모두 오랫동안 누구도 그의 소식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랬던 고청운이 드디어 그의 서신을 받아 들었으니, 지금 얼마나 기뻐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방희림은 서신에서 자신이 속한 지역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들여 직접 돌아다니며 현 내를 시찰했는데, 그간 느낀 현 내의 가난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끔찍하다고 밝혔다. 

적은 인구와 빈곤, 낙후, 폐쇄. 이것이 바로 방희림이 직면하고 있는 형세였다. 

고청운은 묵연해졌다. 그는 이런 지역의 상황에 대해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진사 동기들로부터 가끔 서신이 오고는 했는데, 그들 역시 자신들의 관할 지역의 상황에 대해 알리고는 했다. 또한 고청운은 친한 친구가 그곳으로 좌천된 후부터 운남 자료를 수집할 때 특별히 그쪽 지역과 관련된 것에 주의하고 있었기에 이런 사정에 대해 진즉에 잘 알고 있었다. 

고청운의 고향은 아마도 부두가 있었던 연유인지, 아니면 군성까지의 거리 역시 배를 타면 하루 반밖에 걸리지 않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여서인지, 그의 고향 임산현은 가장 가난한 지역이 아니었다. 현재엔 교통이 가장 안 좋은 지역이 바로 제일 빈곤한 지역이 되었다. 

고청운은 생각을 해 보고 나서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서신에 적어 보냈는데, 과연 이 자료가 유용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고청운은 업무 외에 남는 여가 시간을 모두 다 책 번역에 쏟아부었다. 

전생에 이쪽 방면의 지식에 대한 인상이 남아 있던 덕분에, 그는 톰 등 다른 신부들과의 소통을 통해 비교적 원활하게 산술이라는 학문에 존재하는 전문 용어를 번역해 낼 수 있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 하 왕조에서 바로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할 것을 제창했는데, 아라비아 숫자를 사용해야만 더욱 간결하고 명료하게 계산을 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부를 기록할 때, 아라비아 숫자와 병용하여 사용하게 되면 사람들이 숫자를 대할 때 거래처가 속임수로 고치거나 곡해했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청운은 혹시 모를 논란, 예를 들어 새로운 제도나 치적을 세우기 위해 조상의 업적을 잊고 불필요하게 고대의 전통을 갈아엎는다는 등의 비평을 받을까 봐 이 책을 발표하기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사실 그는 줄곧 책을 다듬으면서도 그의 번역서를 출간 전 다른 산술학계 선배들에게 보여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고민했다. 그러다 괜히 하찮은 일로 떠들썩하게 구는 것일까 봐 줄곧 이 책을 보일지 말지 망설이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고청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이미 실체를 확실히 드러낸 기하학 번역 원고를 쳐다보던 그는 결국엔 정식 초고가 완성되면 그때에나 다시 고민해 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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